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테이스팅 20주년: 최고의 와인을 위한 여정 

Written by뽀노애미

지난 5월 23일 서울 조선 팰리스 호텔에서 '비녜도스 파밀리아 채드윅(Viñedos Familia Chadwick)'이 그들의 역사를 담은 네 와인을 테이스팅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베를린의 심판'으로 불리며, '파리의 심판'에 이어 로버트 파커가 말한 두 번째의 와인 민주주의를 실현한 '2004 베를린 테이스팅'을 기념한 이번 행사에서는 에두아르도 채드윅(Eduardo Chadwick) 회장의 20년간의 도전과 혁신의 결과와 베를린 테이스팅 당시의 생생한 현장의 분위기, 비하인드 스토리도 들을 수 있었다.

베를린 테이스팅 20주년 기념 이벤트를 위해 방한한 에두아르도 채드윅(Eduardo Chadwick) 회장

2004 베를린 테이스팅: 베를린의 심판

2004년 베를린 테이스팅은 에두아르도 채드윅의 인생을 건 모험이었다. 그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뿌리 깊이 박혀있는 칠레 와인에 대한 '저렴하지만 마실만한 와인', 한마디로 '가성비 와인'이라는 편견을 깨뜨리고 칠레의 파인 와인(Fine Wine)을 세계에 이해시킬 방법을 1976년 파리의 심판에서 찾은 것이다.

베를린 테이스팅은 행사의 공정성을 위해 파리의 심판을 준비했던 고(故) 스티븐 스퍼리어(Steven Spurrier)와 가장 유명한 독일어권 평론가 중 하나인 르네 가브리엘이(René Gabriel) 주도했다. 와인 저널리스트, 작가, 바이어 등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와인 업계 인사 36인이, 2004년 1월 23일에 당시 칠레 와인 산업에서 새로운 마켓으로 부상한 독일의 수도 베를린으로 초청되었다. 이들은 최상의 컨디션으로 준비된 2000~2001년 빈티지의 프랑스 보르도 그랑 크뤼 클라쎄 1등급(Grand Crus Classé 1st Growths)과 이탈리아의 슈퍼 투스칸, 그리고 칠레의 와인인 돈 막시미아노 파운더스 리저브(Don Maximiano Founders Reserva), 세냐(Seña), 비녜도 채드윅(Viñedo Chadwick)을 포함한 16가지 와인을 블라인드로 테이스팅했다.

2004 베를린 테이스팅의 결과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결과가 나왔다. 보르도의 그랑 크뤼 클라쎄 1등급 와인과 이탈리아의 슈퍼 투스칸을 비롯한 16개의 와인 중, 비녜도 채드윅 2000 빈티지가 1위, 세냐 2001 빈티지가 2위에 랭크되었기 때문이다. 3위는 샤토 라피트 로칠드 2000 빈티지, 다시 세냐 2000 빈티지가 샤토 마고 2001 빈티지와 함께 공동 4위로 발표되었다. 무려 TOP5 중에 칠레의 고급 와인이 1, 2위를 차지한 것과 동시에 절반을 넘어서 월드 클래스의 와인임을 증명한 것이다.

이후, 에두아르도 채드윅 회장은 2004년의 베를린 테이스팅을 기점으로 삼아 2013년까지 세계의 가장 중요한 수도에서 21개의 유사한 시음회를 열었고, 그의 와인은 놀라울 정도로 일관되게 상위에 랭크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시음회와 기타 시음회는 총 15개국 이상에서 진행되었으며, 1,400명 이상의 와인 전문가들이 참여했습니다. 칠레 와인은 총 22개의 행사중에 20개의 행사에서 상위 3위안에 들었고, 전체 선호도에서는 90%라는 놀라운 성공률을 달성했습니다. 10년의 기간에 걸쳐, 다양한 빈티지의 와인들에서 이러한 일관성을 보여줬다는 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 고(故) 스티븐 스퍼리어, 영국의 와인 전문가 (1941~2021)

지난 5월 23일 한국에서 열린 베를린 테이스팅 20주년 기념 이벤트
행사진 진행한 에두아르도 채드윅 회장(가운데), 와인인 최민아 대표(좌), 워커힐호텔앤리조트의 유영진 소믈리에(우)

