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유혹에 약하다 

Written by: 정 휘웅

와인을 떠나서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으로 물건을 산다. 판매자는 어떻게 하면 사람(고객)이 지갑을 열어 자신의 물건을 사게 만들지 하루 종일 생각한다. 고객이 돈을 지출하려면 그 돈에 걸맞은 물건이나 서비스에 해당하는지 생각하기 마련이다. 판매자 입장에서 많이 팔기 위해서는 우선 고객이 재화에 맞는지 판단 준거를 흐리게 만드는 것이 첫 번째이며, 두 번째는 이 재화(물건 혹은 서비스)가 꼭 필요하다고 느끼게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다이소의 성공 요소도 저 두 가지에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이소 나올 때 이상하게 1천 원만 쓰러 갔음에도 1만 원 가까이 결제된 명세서를 집어 들게 된다. 와인 소비에서도 비슷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정가 얼마, 빨간 줄 옆에 할인가 방법이다. 가장 오래되었으면서도 여전히 유효하고 지금 글을 쓰는 나에게도 이것은 가장 완벽한 정책이다. 편의점은 이런 할인 기준을 제공하는데 한발 더 나아가서 맥주의 경우 4캔에 1만 원, 5캔에 1.2만 원 등 여러 가지 전략을 구사한다. 와인의 경우에도 섞어서 살 경우 얼마라든지 여러 가지 복잡한 계산 과정을 넣어서 싸다는 것을 어필한다. 

엄밀히 생각해서, 구매하지 않으면 지출은 0원이다. 꼭 필요한 필수품(물, 전기, 통신, 쌀, 라면 등)이 아닌 이상 기호품(술 종류)은 사지 않으면 지출은 없다. 그러나 인간은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정상이기에 이 쾌락을 위해서 기꺼이 지출한다. 여기에는 문화콘텐츠도 해당한다. 뇌의 지적 자극, 그리고 앎으로써 얻는 쾌감을 위하여 도서도 구매하고 음반을 구매하며 무형의 지적 재산권에 지갑을 연다. 와인 소비 패턴은 문화콘텐츠 소비 패턴과 유사하다. 책을 사서 읽고 나면 다시 읽는 경우는 많지 않다. 특히 소설이 그렇다. 예를 들어 ‘그리스인 조르바’ 같은 위대한 소설도 두 번 읽기는 쉽지 않다. ‘푸코의 진자’ 같은 심오한 글은 더더욱 그러하다. 와인의 경우에도 우리가 한 번 경험한 뒤 다시 경험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판매자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보자. 이 한 번의 경험을 한 고객이 다시 내 상품을 재구매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와인의 경우에는 문화콘텐츠라는 느낌보다 일반 생활 필수재라는 느낌을 주어야 한다. 문화콘텐츠와 생활 필수재의 가장 큰 차이점은 단위가격에 있다. 그래서 요즘은 음악 소비의 경우에도 생활 필수재 형태로 많이 바뀌고 있다. 스트리밍 서비스를 중심으로 대부분의 콘텐츠가 유통되고 있으며, CD 등 물리적 형태의 판매는 줄어들고 있다. 그만큼 우리는 일상의 유혹에 늘 노출되어서 끊임없이 이를 소비하고 있다. 

당연히 일상재처럼 느끼게 만들어야 하는데 이때 유효한 것이 가격의 할인 정책이다. 싸다고 느끼기 때문에 일상재로 착각하게 된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싼 것이 아니다. 주변의 와인 애호가들이 “와인 2만원이면 싼 것이죠”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동의한다. 그러나 맥주 4캔은 1만 원이고 소주 1병은 이보다 훨씬 싸다. 이마트에서 히트를 쳤던 ‘도스 코파스(Dos Copas)’ 같은 와인의 경우에도 성공 이유는 일상재라는 느낌을 줄 정도로 가격이 저렴했기 때문이다. 가격이 저렴하면 어차피 소비해야 할 무엇인가, 그리고 갖고 싶다는 소유욕의 본능이 혼재되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하나를 집어서 장바구니에 넣는다. 

그렇다면 고가 와인은 어떤 전략을 써서 우리를 유혹할까? 희소성과 스토리다. 그래서 고급 와인들은 이런저런 이야기, 포도원의 이야기, 역사적 이야기가 있다면 이런 것과 유명인들이 결혼식에 썼다는 등 여러 가지 이벤트를 갖다 붙인다. 예를 들어 ‘올리비에 르플레브(Olivier Leflaive)의 레 세티(les Setilles)’는 해리 왕자 결혼식에 사용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시장에서 크게 인기를 얻었다(물론 지금도 시장에서 찾기 힘들고 간혹 보여도 금세 사라진다). 숍들도 영업에서 가장 공을 들이는 것은 한정 물량 판매다. 이 물량 사라지면 다시는 들어오지 않는다거나, 당신에게만 판다는 비밀 메시지에 덧붙여 결정타로 여러 병 산다면 얼마를 더 할인해준다는 거절할 수 없는 조건을 내민다. 

이 메커니즘이 우리 모두(대부분이라고도 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다)가 유혹에 약한 이유다. 그 결과는 풍성한 소비를 통하여 자본주의의 피인 돈이 흐르게 하며, 여러분의 셀러는 풍요로 가득 찰 것이고, 카드 명세서의 목록도 지나가는 한숨과 함께 풍성해질 것이다. 이러한들 어쩌겠는가, 이미 우리는 이 메커니즘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을. 

온라인 닉네임 '웅가'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11,000건에 가까운 자체 작성 시음노트를 보유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세 권의 책을 출간하였다. 김준철와인스쿨에서 마스터 과정과 양조학 과정을 수료하였다. IT 분야 전문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와인 분야 저술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2013년부터 연초에 한국수입와인시장분석보고서를 정기적으로 발행하고 있으며, 2022년 현재 열 번째 버전을 무료로 발간하였다.

출처 브런치 '웅가의 추천 이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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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공개일 : 2023년 0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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