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흐르지만 와인의 품격은 변하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지난 140여 년간 카바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온 로저 구라트. 퀄리티를 타협하지 않고, 전통 방식(Metodo Tradicional)으로만 카바를 생산하며 최소 24개월 이상의 숙성 기간을 거침으로써 풍부하고 깊은 풍미를 가진 와인을 만들어왔다. 'Cheap and Cheerful'한 이미지를 심어주는 다른 심플한 스타일의 카바와는 차별화하며 오랫동안 고품격 스파클링 와인 생산에만 집중해왔다. 그리고 그들은 ‘로저 구라트 그랑 리제르바 더 로저 마크 원(Roger Goulart Gran Reserva The Roger Mark Ⅰ) 2013’이라는 이름을 달고 대담한 도전을 시작했고, 브랜드의 단순한 연장선이 아닌 카바의 무한한 가능성을 입증하고자, 100개월의 긴 숙성 끝에 드디어 세상에 소개되었다. 이 반가운 소식을 직접 알리기 위해 아시아 수출을 담당하는 데이비드 피에라(David Piera)가 작년에 이어 한국을 방문했고, 와인과 아트의 아름다운 접점을 만들어 낸 서울 종로구 ‘아트인더글라스 갤러리’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시간을 초월한 유산 – 로저 구라트의 까브
전통과 혁신을 함께하는 로저 구라트. 현재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명문 카바 생산자 중 하나로 자리 잡은 이곳의 시작은 188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알트 페네데스(Alt Penedès)에 설립된 로저 구라트는 19세기 말 샴페인 지역의 와이너리에서 영감을 받은 카날스(Canals) 가족이 전통적인 방법에 따라 스파클링 와인을 생산하기 위한 전용 시설을 건설하면서 시작되었다. 20세기 초 건축가 ‘이그나시 마시모렐(Ignaci Masi Morell)'에 특별 의뢰하여, 쌍파뉴 지역의 까브와 비슷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지하 30미터 깊이에 1km 길이의 까브를 설립한 것이다. 이후 평균 온도 섭씨 14도를 유지할 수 있는 이 까브에서 발효부터 숙성 및 저장까지 모든 공정을 진행해 왔다. 이는 비용과 과정 면에서 굉장한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양조에 대한 철학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영역이다. 고품격 스파클링 와인을 만들겠다는 그들의 열정과 집념이 빛나는 부분이다.
시간의 흔적을 품은 와인, 로저 마크 원
2013년, 스페인 카바의 중심지, 페네데스에서 ‘로저 마크 원’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당시 130년이 넘는 양조 철학과 숙성의 명맥을 이어가며 창립자를 기리기 위해 탄생한 이 와인은 로저 구라트가 생산할 수 있는 최고의 정점을 보여주기 위한 와인이었다. 이 지역에서는 대부분 산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스파클링 와인을 생산하기 때문에 장기 숙성을 한다는 것은 한계를 뛰어넘는 도전인데, ‘로저 마크 원’은 무려 100개월(8년 3개월)이라는 긴 숙성 끝에 출시되었다.
시간을 거슬러 가는 여정과도 같은 로저 마크 원. 10년 후에도 강건하게 살아있을 와인을 만들기 위해, 알트 페네데스 지역의 포도밭에서 엄선한 피노 누아와 샤르도네 품종을 혁신적이고 정교하게 블렌드했다. 특히나 2013년은 DO CAVA에서 'Excellent'라고 평가될 만큼 양질의 포도가 생산된 아주 좋은 수확 연도였다. 그럼에도 지중해성 기후의 페네데스 지역에서 피노 누아와 샤르도네를 생산하는 것 자체에 대해 퀄리티에 대한 의구심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 지역은 일교차가 큰 편이라 긴 생장 기간 동안 포도가 산도를 유지하며 잘 자랄 수 있고, 와인에 따뜻한 캐릭터를 선사한다. 좋은 토양도 한 몫을 했는데, 피노 누아는 고도 400미터의 석회질 토양에서 와인에 강인함과 구조감을 더해주었고, 샤르도네는 고도 320미터의 충적토 성분이 있는 점토 토양에서 수확되어 와인에 섬세함과 우아함을 선사했다.
포도를 수확하고 나서의 양조 과정도 굉장히 깐깐하게 진행한다. 포도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아주 이른 새벽에 손수확해 와이너리로 즉시 옮겨 줄기 제거한 후 으깬다. 이후 즉시 칠링하여 아로마와 품종의 특성을 최대한 보존하는데, 아주 젠틀한 공압 압착 후 16ºC의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침전 및 1차 발효 과정을 거친다. 2차 병 발효를 위한 최종 퀴베와 차후의 티라주(Tirage)를 결정하기 위해 각각의 품종을 개별적으로 발효시킨 후 블렌딩한다.
