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멘 샹송의 ‘모던해질 결심’

Written by신 윤정

부르고뉴에서 가장 오래된 가족 와이너리 중 하나인 도멘 샹송(Domaine Chanson). 올해를 기점으로 브랜드를 리뉴얼하여 새로운 모습을 선보인다. 와인의 레이블을 직관적이고 심플한 디자인으로 바꾸고, 와인이 만들어진 핵심 프로필까지 표기하기 시작한 것. 1750년에 설립된 유서 깊은 와이너리라면 기존의 ‘클래식’한 무드를 고수할 만도 하지만 도멘 샹송은 과감하게 모던해지기로 결심했다. 얼마전 방한하여 마스터 클래스를 진행한 수출 이사 뱅상 왈레이(Vincent Wallays)를 통해 도멘 샹송의 새로운 출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도멘 샹송의 수출 이사 뱅상 왈레이(Vincent Wallays)

대격변의 시기에 뿌리내린 한 송이 꽃

도멘 샹송은 프랑스 혁명의 태동기인 1750년에 부르고뉴 본(Beaune)에 설립되었다. 한때 ‘친애왕’이라 불렸던 젊은 왕 루이 15세가 리더쉽 부족으로 권위를 잃어가던 시절. 대격변의 시기에 도멘 샹송은 차근히 사업을 펼쳐 나갔다. 설립된 지 불과 20여 년 뒤엔 클로 드 부조(Clos de Vougeot)와 리쉬부르(Richebourg)와 같은 와인을 매입할 수 있을 정도로 몸집이 커졌고, 와인의 품질도 상류층에 도달할 정도로 입소문을 타게 되었다. 이 시기 도멘 샹송의 고객 리스트에는 유명인이 유독 많았는데, 프랑스 계몽주의 지식인이자 작가인 볼테르(Voltaire)도 있었다 한다. 루이 16세의 여동생인 마담 엘리자베스(Madame Elisabeth)도 도멘 샹송의 고객이었다고. 그녀가 와인을 처음 주문한 것은 1788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1년 전이었다. 이후 짧게 이어진 공화국에서도, 나폴레옹 황제 시기에도 도멘 샹송의 와인은 맛과 멋을 아는 상류층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으로 보인다. 법률가이자 미식가로 이름을 날린 장 자크 레지스 드 캉바세레스(Jean-Jacques-Regis de Cambaceres)가 정기적으로 도멘 샹송의 와인을 받았을 정도니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지 않을까? 나폴레옹 황제의 동생이자 홀란드의 왕이었던 루이 보나파르트(Louis Bonaparte)가 도멘 샹송의 샹베르탕(Chambertin) 와인을 여섯 케이스 주문한 기록이 있다는 점만 첨언하겠다.

이 시기 도멘 샹송은 오늘날 와이너리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중요한 건물을 획득했다. 15세기 루이 11세 때 지어진 '바스티옹(The Bastion)'이라 불리는 요새가 그것. 여기에도 흥미로운 역사가 있다. 9세기부터 이어진 부르고뉴 공국은 프랑스 왕국에 맞먹을 정도로 규모와 힘을 키웠 왔고, 특히 마지막 부르고뉴 공작인 샤를(Charles) 1세는 프랑스로부터 독립하여 왕국을 만들고자 했던 야심가였다. 샤를 1세가 전투에서 사망하자 그와 번번이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던 루이 11세를 부르고뉴인들은 거부했지만, 루이 11세는 무력으로 부르고뉴를 손에 넣었다. 당시 본은 확장된 프랑스 왕국의 국경 인근이었고, 이에 루이 11세는 본 중심지에 다섯 개의 요새를 지었다. 표면적으로는 외부의 적으로부터 부르고뉴를 보호하기 위함이었지만, 부르고뉴인들을 통제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더 이상 무기고도 방어벽도 필요 없을 만큼 시간이 흐른 후, 도멘 샹송은 요새 중 하나인 ‘바스티옹 드 로라투아(Bastion de l’Oratoire)’를 와인 저장고로 사용하는 허가를 받았다. 와인 거래가 더욱 활발해지며 18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바스티옹이 포화 상태가 되었다. 그리하여 1826년, 당시 와이너리를 이끌던 알렉시스 샹송(Alexis Chanson)은 이 2층짜리 요새에 두 개의 층을 증축했고, 현재 바스티옹의 완전한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1826년 증축하여 완성된 도멘 샹송의 와인 저장고 '바스티옹(The Bastion)'

