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카나의 그랑 크뤼’라는 애칭답게 반피의 핵심은 누가 뭐래도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다. 처음 와이너리의 터를 잡은 곳이 몬탈치노라는 사실을 봐도 그렇고, 브루넬로 품종의 개발과 품질 개선에 들여온 노력을 봐도 그렇다. 하지만 반피는 토스카나와 피에몬테를 아울러 스파클링, 화이트, 레드, 스위트 등 “없는 게 없는” 방대한 포트폴리오를 보유한 와이너리이기도 하다. 1978년 설립된 이래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를 와이너리의 코어에 두고, 잔가지를 뻗어 다양성을 추구해 온 결과일 테다. 지난 9월, 반피 와이너리의 공동대표 로돌포 마랄리(Rodolfo Maralli)와 홍보 이사 가브리엘레 고렐리(Gabriele Gorelli)MW가 방한하여 프레스 런치를 진행했다. 쟁쟁한 와인 소비국을 제치고 한국을 아시아 1위, 전 세계 5위권 시장으로 꼽는 브랜드 반피. 이번 프레스 런치에서 반피는 다이닝의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반피’ 하나면 완벽할 수 있는 마법을 발휘했다.
형제의 이탈리안 드림
반피의 시작점엔 뉴욕의 한 와인 수입상이 있다. 이탈리아 와인을 유통하던 이 수입상은 수요가 공급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크게 성공하자 아예 직접 와인을 만들어 보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존 마리아니(John Mariani)와 해리 마리아니(Harry Mariani) 형제는 이탈리아 최고의 와이너리를 설립할 목적으로 1978년 토스카나에 발을 들였다. 새로운 형태의 아메리칸 드림이었다. 탁월한 사업 수완과 과감한 결단력으로 설립된 반피는 당시 이탈리아 정부가 놀랄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했다. 토스카나 몬탈치노 지역에 와이너리를 설립하고 1년 뒤, 반피는 또 다른 지역에 깃발을 꼽았다. 바로 피에몬테. 그리고 이곳에서 전 세계 1위 브라케토 다퀴인 로사 리갈(Rosa Regale)이 탄생했다. 현재는 설립자들의 자녀인 크리스티나 마리아니(Cristina Mariani)와 제임스 마리아니(James Mariani)가 아버지들의 아메리칸 드림을 이어받아 와이너리를 운영하고 있다.
이번 런치에는 아츠클럽 청담이 반피를 위해 특별히 구성한 이탈리안 메뉴에 반피 와인이 곁들여졌고, 가브리엘레 고렐리MW가 와인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스파클링 와인부터 화이트, 레드, 디저트로 이어진 6종의 반피 와인은 하나의 옴니버스 작품집 같은 다채로움을 보였다.
피에몬테에서 반피는 지금
알타 랑가(Alta Langa) DOCG는 최근 떠오르는 피에몬테의 스파클링 와인 산지다. 가브리엘레의 표현에 따르면 “이탈리아 내에서도 덜 알려진 와인 산지”이면서 “피에몬테의 섬과 같은 곳”이 알타 랑가라 한다. 국내에서도 익숙지 않은 건 마찬가지. 그도 그럴 것이 DOCG로 인정받은 것이 비교적 최근인 2008년에 와서이다. 이날 런치의 첫 번째 와인으로 나온 반피 퀴베 오로라(Banfi Cuvee Aurora) 2019 역시 아직 국내에는 정식 수입되기 전 단계이다. 오직 피노 누아와 샤르도네를 사용하여 전통적인 방법으로 빈티지 와인만 생산하고, 최소 30개월의 병입 숙성을 한다는 점에서 고급 스파클링 와인으로 분류되는 알타 랑가. 또 다른 이탈리안 고급 스파클링 와인인 프란치아코르타(Franciacorta) DOCG나 트렌토(Trento) DOC에 비견되곤 하는데, 가브리엘레는 “토스티 노트가 많은 프란치아코르타 DOCG와 가늘고 깊은 트렌토 DOC의 중간 성격”으로 알타 랑가를 정의했다. 피노 누아의 영향이 좀 더 많은 편이라 프루티하고 라운드한 미감을 지녔지만, 날렵한 산도가 이를 받쳐주며 드라이하고 깔끔한 스타일이라는 것. 반피 퀴베 오로라 2019가 딱 그러했다. 쥬시하고 신선한 과일 풍미가 쨍한 산미와 조화를 이루며 군더더기 없이 마무리되어, 런치의 시작을 알리기에 이상적인 그런 와인 말이다.
