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스포츠와 샴페인: 샴페인 터트리기의 기원은?

Written by와인쟁이 부부

르망 24시(24 Hours of Le Mans) 내구 레이스는 세계 모터스포츠 역사에서 가장 오래되고 권위 있는 대회 중 하나로, 1923년 프랑스 르망(Le Mans)에서 처음 개최되었다. 레이스의 기본 개념은 단순하지만 도전적이다. 내구(오래 견딤) 레이스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유는 르망 24시가 24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랩을 주파하는 자동차가 우승하는 경기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빠른 속력을 내는 것만으로는 우승할 수 없고, 자동차의 내구력과 레이서의 체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자동차와 인간의 한계를 동시에 시험하는 대회이자 자동차 회사에는 자사가 자랑하는 최고 모델의 한계를 시험하고 대중에게 증명할 기회다. 단순히 속도뿐만 아니라 자동차의 신뢰성, 연료 효율성, 그리고 드라이버와 팀의 지구력을 시험하는 종합적인 경기이다.

2015 르망 레전드(Le Mans Legend)에서 포드 GT40과 쉐보레 콜벳(Chevrolet Corvette) (사진 위키피디아)

르망 서킷은 길이 13.6km에 달하는 독특한 트랙으로, 일반 도로와 전용 경주로가 혼합되어 있어 다양한 주행 환경을 제공한다. 서킷의 하이라이트인 '뮬산느(Mulsanne) 직선 구간'은 과거 거의 6km에 달했으며, 경주용 차들이 400km/h 이상의 속도를 기록했던 곳이다. 안전상의 이유로 1990년대부터 시케인(chicane: 도로의 선형이 S자 형태가 되도록 만든 구간)을 추가하여 최고 속도를 제한했지만, 여전히 레이스의 상징적인 부분으로 남아 있다. 이 직선 구간에서는 역사적으로 수많은 차가 엔진 폭발과 기계적 고장을 겪었으며, 이는 내구 레이스의 잔혹한 특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소가 되었다.

2024년은 르망 24시 레이스가 100주년을 맞이하는 특별한 해였다. 비록 세계대전 등으로 인해 몇 년간 개최되지 못했지만, 이 대회는 세계 모터스포츠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았다. 100주년을 맞이한 2024년에는 32만 9천 명에 달하는 전 세계의 팬들이 경기를 직접 관람하기 위해 방문했다. 관람객들은 24시간 내내 이어지는 레이스의 드라마를 경험하는데, 이는 단순한 스포츠 경기를 넘어 국제적인 축제의 성격을 띠고 있다. 르망의 역사 속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시기는 1950년대와 1960년대로, 페라리(Ferrari)와 포드(Ford), 포르쉐(Porsche) 같은 자동차 제조사 간의 치열한 경쟁이 펼쳐졌고, 이는 자동차 기술 발전에 큰 원동력이 되었다. 현대 자동차에 적용된 많은 안전 기술과 성능 향상 기술들이 이 르망 경기에서 처음 시험 되고 개발되었다는 점은 모터스포츠가 단순한 오락이 아닌 기술 혁신의 장이었음을 보여준다.

2024 르망 24시에서 우승한 페라리 AF 코르세팀의 퍼레이드 (사진 르망24시 홈페이지 ©Antonin VINCENT(ACO))

르망 24시를 생생하게 담아낸 영화 두 편이 있다. 먼저 1971년에 개봉한 고전 명작 『Le Mans』이다. 자동차 레이스의 세계를 그린 전설적인 영화로, 스티브 맥퀸(Steve McQueen)이 주연을 맡아, 현실적인 레이스 장면을 위해 실제 르망 24시 경기를 촬영해 영화에 담아내기도 하였고, 당시 FIA 규정을 준수하여 실제 레이스 드라이버들이 출연했다. 주인공 스티브 맥퀸 역시 아마추어 레이스 드라이버의 경험이 있어 많은 장면을 대역 없이 소화해 냈다. 영화는 대사보다는 레이스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어 관객들에게 레이스의 긴장감과 드라이버들이 느끼는 심리적 압박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영화의 흥행 이후 르망 24시 대회는 더욱 대중적인 관심을 받게 되었다.

이후 또 한 번 자동차 경주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영화가 탄생했는데, 바로 2019년에 개봉한 영화 『포드 V 페라리』이다. 1966년, 미국의 자동차 회사가 르망 24시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릴 거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시기에 새 역사를 써낸 캐롤 셸비(Carroll Shelby/엔지니어)와 켄 마일스(Ken Miles/드라이버 겸 엔지니어)의 도전과 우정을 담고 있다. 1900년대 초 자동차 대량 생산의 기틀을 마련하며 승승장구하던 포드는 크라이슬러(Chrysler), 쉐보레(Chevrolet) 등에 밀려 시장 점유율을 빼앗기는 위기를 타개하고자 '레이싱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어 승리하는 차'라는 이미지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이를 위해 파산 위기였던 페라리를 인수하려 했으나 막판 피아트(Fiat)에 빼앗기게 되자 분노한 포드의 대표 헨리 포드 2세(Henri Ford Ⅱ)는 직접 대회에 출전할 차를 만들 계획을 세운다. 이 도전을 위해 두 명의 자동차 엔지니어와 드라이버를 영입한다. 바로 캐롤 셸비와 켄 마일스다. 두 사람은 포드에서 GT40이라는 자동차를 만들어내고 1966년 르망 24시에 출전한다.

