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영혼의 토스카나 와인, 비비 그라츠

Written by: 신 윤정

뼛속까지 토스카나 와인이지만 어딘지 토스카나스럽지 않은 와인. 비비 그라츠(Bibi Graetz)의 와인을 만날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갤러리에 걸려 있어야 할 것 같은 아티스틱한 레이블이나 유쾌한 작명 센스, 와인을 소개하는 방식 등 표면적으로 봐서는 전통을 중시하는 토스카나 와인 같지 않다. 그렇다고 소위 ‘수퍼 투스칸’이라 부르는 와인들의 옆에 그냥 놓자니 어쩐지 아쉽다. 플로렌스의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난 비비 그라츠는 와인업계에 뛰어든 이래 자신만의 독자적인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유서 깊은 와인 산지 토스카나에서 20년 남짓한 짧은 기간동안 고유의 색채를 가지는 데 성공했고, 결과적으로 산지오베제의 가장 우아하고 모던한 모습을 보여주는 비비 그라츠. 테스타마타와 꼴로레의 2020 빈티지 출시를 맞아 지난 9월 28일(수), 비비 그라츠의 세일즈 & 수출 디렉터인 빈센조 단드레아(Vincenzo d‘Andrea)와 함께 신규 빈티지를 테이스팅하는 기회를 가졌다.

비비 그라츠 2020 빈티지 테이스팅 현장

그린 아일랜드의 부활

레드 와인인 꼴로레와 테스타마타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비비 그라츠지만, 이 와인들의 화이트 버전을 완성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00년이 첫 빈티지인 꼴로레와 테스타마타를 세상에 내놓은 2003년, 비비 그라츠는 뛰어난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 것을 다음 과제로 정했다. 이후 토스카나 전역을 뒤진 끝에 질리오(Giglio) 섬에서 화이트 와인을 만들기에 좋은 땅을 발견했다. 올드바인과 토스카나 토착 품종을 기본으로 하는 꼴로레와 테스타마타의 화이트 버전을 만들기 위해 질리오 섬은 완벽한 장소였다. 고대 로마인들이 ‘그린 아일랜드’라 부를 정도로 포도나무가 번성했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은 버려져 있다시피 했던 질리오 섬. 그곳에는 2천년 전 그리스에서 넘어와 토착화된 안소니카 품종이 있었고, 도시를 찾아 사람들이 떠난 덕분에 포도밭이 방치되어 올드바인이 즐비했다. 사실 작업 환경만 놓고 보면 질리오 섬은 와인을 만들기에 좋은 곳은 아니다. 경사가 심한 언덕에 포도밭이 테라스 형태로 펼쳐져 있고 해발고도 역시 평균 500미터 정도로 높다. 2003년부터 안소니카 포도와 다른 품종들의 블렌딩 와인을 생산한 끝에 마침내 2016년, 때가 되었다고 판단한 비비 그라츠는 처음으로 질리오 섬의 안소니카 포도 100%로 테스타마타 비앙코를 만들었다. 꼴로레 비앙코는 그로부터 2년 뒤인 2018년에 탄생했다. 역시 안소니카 100%이며, 제임스 서클링으로부터 이탈리아 베스트 화이트 와인으로 선정되며 센세이셔널하게 등장했다.

질리오 섬의 경사진 포도밭의 수확 장면

이날 선보인 테스타마타 비앙코는 2019와 2020 빈티지. 기본적으로 품종 고유의 독특한 지중해 허브와 민트의 아로마, 바다의 영향을 받은 짭조름한 미네랄리티와 리 컨택으로 인한 그윽한 풍미, 프렌치 오크 숙성으로 인한 토스티한 노트가 깔려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2019 빈티지는 산미가 더 좋으며 은은하고 우아한 풍미와 신선한 느낌을 머금고 있었고, 2020 빈티지는 표현력과 구조감, 바디감이 더 좋았다는 것. 1차적인 과실미에 집중한 화이트 와인이 아니라 복합적이고 독특한 개성이 있어 곱씹을수록 다시 마시고 싶은 와인이라 하겠다.   

또 다른 10년의 완벽한 시작

꼴로레와 테스타마타는 비비 그라츠를 대표하는 와인들이다. 예술가의 피가 흐르는 비비 그라츠는 와인메이킹이 무에서 유를 만든다는 점과 창의성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예술 작업과 동질감을 느꼈고, 그런 그가 처음 만든 와인이 꼴로레와 테스타마타인 것이다. 첫 빈티지인 2000 와인들을 출시한 것은 2003년. 당시 젊은 와인메이커였던 비비는 꼴로레와 테스타마타 1병씩을 들고 비넥스포 보르도로 향했다. 우연히 만난 한 저널리스트에 의해 비넥스포 보르도의 메인 테이스팅 이벤트에 자신의 와인을 출품하게 되었고, 유명 와인들을 제치고 꼴로레가 1위, 테스타마타가 4위에 오르며 출시와 동시에 유행을 선도하는 와이너리가 되었다.

