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녜도 채드윅 2021 빈티지: 누군가를 기리는 마음

Written by와인쟁이 부부

‘누군가를 기리는 마음’. 우리 부부는 이 문장을 참으로 좋아한다. 누군가를 향한 애틋함과 존경심이 오롯이 담겨 있는 이 마음은 표현하는 방식도 다양하다. 기념탑을 세우고, 동상을 만드는가 하면, 화폐에 새겨 넣기도 한다. 그리고 와인 업계에서는 기리는 대상의 사진이나 그림 혹은 이름을 정성 들여 와인 레이블에 새기고, 혼을 담아 만든 와인을 병에 담는 것으로 존경심을 표현한다. 그런 와인들은 이미 태부터 다르다. 이제 소개하는 비녜도 채드윅(Viñedo Chadwick)도 태생부터 남다른 와인이다.

탄생부터 빛을 발하며 전 세계 프리미엄 와인 시장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비녜도 채드윅이 한국 시장에 2021년 빈티지로 새로이 출사표를 던졌다. 이 걸출한 와인의 2021년 빈티지의 특징을 이야기하기 전에 ‘채드윅’ 가문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보자.

가족, 와인, 폴로 그리고 알폰소 채드윅

채드윅 가문의 전신은 영국이다. 그곳에서 광산기술자로 일했던 토마스 채드윅이 새로운 가능성과 기회를 찾아 칠레로 넘어온 때가 지금으로부터 약 200년 전인 1820년. 이후 오늘의 주인공이자 오마주의 대상이 된 알폰소 채드윅은 선대의 유지를 받들어 가문의 이름을 칠레는 물론, 세계에 알린 기념비적인 인물이다. 1942년 이미 성공한 기업가이자 와인 중개업자로 이름을 알리던 그는 산티아고 남쪽 외곽에 있던 마이포의 300헥타르에 달하는 거대한 사유지를 구입했다. 사유지의 이름은 ‘San José de Tocornal’. 구체적으로 이 사유지는 현재 칠레에서 최고의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이 탄생하는 마이포 알토 밸리의 노른자위이자 해발 670m에 자리한 푸엔테 알토Puente Alto에 위치한다.

알폰소의 꿈을 이뤄줄 사유지에서 그가 매진했던 건 세 가지였다. 가족, 와인, 폴로. 알폰소 채드윅은 그가 온 평생 헌신했던 이 세 가지를 서로 연결하기 위해 사유지에 가족과 함께 할 ‘집’을 짓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포도밭’을 조성했으며, 그가 와인만큼이나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즐겼던 ‘폴로 경기장’도 마련한다. 알폰소 채드윅은 어린 시절부터 말을 좋아했고, 이른바 ‘왕의 스포츠’로 불리는 폴로에 남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어서 수많은 폴로 경기에서 우승한 경력이 있다. 심지어 칠레 국가대표팀의 주장을 꿰차는가 하면, 영국의 에딘버러 공작인 필립 왕자와 경기를 뛰기도 했다.

폴로 선수 당시 돈 알폰소 채드윅과 수상 트로피들(좌-중앙), 에딘버러 공작 필립 왕자와 친선 경기를 하는 돈 알폰소 채드윅(우)

와인은 또 어떠한가? 알폰소는 그의 뛰어난 폴로 실력만큼이나 재능 있는 포도 재배자이자, 와인메이커였다. 그는 푸엔테 알토의 포도밭이 카베르네 소비뇽의 안식처가 되어줄 것을 알고 있었다. 이윽고 카베르네 소비뇽으로 재구성한 포도밭에서 만든 ‘Fond de Cave’ 와인은 칠레 고급 와인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으며, 당시 칠레에서 가장 비싼 레드 와인이었다고 전해진다.

인생에 명암이 있듯, 알폰소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1967년 칠레에 휘몰아친 농업 개혁으로 그의 땅 일부를 다른 회사에 매각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던 것. 하지만 그는 가족의 추억이 서린 집과 수백 년 된 나무로 보호되던 공원, 그리고 그가 사랑했던 25헥타르 넓이의 폴로 경기장은 끝내 지켜냈다. 격동의 세월을 보낸 알폰소는 자신의 아들 에두아르도 채드윅에게 전권을 일임하고 은퇴한다. 당시 에두아르도의 나이는 24세에 불과했지만, 그의 아버지가 그랬듯, 가족에 대한 사랑과 와인에 대한 열정으로 쇠약해진 회사를 소생시키고 변화시키기 위해 대담한 노력을 펼친다. 와이너리의 현대화를 꾀하는가 하면, 아버지가 더 이상 폴로 경기를 즐길 수 없을 때가 되자, 폴로 경기장을 포도밭으로 바꾸기로 한 것. 에두아르도는 폴로 경기장 아래에 숨쉬고 있는 뛰어난 와인의 잠재력을 믿었고, 이곳에서 만든 와인으로 아버지에 대한 마음을 표현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의 믿음과 계획은 보기 좋게 성공했다. 바로 여기서 탄생한 와인인 ‘비녜도 채드윅’이 칠레는 물론 세계 명품 와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데 궁극적으로 성공했기 때문이다.

