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에서 ‘다양성’은 어찌 보면 당연한 키워드다. 우리나라의 네 배가 넘는 땅에 무려 147개의 AVA(미국정부공인 포도재배지역)가 있다는 점만 봐도 포도 재배 환경이 얼마나 다이내믹할지 가늠해 볼 수 있다. 게다가 1700년대 이후 포도나무 묘목을 손에 든 유럽 각국의 이민자들이 캘리포니아로 넘어왔으니, 포도 품종이 다양하다는 사실도 두말할 필요 없겠다. 그런데 개별 AVA로 넘어오면 어떨까? 보통 행정 구역이나 지리적 구분, 유사한 테루아 등을 고려하여 나뉘는 AVA는 그렇기 때문에 ‘다양성’보다는 ‘동질성’이란 단어가 더 어울린다. 하지만 캘리포니아와인협회의 ‘올해의 테마 산지‘인 파소 로블스(Paso Robles)는 이 ‘다양성’에 있어 세계 어느 와인 산지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다양성’이란 실로 한땀 한땀 자수를 놓으면 완성되는 땅이 파소 로블스라고 할까. 오는 2월 26일(월)에 열릴 캘리포니아 와인 얼라이브 테이스팅(California Wine Alive Tasting) 2024에서 특별 시음 부스로도 소개될 파소 로블스, 우리가 먼저 파헤쳐 보자.
11개의 세부 AVA가 모자이크처럼
파소 로블스의 지도를 보면 11개의 세부 AVA를 잘 꿰어 놓은 직조물을 보는 것 같다. 서로는 산타 루시아 산맥(Santa Lucia Range)이, 동으로는 쇼람 힐스(Cholame Hills)와 라 판자 산맥(La Panza Range)이 에워싸고 있는 파소 로블스에는 그만큼 다양한 고도와 지형이 존재한다. 건조한 하천 퇴적층, 구불구불한 언덕, 벤치, 산 등 포도밭이 조성된 위치에 따라 포도의 생장 환경이 변화무쌍하다.
두 산맥에 막혀 있는 내륙 지형이라 무더울 것 같지만 파소 로블스는 생각보다 시원하다. 여기에는 두 가지 비밀이 있는데, 첫 번째는 ‘템플턴 갭 효과(Templeton Gap Effect)'라 불린다. 더운 여름, 서쪽에 있는 산타 루시아 산맥의 템플던 골짜기 사이로 태평양의 차가운 바람이 파소 로블스 지역에 불어오는 것이다. 이 자연 현상의 영향을 받는 쪽은 여름에도 서늘한 편이며 습도가 놓고 안개가 끼기도 한다. 덕분에 아델라이다 디스트릭트(Adelaida District), 탬플턴 갭 디스트릭트(Templeton Gap District) 등 파소 로블스의 서부에서 생산된 와인은 신선하고 산도가 높고 구조감이 좋은 편이다. 내륙인 동쪽으로 이동할수록 평균 기온이 올라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여기에서 파소 로블스의 두 번째 비밀이 밝혀진다. 동쪽에 있는 라 판자 산맥에서 차가운 기운이 내려와 일교차가 더욱 커지는 것. 산 후안 크릭(San Juan Creek), 크레스톤 디스트릭트(Creston District) 등 파소 로블스 동부에서 생산되는 와인이 풀바디이더라도 신선한 풍미를 유지하는 비결이다.
파소 로블스가 태평양판(Pacific Plate) 위에 놓여 있다는 점도 무척 흥미롭다. 샌프란시스코 북쪽의 나파, 소노마 등 많은 와인 산지와 달리 융기된 고대 해저 지대에 포도밭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풀어서 얘기하자면, 수백만 년 동안 퇴적된 바다 생물의 뼈와 껍질이 압축되어 칼슘이 풍부한 석회질 토양을 만들어 냈다는 것. 파소 로블스는 석회질 토양을 가진 몇 안 되는 캘리포니아 AVA이다. 그렇다면 석회질 토양은 왜 중요한가? 포도나무의 칼륨 흡수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포도가 높은 함량의 자연 산도를 간직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파소 로블스에는 다양한 토양 조성이 존재하지만, 대부분 기본적으로 석회질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
65개 이상의 포도 품종과 파소 블렌드
파소 로블스의 다양성은 이 땅에서 와인을 만들어 온 와인 생산자들이 완성한다. 1882년 최초의 상업적 와이너리인 어센션 와이너리(Ascension Winery)가 진판델 포도밭을 조성한 이래, 이곳의 와인 생산자들은 65종이 넘는 포도나무를 심으며 다양성을 포용해 왔다. 캘리포니아 전체에서 생산되는 포도 품종이 100여 가지가 넘으니 65종이면 실로 많다고 할 수 있다. 가장 많이 생산되는 품종은 카베르네 소비뇽. 프리미엄 보르도 와인에 대한 열망이 있는 와인 생산자들이 파소 로블스에서 그 가능성을 찾으며 정착한 결과로, 전체 포도 생산량의 약 52%를 차지한다. 다음으로 메를로와 같은 보르도 레드 품종과 샤르도네의 비율이 높지만 이탈리아와 스페인이 원산인 지중해성 품종도 떠오르는 중이다.
