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밤에서 펼쳐진 체코 와인의 향기

Written by박 지현

내게 체코는 영화 ‘프라하의 봄’과 동화처럼 아름다운 구시가의 풍경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그 기억도 어느새 손이 잘 닿지 않는 선반 위에 놓인 오래된 기념사진처럼 희미해지고 있었다. 마치 손상된 미술품을 복원하듯, 점점 흐릿해지는 체코의 기억을 새롭게 되살릴 기회를 얻었다. 바로 ‘체코 모라비아 와인을 발견하다’ 이벤트를 통해 새로운 향기를 입게 된 것이다.

지난 12월 17일(화), 체코국립와인센터(National Wine Centre), 주한체코대사관, 그리고 체코관광청 한국지사가 공동으로 주최한 ‘체코 모라비아 와인을 발견하다’ 마스터 클래스가 열렸다. 특별히 체코 국립 소믈리에이자 와인 전문가인 클라라 콜라로바(Klara Kollarova)가 직접 내한해 클래스를 진행했다. 이 행사는 각 참가자의 필요에 맞춰 세션을 소믈리에 및 와인 판매업자, 와인 수입사, 그리고 미디어 및 와인 인플루언서 등 세 그룹으로 세분화해 운영하며 세심한 배려를 보여줬다.

‘체코 모라비아 와인을 발견하다’ 마스터 클래스 현장

현대 체코 와인의 ABC

한동안 체코 와인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건 내수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작은 규모 때문이었다. 현재 유럽과 체코의 와인 규정, 다양한 기준을 만드는 등 품질 발전을 이루면서 생산량도 늘게 되었다. 먼저 체코 와인을 유럽 기준으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

지리적 표시 보호 와인(PGI 와인)

  • 모라브스케 젬스케 비노(Moravské Zemské Víno) : 모라비아산 와인
  • 체스케 젬스케 비노(České Zemské Víno) : 보헤미아산 와인

원산지 지정 보호 와인(PDO 와인)

모라비아(모라바 Morava)와인 지역

  • 즈노옘스카(Znojemská) 와인 하위 지역
  • 미쿨로프스카(Mikulovská) 와인 하위 지역
  • 벨코파블로비츠카(Velkopavlovická) 와인 하위 지역
  • 슬로바츠카(Slovácká) 와인 하위 지역

보헤미아(체히 Čechy) 와인 지역

  • 리토몌르지츠카(Litoměřická) 와인 하위 지역
  • 몔니츠카(Mělnická) 와인 하위 지역
체코 와인 산지 지도(출처 체코국립와인센터 홈페이지)

이외에도 독일과 같은 방식으로 PDO 와인을 당도에 따라 퀄리티 와인과 숙성별 퀄리티 와인 등으로 세분화하고 있다. 2017년에 지역 특성을 표현하는 체코의 원산지 명칭(VOC) 규정도 도입했다. 모라비아 지역은 체코 와인의 90%를 생산하는 주요 생산지이며 보헤미아 포함 다른 지역이 나머지 10%를 차지한다. 게다가 와인 생산량에서 무려 70%를 차지하는 화이트 와인은 매우 훌륭했는데, 마스터 클래스 내내 참석자들도 충분히 공감했다.

행사를 위해 방한한 체코 국립 소믈리에 클라라 콜라로바(Klara Kollarova)

자랑할 만한 체코 와인의 현장

마지막 미디어 및 와인 인플루언서 세션에서 총 11가지 와인이 소개되었다. 열정 가득한 연사, 클라라 콜라로바는 모라비아 지역을 중심으로 여러 하위 와인 생산지의 특징을 하나하나 열거하며 그 지역을 대표하는 생산자들의 와인을 선보였다. 낯설지만 흥미로웠던 체코 와인의 매력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모라비아 지역

체코에서 가장 서쪽에 위치한 즈노옘스카 와인 하위 지역의 중심 도시는 즈노이모(Znojmo)다. 이 지역은 인근 보헤미안-모라비안 고원지대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과 디예(Dyje)강을 비롯한 여러 강의 영향을 받아 포도가 천천히 익는 환경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독특한 기후 덕분에 신선하고 강렬한 화이트 와인으로 주목받으며, ‘화이트 와인의 왕국’이라는 명성을 얻고 있다. 특히 그뤼너 벨트리너, 뮬러 트루가우, 리슬링, 소비뇽 블랑 등이 넓은 재배 면적을 차지하며 지역 와인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다.