두 번째 요리인 엔다이브 샐러드에 곁들여진 반피 프린시페사 가비아(Banfi Principessa Gavia)에는 사랑 이야기가 녹아 있다. 때는 6세기, 프랑크 왕국의 가비아 공주는 근위병과 사랑의 도피를 가던 길이었는데, 여관에서 와인을 마시고 취한 근위병이 여관 주인에게 사실을 털어놓았고 그 이야기가 왕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결국 왕은 두 사람을 결혼시켰고, 사람들은 공주와 근위병의 순수한 사랑을 기리고자 근위병을 취하게 한 와인에 가비(Gavi)라는 이름을 붙였다 한다. 오늘날 코르테제(Cortese) 품종으로 만드는 가비 DOCG는 미국에서 꽤 성공한 이탈리아 와인에 속한다. 오크 없이 리 숙성만 진행한 반피 프린시페사 가비아 2020은 사과, 배, 멜론, 복숭아, 효모, 곡물의 노트가 깔끔하게 정돈되어 함께 준비된 엔다이브 샐러드와 결을 공유했다. 공주의 와인은 그녀의 사랑만큼이나 순수했다.
최초의 슈퍼 몬탈치노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로 넘어가기 전에 ‘슈퍼 몬탈치노’ 와인 수무스(Summus)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몬탈치노 지역에서 생산된 슈퍼 투스칸을 일컫는 ‘슈퍼 몬탈치노’는 반피의 수무스 1985 빈티지가 시초이다. 명문화된 관계 법령이 있는 것이 아니기에 슈퍼 투스칸이라는 명칭에는 간혹 의문이 따라붙는데, 가브리엘레는 그 기준에 대해 첫째로 “산지오베제이거나 보르도 품종일 것”을, 둘째로 “장기 숙성을 염두에 두고 만들 것”을 강조했다. 이날 준비된 2017 빈티지의 수무스는 산지오베제 40%, 카베르네 소비뇽 35%, 시라 25%로 만들어졌다.
빈티지 편차가 심한 토스카나에서 좋은 해에만 생산되는 수무스에 있어 2017 빈티지는 어떤 해였을까. 가브리엘레는 “봄 냉해로 엄청난 손실이 있었고, 여름은 건조하고 무더운 해”로 정의 내렸다. 포도가 과숙하는 것을 막기 위해 수확을 평균보다 일찍 시작했다고. 그렇게 수확한 포도는 광학 센서 선별기를 사용해 기준 미달인 포도를 가려냈는데, 이때 엄청한 양의 포도알을 폐기했다 한다. 말이 쉽지, 많은 양의 포도를 타협 없이 폐기하는 건 힘든 결정이었을 건데 어찌 보면 와이너리 규모가 반피쯤 되니까 가능한 일일 수도. 그렇게 만들어진 수무스 2017 빈티지는 생산량은 극히 적지만 매우 농축된 풍미를 갖게 되었다. 이는 런치에 나온 와인에서도 여실히 느껴졌는데, 블랙 커런트와 블랙베리, 자두와 같은 과일과 페퍼, 그릴에 구운 고기, 치즈, 오크, 훈연 향이 묵직하게 치고 올라오고, 부드럽고 폭신한 질감과 맛있게 익어가는 타닌, 짭조름한 미네랄까지 한 편의 교향곡 같은 풍성하고 조화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반피의 노른자위, 포지오 알레 무라