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요새로 지어진 건물인 만큼 와인이 안전하게 보관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 같다. 벽의 두께가 8미터 이상이라 별도의 온도 조절 장치가 없어도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된다고. 지하에서 올라오는 습기 덕분에 습도도 완벽하다. 보통의 와인 저장고가 지하에 자리하거나 지상 건물에 냉방 장치를 갖추는 것을 생각해 보면 ‘전 세계 유일하게 지상에 있는 자연 셀러’라는 말이 이해가 갈 것이다. 현재 1층에는 2020년 이전 빈티지 와인이 있고, 2층과 3층은 각각 최근의 홀수 빈티지와 짝수 빈티지 와인을 보관 중이다. 맨 윗층인 4층에는 화이트 와인이 보관된다고. 존재 자체로 역사성과 의미를 갖는 바스티옹에서, 도멘 샹송의 와인은 오늘도 안전하게 숙성되고 있을 것이다.

포도밭에서 변화를 거듭하며

본을 근거지로 하여 도멘 샹송은 상트네부터 샤샤뉴 몽라쉐, 퓔리니 몽라쉐, 본, 알록스 코르통을 아울러 45헥타르에 이르는 코트 드 본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다. 특히 본 지역 프리미에 크뤼 포도밭을 무려 25헥타르 소유하여 ‘프리미에 크뤼의 스페셜리스트’로 불린다고. 얼마 전 방한하여 마스터 크래스를 진행한 도멘 샹송의 수출 이사 뱅상 왈레이는 “본의 샹베르탕이라 불리는 클로 데 페브(Clos des Féves) 포도밭을 단독으로 소유”한 점을 강조했다.

지난 4월 진행된 도멘 샹송 마스터 클래스

‘땅과의 전쟁 중’인 부르고뉴에서, 포도밭 확장을 구상하던 도멘 샹송은 코트 도르가 아닌 코트 샬로네즈로 눈을 돌렸다. 최근 룰리(Rully)와 메르퀴레(Mercurey) 등 45헥타르의 코트 샬로네즈 포도밭을 매입한 것. 한 번에 이 정도 규모의 포도밭을 얻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라 한다. 코트 드 뉘의 포도밭 가격이 부담스러우면 코트 드 본으로, 코트 드 본의 포도밭 가격이 부담스러우면 코트 샬로네즈로 내려오는 흐름에서, 코트 샬로네즈라고 ‘땅과의 전쟁’의 영향이 전혀 없을 리 만무하기 때문. 뱅상 왈레이는 코트 샬로네즈를 “가격 면에서도 지구온난화에 있어서도 유리한 지역”으로 설명했다. 새롭게 얻은 룰리와 메르퀴레 포도밭에서 “장기 숙성에 좋고 고급스러운 맛의 와인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도멘 샹송의 코트 샬로네즈 포도밭

도멘 샹송에 최근 일어난 또 다른 변화로 ‘유기농 전환’이 있다.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었던 2020년, 위기를 기회 삼아 변화를 가져보기로 했던 것. 이미 15년 이상 살충제나 화학 물질 없이 관리해 온 코트 드 본의 포도밭뿐만 아니라 새롭게 구입한 코트 샬로네즈 포도밭도 유기농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완전한 유기농 인증을 받은 것은 2024년. 올해 생산되는 와인부터는 공식적인 유기농 인증 와인이 될 예정이다. 환경을 생각하는 도멘 샹송의 노력은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간다. 가지치기로 나온 나뭇가지들을 태우는 대신 수거업체에 보내고, 그렇게 수거된 나뭇가지들은 의자 등의 가구를 만드는 방식으로 재활용된다.