이후 1882년 지어진 지하 30미터의 까브에서 와인의 질감과 풍미에 복합미를 더해주는 효모 자가 분해의 잠재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100개월 동안 잠을 재운다. 깊은 잠에서 깨어난 이 황금빛의 와인은 와인잔에 담겨 잔잔하며 섬세한 기포를 활기차게 치고 올려낸다. 건조한 과일, 토스트, 익은 석과, 말린 꽃, 브리오슈 향은 코를 가득 채우고, 섬세하면서 부드러운 기포과 크리미한 질감은 입 안을 가득 채운다. 활기찬 산도와 신선한 탄산감은 피니쉬를 짜릿하게 장식한다. 복합미가 돋보이는 이 와인은 6도에서 8도 정도로 차갑게 칠링한 후 시간을 두고 천천히 마시면서, 온도가 올라감에 따라 보이는 변화를 경험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데이비드는 ‘로저 마크 원’을 소개하며 “A Complete Experience(완성된 경험)"라고 칭할 만큼 굉장한 애정을 보였다. 고품격 스파클링 와인으로, 좋은 음식과의 페어링도 좋지만, 와인의 향과 풍미에 집중하며 오롯이 와인에만 집중하는 경험해 보는 것을 추천했다. 조용한 서재에서 좋아하는 책을 펴고 혼자 조용히 와인을 따라서 음미하는 그런 경험 말이다. ‘로저 마크 원’은 그들의 혁신적인 도전의 시작이며, 앞으로 다른 여러 가지 도전을 계속해서 시도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 총생산량은 4,300병으로 아주 소량만 생산하였는데, 아주 감사하게도 국내에 240병이 수입돼 ‘와이넬’에서 유통하고 있다.
로저 구라트 엑스트라 브륏 아트인더글라스 “Roger Goulart Extra Brut ART IN THE GLASS”
화려한 초록색과 하얀색이 얽히고설켜 만들어 내는 화려한 패턴을 레이블로 담고 있는 ‘로저 구라트 엑스트라 브륏 아트인더글라스(Roger Goulart Extra Brut ART IN THE GLASS).' 예술과 와인의 연결점을 만들어내는 와이넬의 노력이 돋보이는 예술품 같은 이 와인은, 순수미술작가인 제이슨 김(Jason Kim) 작가의 미술 작품인 <Mind Scape - Spiral>과 합작하여, 아트인더글라스 1st 스페셜 & 리미티드 카바로 만들어졌다. <Mind Scape>라는 이 작품은 우리 삶에서 느낄 수 있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들을 그림으로 담아냈는데, 마치 우리가 와인 잔을 부딪치며 나누는 진실한 대화에서 공유하는 여러 감정들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로저 구라트의 다양한 포트폴리오 중 왜 엑스트라 브륏을 선택했냐는 물음에 카바의 진정한 색깔을 보여주고 싶어 리제르바 등급의 드라이 스파클링 스타일인 ‘로저 구라트 엑스트라 브륏 2020’을 특별히 이번 한정판 와인으로 선정했다고 한다. 또 하나 중요한 요소로 ‘한국 음식과 즐기기에 가장 적합한 와인’이라고 자신 있게 대답한 데이비드. 한국 음식에는 아주 많은 향신료가 들어가면서도 맵고, 짜고, 달달한 강력한(Overpowering) 맛이 많기 때문에 페어링이 결코 쉽지 않은데, 부드럽고 섬세한 기포와 생동감 넘치는 산도는 음식을 먹는 중간에 팔레트 클렌징을 해주며 입맛을 돋워준다. 스시나 회, 후라이드 치킨, 보쌈, 백숙과 같은 다양한 음식과 페어링하기 좋을 것 같다. 24개월 동안 리즈 컨택트(Lees Contact)를 하여 발현되는 복합적인 아로마와 풍미는 신선한 감귤류의 아로마와 우아한 꽃 향기로 시작하여 베이커리를 연상시키는 페이스트리의 고소한 뉘앙스가 인상적이다. 입 안을 꽉 채우는 듯한 질감은 한 모금 한 모금 아주 만족스러운 경험을 선사한다.
