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식탁에 엣지를 더하는, 가스트로노믹 뉴질랜드 와인

Written by양 진원

코로나 팬데믹 이후 한국 와인 시장은 전반적으로 침체기를 겪고 있지만 뉴질랜드 와인은 지난 5년간 5배 성장이라는 놀라운 숫자를 기록하고 있다. 초급반 개강을 할 때마다 “어떤 목적으로 와인을 배우러 오셨나요?”라는 질문을 하면, “말보로 소비뇽 블랑을 맛보고 나서 와인의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고 더 많은 것을 알고 싶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이렇게 뉴질랜드 와인이 취향의 끝판왕인 미식의 세계를 열어주는 큰 문이 되고 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사실 이 모든 것은 우연이 아니다. 뉴질랜드 와인은 직관적이며, 퀄리티 대비 가격이 좋아 매일 식탁 위에 올려도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고,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서늘한 기후대에서 수확한 포도로 만들어 자체의 순수함과 반짝이는 산도를 지녀 음식과 잘 어울리는 특징을 지녔다.

어느 바틀을 오픈해도 큰 기쁨을 선사하는 뉴질랜드 와인과 함께 할 실패 없는 마리아주 아이디어와 몇 가지 페어링 원칙을 제안해 본다.

우리집을 와인 맛집으로 만들어주는 페어링 원칙

와인을 판매하는 레스토랑이나 바에서 주문한 음식이 짜고 시다면 그곳은 신뢰해도 좋을 맛집이다. 와인을 더 돋보이도록 디자인된 음식이라는 증거이기 때문. 와인과 짭짤한 음식이 함께하면 풍부한 과실향을 두드러지게 하며 단맛을 더 강하게 한다. 레드 와인의 경우 타닌감을 줄여주어 전반적으로 더욱 매끄러운 질감을 느낄 수 있다. 반면 단맛과 감칠맛이 강한 음식과 함께한다면 와인의 떫고 쓰고 신맛은 강화되고 단맛과 과실미를 약화한다. 페어링을 할 때는 맛과 질감 조리 방법 등을 모두 고려하지만 맛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다. 주재료 또한 물론 중요하지만 영향력은 양념과 소스가 더 크다는 이야기. 함께했을 때 와인을 해칠 수 있는 달고 감칠맛이 강한 요소들을 피하면서 비슷하거나 상반되는 맛, 음식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보완의 마리아주로 페어링을 즐길 수 있다.

한식과 뉴질랜드 와인

배달 회를 주문했다면? 소비뇽 블랑을!

든든한 메인 요리 하나로 순식간에 식탁이 풍성해지는 회. 광어회를 먹을 때 한국인은 자연스럽게 음식에서 부족한 산을 채워주기 위해 초고추장을 찾는다. 와인과 함께하는 식사라면 초고추장 대신 산도감이 높은 코노 소비뇽 블랑(Kono Sauvignon Blanc)을 함께 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보완의 마리아주가 성립되는 완벽한 페어링. 향긋한 풀내음과 화려한 열대 과실 아로마가 있어 해산물 자체가 지닌 비린 느낌 또한 상쇄할 수 있다.

삼겹살 파티에는 피노 그리

한국인의 소울푸드인 삼겹살. 고기 자체만을 볼 땐 보통 레드 와인 페어링을 생각하지만 기본적으로 한식 밥상에는 다양한 쌈 채소와 쌈장, 새콤달콤하게 무쳐 낸 각종 야채 등이 세팅되어 있다. 곁들여 먹는 재료와의 전반적인 조화를 고려하면 화이트 와인을 꺼낼 순간임을 알 수 있다. 뉴질랜드 피노 그리(Pinot Gris) 품종은 산도와 바디감이 잘 살아있어 삼겹살의 기름기를 싹 씻어주며 입안을 리프레쉬하게 하면서도 밸런스가 좋다. 러브블록 말보로 피노 그리(Loveblock Marlborough Pinot Gris)가 좋은 예시. 오크 터치를 살짝 한 진지한 스타일의 샤르도네 또한 좋은 선택이다.

