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의 롯데호텔월드 라운지 바가 하룻밤 ‘페네데스’가 됐다. 국순당이 수입하는 스페인 프리미엄 카바 하우스 후베 이 깜프스(Juvé & Camps)가 방한해 와인 디너를 열고, 브랜드의 철학과 대표 라인업을 음식과 함께 풀어냈다. 결론부터 말하면, 카바는 더 이상 ‘가성비 스파클링’이 아니다. 단순한 축배용 스파클링을 넘어 긴 숙성, 토착 품종의 뼈대, 브뤼 나뚜르(Brut Nature)의 정제된 질감이 미식의 테이블을 지탱하는 ‘가스트로노믹 와인’임을 입증한 자리였다.

가족에서 세계로 – ‘브뤼 나뚜르’의 뿌리
후베 가문은 1796년부터 포도를 재배해 왔고, 1921년 처음 스파클링을 병입했다. 현재 4세대가 이끄는 가족 경영 하우스로, 포도 재배부터 병입까지 전 과정을 자체 시설에서 수행하는 엘라보라도 인테그랄(Elaborador Integral) 인증을 갖춘 소수 생산자다.

특히 이들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계기는 ‘가족의 취향’에서 시작됐다. 1970년대 당시 스페인에서 소비되던 대부분의 카바는 리터당 50g 이상의 당분을 첨가한 달콤한 스타일이었다. 그러나 후베 가족은 단맛이 없는 와인을 원했고, 가족이 즐기기 위해 당을 전혀 넣지 않은 브뤼 나뚜르를 만들었다. 우연히 거래상들에게 선보인 이 와인은 큰 호평을 받으며 1976년 정식 출시로 이어졌다. 그 결과 태생부터 ‘가족용 와인’이었던 레세르바 데 라 파밀리아(Reserva de la Familia)는 전 세계 미식가들의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게 된다. “좋은 베이스 와인이라면 당을 더할 이유가 없다”는 철학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긴 병 숙성에서 오는 브리오슈·토스트 뉘앙스와 섬세한 무스, 깨끗한 피니쉬—이 조합이 음식과의 호흡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린다. 그래서 후베 이 깜프스는 스페인 내 다수의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에서 ‘가스트로노믹 와인’으로 채택된다.

유기농 전환과 기후 변화 대응 – 포도밭에서 시작되는 순수함
후베 이 깜프스는 2015년 모든 포도밭을 유기농 농업(Organic Farming)으로 전환했다. 캐나다·북유럽 등 일부 국가에서 유기농 인증 없이는 수출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시장적 이유도 있었지만, 핵심은 철학이었다. 와이너리는 “카바의 순수함은 포도밭에서 시작된다”는 믿음을 실천하기 위해 화학적 개입을 최소화했다.
또한 기후 변화로 여름이 점점 더 뜨겁고 건조해지면서, 포도밭 관리 기술을 정교하게 발전시켰다. 직사광선이 과도하게 닿지 않도록 잎을 솎아 내어 햇빛을 조절하고, 송이 주변의 환기를 확보해 습기와 곰팡이를 예방한다. 한여름 강렬한 햇볕에는 잎과 덮개로 그늘을 형성해 과실이 균일하게 익도록 돕는다. 또한 잡초와 풀을 그대로 두어 수분 증발을 줄이고 토양의 미세 기후를 조절하며, 필요할 경우 수분을 방출해 포도의 균일한 성숙을 유도한다. 이러한 섬세한 관리 덕분에 후베 이 깜프스는 매년 도사주(당분 첨가)에 의존하지 않아도 충분히 조화로운 브뤼 나뚜르 스타일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
‘가스트로노믹 카바’의 증명

레세르바 데 라 파밀리아 2020 — 식탁을 여는 정확한 한 잔
후베 이 깜프스의 상징과도 같은 ‘레세르바 데 라 파밀리아’는 원래 가족이 즐기기 위해 만들어졌던 와인이다. 샤렐로(Xarel·lo) 55%를 중심으로 마카베오(Macabeo) 25%와 빠레야다(Parellada) 10%가 블렌딩되어, 최소 36개월의 병 숙성을 거친다. 잔을 기울이면 갓 구운 브리오슈와 토스트 향이 먼저 퍼지고, 뒤이어 배·사과 같은 핵과일의 신선한 뉘앙스가 어우러진다. 입안에서는 미세하면서도 크리미한 버블이 긴장감 있게 터지며, 끝에는 긴 여운과 함께 깨끗하고 드라이한 피니쉬를 남긴다. 브뤼 나뚜르 스타일의 순수함이 돋보이며, 하몽이나 신선한 해산물 요리, 한국의 해물파전과도 탁월한 궁합을 이룬다.

