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컨트리 캘리포니아에서도 노른자 땅이라 불리는 나파 밸리(Napa Valley)는 사실 여러 하위 AVA(American Viticultural Areas)로 이루어져 있다. 각 세부 지역이 지닌 테루아와 개성을 강조하기 위해 많은 와이너리는 개별 AVA를 내세운 상위 레인지 와인을 출시하곤 한다. 갬블 패밀리 빈야드(Gamble Family Vineyards)가 약 1년 전 갬블 에스테이트(Gamble Estate)로의 전환을 선언한 것 역시 이러한 흐름과 맞닿아 있다. 100년이 넘는 농업 전통을 이어 온 갬블 가문의 ‘가족 경영’ 이미지를 잠시 뒤로 하고, 와이너리 설립 20주년을 기점으로 테루아 중심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겠다는 선택이었다. 오너 톰 갬블(Tom Gamble)이 시작한 이 작업에는 캘리포니아 최고의 와이너리 컨설팅 회사인 아틀리에 멜카(Atelier Melka)가 함께했다.

갬블 에스테이트의 시작
톰 갬블이 첫 포도밭을 매입한 것은 1981년이다. 당시 20세, UC 데이비스 학생이었던 그는 오랜 농업 전통을 지닌 가문의 새로운 비전을 와인에서 찾았다. 가족 중 처음으로 상업적인 양조용 포도를 재배한 그는 머지않아 나파 밸리 유수의 와이너리들에 포도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최상의 테루아와 대대로 이어온 농업 노하우가 결합된 그의 포도는 빠르게 시장의 신뢰를 얻었고, 이는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이어졌다. 2005년, 정식 와이너리를 출범시키고 수확한 포도의 일부로 직접 와인을 생산하기에 이른 것이다. 나파 밸리의 복합성과 개성을 담은 와인을 만드는 데 집중하던 그는 시간이 흐르며 또 다른 갈증을 느꼈다. 바로 포도밭이 있는 개별 AVA의 뛰어난 테루아를 표현하는 일이었다. 이 전환점에서 그는 오랜 파트너인 아틀리에 멜카의 필립 멜카(Philippe Melka)와 마얀 코쉬즈키(Maayan Koschitzky)에게 도움을 청했다. 2000년대 초부터 톰 갬블의 포도를 거래했던 필립 멜카는 누구보다 그 특성과 잠재력을 깊이 이해하고 있는 컨설턴트였고, 마얀 코쉬즈키는 이를 끌어올릴 재능 있는 와인메이커였다. 와이너리 설립 20주년을 맞은 지난해, 이들은 ‘갬블 에스테이트’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출발을 알렸다. 단순한 와이너리명의 교체가 아닌, 양조 철학과 포트폴리오, 브랜딩 전반에 걸친 대대적인 변화의 결과였다.

나파 밸리에서도 고품질 카베르네 소비뇽 산지인 오크빌(Oakville)에 자리한 갬블 에스테이트는 현재 오크빌, 욘트빌(Yountville), 루더포드(Rutherford), 마운트 비더(Mount Veeder) 등 4개 AVA에 175에이커 규모의 포도밭을 보유하고 있다. 대부분의 포도는 지난 수십 년간 그래왔던 것처럼 다른 와이너리들에 공급된다. 갬블 에스테이트로 출시되는 와인은 연간 약 3,000케이스. 선택과 집중으로 소량의 와인만 생산하되, 각 포도밭 테루아의 최상의 표현을 담아내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와이너리 전환 이후 작년 한 해 출시된 갬블 에스테이트의 와인들은 <디캔터(Decanter)>, <로버트 파커 와인 애드보케이트(Robert Parker Wine Advocate)>, 젭 던넉(Jeb Dunnuck)으로부터 평균 90점대 중반의 고득점을 받으며 새로운 시작의 성공을 알렸다. 이러한 성과의 배경에는 나파 밸리를 대표하는 양조 드림팀과의 협업이 있었다.

