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분야의 경지에 이른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경이롭고 영광스러운 일이다. 1969년 영국에서 처음 시작한 마스터 소믈리에(Master Sommelier) 시험. 이 영예의 타이틀을 단 사람이 아직 전 세계에 불과 273명이니, 와인업의 피나클(pinnacle)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겠다. 지난 5월 17일, 이 타이틀을 달고 활동하고 있는 마스터 소믈리에 윌 코스텔로(Will Costello)MS가 방한하여, 그가 현재 수출을 담당하고 있는 밀러 패밀리 와인 컴퍼니(Miller Family Wine Company)의 와인을 소개하는 자리를 가졌다. 그의 남다른 인사이트과 와인의 대한 애정을 담아 소개하는 와인들은 어떤 것일까? 매우 궁금해졌다.
"우리는 트렌드를 쫓아가지 않는다. 우리에게 주어진 땅과 기후를 거스르지 않고 특징을 살려 그대로 와인에 담아내는 것만이 우리의 임무이다" - MS Will Costello
화려한 기교를 부리는 양조 방법이나 유행하는 트렌드가 있지만, 밀러 패밀리 와인은 그들에게 주어진 자연환경에서 최고의 와인을 만드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 이런 철학으로 만든 개성 넘치는 세 브랜드는 모든 소비자를 아우르는 스타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는 직관적인 스타일로 소비자에게 친절한 발라드 레인(Ballard Lane), 두 번째로는 특정 산지를 와인에 그대로 담아낸 제이 윌크스(J.Wilkes). 마지막으로는 캘리포니아 스타 와인메이커 조이 텐슬리와의 합작으로 주목받은 옵틱(OPTIK)이다. 이 세 가지 와인 브랜드를 윌 코스텔로와 집중적으로 이야기해 보았다.
화요일 밤의 와인 Ballard Lane
“It is a perfect wine for Tuesday night.” 항상 새롭고 화려한 것보다는 익숙한 것에 손이 자주 가고, 더 자주 맞이하게 되는 우리. 화요일 밤엔 익사이팅한 와인보다는 내가 아는, 오래된 친구 같은 편안한 와인을 마시고 싶기 마련. 그래서 윌은 복잡한 생각을 접어두고 직관적인 향을 느끼고 싶은 그런 화요일 밤에 발라드 레인을 저녁 식사와 함께 마신다고 한다.
발라드 레인은 모든 소비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와인 레이블을 갖추고 있다. 레이블을 보면 브랜드 이름, 산지 그리고 포도 품종만 표기되어 있어 소비자에게 매우 친절하고 접근성이 쉬운 와인이다. 포도 품종의 특징적인 캐릭터, 캘리포니아의 태양 그리고 태평양의 시원한 바람을 정직하게 그대로 병에 담아내어 직관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스타일로 만들었다.
이 와인은 센트럴 코스트 AVA 지역에서 재배된 포도를 블렌딩하여 만들어진다. 윌은 이 지역의 기후가 와인의 퀄리티에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센트럴 코스트는 샌프란시스코와 LA 중간에 위치하며 “Refridgerated Sun(냉각된 햇빛)"이라고도 불리는 기후를 가지고 있다. 캘리포니아의 따사로운 햇살과 태평양에 근접해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으로 인해 큰 일교차가 형성되며, 이는 최적의 생장 조건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또한, 센트럴 코스트는 약 250 마일에 걸쳐 평균 폭이 25마일로 이어지는 해안선을 따라 있어, 다양한 토양과 고도에서 포도를 소싱할 수 있다고 한다. 발라드 레인은 현재 캘리포니아에서 대표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품종인 샤르도네, 피노 누아, 까베르네 소비뇽 그리고 진판델을 생산하고 있다.
와인을 테이스팅해보니 이 와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전형적이면서도 클래식한 포도 품종의 특징을 아주 잘 표현해냈다.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 까베르네 소비뇽이 마시고 싶어 구입했는데 기대했던 그 맛이 나지 않으면 당황스럽고 실망스러울 수 있는데, 발라드 레인 와인은 그 기대에 부응하여 일관적인 품질로 클래식한 특징들을 모두 잘 담아낸 것이다.