전기구이 통닭과 피노 누아

오븐에서 기름을 쏙 빼고 소금, 후추와 같은 기본적인 양념만을 가미한 옛날 통닭은 펼쳐진 하얀 도화지와 같다. 자연을 그대로 담아낸 뉴질랜드 와인과 결이 맞는 음식. 기본적으로 닭고기는 질감이 여린 가금류이기에 무겁지 않은 바디감을 지닌 피노 누아 또는 드라이한 로제 와인을 추천한다. 딸기와 라즈베리 등의 풍부한 과실미와 농밀한 밀도감이 느껴지는 배비치 블랙 피노 누아(Babich Black Pinot Noir)라면 일상 식사의 격을 한층 더 올려준다.

브런치 식탁이라면

아스파라거스를 곁들인 에그 베네딕트와 소비뇽 블랑

아스파라거스는 황을 포함한 아미노산의 한 종류인 메티오닌(methionine) 성분이 있어 와인 페어링이 쉽지 않은 대표적인 식자재다. 오크통에서 숙성한 풀바디 레드 와인을 만나면 금속성의 불쾌한 맛을 생성하는 원인이 되기 때문. 하지만 산도가 풍부하며 비슷한 아로마 노트를 지니고 있는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을 만나면 입맛을 돋워주는 최고의 음식이 된다는 사실! 소스를 만드는 데 들어간 버터와 소금은 와인의 산도와 만나면 더욱 진한 풍미를 자아낸다. 테 파 소비뇽 블랑(Te pa Sauvignon Blanc) 한 잔을 곁들인다면 완벽한 주말 브런치 식탁을 완성할 수 있다.

장봉 뵈르 샌드위치와 로제 와인

바삭한 바게트 안에 얇게 저민 햄과 버터를 채운 장봉 뵈르. 판매하는 곳도 많고 만들기도 간단해 주말 아침 브런치 식사로 제격이다. 부드러운 햄과는 잔잔한 타닌감과 높은 산도감을 지닌 로제 와인을 곁들여 보길 추천한다. 말보로(Marlborough)와 센트럴 오타고(Central Otago)에서 생산되는 로제 와인은 주로 피노 누아 베이스로 완숙된 베리류와 향신료의 아로마를 지녔으며 선명한 산도와 훌륭한 밸런스를 자랑한다. 피노 누아 본연의 순수함과 우아함을 지닌 투 리버즈 아일 오브 뷰티 로제(Two Rivers Isle of Beauty Rose)라면 감성 풍만한 브런치 타임이 될 것. 또한 약간의 잔당이 남아있는 스타일의 로제 와인도 짭짤한 샌드위치와 훌륭한 조화를 이루어 낸다.

근사한 요리를 더욱 빛나게 하는 뉴질랜드 와인

연어 스테이크와 샤르도네

소금 후추를 뿌려 굽기만 하면 제법 그럴싸한 비주얼이 보장되는 마법의 메뉴, 연어 스테이크. 본격적으로 레스토랑 기분을 내려고 한다면 와인 한 잔이 빠질 수 없다. 기름진 연어에는 중간 이상의 바디감과 산미를 지닌 화이트 와인이 제격. 말보로에서 생산된 샤르도네라면 곧은 산미로 입안을 깔끔하게 해주며 우아하면서도 화려한 아로마가 비린내를 잡아준다. 약간의 오크통 숙성을 거친 샤르도네라면 더더욱 음식과 무게감도 비슷해 밸런스 또한 훌륭한데, 기스본 지역에서 생산된 빌라 마리아 맥더미드 힐 샤르도네(Villa Maria McDiarmid Hill Chardonnay)를 특히 추천한다. 크리미한 질감과 고급스러운 유질감을 지닌 와인이다.