  • Thaya Blanc de Blancs Extra Brut 2021 100% 샤르도네로 만든 스파클링 와인으로, 10%는 오크통에서, 나머지 90%는 스테인리스 탱크에서 숙성된다. 이후 18개월간 리(lees, 효모 앙금) 숙성을 거쳐 깊고 그윽한 효모와 토스트 향이 잘 드러난다. 섬세한 풍미 덕분에 샴페인을 연상케 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수입사 모라비아 와인 이야기
  • Kacetl Ryzlink Rýnský 2023 Kacetl은 소규모 와인 생산자이며 Ryzlink Rýnský는 리슬링 품종을 의미한다. 100% 스테인리스 탱크에서 숙성해 과일 풍미가 잘 살아있다. 리슬링 특유의 오일리한 느낌도 잘 느껴지고 클라라의 추천대로 스시가 딱 떠올랐다. 미수입 와인
모라비아 즈노옘스카 와인 하위 지역

즈노옘스카 지역과 인접한 미쿨로프스카 와인 하위 지역은 역사적인 건축물과 와인으로 유명한 도시 미쿨로프(Mikulov)를 중심으로 한다. 온화한 낮과 시원한 밤의 기후 덕분에 신선하고 향기로운 청포도를 재배하기에 적합한 환경을 갖추고 있다. 특히, 석회암이 풍부한 팔라바(Pálava) 언덕은 벨쉬리슬링(Welschriesling)과 그뤼너 벨트리너의 주요 생산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외에도 리슬링, 샤르도네, 소비뇽 블랑, 피노 그리 순으로 넓은 재배 면적을 차지하며 다양한 품종을 생산한다.

  • Plenér Ryzlink Vlašský 2021 2016년 미쿨로프에서 5헥타르 규모로 시작한 Plenér는 최소한의 개입으로 자연스러운 와인을 생산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벨쉬리슬링 100%로 만든 이 상쾌한 와인은 약간의 토스티한 느낌과 암염의 풍미를 더해 마실수록 매력적이다. 깔끔하고 선명한 산도가 특히 돋보인다. 미수입 와인
  • Obelisk Pálava Hintertaly 2022 팔라바(Pálava)는 트라미너와 뮬러 트루가우의 교배종으로, ‘체코 샤넬’이라 불릴 만큼 높은 인기와 기대를 받고 있다. 이 와인은 24시간 침용(스킨 컨택)과 6개월간 리 숙성을 통해 무게감과 토스티한 향을 더했다. 중간 정도의 산도와 함께 아로마틱한 향이 오래 지속되며 풍부한 점이 큰 매력. 수입사 모라비아 와인 이야기
마스타 클래스에서 선보인 미쿨로프스카 와인 하위 지역의 와이너리 Plener의 와인들

모라비아 레드 와인의 중심지, 벨코파브로비츠카 와인 하위 지역의 중심 도시는 브르노(Brno). 마그네슘 성분이 풍부한 토양에서 블라우프랑키쉬, 생 로랑, 쯔바이겔트와 같은 적포도 품종이 널리 재배된다. 이와 함께 아로마틱한 화이트 와인도 빼놓을 수 없는데, 그뤼너 벨트리너, 뮬러 트루가우, 벨쉬리슬링이 주요 백포도 품종이다. 포도원은 과거 휴양지였던 후스토페체(Hustopece)에서 시작해 모라비아 최대 포도밭 지역인 벨케 빌로비체(Velké Bílovice)까지 이어진다.

Svoboda Veltlínské Zelené 2023
Svoboda는 1850년부터 이어져 온 가족 경영 와이너리로, 남부 모라비아를 대표하는 톱 와이너리 중 하나로 손꼽힌다. 100% 그뤼너 벨트리너로 만들어졌으며, 품종 특유의 자몽, 백후추, 그리고 무우나 딜과 같은 식물 계열의 향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미수입 와인

Fabig Sauvignon Blanc BIG 2023
Fabig는 미니멀하면서도 현대적인 스타일을 추구하는 와이너리로, 총 6.5헥타르의 포도밭을 보유하며 연간 약 60,000병의 와인을 생산한다. 이 소비뇽 블랑은 언뜻 루아르 소비뇽 블랑을 떠올리게 하는 독특한 매력을 지녔다. 22시간의 스킨 컨택 후, 프랑스산 새 오크통에서 11개월 동안 숙성되었다. 구즈베리, 시트러스, 그리고 오크의 섬세한 터치가 느껴지며, 산도는 중상 정도로 균형을 이룬다. 숙성 잠재력이 크다는 클라라의 평가에 전적으로 동의! 미수입 와인