그리고 잊어선 안 될 론 품종이 있다! 시라, 그르나슈, 무르베드르 등 레드 품종뿐만 아니라, 비오니에, 루산, 마르산 등 화이트 품종을 프랑스 론 지역에서처럼 블렌딩하여 독특한 와인을 만드는 것이다. 론 레인저스(Rhone Rangers)의 후예들이 대거 포진한 지역이 파소 로블스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프티 시라, 진판델 등 65개가 넘은 품종을 독창적으로 블렌딩하여 개성 넘치는 와인을 만들어 온 파소 로블스. 그 고유한 특성을 인정받아 ‘파소 블렌드’라는 단어가 통용된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설명은 안 하겠다. 자 그럼, 이번 캘리포니아 와인 얼라이브 테이스팅 2024의 테마 시음 부스를 위해 방한할 와이너리들을 만나보자.
이번에 방한하는 파소 로블스 와이너리
타블라스 크릭 빈야드 Tablas Creek Vineyard
타블라스 크릭 빈야드는 캘리포니아의 론 무브먼트의 선구자이자 세계 최초의 재생산성 유기농 인증(Regenerative Organic Certified) 포도밭이다. 파소 로블스의 아델라이다 구역과 샤토네프 뒤 파프의 유사성을 알아보고, 프랑스 론 지역의 샤토 드 보카스텔(Château de Beaucastel)을 소유한 페랑(Perrin) 가문과 하스(Haas) 가문이 합심하여 1989년 설립했다. 시라, 그르나슈, 루산, 비오니에, 마르산 등 대부분 포도나무는 대목을 포함하여 보카스텔에서 온 것이다.
수입사 신동와인
저스틴 빈야즈 & 와이너리 JUSTIN Vineyards & Winery
저스틴 빈야즈 & 와이너리는 1981년 프리미엄 보르도 와인을 모델로 설립되었다. 손 수확, 크기가 작은 프렌치 오크통 숙성 등 전통적인 유럽 스타일의 와인 생산 방식과 신대륙의 기술을 결합하여 와인을 만든다. 2000년, 아이콘 와인인 아이솔셀레스 1997 빈티지가 와인 스펙테이터 탑 100 6위를 하며 대중에서 각인되었고, 2016년엔 와인 인수지애스트 ‘올해의 와이너리’로 선정되었다. 저스틴 카베르네 소비뇽은 캘리포니아 내 20달러 이상 프리미엄 와인 판매량 1위를 달성하기로 했다.
수입사 제이와인컴퍼니
제이 로어 빈야즈 & 와인즈 J. Lohr Vineyards & Wines
1980년대, 세계적 수준의 카베르네 품종을 재배할 수 있는 파소 로블스의 잠재력을 알아본 제리 로어(Jerry Lohr)에 의해 시작되었다. 오늘날 제이 로어는 5개의 파소 로블스 세부 AVA를 아울러, ‘캘리포니아 지속가능인증(Certified California Sustainable)’을 받은 2,600에이커 이상 규모의 포도밭에서 와인을 생산한다. 보르도 품종뿐만 아니라 론 품종, 그리고 블렌드 와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수입사 바쿠스
호프 패밀리 와인즈 Hope Family Wines
호프 패밀리 와인즈는 30여 년 전, 호프 패밀리가 파소 로블스에 정착하며 시작되었다. 오스틴 호프(Austin Hope), 트레아나(Treana), 퀘스트(Quest), 트러블메이커(Troublemaker), 리버티 스쿨(Liberty Wschool), 오스틴(Austin) 등 다섯 가지 브랜드를 소유한 가족 와이너리이다. 지속 가능한 포도 재배와 신뢰할 수 있고 접근성 좋은 와인을 생산하는 가문의 유산을 지켜오고 있다. 2022년 와인 인수지애스트에서 ‘올해의 미국 와이너리’로 선정되었다.
