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의 보물섬, 뉴질랜드를 탐험하다

Written by뽀노애미

뉴질랜드 와인 생산량은 세계 총생산량의 1%에 불과할 정도로 미미한 수준이다. 짧은 역사라는 핸디캡을 가지고 1980년대 국제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지만, 그 성과는 기적이라 할 만큼 어디에서도 없는 수치를 달성하였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뉴질랜드 와인은 지난 5년간 5배라는 유례없는 성장을 거듭하며, 이제는 와인 애호가들이 어디에서나 즐길 수 있는 실패 없는 와인으로 인정받고 있다. 혹시, 뉴질랜드는 곧 소비뇽 블랑이라는 공식이 머릿속에 있다면, 여기 소비뇽 블랑과 함께 주목해야 할 뉴질랜드의 TOP 5 품종에 대해서 알아보자.

Sauvignon Blanc: 뉴질랜드 와인의 국보

뉴질랜드 와인은 소비뇽 블랑이라고 할 만큼 국제적으로 여전히 매우 인기가 있다. 하지만, 뉴질랜드의 슈퍼스타인 소비뇽 블랑은 1975년 말보로에 최초로 식재될 때만 하더라도 이렇게 폭발적인 사랑을 받으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때 묻지 않은 자연환경에서 생산된 이 청량한 와인은 국가대표로서, 뉴질랜드를 비주류 와인 산지에서 와인산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요 국가로 발돋움시켰다. 소비뇽 블랑의 종주국은 프랑스지만, 현재는 뉴질랜드를 세컨드 홈으로 전 세계 소비뇽 블랑 생산자들에게 표준을 제시하고 있을 정도다. 스타일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야생 효모를 사용하는가 하면 효모 접촉 정도, 발효 방식, 오크의 사용 등으로 양조 방식을 달리해, 소비뇽 블랑을 고품질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푸나무(Pounamu)의 상위 레벨인 “리틀 뷰티(Little Beauty)”와 클라우디 베이(Cloudy Bay)의 “테 코코(Te Koko)”가 아주 좋은 예이다. 라이프 스타일의 수요에 발맞추는 노력도 하고 있는데, 칼로리는 낮추되 뉴질랜드 와인 고유의 특징을 보여주는 저도수 와인도 개발 중에 있으며 소비뇽 블랑으로 생산된 스파클링 와인도 점차 늘고 있는 추세다.

말보로(Marlborough)는 뉴질랜드 전체 소비뇽 블랑의 90%를 생산하는 최대 생산지로 낮은 강수량과 지속적인 일조량을 갖고 있다. 과일 성숙기에 보이는 큰 일교차가 풍미를 최대로 끌어올려 유지해 줄 수 있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 요즘은 예전과는 다르게 미세기후를 고려한 싱글 빈야드 스타일이 점차 형성되어가고 있다. 아와테레 밸리(Awatere Valley)에서는 풀 향과 미네랄감이 부각되는 스타일이, 와이라우 밸리(Wairau Valley)에서는 농익은 열대과일 향에 톡 쏘는 스타일이 생산되는 것은 각기 다른 테루아가 보여주는 특징이다. 남섬의 말보로가 소비뇽 블랑의 최대의 생산지이라면, 혹스 베이(Hawke’s Bay)는 북섬의 소비뇽 블랑의 최대 생산량을 보여준다. 이곳의 소비뇽 블랑은 대체로 완숙도가 높고 낮은 산미를 보이는 편이며 잘 균형 잡힌 리치한 열대과일의 맛이 특징이다.

그럼 이제부터, 소비뇽 블랑을 제외한 뉴질랜드의 떠오르는 TOP 5 품종을 자세히 들여다보도록 하자.