2024년, 테이스팅으로 함께한 비녜도스 파밀리아 채드윅의 기념비적 순간

마스터 클래스는 에두아르도 채드윅 회장, 와인인(WINEIN.) 최민아 대표, 워커힐호텔앤리조트의 유영진 소믈리에가 이끄는 가운데 긴장감 없는 분위기에서 자유롭고 유쾌하게 진행되었다. 기존의 긴장감이 가득한 블라인드 테이스팅이 아닌 베를린 테이스팅 20주년을 축하하고 즐기는 분위기였다. 이날은 베를린 와인 테이스팅 투어의 우승 와인인 돈 막시미아노, 카이(KAI), 세냐, 비녜도 채드윅의 기념비적인 역사적 빈티지를 버티컬로 시음하며 그의 뛰어난 숙성 잠재력과 품질의 일관성 그리고 칠레 테루아의 잠재력을 증명하는 시간이었다.

베를린 테이스팅 20주년 기념 이벤트에서 선보인 와인들

베를린 테이스팅 20주년 기념 이벤트 시음 와인

  • Don Maximiano 1984
  • Don Maximiano 2008
  • Don Maximiano 2011
  • Don Maximiano 2021
  • Kai 2010
  • Kai 2021
  • Seña 1998
  • Seña 2008
  • Seña 2009
  • Seña 2015 (first 100-point wine in the Aconcagua Valley (JS))
  • Seña 2021 (3rd 100-point vintage for Seña by JS and highest-rated vintage by Wine Advocate (98+))
  • Viñedo Chadwick 2000 (second ever vintage and winner of the original Berlin Tasting in 2004)
  • Viñedo Chadwick 2014 (Chile's first 100-point wine (JS))
  • Viñedo Chadwick 2021 (Five 100-point ratings to date - Wine Advocate (Chile's first), JS, Tim Atkin MW, Falstaff (Chile's first), La Cav)
  • Las Pizarras Chardonnay 2015

Don Maximiano Founder's Reserve: 비냐 에라주리즈의 살아있는 역사

마스터 클래스에서 첫 번째로 선보인 와인은 비냐 에라주리즈(Viña Errazuriz)의 창립자 돈 막시미아노(1832~2890)를 기리기 위한 와인인 돈 막시미아노 파운더스 리저브였다. 그는 칠레가 고품질 와인을 만들기 위한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고 확신했고 그 시절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아콩카과 밸리(Aconcagua Valley)를 선택했다. 1870년, 돈 막시미아노는 해발 6,966m로 서반구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가 있는 아콩카과산(Mt. Aconcagua) 아래의 계곡에 첫 번째 포도밭을 조성하며 메마르기만 한 땅이라 여기던 아콩카과 밸리를 세계적 수준의 포도원으로 변화시켰다. 3년 후, 그의 최초의 빈티지를 이곳에서 생산하며 에라주리즈의 '150년 6세대'로 이어지는 역사의 문을 열었다. 현재 돈 막시미아노의 포도밭은 일련의 정밀한 여덟 개의 블록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중 단 3개의 밭(MaxⅠ, MaxⅡ, MaxⅤ)에서 나온 포도만이 돈 막시미아노 파운더스 리저브가 된다. 창립자와 같은 이름을 가진 이 와인은 '비냐 에라주리즈의 유산, 테루아의 아름다움 및 최상의 와인'을 생산하려는 열망이 반영되었다.

비냐 에라주리즈(Viña Errázuriz)의 창립자인 돈 막시미아노 에라주리즈(Don Maximiano Errázuriz)

시음한 돈 막시미아노 파운더스 리저브의 1984, 2008, 2011, 2021 빈티지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1984년 빈티지였다. 40년이 지난 와인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좋은 구조를 유지하며 미세한 타닌과 함께 신선하고 긴 여운을 주어, 에두아르도 회장이 그토록 세계에 알리고자 하는 칠레 와인의 숙성 잠재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돈 막시미아노 파운더스 리저브 1984 빈티지