영화 『포드 V 페라리』 포스터(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와 영화 『F1 더 무비』 포스터(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영화는 그 치열한 레이스를 생동감 있게 그려내었고, GT40은 지금까지도 르망 24시에서 우승한 유일한 미국 차로 남아 있다. 영화가 보여주는 역사적 사실 외에도, 이 사건은 유럽 중심이었던 모터스포츠에 미국 제조사들이 본격적으로 도전장을 내민 전환점이 되었으며, 이후 모터스포츠 기술과 경쟁 구도에 큰 변화를 불러왔다. 2025년의 경기일정을 보면 르망 24시는 6월 14일부터 15일까지 프랑스 르망의 서킷 드 라 사르트(Circuit de la Sarthe)에서 열리며, 애스턴 마틴(Aston Martin), 페라리, 포르쉐 등 유명 제조사들이 하이퍼카 클래스에 참가한다. F1은 3월 16일 호주 멜버른에서 개막해, 12월 7일 아부다비에서 시즌을 마친다. 올해는 24개 그랑프리로 구성되며, 스프린트 레이스가 추가된다. 모터스포츠 영화 팬들을 설레이게 할 소식도 있다. 2025년에는 모터스포츠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두 편의 영화가 연이어 개봉된다. 먼저 르망 24시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American Thunder: NASCAR to Le Mans』는 2023년 르망 24시에서 NASCAR 차량이 출전한 역사적인 순간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쉐보레 카마로 ZL1이 LMGTE Am 차량들을 제치고 예선에서 앞서 나가는 장면을 중심으로, NASCAR와 르망의 도전을 그린다. 연이어 개봉하는 F1의 동명 영화 『F1 더 무비』는 브래드 피트(Brad Pitt) 주연으로, 1990년대 F1 드라이버 소니 헤이즈(Sonny Hayes)의 30년 만의 복귀와 젊은 신예와의 치열한 경쟁을 그린 영화다. 조셉 코신스키(Joseph Kosinski) 감독과 루이스 해밀턴(Lewis Hamilton)의 제작 참여로, 더욱 현실감을 더한 작품이다.

모터스포츠 팬들뿐 아니라 와인 애호가라면 자동차 경주의 시원한 질주 장면만큼 기대하는 장면이 더 있다. 바로 '샴페인 세리모니'다. 레이싱에서 우승한 선수가 시상대에 올라 샴페인을 흔들어서 터트린 뒤 주변 사람들에게 뿌리는 바로 그 세리모니다. 그렇다면 이 고급 샴페인을 아깝게 다 뿌려버리는 세리모니는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

2024 르망 24시 우승 세리모니 (사진 르망24시 홈페이지 ©MICHEL JAMIN(ACO))

우승자에게 샴페인을 쥐여주기 시작한 것은 1950년이었다. 프랑스에서 열린 F1 그랑프리에서 우승한 아르헨티나의 후안 마누엘 판지오(Juan Manuel Fangio)에게 모엣 샹동(Moët & Chandon) 한 병이 부상으로 증정된 것이다. 다만, 이때는 샴페인을 흔들어 터트리지 않고 얌전히 마셨다고 한다. 초기 레이스에서는 우승자에게 단순히 트로피와 함께 좋은 와인을 선물하는 것이 관례였으며, 샴페인이 특별히 선택된 이유는 그 자체로 축하와 성공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영화의 배경이 된 1966년 르망 24시에서 2.0L 프로토타입 클래스 우승자인 조 시퍼트(Jo Siffert)에게 지급된 샴페인 병 코르크가 온도와 진동을 견디지 못하고 튀어나와 샴페인이 뿜어져 나오는 일이 벌어졌고, 이를 본 관객들은 이색적인 퍼포먼스에 환호했다. 다음 해 1967년 댄 거니(Dan Gurney)가 조 시퍼트의 샴페인 세리머니를 재현하자 관객들은 열렬한 환호를 보냈고, 이것이 우승자들의 전통으로 이어지게 됐다. 이 우연한 사건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모터스포츠의 상징적인 세리모니가 된 것은 흥미로운 역사적 우연이다. 모터스포츠 역사가들은 특히 댄 거니의 세리모니가 미디어의 큰 주목을 받으면서 샴페인 세리모니의 진정한 출발점이 되었다고 보고 있다.

1967년 댄 거니의 샴페인 세리모니(사진 헨리 포드 홈페이지)

르망 24시에서 쓰는 샴페인은 포므리(Pommery)이다. 르망 24시와 견주는 또 하나의 자동차 경주 대회 F1도 샴페인은 시대별로 계속 변화해 왔는데, 모엣 샹동이 1966년부터 1999년까지 30년 동안 F1의 샴페인 자리를 지켰고, 2000년부터 2015년까지 멈(Mumm)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멈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한 F1 샴페인이다. 이후 2017년부터 2019년까 지는 카흐봉(Carbon)이, 2020년에는 모엣 샹동이 잠시 자리를 꿰찼다가, 2021년부터 이탈리아의 프리미엄 스푸만테 생산자인 페라리(Ferrari)가 낙점되어 2025년까지 F1의 공식 와인으로 사용되고 있다.

르망 24시처럼 한 샴페인 하우스와의 돈독한 관계이든 F1처럼 다양한 샴페인 연대기이든 승리의 순간을 가장 빛내 주는 것이 샴페인이라는 것은 변함없다. 모터스포츠와 샴페인의 결합은 단순한 관례를 넘어 글로벌 스포츠 문화의 상징적인 요소가 되었으며, 이제는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다른 스포츠 행사에서도 승리를 축하하는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어떤 음식이든 가장 잘 어울리는 와인이 있는 것처럼 샴페인은 승리의 순간과 가장 완벽한 페어링을 보여준다.

와인쟁이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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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공개일 : 2025년 05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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