1. Pinot Noir: Better than Burgundy?

Many believe this is where the pinot grail is to be found - Jancis Robinson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 잰시스 로빈슨(Jancis Robinson)은 그의 저서 월드 아틀라스 와인에서 “많은 사람들은 이곳이 피노 성배가 발견될 곳이라고 믿는다”라며 뉴질랜드 피노 누아에 대해 극찬한 바 있다. 이는 차세대의 부르고뉴를 위협할 만한 가장 ‘피노 누아 친화적인 곳’이라는 말이다. 피노 누아는 뉴질랜드 레드 와인 중에 가장 많이 재배되는 대표 품종으로 총 포도 재배 면적 41,603헥타르 중 5,807헥타르를 차지하고 있다. 주요 재배 지역으로는 역시나 뉴질랜드에서 독보적인 와인 생산량을 보이는 말보로, 그리고 센트럴 오타고(Central Otago)가 있다. 말보로는 1854년 이 지역에 최초로 포도나무를 심은 역사적인 와인 생산자로 알려진 ‘언츠필드(Auntsfield)’의 피노 누아가 소비뇽 블랑만큼이나 유명하기도 하다.

한편, 센트럴 오타고는 뉴질랜드 내의 피노 누아 성지로, 세계 최남단·최고도의 와인 산지로 알려져 있다. 일찍이 역사적으로도 와인 생산에 “매우 적합한” 곳으로 브라가토(Bragato,1895)의 평가를 받았으나, 1970년대 들어서야 차드팜(Chard Farm), 리폰(Rippon), 블랙 릿지(Black Ridge), 깁스턴 밸리(Gibbston) 같은 개척자들이 포도원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지금에 와서 센트럴 오타고는 대표적인 피노 누아 산지로, 많은 평론가에게 부르고뉴 와인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면서 찬사받고 있다. 때문에 뉴질랜드의 대규모 와이너리 중 하나인 옐랜드(Yealands)도 완벽한 피노 누아를 찾아서 말보로뿐만 아니라 센트럴 오타고에 또 다른 와이너리를 두고 있다. 마스터 오브 와인인 밥 켐벨(Bob Campbell MW)은 센트럴 오타고 피노 누아의 특징에 대해 “깊이 있는 과실의 밀도와 부드러운 질감 그리고 일부에서 발견되는 센트럴 오타고의 시그니처 같은 야생 타임의 향”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센트럴 오타고

물론, 피노 누아라 하면 와이라라파(Wairarapa)의 마틴보로(Martinborough)도 빼놓을 수 없다. 여름은 기온이 높을 수 있지만 일교차가 커 이 품종을 재배하기에 적합한 조건을 구성한다. 생산되는 와인은 중간에서 무거운 바디이며 진한 자두와 향신료의 풍미와 함께 숙성향을 지닌다. 이 지역의 대표적인 와이너리로는 ‘크레기 레인지(Craggy Range)’가 있다. 이 포도원은 두 개의 테라스로 이뤄져 있는데, 미네랄과 화산재가 특징인 위쪽 테라스에서 탁월한 피노 누아가 생산되는 것으로 유명하다.

뉴질랜드 피노 누아의 풍부한 느낌은 다양한 감칠맛 나는 요리와 잘 어울린다. 던 베넷(Dawn Bennet) 주한 뉴질랜드 대사는 “한국식 바비큐나 매콤한 볶음요리” 페어링을 추천했다.

2. Chardonnay: 뉴질랜드의 숨겨진 보석

2021년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 술렁거리는 일이 발생했다. 와인 평론가 제임스 서클링(James Suckling)에게 100점을 받으며 올해의 와인으로 선정된 샤르도네가, 뉴질랜드의 큐뮤 메이트스 빈야드 2020(Kumeu River Chardonnay Kumeu Maté’s Vineyard 2020)이었기 때문이다. 제임스 서클링은 이 와인을 “뉴질랜드의 몽라쉐”라 극찬해, 많은 애호가들의 “뉴질랜드 샤르도네는 부르고뉴 샤르도네에 못 미칠 것”이라는 편견을 깨뜨려 버린 일대의 사건이 되었다. ‘팔색조’라는 별명을 가진 것처럼 샤르도네는 다양한 스타일로 표현이 가능하며 포도 재배자와 와인 생산자에게는 스케치북과 같은 품종이다. 뉴질랜드에서는 1990년대에 그 어떤 품종보다도 샤르도네 식재에 노력했으며, 오늘날 거의 모든 지역에서 재배되고 있다. 와인으로서 샤르도네는 뉴질랜드의 독특한 테루아와 지역의 다양성을 그대로 반영하며 와인 양조 기술의 발달에 따라 과일향이 지배적이고 오크 숙성을 거치지 않는 스타일부터 농축된 부르고뉴 스타일까지 다양한 종류가 생산되고 있다.

