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평론가 잰시스 로빈슨(Jancis Robinson)은 데고르주망 과정을 막 끝낸 샴페인 티에노(Champagne Thiénot)의 ‘뀌베 라 빈 오 가망(Cuvee La Vigne aux Gamins) 2010’을 테이스팅하곤 “쾌락주의자보다는 순수주의자를 위한 샴페인”으로 표현했다. 미식 문화를 향유하는 쾌락의 정점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샴페인계에서 ‘순수주의자를 위한 샴페인’이란 어떤 것일까? 최근 샴페인 티에노의 국내 론칭을 맞아 한국을 찾은 셀러 마스터 ‘니콜라 유리엘(Nicolas Uriel)’과의 만남에서 그 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샴페인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머리가 아닌 마음을 다해 만드는 것“이라고 답하는 이 샴페인 순정파의 소개로, 국내 출시된 샴페인 티에노의 주요 라인업을 만나 보았다.
테루아 컬렉터 알랭 티에노
“샴페인 티에노는 젊은 샴페인 하우스”라며 니콜라 유리엘은 입을 열었다. 1985년에 정식 설립되었으니 오랜 전통의 샴페인 하우스들이 건재한 샹파뉴에선 아직까지 ‘영(Young)’한 편에 속한다는 뜻일 수도, 혹은 젊은 남매가 운영하는 패기와 열정이 넘치는 샴페인 하우스라는 뜻일 수도 있겠다. 어느 쪽이든 앞으로 다룰 샴페인 티에노가 걸어온 길과 결과물인 샴페인들을 놓고 보면 이들이 40년이란 세월을 결코 짧게 보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 시작은 땅에 있었다. 설립자는 알랭 티에노(Alain Thiénot), 원래는 샹파뉴 지역의 포도 중개인이었다. 샴페인 하우스와 포도 재배자 사이에서 중간 역할을 했던 그는 실력 있는 재배자와 좋은 포도밭에 대한 감각을 키워오다 1976년 아이(Aÿ) 그랑 크뤼 마을의 포도밭을 구입했다. 5~6헥타르 규모의 포도밭 하나만 가지고 샴페인 하우스를 설립할 수 없었던 그는 때를 기다렸다. 이후 르 메닐 쉬르 오제(Le Mesnil-Sur-Oger), 아비즈(Avize)의 역사적인 그랑 크뤼 포도밭과 디지(Dizy), 피에리(Pierry)의 프리미에 크뤼 포도밭을 구입한 끝에 1985년 마침내 샴페인 티에노를 설립하게 된다. “훌륭한 포도밭을 알아보는 안목으로 알랭 티에노는 첫 빈티지부터 본인이 꿈꾸던 뛰어난 품질의 포도로 샴페인을 만들 수 있었다”라는 게 니콜라의 설명. 현재 샴페인 티에노는 약 30헥타르의 포도밭을 소유하는데, 그중 50% 이상이 그랑 크뤼와 프리미에 크뤼 마을에 있다. 직접 소유한 포도밭 외에는 알랭 티에노가 인정하는 포도 재배자들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며 포도를 공급받는다.
콜라보의 귀재들
젊은 포도 중개인이 시작하여 서서히 발전해 온 샴페인 티에노가 본격적으로 도약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다. 알랭 티에노의 두 자녀가 비즈니스에 합류한 것. 니콜라 유리엘은 샴페인 티에노를 “대형 NM 하우스와 RM 하우스의 중간 규모인 부티크 하우스”로 정의하며, “가족이 운영하기에 포도 공급과 최첨단 양조 장비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고, 이는 논란의 여지없는 품질과 정확성으로 이어진다”라며 가족 경영의 장점을 설명했다. 현재 아들인 스태니슬라스(Stanislas)는 회사의 경영을 맡고 있고, 딸인 가랑스(Garance)는 브랜드의 모든 커뮤니케이션과 마케팅을 관리하고 있다. 물론 알랭 티에노도 그의 오랜 노하우를 자녀들과 공유하며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고.