양갈비 스테이크와 카베르네 소비뇽

흔히 뉴질랜드에는 사람보다 양들이 더 많이 살고 있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음식과 와인 생산지를 이어주는 페어링은 늘 옳은 법. 양갈비 스테이크를 먹을 땐 원산지를 맞추어 뉴질랜드 혹스베이(Hawke’s Bay)에서 생산된 카베르네 소비뇽을 꺼내 보길 추천한다. 서늘한 지역에서 제대로 완숙된 카베르네 소비뇽은 은은한 민트 아로마를 지니고 있는데 양갈비 스테이크에 곁들여지는 민트 소스, 로즈마리 크러스트가 주는 허브 뉘앙스, 주재료가 선사하는 기름기와 모두 와인과 훌륭한 합을 이루어 낸다. 카베르네 소비뇽 베이스의 테 마타 아와테아(Te Mata Awatea)와 같은 보르도 블렌드도 좋은 파트너다.

북경 오리와 시라

달콤하면서도 바삭한, 캐러멜라이즈드 된 껍질이 핵심인 북경 오리의 독특한 플레이버를 감당할 수 있는 와인은 많지 않다. 하지만 순수한 과실미와 페퍼리한 향신료 아로마가 가득한 뉴질랜드 시라는 소스와 같이 작용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혹스베이와 오클랜드(Auckland)에서 생산된 시라의 부드러운 타닌감은 북경 오리의 지방과 어우러져 풍미에 깊이를 더하고 특유의 산도감으로 입안을 깔끔하게 정리해 준다. 크래기 레인지 김블렛 그레블스 빈야드 시라(Craggy Range Gimblett Gravels Vineyard Syrah)와 같은 프리미엄 와인이라면 북경 오리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조합을 이룰 것이다.

다이어트 중이라면

키위 샐러드와 함께라면 게뷔르츠트라미너

고급스러운 와인바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키위 샐러드. 재료가 다하는 음식이기에 다행히 집에서도 쉽게 만들 수 있다. 키위를 한두 개 얇게 저며 여린 그린 채소 위에 가득 올리고 소금, 후추로 간을 하고 좋은 올리브 오일 한 바퀴 휘리릭. 그리고 연성 치즈를 뚝뚝 잘라서 얹는다. 높은 산과 당도를 지니고 있는 뉴질랜드 키위는 건강에도 좋고 와인과도 잘 어울린다. 그중에서도 자연의 맛을 그대로 담은 순수한 스타일의 화이트 와인을 가장 추천한다. 말보로 소비뇽 블랑과는 산도 밸런스를 맞출 수 있어 음식과 와인의 과실 풍미가 더욱 극대화되는 효과를 볼 수 있으며, 화려한 아로마를 지녔지만 상대적으로 산도감이 적은 품종인 게뷔르츠트라미너에는 키위의 산도가 활기를 불어넣어 준다. 드라이, 세미 스위트 모두 잘 어울린다.

오징어, 문어숙회에는 리슬링

한혜진 다이어트 배달 술안주로 유명한 오징어와 문어숙회. 단백질 함량은 높으면서도 양념이 많이 들어가지 않은 영양식이다. 통오징어와 문어숙회는 참기름 소금장에 찍어 먹곤 하는데 강렬한 아로마에 밀리지 않는 유질감과 다채로운 아로마 프로파일을 지닌 리슬링과 페어링이 훌륭하다. 리틀 뷰티 드라이 리슬링(Little Beauty Dry Riesling)을 곁들이면 와인의 완숙된 핵과, 시트러스, 향신료의 화려한 아로마와 플레이버로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음식에 엣지를 더한다.

명란 오이 김밥에는 스파클링 와인

최화정 유투브 레시피로 모두가 사랑하는 전 국민의 다이어트 음식이된 오이 김밥. 김 위에 적은 양의 밥을 깔고 통오이 하나를 그대로 말아 넣은 심플한 레시피로 만들기도 쉽다. 물론 여기에 명란을 구워 얹고 마요네즈를 찍어 먹는다면 갑자기 저칼로리, 다이어트 음식이라기보다는 그냥 맛있는 와인 안주로 변신! 다이어트와는 관계없이 짭짤한 명란에 산도감이 충만한 와인을 곁들이면 더욱 풍부한 과실미를 느낄 수 있다. 센트럴 오타고에서 생산된 스파클링 와인이나 말보로 소비뇽 블랑, 노스 캔터베리 리슬링(North Canterbury Riesling)을 추천한다. 말보로산 샤르도네 베이스의 오이스터 베이 퀴베 브뤼(Oyster Bay Cuvee Brut) 또한 좋은 선택. 다음 날 저녁, 남은 오이로 참치 오이 비빔밥을 만들었다면 비슷한 재료로 구성된 니스식 샐러드(Salade Niçoise)를 기억해 내시길! 부드러운 질감에 반짝이는 산도가 빛나는 뉴질랜드 로제 와인을 꺼낼 시간이다.