뉴질랜드의 샤르도네는 대표적으로 “3가지 스타일”로 생산된다. 샤블리(Chablis) 스타일의 오크 숙성을 하지 않거나 최소화한 샤르도네는 주로 말보로와 센트럴 오타고(Central Otago)와 같은 서늘한 지역에서 생산되며 중간 정도의 바디감의 돌, 시트러스 열대과일에 오크 숙성으로 인한 바닐라, 버터, 토스트 향이 더해진 샤르도네는 혹스 베이(Hawke’s Bay), 잘 익은 복숭아와 멜론, 바닐라, 견과류, 버터 스카치 맛이 섞여 있는 볼드한 바디감의 버터리한 클래식 샤르도네는 기스본(Gisborne)이 대표적이다.

3. Pinot Gris: 준비된 차세대 주자

소비뇽 블랑이 걸그룹 ‘1군’이라면 피노 그리(Pinot Gris)는 데뷔가 약속된 ‘2군’이라는 말이 있다. 이처럼 뉴질랜드 피노 그리는 소비뇽 블랑 다음으로 가장 인기 있는 화이트 포도 품종 중 하나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뉴질랜드의 피노 그리는 이탈리아의 드라이한 피노 그리지오(Pinot Grigio)보다는 알자스 쪽에 더 가까운데, 신선하면서 풍부한 맛으로 사과, 배, 허니서클, 향신료와 빵의 노트가 특징적이다.

피노 그리 포도

대부분 뉴질랜드 남섬과 북섬 모두에서 재배되고 있으나, 상대적으로 더 따뜻한 북섬의 기후에서는 완숙되고 입을 가득 채우는 스타일을, 서늘한 남섬에서는 탄탄한 구조에 깔끔한 피노 그리를 추구한다. 따라서, 북섬의 기스본은 따뜻한 날씨로 인한 ‘완숙된 복숭아, 구운 서양배, 향신료, 노란 사과 풍미의 풀바디하고 리치한’ 피노 그리가 일반적이며 최남단의 센트럴 오타고는 ‘섬세하고 라이트한 바디감에 신선한 서양배, 핵과, 생강, 시나몬, 정향 그리고 산미가 좋은’ 와인이 생산된다. 알자스의 피노 그리가 그렇듯 뉴질랜드의 피노 그리도 가볍고 드라이한 와인에서부터 달콤한 와인까지 과실의 농도와 균형 잡힌 산미, 알코올 도수, 잔당감까지 고려하여 섬세하게 양조하여 선택의 폭을 넓히고 있다.

균형이 잘 잡힌 뉴질랜드 피노 그리는 구운 돼지고기나, 크리미한 파스타, 가금류 및 해산물과 잘 어울린다. 뉴질랜드 피노 그리의 특징인 “사과, 배, 허니서클, 향신료 그리고 빵”의 풍미를 하나씩 찾아보면서 즐기길 추천한다.

4. Riesling: 페어링의 해결사 

리슬링을 재배하기에 이상적인 기후는 무엇일까? 햇살 가득한 낮과 서늘한 밤, 길고 건조한 가을이다. 뉴질랜드의 남섬이 바로 그렇다. 뉴질랜드 남섬은 대표적인 아로마틱한 품종인 리슬링이 포도의 아로마 성분을 발현할 수 있게 충분한 시간을 주는 최적의 재배지로, 뉴질랜드 리슬링의 약 95%가 여기서 재배가 된다. 리슬링은 초기 유럽계 이민자에 의해 1800년대에 재배된 오래된 품종이지만, 대규모로 생산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도에 이르러서였다. 피노 그리와 같은 알자스의 노블 품종 중 하나인 리슬링은 완전한 드라이 스타일부터 늦수확으로 열매의 숙성을 극대화하거나 보트리티스 시네레아(Botrytis Cinerea)로 인한 달콤한 귀부(貴腐) 와인까지 다양한 스타일로 양조된다.