Jaroslav Osička Ma’n’tra 2022
Jaroslav Osička는 체코 와인의 자연주의자로 불리며, 생물다양성과 지속가능성을 추구한다. 그는 유기농 재배를 실천하며, 아황산염은 사용하지 않거나 최소화한다. 이 게뷔르츠트라미너 오렌지 와인은 10일간의 침용과 1,000리터 아카시아 배럴에서 10개월 동안 리 숙성을 거쳐 만들어졌다. 복숭아 같은 과일 풍미와 스파이시한 느낌이 조화를 이루며, 좋은 구조감을 자랑한다. 미수입 와인

Skoupil Frankovka 2021
Skoupil은 벨케 빌로비체에서 1852년부터 포도 재배와 와인 생산에 매진해 온 가족 경영 와이너리다. 이 블라우프랑키쉬 와인은 16개월 동안 배럴 숙성을 거쳐 클래식한 스타일을 보여준다. 블랙베리, 정향, 계피와 같은 향신료의 향이 풍부하게 느껴진다. 미수입 와인

체코 동쪽 끝에 위치한 슬로바츠카 와인 하위 지역은 슬로바키아와 오스트리아 국경을 맞닿았다. 다채로운 자연환경을 자랑하며 리슬링, 뮬러 트루가우, 샤르도네, 피노 블랑, 그뤼너 벨트리너뿐만 아니라 블라우프랑키쉬, 생 로랑, 피노 누아와 같은 적포도 품종도 주목받고 있다.

Čapka Chardonnay 2022
Čapka는 18세기 말 첫 포도원을 인수한 이래 9대째 이어지는 가족 경영 와이너리다. 12헥타르의 포도밭에서 다양한 화이트와 레드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이 샤르도네 100% 와인은 오렌지, 파인애플, 말린 망고의 향이 풍부하다. 신선한 산미와 부드러운 유질감이 어우러져 긴 여운을 남긴다. 미수입 와인

Dvořáček LTM Pinot Noir Selection 2021
Dvořáček LTM은 아버지 Lubomír, 아들 Tomáš, 딸 Martina Magdaléna의 이름에서 따온 가족 경영 와이너리로, 3헥타르의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다. 샤르도네, 소비뇽 블랑, 리슬링, 피노 누아, 메를로 등 다양한 국제 품종을 생산한다. 이번 마스터 클래스에서 선보인 피노 누아는 라즈베리와 딸기, 정향 같은 따뜻한 향신료의 향미가 뛰어났다. 타닌이 부드럽고 우아하게 이어지며, 이 와인은 제31회 Sélections Mondiales des Vins Canada 2024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바 있다. 그 결과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근사한 와인이다. 미수입 와인

슬로바츠카 와인 하위 지역

보헤미아 지역

몔니츠카 와인 하위 지역은 보헤미아 지역의 하위 지역 중 하나로, 프라하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쿠트나 호라를 포함한 주변의 작은 포도밭들이 속해 있다. 석회암 토양과 자갈 모래 충적토에서 개성 있는 와인이 생산되며, 특히 피노 누아와 리슬링이 이 지역의 대표 품종으로 꼽힌다.

Kutná Hora Karl’s PUNK - Pinot Gris 2022
Vinné Sklepy Kutná Hora, s.r.o는 쿠트나 호라 지역에서 포도 재배의 전통을 되살리고자 노력하는 가족 경영 와이너리다. 이 펫낫 와인은 바이오다이나믹 방식으로 생산되었으며, 거품의 세기가 강하지 않다. 시트러스, 청사과, 흰 후추의 뉘앙스와 강한 산도가 어우러져 날카롭고 크리스피한 터치가 매우 인상적이다.

체코관광청에 따르면 코로나19 이전 약 40만 명의 한국인이 체코를 여행했다. 이는 체코가 한국인에게 인기 있는 유럽 국가 중 하나임을 보여준다. 서울-프라하 직항 항공노선이 새롭게 열리면서, 2025년에는 코로나 이전의 관광객 수치를 회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까지 아름다운 건축물, 눈을 사로잡는 문화 명소 그리고 가성비 좋은 여행지로 주목받는 체코는 ‘맛있는 와인의 생산지’란 프리미엄까지 더해져 오감을 즐거운 여행지로 각인되지 않을까 예상해 본다.

박지현 사진 제공 체코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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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공개일 : 2025년 01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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