레세르바 데 라 파밀리아 로제 2021 — 골든 로제, 카바의 새로운 얼굴
후베 이 깜프스가 창립 100주년을 기념해 내놓은 첫 로제 카바가 바로 레세르바 데 라 파밀리아 로제 2021이다. 와이너리의 상징과도 같은 ‘레세르바 데 라 파밀리아’ 라인을 확장한 의미 있는 작품으로, 토착 품종 샤렐로 65%, 피노 누아 30%, 가르나차 5%가 블렌딩된다. 최소 30개월 이상 숙성 후 출시되며, 잔에 따르면 은은하게 빛나는 연한 골든 핑크 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와인은 흔히 ‘골든 로제(Golden Rosé)’라 불린다. 일반적인 로제보다 색상이 훨씬 더 옅고 금빛을 띠어, 마치 골드와 핑크 사이의 세련된 뉘앙스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는 새로 부임한 테크니컬 매니저가 추구한 스타일과 맞닿아 있다. “로제의 존재감을 과도하게 드러내기보다는, 섬세하고 구조적인 로제를 만들고 싶었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붉은 과실향은 분명하지만 색은 은은하고, 한 모금에 ‘힌트만 주는 듯한’ 절제된 매력이 깃들어 있다.
향에서는 잘 익은 딸기·라즈베리·체리 같은 붉은 과실이 또렷하게 드러나고, 뒤이어 장미꽃잎과 신선한 허브, 은근한 미네랄 뉘앙스가 더해진다. 입안에서는 산뜻한 산미가 전체를 잡아주며, 로제답게 부드러운 구조감과 우아한 질감이 돋보인다.
페어링에서는 탁월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기름기 있는 연어 타르타르나 연어 스시, 참치 타타키 같은 해산물 요리와 특히 잘 맞으며, 올리브 오일을 사용한 파스타, 아시아식 허브와 향신료 요리에도 흔들리지 않고 구조감을 유지한다.
출시 배경에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전 세계적으로 로제 스파클링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소비자들의 선호도가 크게 늘었다. 실제로 스페인에서도 해안가 지역에서는 로제 소비가 활발하지만, 내륙에서는 아직 낯선 스타일로 여겨진다. 후베 이 깜프스는 이 ‘특정 지역적 소비 패턴’을 글로벌 시장의 흐름과 연결해, 프리미엄 로제 카바를 통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는 전략적 행보를 보여준 것이다.
결과적으로, 레세르바 데 라 파밀리아 로제 2021은 전통과 혁신, 그리고 글로벌 트렌드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탄생한 와인이다. 섬세한 색감, 절제된 표현, 구조감 있는 바디—이 세 가지가 맞물리며, 앞으로 로제 스파클링 트렌드를 선도할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할 잠재력을 갖췄다.

그랑 후베 2016 vs 2018 — 요리와 어깨를 맞대는 크리미한 힘
1972년 첫 출시 이후 와이너리의 프레스티지 라인을 대표해온 ‘그랑 후베(Gran Juvé)’. 샤렐로를 중심으로 샤르도네, 마카베오, 빠레야다가 블렌딩되며, 최소 50개월 이상의 병 숙성을 거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샤르도네와 엑스트라 브뤼(Extra Brut) 스타일’이다. 전통적으로 카바는 토착 품종 위주로 양조되지만, 후베 이 깜프스는 샤르도네를 포함시켜 구조감과 숙성 잠재력을 강화했다. 샤르도네는 크리미한 질감을 부여하고, 산도를 오래 유지해 와인의 수명을 늘리며, 시트러스와 꽃·꿀의 뉘앙스를 더한다. 또한 그랑 후베는 브뤼 나뚜르(제로 도사주)가 아닌 엑스트라 브뤼 스타일로, 소량의 도사주를 더한다. 이는 카바 특유의 날카로운 산미와 구조감을 부드럽게 다듬어, 보다 넓은 소비자층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도록 한 균형의 선택이다.
이번 시음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그랑 후베 2016과 2018을 비교한 순간이었다. 두 와인은 동일한 블렌딩과 엑스트라 브뤼 스타일을 공유하지만, 숙성의 길이가 만든 개성은 뚜렷했다. 2018 빈티지는 젊고 활력이 넘쳤다. 카모마일과 레몬 제스트, 화이트 플라워의 산뜻함, 시트러스와 꿀의 기운이 크리미한 무스와 조화를 이뤘다. 2016 빈티지는 숙성이 선사한 농밀한 깊이가 돋보였다. 카모마일 차, 브리오슈, 헤이즐넛, 꿀이 층층이 쌓여 있고, 입안에서는 차분하고 부드러운 크리미함이 감돌았다. 샴페인의 프리미엄 퀴베에 견줄 만큼의 깊이를 보여주며, 엑스트라 브뤼 스타일 특유의 섬세한 균형감 덕분에 트러플 요리, 버섯 수프, 해산물 요리와의 궁합은 탁월했다.