폴로 경기장에 조성된 비녜도 채드윅 포도밭

그저 명품, 비녜도 채드윅

에두아르도는 폴로 경기장의 테루아가 유니크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마이포 강 북쪽 기슭 해발 650m에 위치한 이 땅은 지중해에 가까운 온화한 기후, 고대 충적층 테라스와 자갈로 이루어진 토양, 여기에 안데스 산맥에서 솔솔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더해진, 그야말로 카베르네 소비뇽의 완벽한 안식처다. 실제로 비녜도 채드윅이 탄생하는 포도밭의 테루아는 세계 최고의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이 탄생하는 프랑스 보르도 메독이나, 이탈리아 토스카나 볼게리,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 밸리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비냐 파밀리아 채드윅의 에두아르도 채드윅 회장

아버지가 카베르네 소비뇽으로 칠레 최고의 와인을 만들었듯, 에두아르도는 아버지가 그토록 사랑하던 15.5헥타르의 땅에 알폰소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인 1992년 카베르네 소비뇽을 심었다. 그로부터 7년 후 아버지를 기리는 헌정 와인인 비녜도 채드윅이 탄생했다. 많은 이들이 알폰소를 칠레 와인 산업의 현대화를 이끈 위대한 비전을 가진 사람이자 선구자로 칭송하지만, 에두아르도는 그런 아버지의 위상을 뛰어넘은 인물이다. 그가 비녜도 채드윅으로 이뤄낸 업적들은 실로 대단하다. 그중 여전히 회자되는 사건이 있는데, 바로 베를린 테이스팅이다.

1976년 와인 역사를 뒤집어 놓은 파리의 심판을 재현해 자신이 창조한 비녜도 채드윅의 가능성을 시험해보고자 했던 에두아르도는 2004년 베를린 리츠 칼튼 호텔에서 2000년산 비녜도 채드윅을 당대 최고의 와인들과 블라인드 테이스팅 하는 행사를 개최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보르도 1등급 와인이나 이탈리아의 슈퍼 투스칸 같은 기라성 같은 와인들을 죄다 꺾고, 비녜도 채드윅 2000 빈티지가 최고의 와인으로 선정됐다. 놀라운 사실은 비녜도 채드윅이 1999년 처음 시장에 공개된 와인이었다는 것. 즉, 세상에 나온 지 겨우 2년밖에 안 된 와인이 세계 최고 와인의 반열에 올랐다는 의미다. 이 2000 빈티지는 저명한 와인 매거진 <Decanter>에서 페트뤼스, 로마네 콩티, 샤토 라피트 로칠드, 샤토 마고 등과 함께 <Wine Legends>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2004년에 개최된 베를린 테이스팅

여기서 끝이 아니다. 현 시대 가장 위대한 와인 평론가 중 하나인 제임스 서클링은 비녜도 채드윅 2014, 2017 빈티지에 100점 만점을 주었다. 이는 칠레 최초의 만점 획득이다. 제임스 서클링은 2014년 빈티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한 바 있다.

“Perhaps a sign of Chile truly coming of age is the 100-point rating in this report of the pure Cabernet Sauvignon 2014 Viñedo Chadwick.”

의역하자면, “순수한 카베르네 소비뇽을 담은 비녜도 채드윅 2014 빈티지의 100점 획득은 칠레 와인 산업이 진정으로 성숙한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신호탄이라 할 수 있다”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이번에 출시된 2021 빈티지는 로버트 파커와 팀 앳킨으로부터 모두 100점을 받은, 이른바 ‘Double 100 Points’ 와인이다. 결국 이 와인을 탄생시킨 장본인 에두아르도 채드윅은 아버지의 아성을 뛰어넘어 현 시대 칠레 와인 산업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 중 하나로 우뚝 섰다. 와인 업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올해의 인물에 2018년 선정된 것이 이를 여실히 반증한다.

그 자체로 장르, 비녜도 채드윅 2021 빈티지

2021년은 비녜도 채드윅에게 뛰어난 해였다. 한 마디로 표현해서 ‘온화하며 선선했던 기후’라고 말할 수 있는데, 덕분에 포도들은 길고 안정적인 시즌을 관통하며 좋은 당과 산 그리고 타닌과 색을 겸비할 수 있었다. 포도 수확은 3월 30일(칠레는 남반구다)에 시작됐으며, 비녜도 채드윅을 상징하는 카베르네 소비뇽은 더 늦은 4월 초부터 4월 12일까지 진행해, 완숙한 상태의 포도를 손에 넣었다. 2021 빈티지는 카베르네 소비뇽 97%에 3%의 프티 베르도가 블렌딩 되었으며, 발효를 마친 와인은 22개월 동안 80%는 새 프렌치 오크통에서, 나머지 20%는 푸드르(Foudres : 큰 사이즈의 프렌치 오크통)에서 숙성을 거쳤다.