- 로저 구라트 엑스트라 브륏 아트인더글라스 2020의 양조도 포도는 카바의 역사적 중심지인 바르셀로나의 남쪽, Anoia와 Foix River의 Basin에서 생산되는데, 포도밭들은 고도 300미터에서 700미터에 위치해 있다. 페네데스 지역의 전통적인 블렌드로 자렐로(Xarelo) 품종이 40%로 가장 많이 섞여 있으며, 블렌드에 들어가는 각 포도들은 수확된 후 따로 양조된다. 산화되는 것을 최소화하고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해 이른 새벽에 포도를 수확한다.
요즘 카바 소비 트렌드와 CVNE의 인수
스페인에서 막 건너온 데이비드에게 스페인 카바 소비 트렌드를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우리에게 친근한 막걸리 같은 존재가 그들에게는 카바이기에, 요즘 카바를 어떻게 즐기는지 궁금했다. 이 질문에 골똘히 생각하던 데이비드는 기분 좋은 미소와 함께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요즘엔 로제와 도사주가 적은 브륏 타입이 좀 더 인기가 많고, 특히 여성들에게 큰 관심을 받고 있다고 한다. 카바를 잔으로 살 수 있는 레스토랑이 아주 많기 때문에 와인 칵테일도 인기라고 하는데, 이탈리아에서 여름에 즐겨 마시는 프로세코와 아페롤 베이스의 ‘아페롤 스프리츠(Aperol Spritz)'를 스페인에서는 카바를 베이스로 만든다고 한다. 또한, 소비자들이 카바의 좋은 퀄리티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타파스와의 페어링도 인기가 많다고 전했다. 와인 칵테일을 시도해 보고 싶다면, 로저 구라트 엑스트라 브륏이나 브륏으로 아페롤 스프리츠를 만들어 보는 것도 재밌는 경험이 될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 최근 리오하에 중심을 두고 있는 북부 스페인 와인 회사인 CVNE(Compañía Vinícola del Norte del España/the Northern Spanish Wine Company)에서 로저 구라트를 인수한 것은 로저 구라트 팬들에게는 흥미로우면서도 걱정으로 다가왔다. 혹시나 퀄리티나 스타일이 달라질까 염려해서인데, 이에 대해 데이비드는 "로저 구라트에게 아주 좋은 기회"라고 얘기했다. CVNE는 품격 있는 와인만을 선정해 인수하는 것으로 평판이 자자한데, 스파클링 와인 중 유일한 선택이 로저 구라트였기에, 그들의 퀄리티를 입증하게 된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향후 지속될 금전적 투자와 로저 구라트를 지지해 주는 경영팀이 있다는 것 또한 그 아주 반가운 소식이다. 여태까지 소신 있게 지켜온 그들의 철학대로 와인을 양조할 수 있기에, 앞으로의 발전이 더 기대된다.
오랜 친구같은 편안함을 가진 카바
스페인 식문화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카바는 스페인의 대표적인 스파클링 와인으로 식전주, 페어링, 파티 등의 자리에 절대 빠지지 않는 오랜 친구 같은 존재이다. 이렇게 생활 속에서 즐기는 카바에 대해, 데이비드는 본인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른 저녁, 가볍게 카바를 한 잔 따라 놓고 마시며 가족들을 위한 요리를 준비하고, 음식이 완성되면 카바를 자연스럽게 테이블로 옮겨 음식과 함께 즐긴다고 한다. 코르크를 열 때 가볍게 울리는 ‘Pop!’ 소리의 설렘과 함께 요리를 시작한다면, 음식이 하기 싫은 날도 기분 좋게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이 인터뷰는 데이비드가 우리에게 재치 있는 마지막 말을 전해주며 끝났다.
“How about drink Cava instead of tea?" "차 대신 카바 한잔 어때요?"
차분함 대신 설렘이 필요한 오후, 차 대신 카바 한잔을 하는 건 어떨까? 로저 구라트의 섬세하고 풍부한 기포가 입 안에 터지는 느낌처럼 우리의 삶에 신선한 즐거움을 선사하는 그들의 다양한 포트폴리오는 와이넬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국내에서 만나볼 수 있는 로저 구라트 와인들/위 사진 좌측부터 우측 순>
- 로저 구라트 브륏 코랄 로제
- 로저 구라트 브륏 로제 밀레지메
- 로저 구라트 데미섹 리제르바
- 로저 구라트 브륏 오가닉 리제르바
- 로저 구라트 엑스트리 브륏 그랑 리제르바 조셉 발스
- 로저 구라트 브륏 리제르바 골드
- 로저 구라트 엑스트라 브륏 아트인더글라스 2020 (한정판)
문의 (주)와이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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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천혜림 자료·사진 제공 와이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