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지방 소도시에서의 삶을 그려보게 된다. 귀촌까지는 아니더라도 좀 더 자연 친화적인 환경에서의 여유 있는 생활 말이다. 와인 애호가의 상상은 자연스레 ‘와인은 어떻게 마시지?‘라는 질문으로 이어질 텐데, 포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인플루언서 제이스(Jace)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 답의 힌트를 얻어보고자 한다. 2년 전 포항으로 내려가 건강한 와인 라이프를 이어가는 그의 이야기에서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전해졌다.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가진 것 없어 늘 숨죽이고 살아온 동백이가 찾은 기댈 곳, 물 좋고 공기 좋은 포항의 와인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Q. 수도권에서 포항으로 이사를 간 배경이 궁금하다. 포항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지?
A. 포항으로 이사 온 지도 벌써 2년이 넘었다. 2021년에 첫째 아이가 태어나면서 우리 부부의 라이프 스타일에 정말 큰 변화가 생겼고, 2023년 1월에 와이프의 고향인 이곳 포항에 내려오게 되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먼저 조금 더 자연 친화적인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었던 것이 있다. 원래 살았던 평택은 공업단지가 정말 많아서 어딜 가도 대형 트럭과 매연, 소음까지 심했다. 우리나라에서 미세먼지가 가장 심하다 할 정도로 매일 뿌연 하늘을 보고 살아야 했고 공기가 정말 좋지 않았다. 산과 바다가 가까운 곳으로 옮기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그중 포항이 포함되어 있었다.
두 번째 이유는 바로 장모님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출산 후 와이프의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낮 시간에 홀로 육아를 하다 보니 체력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했다. 첫 번째 이유와 더불어 장모님의 도움이 있으면 아이를 키우는 데 더 수월할 것 같아 큰 결심을 했다. 지금은 아주 만족하면서 지내는 중이다.

Q. 서울에서 와인 애호가와 인플루언서로서 다양한 외부 활동을 했었다. 포항으로 간 후 와인 라이프에도 변화가 있을 것 같다.
A. 가장 큰 변화는 와인을 마시던 친구들, 지인들과 떨어지게 된 것 그리고 와인 애호가로서 다양한 와인 행사에 초대도 받고 직접 찾아가곤 했는데 그런 이벤트가 아예 싹 사라진 점이다(웃음). 평택에 있을 때는 버스만 한 번 타면 서울이라 다양한 시음회나 와인메이커스 디너 참석 그리고 와인을 좋아하는 지인들을 만나 와인 라이프를 제대로 즐겼다면, 지금은 거의 집에서 마신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아, 물론 찾아 간다면 조금 더 먼 부산이나 대구에서 종종 열리는 시음회 등에 참석할 순 있지만 지금은 육아에 전념(?)하면서 참고 있는 중이다(웃음).
Q. 그럼에도 가끔씩 참여하는 포항 내 와인 커뮤니티나 모임이 있다면
A. 딱 하나 있다. '비노 빌라쥬'라는 와인샵이 있는데 규모가 크진 않지만 다양한 와인을 살 수 있는 곳이다. 약 열 명 정도 착석 가능한 테이블도 있고 대관 서비스도 한다. 이곳에 손님으로 왔던 몇몇 분들과 한 달에 한 번 정도 리스트를 만들어 같이 테이스팅하는 모임을 하고 있다. 예전에 포항공대라고 불리던 포스텍의 교수님도 있고 근처 맛집의 사장님 그리고 의사분들, 일반 직장인분들까지 다양한 회원들이 모여 와인과 음식을 즐긴다. 그리고 ‘비노 빌라쥬’의 대표님도 와인에 대한 열정이 남달라서 한 달에 한 번씩 거의 매달 시음회를 연다. 크리스탈와인컬렉션부터 타이거인터내셔날, 루뱅쿱 등 다양한 와인 수입사의 와인을 만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고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는 쉽지 않은 기회여서 매번 참석하고 있다.

Q. 예전에 소셜 미디어를 통해 ‘홈바(home bar)’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와이프분과도 비슷한 취미를 공유하는 것 같은데
A. 예전 평택 집에는 정말 말 그대로 ‘홈바’가 있었다. 첫 아이가 태어나면서 조금씩 정리하기는 했지만. 둘째까지 태어나 돌을 앞두고 있는 지금은 홈바의 ‘ㅎ’도 찾아볼 수 없는 상태이긴 하다. 아직 어린 두 아이를 케어하면서 와인을 마신다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가끔 와인을 마시고 싶을 때나 맛있는 요리를 준비할 때면 적당한 데일리 와인을 와이프와 함께 마시곤 한다. 아이들을 모두 재우고 마실 때는 조금 더 좋은 와인을 열어 같이 즐기기도 한다. 하지만 시작하는 시간이 늦다 보니 예전처럼 오랫동안 천천히 즐기지는 못한다. 가끔 와이프의 컨디션이 좋고 아이들이 일찍 잠들었을 땐 두 병씩 마시기도. (아주 가끔!) 둘이 같이 마시는 것을 좋아해서 혼술은 자제하고 있다. 아, 가끔 혼자 와인 모임을 나가거나 회식을 할 때면 와이프는 아이들을 재우고 혼자 와인을 열어 마시기도 하더라. (하하)