그 중, 윌은 발라드 레인 피노 누아를 'SSS: Sexy, Silky, Smooth'라고 묘사했다. 이보다 더 직관적이면서도 간결할 수가 있을까! 섹시하고 실크 같으며 부드럽다는 피노 누아. 스파이시함과 클로브, 넛메그가 강조되는 와인이다. 그리고 필자 개인적으로 가장 놀랐던 진판델. 와인 블렌딩의 75% 이상의 포도 품종만 표기하면 되는 와인 법규상 레이블에는 표기되지 않았지만, 라그레인(Lagrein) 품종이 15% 블렌딩 되어있다. 진판델 자체로는 붉은 과실향이 나기 때문에, 와인에 힘을 더해줄 수 있는 검은 과실향을 더했는데, 그것이 신의 한 수였던 것 같다. 자칫 뻔할 수 있는 진판델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지만 전통적인 스타일은 유지해 낸 것이다.
발라드 레인은 무슨 뜻일까?
캘리포니아의 와인을 주제로 한 영화 “Sideways”에도 등장했던 발라드 레인은 본래 1880년 화물 마차 정거장이었다고 한다. 포도원, 해안절벽 및 목장이 Lane이라는 도로를 통해 자연스럽게 융합되는 그 모든 길이 Ballard로 이어진다. 현재는 작은 마을이지만 역사적인 이 곳을 따라 와인의 이름을 지었다.
우아한 발레리나 같은 와인 J.Wilkes
발레리나의 동작은 섬세하고 우아하며, 유연하고 힘이 있다. 그래서 윌은 제이 윌크스 와인을 발레에 비교한다. 센트럴 코스트의 다양하고 정교한 Sub AVA 각각의 고유한 캐릭터를 와인에 담아냈기 때문이다. 와인애호가들을 위해 만들어진 특정 산지 와인(Appellation Wine)인 제이 윌크스. 서늘한 기후인 산타 마리아 밸리 AVA에서는 피노 블랑, 피노 누아 그리고 샤르도네, 상대적으로 좀 더 따뜻한 기후인 파소 로블스 AVA에서는 까베르네 소비뇽을 생산하고 있다.
산타 마리아 밸리 AVA는 가장 역동적인 와인 산지라고 불린다. 와인 산지로는 매우 드물게 산맥이 동서로 위치해 있어 모든 빈야드가 태평양을 마주 보고 있기 때문인데, 지속적인 태평양의 영향으로 매일 오후 시원한 바람이 불어 아침에 드리운 안개를 말끔히 걷어준다. 이러한 기후에서 재배된 포도로 만든 와인들은 균형이 좋고 복합적이고 우아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특징이 와인에서 잘 느껴진다. 다음으로 파소 로블스 AVA는 산 후안(San Juan) 산맥과 함께 상승하는 동부 지역에 위치해 있다. 산타 마리아 밸리에 비해 좀 더 남쪽에 위치하기 때문에 좀 더 따뜻한 기후지만, 가장 높은 고도에 있는 파소 로블스 하이랜드에서 포도가 생산되기 때문에 까베르네 소비뇽의 힘과 우아함을 함께 느낄 수 있다.
제이 윌크스 라인업은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마셔봤을 포도 품종인 샤르도네, 피노 누아, 까베르네 소비뇽과 더불어 시장에서 쉽게 보기 어려운 피노 블랑을 생산하고 있다. 인기 품종이 아니라서 팔기가 쉽지 않은 와인일 수 있는데 왜 생산하느냐는 질문에 윌은 “애호가들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아무리 맛있는 와인이라도 항상 같은 와인을 마시게 되면 신선한 재미를 선사하기가 어려운데, 와인 경험이 쌓인 소비자들의 탐험심을 만족시켜 주는 와인”이라고 전했다. 피노 블랑이라는 포도 품종 자체가 재미있는 와인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소재가 될 수 있고, 활력 있는 선택지를 원하는 와인 애호가들에게 아주 반가운 와인인 것이다. 그는 또한 까베르네 소비뇽의 견고한 퀄리티를 강조하며, 숙성 가능성이 굉장히 좋아 개인적으로 두 살 된 아들 Liam의 생년 빈티지 두 케이스를 셀러에 보관해 두었다고 한다.
J.Wilkes는 누구일까?