비녜도 채드윅을 만든 칠레 최고의 와인메이커 프란시스코 배티그가 2023년 2월에 남긴 2021 빈티지의 테이스팅 노트는 다음과 같다.

“This deep purple coloured Viñedo Chadwick 2021 is highly complex on the nose, with intense notes of violets, raspberries and cassis, along with hints of cocoa, coffee beans and nutmeg. On the palate is long and deep, showcasing fresh red fruit, dark chocolate and some notes of sweet spice. The mouth is complex and layered, revealing fine-grained, chalky tannins, juicy acidity, elegance and wonderful persistence. A superb example from this vintage.”

(깊은 자주색을 띠며 향에서 제비꽃, 라즈베리, 카시스와 같은 과실 향과 육두구, 커피콩, 코코아의 힌트와 같은 복합미를 느낄 수 있다. 입에서는 신선한 붉은 과일과 다크 초콜릿, 스위트 스파이시 노트가 길고 깊게 느껴지며, 복합적이고 다층적이며 잘 정제되어 촘촘하게 느껴지는 타닌과 과즙미가 풍부한 산미, 우아함, 놀라운 여운을 경험할 수 있다. 단연 2021년 빈티지의 훌륭한 예이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명품 와인 비녜도 채드윅은 장기 숙성에 적합한 와인이다. 하지만, 갓 출시한 2021 빈티지를 손에 넣은 행운의 주인공이 된 우리 부부는 단 1년도 기다리기 힘들었고, 평소 제주도에서 와인을 즐기는 지인들과 함께 경건한 마음으로 귀중한 테이스팅 기회를 가졌다. 우리 부부의 테이스팅 노트와 그때 함께 했던 몇몇 사람들의 시음평을 남긴다.

와인쟁이부부

와인을 잔에 따랐을 때, 자주색이 감도는 짙은 루비색을 보고 와인이 가진 힘과 잠재력을 상상해볼 수 있었다. 스월링 하지 않고 향을 맡았을 때 흑연 향이 진하게 덮여 있었다. 스월링 후에는 감초를 비롯한 시원하면서 달콤한 향신료 향이 다채롭게 올라왔다. 블랙베리, 제비꽃 향이 명품 와인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준다.

입안에서는 파우더 같은 고운 타닌이 전체를 부드럽게 자극하고, 산미도 충분했기에, 시간을 들여 변화를 즐기고 싶었다. 와인을 마신 후 입 안과 코 끝에 남는 잔향의 여운이 굉장히 길었는데, 와인의 여운이 가시기 전까지 30초 이상의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다. 잔에 따라 놓고 시간이 지날 수록 레드 베리의 향과 우아한 꽃 향이 매력적으로 올라와 와인과 음식을 함께하는 내내 옆에 두고 즐길 수 있었다.

실로 훌륭한 와인이다. 칠레 고급 와인이라는 단순한 타이틀을 벗어 던지고, 온전히 ‘비녜도 채드윅’이라는 장르로 표현되는 명품 와인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차승준 / 대학생 / 20대 남

처음에는 향신료, 허브향이 느껴졌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고급 에테르향, 바이올렛, 초콜릿, 고무향이 서서히 나타났다. 마지막으로는 가죽향이 느껴지지만 거칠지 않고 전체적으로 실키한 느낌이었다. 특히 균형 잡힌 타닌이 느껴졌으며, 풍부한 아로마가 목 넘김 후에도 느껴져 긴 피니쉬로 완성된다. 카베르네 소비뇽 비율이 높아서 블랙 커런트 노트를 예상했고, 첫 모금에는 레드 베리류에서 목 넘김 이후에는 블랙 커런트와 숲 향이 느껴졌다. 첫 향 그리고 마지막 한모금까지 섬세하게 설계한 비녜도 채드윅의 기술력에 감탄했다.

차현종 / 정형외과 의사 / 50대 남

처음 마셨을 때는 너무 섬세해서 부드럽다는 인상이 강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향이 열리더니 아주 귀한 향수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신흥숙 / 와인 애호가 / 50대 여

첫 느낌부터 무척 향기롭다는 느낌으로 확 다가왔고, 균형감과 긴 피니쉬가 인상적이었다. 어디 하나 못난 구석이 없는 완벽하게 조각된 이상적인 그리스 조각 같은 와인이다.

강상모 / 미술교사 / 30대 남

첫 인상은 진하다고 느꼈다. 무겁고 진한 향과 맛이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나자 우유 같은 밀키한 향이 잔을 가득 채우며 올라온다. 달콤하기만 한 향기로움이 아닌, 다채로운 향들이 부드럽게 올라와 좋았다.

·사진 와인쟁이부부 사진·자료 제공 비냐 파밀리아 채드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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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공개일 : 2023년 09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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