이후 비비 그라츠의 와인 스타일에는 한 차례 변화가 있었다. 뉴오크를 많이 사용하며 바디감을 중요시하던 비비가 스타일을 바꾼 것은 2009년. 떼루아에 집중하기 위해 뉴오크의 사용을 중단하고 오래된 오크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산지오베제의 순수한 과실미와 떼루아를 표현하기 위한 비비 그라츠의 노력이 완전히 꽃을 피운 것은 2019 빈티지였다. 지난 3월 테스타마타 버티컬 테이스팅에서 화상으로 만난 비비 그라츠는 테스타마타 2019 빈티지에 대해 본인이 염원해 온 ‘산지오베제의 우아함’이 잘 표현되었다고 소개했다. 이어진 2020년에는 더욱 완성도 있는 와인이 만들어졌다. 테이스팅을 이끈 빈센조는 이에 대해 “2020년은 전반적으로 따뜻했는데, 비비 그라츠의 와인은 기온이 높으면 결과물이 좋은 경향이 있다. 포도밭이 고지대에 있어 따뜻할수록 커지는 기온 차의 혜택을 받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19 빈티지와 이번에 출시될 2020 빈티지를 통해 비비 그라츠의 또 다른 10년이 완벽하게 시작되었다.

고도가 높은 라몰레(Lamole)에 있는 올드바인 포도밭

비비 그라츠 그 자체

빈센조는 테스타마타를 ‘비비 그라츠 그 자체’라고 표현했다. 이탈리아어로 ‘Crazy Head’라는 의미의 테스타마타를 와인메이커이자 오너에 비유하다니 의아했는데, 그의 설명에 따르면 피렌체에서는 규칙을 싫어하고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사람을 일컫는다고 한다. 피렌체에 와서 누가 테스타마타라고 부른다면 좋은 뜻이니 오해하지 마라고. 그제야 ‘테스타마타는 비비 그라츠 그 자체’라는 퍼즐이 완성된다. 누구나 닮고 싶어할 테스타마타적인 기질을 와인으로 표현하는 예술가 비비 그라츠, 자유를 갈망하는 이라면 누구나 테스타마타 와인에 마음이 갈 것이다.

비비 그라츠

앞서 설명했듯 테스타마타 2019 빈티지는 비비 그라츠가 양조 스타일을 바꾼 10년간의 노력이 결실을 본 와인이다. 신선한 허브와 레드 베리류, 향신료의 아로마와 자두 등의 건강한 과일 풍미가 생동감 있게 전해졌다. 산미가 좋고 우아한 와인. 반면 기온이 높았던 2020 빈티지의 테스타마타는 확실히 구조감과 탄닌감이 더 좋았다. 꽃, 레드베리류와 허브, 시가 박스, 바닐라의 아로마에 잘 익은 과일 풍미가 느껴지는 와인. 더운 빈티지라지만 열감은 느껴지지 않았고, 대신 산지오베제의 순수한 과실미가 응집되어 있었다.

산지오베제와 피노 누아의 연결고리

테스타마타와 쌍둥이인 꼴로레는 포도나무의 평균 수령이 조금 더 높다. 테스타마타가 평균 80년이라면 꼴로레는 평균 90년 이상. 비비 그라츠의 모든 배럴 중 가장 좋은 것들만 꼴로레를 위해 선택된다. 산지오베제를 바탕으로 까나이올로나 꼴로리노를 블렌딩해 왔으나 2019 빈티지부터는 산지오베제만을 사용한다. 빈센조는 꼴로레의 이상향에 대해 ‘부르고뉴 탑 피노 누아와 같은 스타일’이라 설명했다. 산지오베제와 피노 누아라니. 연결고리가 쉽게 없을 것 같지만, 저명한 와인 평론가들이 참석한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 모두가 꼴로레를 부르고뉴 와인이라 착각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완전히 설득되지 않던 의문은 꼴로레를 입 안에 머금으며 풀렸다. 처음으로 산지오베제만으로 만든 2019 빈티지는 신선한 버섯과 숲의 향 뒤로 꽃과 붉은 과일의 향이 우아하고 섬세한 미감으로 이어졌다. 따뜻했던 2020 빈티지는 향에 있어 표현력이 더 좋았다. 체리와 허브의 향에 바닐라와 토스트, 스파이시한 오크향을 와인이 잘 받아들인 듯 곱게 표현되었다. 빈센조는 2020 빈티지에 대해 “더 우아하다”고 설명했지만, 어쩌면 우아함에도 스타일이 있는 게 아닐까. 2019와 2020 빈티지의 꼴로레에서는 각기 결이 다른 우아함이 펼쳐졌다.   

수입사 와이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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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자료 제공 와이넬, 신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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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공개일 : 2022년 10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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