할란이 오래 기다려 온 미래, 프로몬토리

Written by강 은영

프로몬토리(Promontory) 2017 빈티지 출시를 앞두고 도멘 H 윌리험 할란(Domaine H. Willian Harlan)의 매니징 디렉터 윌 할란(Will Harlan)이 방한했다. ‘저 유명한 할란 이스테이트의 할란이 만든 또 다른 마스터피스 와인’ 이보다 편리하게 프로몬토리를 설명할 길은 없는데, 이 젊은 오너가 썩 즐겨할 소개 방식은 아닐 듯하다. 공식적으로 한국시장엔 이번이 첫 출시다. 와인이 풀리는 건 보르도 네고시앙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10월 11일로 예정돼있다. 이름난 와인들이 으레 그렇듯 아주 소량이라 우리의 버킷리스트는 또 늘어날 전망이다. 윌 할란의 방한에 맞춰 지난 9월 16일, 에노테카코리아에서 준비한 프로몬토리 마스터클래스가 있었고, 잠깐 인터뷰 시간도 가졌다.

윌 할란(Will Harlan)이 진행한 프로몬토리 마스터클래스

아버지와 아들

먼저 인터뷰이 윌 할란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면, 빌 할란의 아들로 할란 이스테이트의 첫 빈티지인 1987년에 태어났다. 도전을 즐기고 제로에서 뭔가를 일구는 것을 좋아하며 테크놀로지에 관심이 많은 편. 그러나 비공식적으로 인생의 모든 순간을 와인 업계에 몸담았고, 어릴 때부터 “와인은 2백년지대계”라는 아버지의 잠언을 듣고 자랐다. 대학생 때부터 패밀리 비즈니스에 종종 발을 들이긴 했지만, 그의 심장을 다시 와인으로 끌어들인 계기가 있었으니, 프로몬토리다. 나파 밸리 서쪽 오크빌과 욘트빌 사이, 할란 이스테이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숲으로 둘러싸인 고립된 포도밭이 있다. 나파의 여느 포도밭과는 다른 곳. 좁은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암석 사이로 고사리들이 자라고 이끼와 습기로 가득하다. 아침이면 안개가 차지하는 이 땅을 발견한 건 하이킹을 하던 빌 할란이었다. 때는 80년대 중반. 당시엔 야생의 숲이었는데, 이 극적인 환경이 그를 매료시켰다. 하지만 이곳을 사냥터로 사용하던 주인은 땅을 팔길 원치 않았다. 결국 세기가 바뀌고서야 할란 패밀리는 이 이름 없는 땅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 2008년이었다. 그 사이 숲에는 포도밭이 들어섰다. 총 두 면. 각각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중반에 식재된 포도밭이다.  

아버지 빌 할란(H. William Harlan/좌)과 아들 윌 할란(Will Harlan/우)

이전 소유주는 좋은 와인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주변에 포도를 팔거나 적당한 수준의 와인을 만드는 정도면 족했다. 윌이 말했다. “외딴 산비탈 미지의 포도밭에서 어떤 결과를 낼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였다”고. 어쩌면 그 미지수에 심장이 뛰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만은 확실했다”고 그는 덧붙였다. 첫해에는 식재된 포도나무를 전부 뿌리 뽑고 ‘신선하게 시작해볼까’ 생각도 했지만 마음을 바꿨다. 기존 포도밭에서 살릴만한 구역이 있는지 살펴보기로. 결과적으로는 훌륭한 선택이었는데 일부 구획에서 아주 뛰어난 와인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비록 포도밭이 정돈된 인상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일부는 유지하고(대체로 까베르네 소비뇽이었다) 새 포도나무도 식재했다. 현재 포도밭 규모는 32ha 정도다. 

안개 낀 프로몬토리 협곡

잃어버린 붉은 그림자

빌 할란은 프로몬토리를 ‘잃어버린 붉은 그림자(Missing Shade of Red)’라 불렀다. 철학자 데이비드 흄이 제시한 ‘Missing Shade of Blue’에 대한 변주다. 스스로 설립했으나 마치 잃어버렸던 퍼즐을 찾은 것 같은 아이러니이자 할란의 붉은 스펙트럼을 더 촘촘하게 채울 새로운 레드. 그리고 그가 늘 주장하던 “삶을 한 단계가 더 진전하게 하는 퍼즐 한 조각”이다. 프로몬토리의 와인은 까베르네 소비뇽 딱 하나다. 2015년 완공한 프로몬토리 와이너리도 할란 이스테이트에서 멀지 않다. 그러니까 할란이란 이름을 그대로 가져다가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는 방법도 있지 않았을까? 윌의 답은 명료했다. 캐릭터가 다르므로(이 ‘캐릭터’에 대한 윌 할란의 이야기는 뒤에 가서 좀 더 하기로 하고) 접근 방식도 달라야 했다.