모던한 레이블에 숨은 뜻은

국내 갓 출시된 2022 빈티지부터 도멘 샹송의 와인은 옷을 갈아입었다. 기존의 클래식한 레이블 대신 모던한 디자인으로 새단장한 것. 뱅상은 “부르고뉴 와인이 어렵고 복잡하다는 인식에 변화를 주고 싶었다”라며 그 시작점을 설명했다. 그렇다고 단순히 디자인만 바꾼 건 아니다. 레이블에 포도밭의 규모와 일조 방향, 토양 타입, 숙성 개월을 표기하기 시작했는데, 뱅상은 “주요 정보를 명시함으로써 그만큼 투명하게 일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또 고객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고 싶었다”라고 설명했다. 와인을 구매할 때 어렵지 않게 선택할 수 있도록 말이다. 이렇듯 친절한 의도를 품고 시장에 풀리기 시작한 2022 빈티지 와인병에는 어떤 와인이 담겼을까?

뱅상에 의하면 2022년은 “지난 20년 중 부르고뉴가 가장 더웠던 해”라 한다. 그는 ‘어려운 빈티지’라는 점을 강조했지만, 관록의 도멘 샹송은 어려움을 헤쳐내고 좋은 결과물을 뽑아낸 것으로 보인다. 이미 유명 평론가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 특히 ‘코르통-베르젠느 그랑 크뤼(Corton-Vergennes Grand Cru)’는 “몽라쉐와 같은 풍부함과 깊은 풍미가 있는 화이트 코르통”이라는 찰스 커티스(Charles Curtis)MW의 코멘트와 함께 디캔터 매거진으로부터 96점을 받았다. 또 도멘 샹송의 자랑 ‘본 프리미에 크뤼 클로 데 페브(Beaune 1er Cru Clos des Féves)’는 인사이트 버건디(Inside Burgundy)에서 95점으로 5스타를 받았다. 인사이드 버건디에서 5스타가 나오는 것은 흔치 않아 더욱 의미가 있다고. 뱅상 왈레이의 방한 행사에서는 이 두 종의 와인을 포함하여 총 열 종의 와인을 만나볼 수 있었다.

마스터 클래스에 나온 도멘 샹송 와인들

룰리(Rully) 2022
점토와 석회질 토양의 룰리 포도밭에서 만든 와인. 가벼운 미네랄 터치가 동반된 옅은 과육의 아로마와 오크 노트가 잘 융합되었고, 힘차면서도 균형이 잘 잡혀 있다. 뱅상은 이 와인을 “더운 해였음에도 신선함을 느낄 수 있는 게 특징”이라고 소개했다.

페르낭 베르즐레스 프리미에 크뤼 엉 카라도(Pernand Vergelesses 1er Cru En Caradeux) 2022
코르통 그랑 크뤼 바로 앞에 있는 1.8헥타르의 포도밭에서 생산되어 ‘베이비 샤를르마뉴’라 불리는 와인이다. 시트러스와 옅은 과육의 신선한 아로마가 토스티 노트와 조화를 이룬다. 구조감과 밸런스가 좋고 미네랄리티와 촘촘한 질감, 길고 상쾌한 피니쉬가 돋보인다.

샤샤뉴 몽라쉐 프리미에 크뤼 레 슈느보트(Chassagne Montrachet 1er Cru Les Chenevottes) 2022
몽라쉐 그랑 크뤼 바로 옆, 바위가 많은 밭에서 생산되었다. 이국적인 과일의 강렬한 아로마와 약간의 향신료 위에 아카시아 꽃 향이 섞인다. 균형이 잘 잡혀 있고 복합적이다. 촘촘하고 정교한 질감. 오크 노트가 잘 표현되었고 미네랄리티를 동반한 정제되고 풍부한 피니쉬가 이어진다.
스코어 Jasper Morris/Inside Burgundy : 93/100 / Jancis Robinson 16.5/20