뉴질랜드 남섬 중 크라이스트처치에서 한 시간가량 이동하면 만날 수 있는 노스 캔터베리(North Canterbury)가 리슬링의 최대 생산지다. 노스 캔터베리의 선선한 평야와 낮게 언덕진 지형은 산미 있고 드라이하며 부싯돌, 초록사과, 시트러스 과일 향미를 가진 리슬링이 생산된다. 두 번째 생산량은 역시 말보로가 맡고 있는데, 잰시스 로빈슨이 “뉴질랜드 최상의 리슬링 생산자”로 평가한 프레이밍햄(Framingham)이 여기 말보로의 와이라우 밸리(Wairau Valley)에 있다.

뉴질랜드 리슬링의 강한 프루티함과 시트러스 노트, 경쾌한 산미는 다양한 아시아 요리와 잘 어울리지만, 특별히 한식과 그 궁합이 좋다. 드라이한 리슬링은 샐러드나, 일본식 튀김 요리, 가벼운 해산물이나 해물파전과, 스위트한 스타일의 리슬링은 향긋하면서 매콤한 아시아 요리, 양념치킨이나 떡볶이와 함께 즐겨보자.

5. Syrah: 뉴질랜드의 비밀, 신세계의 북론을 찾아서

뉴질랜드 시라 와인을 본 적이 없다는 애호가들이 꽤 많다. 하지만 지금까지 관심을 갖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닐는지. 시라는 최근 뉴질랜드에서 눈에 띄게 생산량이 증가한 품종이다. 뉴질랜드 시라의 역사는 리슬링과 같이 결코 짧지 않다. 이 또한 무려 1800년대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뉴질랜드에서 역사가 유구한 품종이다. 오늘날 90%의 시라는 북섬에 있는 혹스베이와 오클랜드에서 대부분 찾아볼 수 있다. 스파이시한 풍미와 우아한 질감이 특징이기 때문에 뉴질랜드 시라 특유의 강렬한 개성에 반할 수밖에 없다. 우아한 북부 론 스타일을 지향하며, 단일 품종만 쓰거나 비오니에와 블렌딩하거나 그와 함께 발효하는 양조법 즉, 필드 블렌딩(Field Blending)을 하기도 한다.

Motu Vinyard Waiheke

뉴질랜드 시라는 밝고 스파이시한 풍미와 우아한 질감을 가지며, 자두, 감칠맛 나는 흑후추 그리고 때로는 제비꽃 향이 은은하게 풍기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뉴질랜드 시라에 대해서 안다즈 서울 강남의 배정환 소믈리에는 “프랑스 북론 시라의 섬세함과 산미, 호주 바로사 밸리 쉬라즈의 파워풀함과 농익은 과실 캐릭터를 아주 적절히 잘 섞어 놓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온화한 해양성 기후와 다양한 토질을 가진 혹스베이가 최대 생산지로 이곳에서는 어둡고 묵직한 품종 고유의 특징이 두드러지는 와인이, 점토가 풍부한 오클랜드 와이헤케(Waiheke) 아일랜드 해안가에서는 묵직한 바디감과 풍부한 블랙베리와 후추 향을 더한 시라가 생산된다.

뉴질랜드의 시라는 생각 외로 북경오리의 강한 맛과도 페어링이 좋으며, 진한 바비큐 소스를 곁들인 소고기나 피자, 볼로네즈 스파게티 같은 토마토소스 요리와도 잘 어울린다.

마지막으로, 만일 아직까지도 뉴질랜드 와인은 소비뇽 블랑뿐이다라고 생각한다면, 선반 위에 올려진 베스트셀러의 서론만 읽고 책을 덮어버리는 것과 같다고 말하고 싶다. “와인의 보물섬” 뉴질랜드는 위에 언급하지 못한 알바리뇨부터 아르네이스, 슈냉 블랑, 그뤼너 벨트리너, 템프라니요, 비오니에 등등 훨씬 더 재미있고 보석 같은 와인을 제공할 준비가 언제나 되어있으니 말이다. 지금 뉴질랜드 와인의 다양성을 발견하면서, 풍부한 품종과 특징을 경험해 보자.

뽀노애미 사진·자료 제공 뉴질랜드 무역산업진흥청, New Zealand Winegr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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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공개일 : 2024년 06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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