오스트리아산 오크통과 나파 까베르네 소비뇽

프로몬토리의 첫 빈티지는 2008년이었지만 시장에 출시되지는 않았다. 세상의 빛을 본 첫 공식 빈티지는 2009년이다. 장장 5년 반의 숙성을 거친 후 모습을 드러낸 프로몬토리의 첫번째 얼굴이었다. 2017년 빈티지부터는 약 4년 반 숙성 후 출시된다. 나파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까베르네 소비뇽 베이스의 많은 고급와인들은 주로 작은 프렌치 오크 배럴(보통 225ℓ)에서 숙성된다. 프로몬토리는 다른 선택지를 골랐다. 커다란 오스트리아산(약 3,100ℓ) 캐스크를 2012년 빈티지부터 시험하여 2015년 빈티지부터는 온전히. 이탈리아 피에몬떼의 유명 와이너리 자꼬모 콘테르노를 방문했을 때 얻은 아이디어였다. “왜 이탈리아의 많은 생산자들은 커다란 오스트리아산 오크를 사용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가문의 대를 이어 와인을 생산하는 로베르토 콘테르노가 대답했다. “많은 이탈리아 와인이 오랜 숙성을 필요로 하지만 그 긴 시간 동안 오크의 영향을 과하게 받는 건 원치 않기 때문”이라고. 그 말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프로몬토리 팀이 생각하던 바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스트리아산 캐스크를 시험해보기로 한 뒤에도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생산량이 넉넉지 않은 캐스크였고 미국으론 거의 수출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초반엔 생산자를 설득하는 데도 상당히 애를 먹었다고 한다.

프로몬토리의 캐스크룸

할란이 숲속의 땅이라면 프로몬토리는 숲의 지붕

할란 패밀리가 만드는 할란 이스테이트, 본드 프로젝트, 그리고 프로몬토리는 모두 까베르네 소비뇽 베이스 와인이다. 와인을 비교하여 정의를 구하는 질문은 대체로 부질없지만 “프로몬토리 와인의 컨셉이나 스타일을 다른 자매 와인들과 비교해서 설명해줄 수 있을까?” 같은 질문을 하지 않기란 쉽지 않다. 때론 질문 의도와 상관없이 와인생산자의 빛나는 답변을 들을 수 있고, ‘와인 철학 어쩌고’하는 고루하지만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을 유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현명한 와인생산자가 응당해야 할 답을 했다. “우리에겐 룰이 있는데, 와인을 비교하지 않는 거”라고. 불행이자 다행히도 그는 비슷한 질문을 수차례 받아 이력이 나 있었고, 타협안이 없진 않았다. “본드 프로젝트는 5개의 와인이라는 개념에서 차이가 있으니 배제하기로 하고 할란과 프로몬토리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면 ‘스타일’보다는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인간이 정한 개념인 ‘스타일’ 말고 자연적으로 가지고 있는 ‘캐릭터’ 말이다. 할란과 프로몬토리는 매우 다른 캐릭터의 와인이라며,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내게 할란은 언제나 땅과 연관된 요소가 있다. 숲속을 걸으면서 맡는 흙냄새를 상기시키고 부드럽고 놀라울 정도의 복합미가 겹겹이 쌓여 있다. 프로몬토리는 다르다. 할란을 숲속의 땅과 연결한다면, 프로몬토리는 좀 더 숲의 지붕(Canopy of Forest), 나무의 상층부 같은 느낌이다. 좀 더 서늘하고 좀 더 선이 가늘며, 까베르네의 미네랄 캐릭터가 돋보인다.” 그는 또 프로몬토리 와인을 ‘성당’ 같다고 표현했는데 프로몬토리의 2015, 2016, 2017 빈티지를 시음하면서 이보다 더 완벽한 은유는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오래된 서늘함을 간직하고 있으며, 동시에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힘이 있는 와인이었다.

네고시앙을 통해 유통하는 이유

프로몬토리는 할란 패밀리의 다른 와인들과는 다르게, 2012년 빈티지부터 보르도 네고시앙을 통해 유통하고 있다. 할란의 탄탄한 마니아층을 고려했을 때 기존 방식으로 유통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다른 선택을 했을까? 그는 “동일한 유통망을 통해 프로몬토리 와인을 소개한다면 새로운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까” 반문했다. “물론 할란과 프로몬토리 와인을 모두 구매하는 소비자가 있을 테고 그 사실은 반갑고 감사한 일”이라고 운을 떼면서 말을 이어갔다. “프로몬토리는 할란 이스테이트의 또 다른 레이블이 아니라 다른 프로젝트의 와인이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기존과는 다른 사람들을 통해 시장에 와인을 공급하고 다른 소비자들을 만난다면 프로몬토리가 독립적인 와인이란 사실을 이해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한국에 들어올 프로몬토리 2017 빈티지의 정확한 물량은 아직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프로몬토리의 평년 수확량이 3,000박스(12병 기준)인데, 10월 출시 예정인 2017년은 ‘스몰 빈티지’라 1,900박스 정도에 그친다는 사실을 전한다.

수입사 에노테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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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영 사진 제공 에노테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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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공개일 : 2022년 09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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