나파 밸리 탑 와인메이커들의 드림팀
아틀리에 멜카는 단순한 단발성 컨설팅이 아닌 장기적인 양조 파트너십으로 갬블 에스테이트와 함께하고 있다. 와인 스타일을 초기화하고 재설정할 뿐만 아니라, 리브랜딩과 이후의 핵심 양조 방향까지 총괄하는 것이다. 항해의 키는 아틀리에 멜카의 설립자 필립 멜카가 잡았다. 보르도 대학에서 지질학을 전공했고, 샤토 오브리옹(Chateau Haut Brion)과 샤토 페트뤼스(Chateau Petrus)에 이어 이탈리아와 호주에서 다양한 양조 방식을 고루 익힌 인물. 나파 밸리의 유명 와이너리 도미누스(Dominus)에서 프랑스식 테루아 개념을 적용하며 성공 반열에 오른 그는 무엇으로 보나 이 프로젝트의 선봉장을 맡기에 최적임자였다. 이름 뒤에 따라붙는 “나파 밸리 최상위 와이너리들을 컨설팅하는 스타 와인메이커”, “로버트 파커가 선정한 세계 9대 컨설팅 와인메이커”, “미셸 롤랑의 뒤를 잇는 차세대 천재 와인 컨설턴트” 등의 수식어가 실력을 대변하리라. 갬블 에스테이트를 재정립하는 설계자로서 필립 멜카는 와인의 스타일과 방향성, 장기 비전을 제시하고, 각 테루아의 캐릭터 정체성과 와이너리의 뼈대를 디자인했다. 이전 시대보다 적절히 성숙한 포도를 무겁지 않게 추출함으로써 밸런스를 맞추고, 더 정제된 구조감과 복합미를 갖춘 프리미엄 와인이 생산되도록 길잡이 역할을 한 것이다.

필립 멜카가 그려낸 설계도를 현실화하는 작업은 마얀 코쉬즈키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이스라엘의 유명 와이너리에서 수년간 와인메이커로 활동했었고, 캘리포니아로 건너와 스크리밍 이글(Screaming Eagle)과 달라 발레(Dalla Valle)의 핵심 양조팀을 거쳐, 2014년 필립 멜카의 영입으로 아틀리에 멜카에 정착한 와인메이커. 2019년 <와인 인수지애스트(Wine Enthusiast)>의 ‘40세 이하 테이스트메이커 40인(40 Under 40 Tastemakers)’에 이름을 올렸을 정도로 주목받는 실력파이다. 지난 10여 년간 필립 멜카와 호흡을 맞추며 100점 와인을 여럿 완성한 그는 갬블 에스테이트의 실질적인 양조 전반을 책임지며 필립 멜카의 철학을 와인으로 구현해 내고 있다.

뛰어난 농업 지식과 각 포도밭의 잠재력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톰 갬블 역시 아틀리에 멜카가 제시하는 지속 가능한 농법을 발전시켜 나가는 중이다. 최소한의 개입으로 각 포도밭의 개성을 표현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는 것. 20여 년 전 필립 멜카가 톰 갬블이 재배한 포도의 가치를 알아보며 시작된 인연은 오늘날 서로의 철학과 방향성을 깊이 이해하는 드림팀으로 재탄생했다. 나파 밸리 내 세부 AVA를 강조하고자 하는 갬블 에스테이트의 와인이 완성도가 높은 이유가 여기 있을 것이다.

갬블 에스테이트 오크빌 카베르네 소비뇽 2022
Gamble Estate Oakville Cabernet Sauvignon 2022
나파 밸리에서도 프리미엄 와인 산지로 꼽히는 오크빌 AVA에 갬블 에스테이트는 두 개의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다. 하나는 톰 갬블이 자란 오크빌 중심지에 있는 패밀리 홈 빈야드(Family Home Vineyard)로, 야구공 크기의 돌이 섞인 화산토를 바탕으로 농축미와 탄탄한 구조감을 지닌 와인이 생산된다. 강 너머에 자리한 와이너리 에스테이트 빈야드(Winery Estate Vineyard)는 하층부에 화산암이 있는 점토질 양토 포도밭이다. 와이너리를 둘러싸고 조성된 포도밭이며, 보다 섬세한 풍미의 와인이 생산된다. 불과 1마일 거리에 있지만 두 포도밭은 토양과 고도, 일조량이 각기 다르기에, 블렌딩을 통해 오크빌의 테루아를 균형 있게 전달한다.
까브드뱅을 통해 최근 국내 출시된 갬블 에스테이트 오크빌 카베르네 소비뇽(Gamble Estate Oakville Cabernet Sauvignon)은 2022 빈티지이다. 극심한 기상 현상이 발생한 해였지만 갬블 에스테이트는 테루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좋은 산도를 지닌 완숙 포도를 최적의 시기에 수확할 수 있었다. 카베르네 소비뇽 95%에 프티 베르도 5%가 블렌딩되었고, 24개월의 오크(새오크 46%) 숙성 기간을 거친 후 단 444케이스 소량 출시되었다.
오크빌 카베르네 소비뇽의 정수가 담긴 이 와인은 <디캔터> 96점, <IWR> 97점, <로버트 파커 와인 애드보케이트> 94점을 받았다. 초콜릿, 흑연, 제비꽃 향이 겹겹이 어우러지고 오크 숙성에서 오는 풍미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와인. 세련된 구조와 균형감, 그리고 탄탄한 타닌이 더해져 절제된 강렬함을 선사하고, 정밀함과 우아함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문의 까브드뱅
▶홈페이지 cavedevin.com
▶인스타그램 @cavedevin
글 신윤정 사진·자료 제공 까브드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