대망의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그중에서도 반피 와이너리 안의 와이너리이며 반피 브랜드 안의 브랜드인 ‘포지오 알레 무라(Poggio Alle Mura)’가 1997 빈티지와 2017 빈티지로 준비되었다. 반피 성을 가운데 두고 둘러싸고 있는 포도밭에서 나온 이 와인은 반피의 노른자위라 할 수 있다. 반피 와이너리에는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의 온도 조절 능력과 일관성, 오크 숙성의 이점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특별한 발효조가 있다. 위아래로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와 오크통을 합체시킨 호라이즌 시스템이 그것인데, 포지오 알레 무라가 이 방식으로 양조되었다. 호라이즌 시스템으로 만들어진 와인은 더 부드럽고 덜 쓰며 균질한 품질로 완성된다 한다. 1997년과 2017년 사이에서 20년을 넘나들며 시간 여행하는 듯 마셔본 포지오 알레 무라는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의 교본과도 같았다. 특히 1997 빈티지는 포지오 알레 무라의 첫 빈티지라 의미가 남다르다. 이번 행사를 위해 반피 와이너리 셀러에서 특별히 공수한 1997 빈티지에서는 26년의 세월을 우아하게 버텨낸 감동이 있었다. 반면 최근 와인인 2017 빈티지는 브루넬로 품종의 과실미와 파워가 직관적으로 다가왔는데, 버터 소스 파스타의 진한 풍미와 합을 맞추며 런치를 더욱 풍성하게 이끌었다.
뉴욕 와인상의 향수는 결국
로사 리갈을 이야기하기 위해선 다시 뉴욕 와인상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 당시 큰돈을 쥐어 준 와인 중 하나가 람브루스코(Lambrusco)였던 것. 어찌 보면 마리아니 형제의 이탈리안 드림을 위한 자본력에 이 달콤하고 붉은 세미 스파클링 와인이 크게 일조했다고 할 수 있다. 반피 와이너리를 세운 후 마리아니 형제는 뉴욕 와인상 시절의 향수를 연료 삼아 브라케토 품종의 세계사를 바꾼다. 45년 전만 해도 드라이 스틸 와인으로 생산되던 브라케토 품종을 람브루스코처럼 달콤하고 기포가 있으며 영롱한 붉은 빛을 내는 와인으로 만든 것이다. 그리고 한 수 더, 반피의 브라케토 다퀴는 훨씬 나은 품질과 프리미엄 이미지의 레이블로 세상에 나왔다. 카이사르가 클레오파트라에게 브라케토 와인을 선물하여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이야기처럼 이 와인은 곧바로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이번 런치에 나온 로사 리갈은 프리미엄 브라케토 와인에 속하는데, 2000년 처음 출시된 후 브라케토 다퀴 영역에서 전 세계 일인자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 명성을 뽐내듯 디저트와 함께한 로사 리갈은 ‘역시 식사의 마지막에는 달콤한 와인’이 필요하다는 것을 상기시키며 즐거움을 주었다.
알타 랑가로 시작하여 가비, 슈퍼 투스칸과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브라케토 다퀴로 이어진 반피 와인과의 런치를 통해, 반피가 길지 않은 역사에도 오늘날의 브랜드 인지도를 얻은 비결을 알 수 있었다. 어느 TPO에서든 딱 맞는 와인을 내놓을 수 있는 풍성한 포트폴리오와 무엇을 선택하든 좋은 품질을 보여주는 와인들. 반피 브랜드 하나면 다 되는 이 다재다능함을 반피 매직이라 이름 붙이겠다.
문의 롯데칠성
▶인스타그램 @lottewine
글·사진 신윤정 자료 제공 롯데칠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