본 프리미에 크뤼 클로 데 무슈 블랑(Beaune 1er Cru Clos des Mouches Blanc) 2022
본에서 가장 상징적인 밭인 클로 데 무슈 밭의 화이트 와인. 살집이 있는 핵과류와 토스트가 섞인 꽃 향이 약간의 미네랄리티와 함께 표현된다. 구조감과 밸런스가 좋고 크리미한 질감과 복합적인 오크 노트가 발현된다. 길고 풍부한 피니쉬에는 약간의 스파이시한 노트도 가미된다.
스코어 Jasper Morris/Inside Burgundy 95/100 / Jancis Robinson 16.5/20

코르통-베르젠느 그랑 크뤼(Corton-Vergennes Grand Cru) 2022
코르통 그랑 크뤼 언덕의 남동향 노출면에서 생산되었다. 산사나무의 향에 사과, 모과, 핵과류의 과일 향과 향신료 향이 더해진다. 미묘한 미네랄리티와 좋은 밸런스, 풍부하고 복합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깊고 풍부한 질감, 잘 만들어진 오크 노트. 길고 정제된 피니쉬에는 향신료가 함께 남는다.
스코어 Charles Curtis/Decanter 96/100 / Jasper Morris/Inside Burgundy 95/100 / Jancis Robinson 16.5/20

메르퀴레(Mercurey) 2022
점토질과 석회질의 메르퀴레 포도밭에서 생산된 피노 누아. 바닐라 향 위에 잘 익은 딸기와 딸기잼 향이 장미 꽃잎의 향과 어우러진다. 균형이 잘 잡혀 있고 복합적이다. 잘 다듬어진 타닌은 촘촘하고 씹히는 듯한 질감으로 표현되며, 길고 풍부한 피니쉬가 이어진다.

메르퀴레 프리미에 크뤼(Mercurey 1er Cru) 2022
이회토의 메리퀴레 프리미에 크뤼 밭에서 나온 와인. 레드 커런트와 체리의 강렬한 붉은 과일의 아로마에 후추의 향이 가미되고, 향기로운 꽃의 아로마가 이를 아우른다. 잘 만들어진 와인으로 구조감이 좋다. 깊고 촘촘한 질감, 씹히는 듯한 과일 노트와 함께 풍부한 피니쉬가 길게 유지된다.

메르퀴레 프리미에 크뤼 클로 레베크(Mercurey 1er Cru Clos l’Evéque) 2022
프랑스 지역 대주교가 소유했을 정도로 메르퀴레에서 가장 유명한 밭 중 하나. 체리, 딸기와 같은 잘 익은 붉은 과일의 신선한 아로마가 감초, 후추의 향과 조화를 이룬다. 복합적이고 기교가 뛰어나다. 촘촘한 질감과 씹히는 듯한 질감의 과일 풍미를 동반한 길고 풍부한 피니쉬가 돋보인다.

본 프리미에 크뤼 클로 데 무슈 루즈(Beaune 1er Cru Clos des Mouches Rouge) 2022
본에서 가장 상징적인 밭인 클로 데 무슈 밭의 레드 와인. 섬세한 오크 노트 위에 딸기, 체리, 레드 커런트 등의 붉은 과일과 후추의 강렬한 아로마가 꽃 향과 함께 나타난다. 뛰어난 에너지와 복합적이고 좋은 균형을 보여준다. 탄탄하고 깊은 질감과 우아한 타닌, 길고 세련된 피니쉬가 스파이스 노트와 어우러진다.
스코어 Jasper Morris/Inside Burgundy 93/100 / Jancis Robinson 17/20

본 프리미에 크뤼 클로 데 페브 모노폴(Beaune 1er Cru Clos des Féves Monopole) 2022
나폴레옹 시기부터 유명했던 유서깊은 밭으로, 1960년대부터 도멘 샹송에서 모노폴로 소유하고 있다. 바닐라를 베이스로 은은한 장미 아로마가 졸인 레드 베리류 과일과 초콜릿 향과 어우러진다. 복합적이고 좋은 균형, 탄탄하고 풍부한 질감이 돋보인다. 과일이 아름답게 표현되며 스파이시 노트를 동반한 길고 우아한 피니쉬가 남는다.
스코어 Jancis Robinson 17/20 / Jasper Morris/Inside Burgundy 95/100(5 st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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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신윤정 사진·자료 제공 아베크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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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공개일 : 2024년 05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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