그렇다면 두 자녀, 그러니까 새로운 세대인 스태니슬라스와 가랑스가 티에노의 방향키를 잡은 이래 변화한 점은 무엇일까? 니콜라는 “스태니슬라스와 가랑스는 각자 자신만의 감성과 배경으로 역동성을 불어넣어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조화를 만들고 있다”라며, 대표적인 예로 프랑스 스트리트 아트의 선구자 ‘스피디 그라피토(Speedy Graphito)’와 멕시코-브라질 예술가 페페 탈라베라(Fefe Talavera) 등의 예술가와의 협업을 꼽았다. 샴페인과 예술의 만남은 클래식이라 할 수도 있지만 티에노의 진취적인 행보는 예술계에 국한되지 않는 듯하다. ‘순수한 과일의 충만함’이라는 블렌딩 철학을 공유할 파트너를 찾던 스태니슬라스는 호주를 대표하는 와이너리 펜폴즈(Penfolds)와의 협업을 성사시켰다. 5~6년째 쿠튀르 샴페인인 ‘티에노 x 펜폴즈’를 출시하고 있는 것. 18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펜폴즈의 수석 와인메이커 피터 가고(Peter Gago)와 함께 말이다. 제85회, 제86회 오스카 아카데미 시상식의 공식 샴페인으로 2년 연속 단독 선정된 것도 이러한 행보의 연장선일 테다.
미식가에 의한, 미식가를 위한
연간 50만 병가량 생산되는 샴페인 티에노는 프랑스 현지에서도 호텔과 유명 미쉐린 레스토랑 등 일부 레스토랑에만 납품된다. 대형 샴페인 하우스처럼 일반 소매점에 들어갈 정도로 생산량이 충분하지 않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미식 문화에 대한 알랭 티에노의 열정이 반영된 결과에 가깝다. 샴페인 티에노를 수입하는 히든셀러의 관계자도 “국내 수입량은 400병 정도인데 역시 레스토랑 위주로 판매할 예정”이라며 그 맥락을 이어갈 뜻을 보였다.
미식 문화에 조예가 깊은 만큼 알랭 티에노는 프랑스 미식계 인사들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쌓아왔다. 특히 미식계의 전설이자 요리계의 교황이라 불리는 쉐프 ‘폴 보퀴즈(Paul Bocuse)’ 재단의 창립 멤버로, 피에르 에르메(Pierre Hermé), 알랭 뒤카스(Alain Ducasse)와 같은 프랑스 요리의 전설들과 함께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재단 창립 멤버로서 20년 이상 파트너쉽을 이어오며 진행한 많은 프로젝트 중 대표적으로는 보퀴즈 도르(Bocuse d'Or)가 있다. 요리계 올림픽이라 불리는 이 이벤트를 통해 재능 있는 미래 인재들을 지원해 온 것. 미식 문화에 대한 아버지의 열정은 자녀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젊은 쉐프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재단인 풀그랑스(Fulgrance)와 독점 파트너쉽을 맺었는데, 매달 유명 레스토랑의 수쉐프들이 단 하루만 쉐프가 되어 만찬 행사를 진행하고 이를 통해 가려낸 승자를 샴페인 티에노가 후원하는 방식이다. 만찬 행사의 식전주로 티에노의 샴페인을 제공하는 것 또한 포함된다. 니콜라 유리엘에 의하면 “젊은 샴페인 하우스 티에노와 풀그랑스는 ‘신세대’ 정신을 완벽하게 구현”한다고. 미식에 이토록 진심인 샴페인 하우스이라니, 셀러 마스터가 경험한 최상의 페어링이 문득 궁금해졌다. 니콜라는 “향기롭고 신선한 논 빈티지 티에노는 모든 종류의 생선, 특히 타르타르나 세비체와 같은 음식과 즐겨 마신다. 좀 더 숙성된 빈티지 샴페인에는 크리미한 소스의 가금류 요리가 아주 잘 어울린다”라며, “티에노 2002 빈티지를 모렐 버섯을 곁들인 크림소스 닭고기 요리와 함께 마신 적이 있는데 아주 인상 깊었다”라는 답을 남겼다.