치즈 플레이트에는 어떤 뉴질랜드 와인이 좋을까?

다양한 와인이 모든 음식과 어울리는 것은 아닌 것처럼 치즈도 카테고리별로 어울리는 와인이 따로 있다. 음식과 와인 페어링처럼 질감과 풍미의 합을 생각해 보면 쉽게 페어링 접점을 찾아낼 수 있다.

염소젖 치즈에는 소비뇽 블랑

염소젖 치즈는 특유의 향을 지니고 있어 아쉽게도 국내에서는 아직 유통되고 있는 종류가 많지는 않다. 백화점이나 인터넷을 통해 쉽게 구할 수 있는 버전은 샤브루(Chavroux)와 부쉐뜨 드 쉐브르(Bûchette de Chèvre). 생치즈류로 여리여리하고 촉촉한 질감을 지니고 있다. 오크통 숙성을 하지 않은 소비뇽 블랑 와인과 함께해 보길 가장 추천한다. 와인의 산미와 풍미가 치즈의 지방질, 아로마와 함께 멋지게 어우러져 제3의 시너지를 만들어 내 입안에서 꽃이 피어나는 놀라운 경험을 해 볼 수 있다.  

세척 외피 연성치즈인 에뿌아스(Epoisses)와는 피노 누아

에뿌아스는 숙성 과정에서 피노 누아 와인을 만들고 남은 껍질을 증류해 만든 술로 외피를 닦아가며 관리하는 치즈다. 크리미한 질감을 지니고 있어 타닌이 강한 레드 와인과 만나면 입안을 빡빡하게 만들지만 고운 질감을 지닌 뉴질랜드 피노 누아라면 훌륭한 조화를 이루어 낸다. 치즈에 후추와 큐민 등을 곁들여 와인과도 함께해 보길 추천한다. 레드 베리 과실류의 신선한 아로마에 향신료가 더해져 보다 다층적인 플레이버를 만들어낸다.

고다 치즈와는 메를로와 카베르네 소비뇽

담황색을 띤 거대한 원반형의 반경성 치즈인 고다(Gauda)는 치즈의 생산지가 아닌 판매지에서 이름을 따왔다. 중세시대부터 공식 치즈 마켓이 열리던 ‘고다’에서 이 치즈를 팔았기에 고다란 이름이 붙여진 것. 일반적으로 고다는 최대 2년까지 숙성하며 백화점과 대형마트, 온라인에서도 숙성 정도에 따른 치즈를 쉽게 구입할 수 있다. 치즈가 어릴 때는 단맛과 과실향이 더 풍부하고 좀 더 숙성된 치즈는 짠맛이 좀 더 두드러지고 전반적으로 모든 풍미가 강해진다. 고다 치즈는 일반적으로 모든 종류의 레드 와인과 잘 어울리지만, 숙성된 고다 치즈는 특히 혹스베이(Hawke’s Bay) 메를로나 카베르네 소비뇽처럼 힘 있는 와인과 페어링이 좋다. 와인이 어릴 땐 6, 12개월 숙성 고다 치즈를, 에이징이 된 와인이라면 치즈 또한 숙성 정도가 높은 것을 추천한다. 폭발하는 시너지와 끝을 가늠하기 어려운 여운을 경험해 볼 수 있다.

양진원 와인 & 푸드 칼럼니스트 사진 제공 뉴질랜드 무역산업진흥청, New Zealand Winegr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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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공개일 : 2024년 06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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