제이 윌크스(J.Wilkes : J는 Jeff의 줄임말)는 오랜 기간 밀러 패밀리 와인 컴퍼니에 포도를 재배하여 판매했었고, 2001년부터는 본인의 와인을 직접 만들기 시작했는데 곧바로 유명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의 메뉴에 리스팅이 될 정도로 좋은 퀄리티를 보여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고, 밀러 패밀리 컴퍼니는 제이 윌크스 브랜드를 인수하여 제프의 비전을 이어가고 있다.
Optik, “Big, Loud, Bombastic!” 풍부하고 요란하며 폭발적인 와인!
옵틱은 화려한 레이블에서부터 캘리포니아 스타 와인메이커 조이 텐슬리(Joey Tensley)의 창의적인 에너지가 뿜어져 나온다. 밀러 패밀리의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는 이 와인 레이블엔 함사(HAMSA: 손에 그려진 눈)가 그려져 있는데, 와인메이커의 손으로 새로운 와인 세계를 인도한다는 느낌을 준다.
옵틱은 싱글 빈야드 최상의 레인지 와인이다. 산타 마리아 밸리 AVA에 위치하며 세계 TOP 10 빈야드에 들만큼 명성이 높은 비엔 나시도(Bien Nacido)와 솔로몬 힐즈(Solomon Hills)에서 선별된 포도로만 만들어진다. 서로 8마일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이 두 빈야드는 상당히 다른 지형을 반영한다. 두 곳 모두 산맥을 가로지르는 시원한 기후의 영향을 받지만, 셰일과 사질 양토, 언덕과 계곡 등 토양 구성의 차이로 인해 같은 포도 품종으로도 뉘앙스가 굉장히 다른 와인을 만들 수 있다.
피노 누아의 빛나는 잠재력을 개성 넘치게 표현하기 위해 싱글 빈야드 와인으로 출시된 솔로몬 힐즈 피노 누아와 비엔 나시도 피노 누아.
먼저 솔로몬 힐즈는 태평양에서 불과 18KM 떨어져 산타 마리아 밸리에서 가장 태평양에 근접해 AVA에서 가장 시원한 포도밭이다. 바닷모래 성분의 사양토에서 포도나무와 강렬한 해양 기후가 만나 대체로 밝고 경쾌한 스타일의 와인을 만드는데, 솔로몬 힐즈 피노 누아는 붉은 과실향과 보라색 꽃향이 감돌며, 섬세하면서도 견고한 탄닌으로 예쁘고 우아한 스타일이다. 반면 비엔 나시도에서는 햇살 가득한 남향에 있는 셰일과 자갈이 많은 양질토로 구성되어 있어 좀 더 파워풀하고 화려한 느낌의 와인을 만드는데, 좀 더 잘 익은 붉은 과실향과 히코리 나무, 팔각, 육두구 향, 젖은 땅 향이 어우러져 있다. 떼루아가 피노 누아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궁금하다면 꼭 비교 시음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조이 텐슬리는 최고의 시라 메이커로 저명한데, 이 시라에서도 그의 활기찬 에너지가 느껴진다. 조이는 포도의 표면이 옴폭 들어갈 때까지 기다려 약간 늦게 수확해 와인을 만들는데, 그 결과 묵직한 바디감과 함께 잘 익은 블랙베리, 바이올렛 꽃, 베이킹된 흑설탕, 찐 밤 향이 엄청나게 다채로운 향을 선사한다. 윌은 “Pop the cork and drink now”라며, 지금 와인을 따서 바로 마시기 좋은 와인이지만 앞으로 8년에서 10년 정도 숙성해도 좋은 향이 발현될 것이라고 전했다. 풍부한 옵틱 시라와 어울릴 한국 음식으로는 불고기나 양념갈비 같은 약간의 단맛이 베이스로 된 음식이 좋을 것 같다.
지구온난화에서 현재 가장 안전한 센트럴 코스트
지구온난화 문제가 캘리포니아 와인 산업을 위협하고있는데, 이에 대해 윌은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센트럴 코스트 지역은 시원한 태평양 바람과 해안 사막의 영향으로 인해 평균 기온 상승과 산불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아주 독특한 환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50년 동안 기온 변화가 없을 것으로 예상되며, 와인 퀄리티의 변화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전했다. 발라드 레인, 제이 윌크스, 옵틱은 환경 문제로 인한 와인 품질 변화에 대한 우려 없이 안심하고 즐길 수 있는 아주 큰 장점이 있다.
문의 와이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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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천혜림 사진/자료 제공 와이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