KAI: 칠레의 정체성

와인 애호가라면, 칠레의 대표적인 품종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부분은 까르메네르(Carmenere)를 생각할 것이다. 까르메네르는 19세기 필록세라 이후 원산지인 프랑스 보르도에서 사실상 소멸되어, 그 근거지를 '포도 재배의 낙원(Viticultural Paradise)'이라고 하는 칠레로 옮긴 품종이다. 까르메네르는 춥고, 습한 기후에 약하며 카베르네 소비뇽보다 늦게 익는 품종이다. 때문에 칠레의 덥고 건조한 기후는 까르메네르에게는 아주 유리한 조건이었다. 2000년대 초, 비냐 에라주리즈는 아콩카과 밸리에서 재배된 까르메네르 특유의 고급 와인을 만들어, 이 레드 품종이 여기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싶었다. 그렇게 카이가 2005년에 탄생했다. 카이는 칠레 원주민 마푸체족의 언어로 '식물'을 의미한다고 한다. '칠레 까르메네르의 정체성'을 담은 카이는 2010년 뉴욕에서 열린 베를린 테이스팅 투어에서 미국의 주요 와인 전문가들에게 1등으로 선정되면서 칠레의 까르메네르 역시 세계인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품종임을 확인받았다.

카이 2010 빈티지

이날은 카이의 2010 빈티지와 2021 빈티지가 서빙되었는데, 4종의 시음 와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다. 카이는 클래식한 까르메네르의 품종을 충실하게 표현한 와인으로 신선한 레드와 블랙 과일, 허브 그리고 가장 대표적인 특징인 레드 페퍼의 매콤한 향이 강렬하게 느껴졌다.

칠레 최초의 국제 합작 와인 세냐를 만들 당시의 에두아르도 채드윅 회장과 로버트 몬다비

Seña: 로버트 몬다비와 함께한 열망, 두 거장의 열정

로버트 몬다비와 에두아르도 채드윅 회장의 만남은 우연이었을까, 필연이었을까? 미국의 위대한 생산자로 불리는 로버트 몬다비(Robert Mondavi)가 1991년 빠르게 개발되는 와인 산지를 탐험하기 위해 칠레를 찾았다. 여행 중이었던 몬다비 가족과 인연이 닿은 에두아르도 채드윅 회장은 그들의 운전기사가 되어주겠다고 제안했다. 이들은 와이너리와 포도원을 함께 돌아보면서 독특하고 특별한 와인을 만드는 데 대한 공통된 열정을 발견하게 된다. 드디어, 1995년 로버트 몬다비와 에두아르도 채드윅은 칠레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롭고 세계적인 와인을 만들기 위해 칠레 역사상 최초로 국제 투자 계약에 서명하며 그들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로버트 몬다비와 에두아르도 채드윅이 최상의 포도밭을 찾아다닌 4년간의 여정의 마침표는 '태평양에서 40km 떨어진 아콩카과 밸리에 위치한 오코아(Ocoa)'였다. 1998년에는 최적의 포도 재배 조건을 갖춘 42ha 규모의 포도밭에, 여섯 가지의 보르도 주요 품종을 심고 두 사람의 열망을 담은 '칠레의 영혼과 개성을 지닌 독특한 보르도 스타일'의 와인인 '세냐'를 완성했다. 현재 세냐는 2015년, 2018년, 2021년 빈티지에서 제임스 서클링으로부터 100점 만점이라는 기록을 달성하며 명실상부 칠레의 최고의 와인으로 인정받고 있다.

역사적인 1998 빈티지부터 2009, 2015, 2021까지 4가지 세냐를 버티컬로 시음했다. 2021 빈티지는 가장 영빈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바로 열어서 마셔도 될 만큼 직관적으로 미각을 통해 완벽한 와인의 구조감을 느낄 수 있었다. 향후 20년 후가 더욱 기다려지는 와인이었다.

Viñedo Chadwick: 테루아에 던진 승부수

비녜도 채드윅 하면, 역시나 와인 레이블에도 그려져 있는 폴로가 빠질 수 없다. 현 채드윅의 회장인 에두아르도 채드윅의 아버지이며 비냐 에라주리즈의 3대 오너이기도 한, 돈 알폰소 채드윅(Don Alfonso Chadwick)은 칠레의 역사적인 폴로 챔피언이다. 그는 마이포의 푸엔테 알토(Puente Alto)의 비냐 산 호세 데 토코랄(Viña San José de Tocornal)의 토지를 매입하고 가족과 함께 살 집과 그가 사랑하는 폴로 경기장을 건설했다. 아버지에 이어 가업을 이어받게 된 에두아르도는 보르도, 포르투갈, 캘리포니아 등 여러 유명 와인 산지를 돌아다니며 견문을 넓히고, 푸엔테 알토의 잠재력에 대한 확신을 가졌다. 그리고 그는 아버지의 폴로 경기장의 특별한 테루아에 승부수를 띄었다. 최고의 와인에 대한 에두아르도의 열정은 1992년 아버지의 15헥타르의 폴로 경기장을 칠레 최고의 빈야드로 만들었다. 마침내 1999년, 비녜도 채드윅의 첫 번째 빈티지가 세상에 선보였고 그는 이를 돈 알폰소 채드윅에 헌사하며 최고의 와인을 만들고자 했던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켰다. 또 그다음 빈티지인 채드윅 2000 빈티지는 베를린 테이스팅에서 당당히 1위의 자리에 올랐다.