라 시베리아 2012 — 싱글 빈야드 피노 누아, 100개월의 집중도
후베 이 깜프스의 진정한 아이콘 와인, 라 시베리아(La Siberia) 2012는 단순한 카바를 넘어 ‘예술 작품’이라 불린다. 에스피엘스(Espiells)에 위치한 단일 포도밭에서 수확한 피노 누아 100%로 양조되며, 카바 중에서도 최상위 등급인 카바 데 파라헤 칼리피카도(Cava de Paraje Calificado)로 지정된 특별한 구역에서만 생산된다.
와인의 이름 ‘라 시베리아’는 멀리 러시아의 혹한 지역 시베리아를 연상시키듯, 포도밭의 위치와 기후에서 비롯된 별칭이다. 과거 이 지역에는 실제로 눈이 내릴 만큼 추운 날씨가 있었고, 지금도 페네데스 내에서 비교적 서늘한 미세 기후를 유지한다. 카바 산지의 뜨겁고 건조한 여름과 대조적으로, 이 포도밭은 큰 일교차와 시원한 밤공기로 인해 포도의 산도가 잘 보존되고, 장기 숙성에 적합한 구조를 만들어낸다.
양조 과정에서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단 두 시간만 침용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로제 와인은 수 시간 이상의 침용으로 색을 뽑아내지만, 라 시베리아는 짧은 시간만으로도 강렬한 색과 풍미를 얻었다. 이는 강한 햇살과 건조한 기후로 인해 포도 껍질이 두껍고, 색소와 풍미가 농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짧은 침용임에도 불구하고 선명한 루비 빛과 풍부한 과실 향을 담아낼 수 있었다.
진홍빛이 도는 색감 속에서 라즈베리와 석류, 잘 익은 체리의 아로마가 강렬하게 터지고, 브리오슈와 토스트, 은은한 스파이스 노트가 뒤따른다. 100개월 이상의 병 숙성에서 비롯된 정교하고 지속적인 버블은 마치 미세한 레이스처럼 입안을 감싸며 긴 여운을 남긴다.
라 시베리아는 단순히 스파클링 와인이 아니라, 포도밭의 극적인 기후와 역사, 장인정신이 응축된 하나의 이야기이자 작품이다. 그래서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의 테이블에서도 ‘카바의 정점’으로 불리며, 샴페인과 나란히 놓여도 결코 뒤지지 않는 존재감을 발휘한다.

파고 데 앙귀스 코스탈라라 2019 — 레드는 힘과 균형으로
후베 이 깜프스가 스파클링의 영역을 넘어 도전한 프리미엄 레드 와인, 파고 데 앙귀스 코스탈라라(Pagos de Anguix Costalara). 리베라 델 두에로의 ‘골든 다이아몬드’ 지역에 위치한 포도밭에서 수확한 템프라니요(현지명 틴토 피노) 100%로 양조된다. 12개월 동안 프렌치와 아메리칸 오크에서 숙성해, 풍성한 아로마를 지닌다. 잔에서는 붉은 체리와 검은 자두가 동시에 터지며, 바닐라·코코넛·다크 초콜릿의 오크 풍미가 겹친다. 입안에서는 탄탄한 타닌과 산도가 균형을 이루어 힘 있는 풀바디 스타일을 보여주지만, 마무리는 매끄럽다. 스테이크나 햄버거, 풍미 강한 육류 요리와 훌륭한 조화를 이룬다.

왜 음식과 이렇게 잘 맞을까?
후베 이 깜프스의 카바는 공통적으로 잔당이 낮아(브뤼 나뚜르 중심) 음식의 간·기름·감칠맛을 덮지 않고 정리한다. 긴 병 숙성에서 온 브리오슈·효모·토스트 결이 소스·버터·치즈의 농도를 받쳐 주고, 샤렐로의 선명한 산도와 미네랄이 피니쉬를 끌어올린다. 포도밭 관리 철학과 양조 철학이 맞물려,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가스트로노믹 와인’으로 채택되는 이유를 증명한다.
샴페인과 겨루는 프리미엄 카바의 위상
후베 이 깜프스는 단순히 ‘카바 명가’를 넘어, 샴페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프리미엄 스파클링 와인 하우스로 자리 잡았다. 브뤼 나뚜르 철학에서 비롯된 정제된 질감, 유기농 농업을 통한 지속 가능한 품질 관리, 그리고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검증된 음식과의 궁합은 카바에 대한 기존의 “저렴한 대안”이라는 인식을 완전히 뒤집고 있다.
특히 레세르바 데 라 파밀리아 로제 2021은 창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현대적 해석으로, 한국 시장에서 카바의 새로운 가능성을 상징한다. 글로벌 로제 트렌드와 한국 소비자의 ‘깔끔한 드라이’ 취향을 동시에 겨냥한 전략적 와인인 셈이다.
이번 롯데호텔 라운지에서의 디너가 증명했듯, 카바는 더 이상 가성비의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다. 오히려 “프리미엄 미식의 동반자”로 자리 잡으며, 샴페인과 대등하게 미식 테이블에 놓일 수 있는 럭셔리 스파클링 와인으로 재정의되고 있다.

수입사 국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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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배준원 사진·자료 제공 국순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