Q. 대단한(!) 요리 실력을 소셜 미디어를 통해 익히 봐 왔다. 와인 & 음식 매칭 팁이 있는지, 그리고 포항의 지역색이 묻어나는 추천 메뉴가 있는지도 궁금하다.
A. 요리를 좋아하다 보니 와인을 마실 때 거창한 메뉴보다는 스몰 디쉬를 종종 만들곤 한다. 대부분 간단한 음식이긴 한데 다양한 파스타나 브루스케타 같이 만들기 쉬운 것 주로 매칭한다. 스페인에 다녀온 후로는 타파스에 심취해서 맛있는 사워도우 위에 이것저것 올려서 먹는 오픈 샌드위치 느낌의 음식을 주로 만들어 먹었다. 또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하나가 '샤퀴테리·크래커·치즈 그리고 올리브'의 조합이라 이 세 가지는 항상 떨어지지 않게 구비하고 있다.

포항에 와서는 아무래도 주방에 오래 있을 수가 없다 보니 만드는 요리의 종류가 심플해지기는 했다. 첫째 아이가 잘 먹는 파스타 위주로 요리를 하고, 안심을 통째로 사서 얼려놓고 자주 구워 먹고 있다. 수비드 머신으로 미리 익혀 놓고 저녁에 잠깐 팬에 굽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요리도 편하고 아이도 잘 먹는 메뉴다. 물론 와인 안주로도 좋다!
포항의 지역색이 묻어나는 메뉴로는 아무래도 신선한 해산물 요리가 떠오른다. 특히 죽도시장에 가면 막 잡아 올린 문어를 만날 수 있는데, 편하게 삶아서 숙회로 먹어도 좋지만 다리 몇 개를 잘라서 올리브 오일에 구워 뽈뽀 스테이크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삶은 감자도 적당하게 잘라 같이 구우면 멋진 요리가 된다. 그리고 포항에서는 신선한 가자미도 쉽게 살 수 있다. 큰 가자미 필렛을 올리브 오일에 굽고 허브, 레몬즙 뿌려 먹으면 지중해의 맛을 느낄 수 있다. 타르타르 소스까지 있으면 금상첨화다. 아, 그리고 바구니에 대충 담아서 파는 단새우가 있는데 잘 헹궈서 물기를 제거한 후 얇은 튀김옷을 입혀서 튀기면 아주 맛있다.

Q. 와인 고수로서 추천하는 포항 와인 맛집이 있다면?
A. 사실 딱 ‘와인바’라고 부를 만한 곳은 아직 포항에 없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와인 자체를 즐기는 인구가 적은 게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은데, 그래도 맛있는 메뉴가 있는 레스토랑이 몇 있어 와인을 가져 가서 마시곤 한다. 추천하는 곳으로는 포항 시청 부근에 ‘맛있는 바다, 미해’라는 일식당이 있다. 68,000원의 단일 다이닝 메뉴가 있는 곳으로, 제철 식재료를 이용한 다양한 해산물 요리를 아주 좋은 가격에 즐길 수 있다. 꽤 괜찮은 가격의 와인 & 사케 리스트가 잘 갖추어져 있어 와인과 음식을 함께 즐기기에 좋다. 여자 대표분이 와인을 좋아하기도 하고. 그리고 앞서 소개했던 와인샵 ‘비노 빌라쥬’에서 와인을 구입 후 이곳에 가져가면 콜키지 프리로 마실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한마디 더하자면 ‘비노 빌라쥬’에서는 다양한 와인을 구입할 수 있고 가끔 따로 찾는 와인은 부르고뉴 와인 러버인 샵 대표분이 직접 수소문해서 구해 주기도 한다. 그리고 와인과 생산국, 지역에 대한 정보들을 자세하고 쉽게 알 수 있고, 시음했던 와인을 특별 할인가에 구입할 수도 있는 점도 아주 만족스럽다. 이 외에 와인과 맛있는 음식을 같이 즐길 수 있는 곳으로는 첸뜨로, 무드 다이닝 그리고 가장 최근에 새로 오픈한 에피소드라는 곳이 있다. 영일대 해수욕장 근처에는 디 마레, 알카노 등도 있다.
Q. 앞으로 포항에서의 와인 라이프가 어떻게 이어질 것 같나?
A. 와인을 마시기 시작한 이후 위에서는 지인들과 모임도 자주 갖고 서울도 오가면서 참 많이 즐겼다고 생각한다. 포항은 아무래도 커뮤니티도 작고 즐길 수 있는 업장도 많이 없어서 집에서 조용히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또 때마침 좋은 와인샵이 오픈하고 대표님과 지인들을 만나 이 작은 포항에서도 와인을 조금씩 즐기고 있다. 두 딸을 케어하면서 아무래도 예전처럼 열정적으로 와인을 마실 순 없겠지만, 가까운 산과 바다를 보고 느끼면서 건강한 와인 라이프를 즐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Interviewee 인플루언서 제이스(Jace)
▶인스타그램 @jace_wino
▶네이버 인플루언서 홈 in.naver.com/jace
글·사진 제공 제이스(Jace) 정리 신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