에두아르도 채드윅 회장의 라이브러리에 있는 1위 와인인 비녜도 채드윅 2000 빈티지를 비롯한, 칠레 최초로 제임스 서클링에게 100점을 받은 2014 빈티지 그리고 2023년에 로버트 파커의 와인 애드보케이트(Wine Advocate)와 팀 앳킨(Tim Atkin)의 칠레 리포트(Chile Report)에서 완벽한 점수를 받은 2021 빈티지까지, 3개의 빈티지를 시음했다. 채드윅의 시그니처 빈티지 3가지 모두 칠레 와인의 숙성 가능성과 품질의 일관성을 훌륭하게 보여주었다.

다시 시작되는 20년을 향하여

에두아르도 채드윅 회장의 칠레 와인에 대한 사랑은 실로 대단했다. 그는 지난 20년간 계속된 도전과 혁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칠레 와인의 우수성을 알리고 증명하기 위해 전 세계를 여행하고 있다. 이미 채드윅 가문의 선도적인 브랜드와 레이블이 명품 파인 와인 역사에서 당당히 자리를 차지했지만, 그에 안주하지 않고 천혜의 테루아로 빚어낸 칠레 와인의 위상을 높이려 하는 그의 의도가 엿보였다. 에두아르도 채드윅 회장의 그치지 않는 노력으로 명품 파인 와인 시장에서는 후발주자인 칠레 와인에 대한 전 세계인의 인식이 바뀌고 있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이제는 이번 20주년 기념 월드 투어에 새롭게 합류한 에라주리즈의 '뉴 제네레이션'인 그의 네 딸과 함께할 새로운 20년 후가 기대된다.

베를린 테이스팅 20주년 기념 이벤트에서 그의 딸인 알레한드라 채드윅(Alejandra Chadwick)을 소개하는 에두아르도 채드윅 회장

베를린 테이스팅 비하인드

에두아르도 채드윅 회장에게 2004년 베를린 테이스팅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물어보았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2004년 베를린 테이스팅은 원래 마스터 클래스와 시음회로만 진행될 예정었다고 한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유럽 와인 전문가들은 칠레 와인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그날 진행될 마스터 클래스에서 칠레의 테루아를 보르도와 슈퍼 투스칸에 비교하여 소개하고 시음회에서는 그 당시 벤치마킹 상대였던 보르도 와인 1등급과 슈퍼 투스칸 와인을 칠레의 파인 와인과 비교 테이스팅 하는 시간을 갖고자 했다. 이는 단순히 “칠레 와인이 국제적으로도 인정을 받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에서 시작된 이벤트였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다. 우연히 에두아르도 채드윅 회장이 파리의 심판을 이끈 스티븐 스퍼리어와 같은 비행기로 베를린에 도착했고, 같은 숙소로 향하는 스티븐 스퍼리어에게 그는 함께 택시로 이동하길 제안했다. 택시에 탑승 후 앞자리에 앉아있던 에두아르도 회장이 뒷자리에 앉아있던 스티븐 스퍼리어와 그의 부인에게 “그런데 테이스팅은 어떻게 진행하실 건가요?”하고 물었다. 단순히 시음회에 참석자로만 알고 있던 스티븐 스퍼리어는 “제가 진행해야 하나요?”라고 물었지만, 아주 흔쾌히 그 자리에서 그의 요청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시음회는 순식간에 블라인드 테이스팅으로 바뀌었고 비녜도 채드윅과 세냐가 1, 2위를 차지하면서 2004년 베를린 테이스팅은 스티븐 스퍼리어에 의해 '베를린의 심판'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갖게 되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말이 현실로 다가온 일화였다.

뽀노애미 사진 제공 비녜도스 파밀리아 채드윅 와이너리 촬영 장원준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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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공개일 : 2024년 06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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