마음으로 맛보는 샴페인이기를
이쯤에서 셀러 마스터에게 핀포인트를 돌려 보자. 니콜라 유리엘이 샴페인 티에노에 합류한 것은 2008년, 하지만 양조자 역할은 아니었다. 포도 공급자와의 관계를 관리하는 일로 샴페인 티에노와 인연을 맺은 그는 양조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양조학 학위를 따고 실전에서 블렌딩을 해보며 셀러 마스터가 되었다 한다. ‘순수주의자를 위한 샴페인’이란 평가를 받는 티에노 스타일의 핵심에 있어 그가 강조하는 것은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만 양조하는 것”이다. “티에노에 합류한 후 15년 동안 변하지 않은 단 한 가지인 ‘신선함과 우아함’을 우선으로 하는 상징적인 스타일을 유지하기 위함”이라고. 오크를 사용하지 않는 것 외 “포도 재배 및 양조법과 같은 부분은 기후 변화에 맞춰 지속적으로 조정하는데, 예를 들어 15년 전에는 유산 발효가 체계적으로 진행되었지만 최근엔 부족한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특정한 탱크에서는 유산 발효를 하지 않는다”라고 그는 부연했다.
국내 수입되는 샴페인 티에노의 라인업은 총 10종이다. 소량 생산되다 보니 종류별로 60병 혹은 12병 미만으로 들여오는 레어템들이라 할 수 있다. 앞서 샴페인을 양조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에 대해 “머리가 아닌 마음을 다해 만드는 것“이라는 니콜라의 답변을 공유한 바 있다. 특히 블렌딩할 때가 더 그렇다는데, “모든 것에서 동떨어져 오직 감각을 믿는 것”이 핵심. 마음을 다해 만든 이 레어한 샴페인들은 어떻게 마셔야 좋을까? 니콜라는 명쾌하면서도 긴 여운이 남는 대답을 했다. “만들 때와 마찬가지로, 샴페인을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마음으로 맛보는 것.” 샴페인 티에노의 런칭 이벤트에서 셀러 마스터 니콜라 유리엘과 함께 마음으로 맛본 일곱 종의 샴페인을 소개한다.
셀러 마스터와 함께 테이스팅한 샴페인 티에노
샴페인 티에노 뀌베 브뤼 NV Champagne Thiénot Cuvée Brut NV
피노 누아 45%, 샤르도네 40%, 피노 뫼니에 15%가 블렌딩된 기본급 샴페인. 그렇더라도 포도의 25%가 그랑 크뤼, 40%가 프리미에 크뤼 마을에서 나왔다. 베이스 와인은 2017 빈티지가 55%, 2013~2015 빈티지의 리저브 와인이 45% 블렌딩되었다. 티에노 스타일의 핵심인 ‘신선함’을 “산도에 의한 입안에서의 짜릿한 감각, 과일 아로마를 동반한 크리스피함”으로 표현한 니콜라는 “오랜 시간 숙성되어도 신선함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티에노의 철학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주는 샴페인”으로 뀌베 브뤼를 소개했다.
샴페인 티에노 뀌베 블랑 드 블랑 NV Champagne Thiénot Cuvée Blanc de Blancs NV
2020 빈티지의 샤르도네 포도로 만든 블랑 드 블랑. 니콜라는 “신선하고 직선적인 스타일의 블랑 드 블랑 샴페인을 만들고자, 의도적으로 더 숙성되지 않은 최신 빈티지의 포도를 사용했다“라고 설명했다. 숙성으로 인한 크리미한 특징이 생기기 전의 샤르도네 베이스 와인으로 만들어 섬세함과 정교함, 신선함이 극대화된 블랑 드 블랑 샴페인이라 할 수 있다.