수입사 타이거인터내셔날/비노파라다이스
다우 패밀리 에스테이츠 DAOU Family Estates
세계 최고의 카베르네 소비뇽을 위한 땅이 찾아다녔던 조지 & 다니엘 다우(Georges & Daniel Daou) 형제가 파소 로블스 아델라이다 디스트릭트에 우뚝 솟은 다우 산(Daou Mountain)을 발견하고 설립한 와이너리다. 해발고도 670미터의 언덕에 212에이커 규모의 포도밭이 있는데, 캘리포니아의 저명한 와인메이커였던 안드레 첼리체프(André Tchelistcheff)로부터 “A Jewel of Ecological Elements”라 찬사받은 땅이기도 하다. 현재도 두 형제는 다우 산에서 완벽한 페놀 수치에 도달한 포도로 와인을 생산한다.
수입사 빈티지코리아
더 빅 레드 몬스터 The Big Red Monster
2018년 설립되었으며 유서 깊은 와인 브랜드들을 다수 관리하는 와인 그룹인 워룸 셀라스(WarRoom Cellars)가 소유한 와인 브랜드다. 파소 로블스의 큰 일교차를 활용하여 산미 좋고 과즙이 풍부하면서도 몬스터를 연상시키는 볼드하고 진한 레드 와인을 생산한다.
수입사 하이트진로
빌라 크릭 셀라 Villa Creek Cellars / 마하 에스테이트(Maha Estate)
빌라 크릭 셀라/마하 에스테이트는 파소 로블스 서부에서 바이오다이나믹과 유기농 방식으로 우아한 와인을 만든다. 이 지역에서 잘 자라는 그르나슈를 버팀목으로 카리냥, 무르베드르, 프티 시라, 시라 등의 품종이 와이너리를 지탱한다. 포도밭과 양조장 모두 데메터 바이오다이나믹 인증과 CCOF 유기농 인증을 받으며 관리된다. 2022년에는 재생산성 유기농 인증(Regenerative Organic Certification)도 받았다.
미수입 브랜드
피치 캐년 와이너리 Peachy Canyon Winery
1988년, 더그(Doug)와 낸시 베켓(Nancy Becket)이 설립한 피치 캐년 와이너리는 풍부한 수상 경력이 품질을 보장하는 원조 파소 로블스 와이너리다. 우아하고 절제된 스타일부터 표현력이 좋은 스타일까지 다양한 종류의 진판델 와인을 메인으로 생산한다. 이외에도 프리미엄 보르도 스타일 와인을 포함하여 말벡, 프티 시라, 비오니에 등 다양한 품종을 재배한다.
미수입 브랜드
라방츄어 L'Aventure
보르도 출신의 스테판 아서(Stephan Asseo)가 1998년 남아공, 레바논, 아르헨티나, 나파 등 세계 각지의 와인 산지를 돌아다닌 후 파소 로블스에 매료되어 설립한 와이너리다. 품질에 대한 그의 열정은 프리미엄 포도로 복합성과 균형감, 진정성을 표현한 독특한 파소 블렌드로 증명된다. 2023년 설립 25주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테이스팅 룸을 열고 새로운 포도밭을 획득하는 한편, 활발한 콜라보레이션 와인 생산 등을 통해 진화를 이어가고 있다.
미수입 브랜드
지오르나타 Giornata
이탈리아의 와인 양조 철학과 감성을 활용하여 이탈리안 포도 품종의 와인을 만들겠다는 꿈으로 시작된 와이너리다. 보통의 캘리포니아 와인보다 섬세하게 추출하여 균형을 이룬 스타일의 와인을 만든다. 주요 품종으로는 바르베라, 네비올로, 알리아니코, 베르멘티노, 팔랑기나 등이 있다.
미수입 브랜드
글 신윤정 사진·자료 제공 캘리포니아와인협회/파소 로블스 와인 생산자 연합(Paso Robles Wine Country Allia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