샴페인 티에노 뀌베 로제 NV Champagne Thiénot Cuvée Rosé NV
샤르도네 50%, 피노 누아 40%, 피노 뫼니에 10%로 만든 로제 샴페인. 2020 빈티지의 베이스 와인이 60%, 2017~2019 빈티지의 리저브 와인이 40% 블렌딩되었다. 니콜라는 “티에노를 상징하는 세 단어인 과일 맛과 우아함, 신선함이 잘 표현된 로제 샴페인”으로 정의 내렸다.
샴페인 티에노 뀌베 빈티지 2015 Champagne Thiénot Cuvée Vintage 2015
샴페인 티에노는 가장 좋은 해에만 샤르도네와 피노 누아의 미묘한 조화를 이루는 브뤼 빈티지를 출시한다. 국내 출시된 2015 빈티지는 피노 누아 60%, 샤르도네 30%, 피노 뫼니에 10% 비율. 이 중 47%는 프리미에 크뤼 마을 출신, 18%는 그랑 크뤼 마을 출신이다. 2015년은 포도가 빨리 익은 해였는데, 니콜라에 의하면 “수확 시기를 앞당겨 신선함과 생동감을 유지할 수 있었다”라고 한다.
샴페인 티에노 뀌베 스태니슬라스 2008 Champagne Thiénot Cuvée Stanislas 2008
알랭 티에노가 아들인 스태니슬라스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샴페인이다. 좋은 해에만 생산되는 블랑 드 블랑 샴페인으로 90%의 포도가 코트 데 블랑의 그랑 크뤼 포도밭에서 나왔다. 10년 이상 숙성된 후 출시되는데, 스태니슬라스는 “시간이 선사한 크리미하고 부드러운 질감, 코트 데 블랑 토양에서 얻은 미네랄리티와 정교한 균형감이 어우러진 샴페인”으로 자신을 모델로 만든 이 샴페인에 코멘트를 남겼다.
샴페인 티에노 뀌베 가랑스 2011 Champagne Thiénot Cuvée Garance 2011
가랑스를 모델로 만든 샴페인으로, 뀌베 스태니슬라스와 반대로 블랑 드 누아로 탄생했다. 짓이기면 붉은색이 나오는 꽃의 이름인 ‘가랑스’가 블랑 드 누아를 연상시키기 때문. 그랑 크뤼와 프리미에 크뤼 피노 누아 포도가 절반씩 사용되었다. 포도가 예상보다 빨리 익었던 2011 빈티지의 뀌베 가랑스에는 풍부한 표현력과 복합적인 아로마, 생동감 넘치는 기포가 담겼는데, 가랑스는 “우리 샴페인이 보여줄 수 있는 힘과 우아함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샴페인”으로 뀌베 가랑스 2011을 표현했다.
샴페인 티에노 뀌베 알랭 티에노 2008 Champagne Thiénot Cuvée Alain Thiénot 2008
알랭 티에노는 샴페인 하우스 설립 초창기부터 자신의 이미지를 담은 동명의 샴페인을 만들어왔다. 오래전 포도 중개인이었을 때부터 꿈꿔왔던 블렌드를 탄생시킨 것. 샤르도네와 피노 누아 두 품종 모두 완벽한 빈티지에만 생산하므로 10년에 2~3회밖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가장 품질이 좋은 포도를 최대한 활용하고, 시간을 들여 와인의 성숙도, 복합성, 힘, 우아함을 결합하여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티에노 스타일의 정수라 할 수 있다.
문의 히든셀러
▶인스타그램 @hidden_celler
글 신윤정 사진·자료 제공 히든셀러 촬영 현창익 포토그래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