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와인을 세계로: 말벡 와인의 재발견, 비냐 코보스 & 크로쿠스

Written by푸달크

"어떤 와인을 좋아하세요?" "좋아하는 와인 산지가 있나요? 품종은요?"

대한민국에서 이런 질문들의 대답은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카베르네 소비뇽이나 피노 누아, 샤르도네 등의 품종과 구대륙인 프랑스, 이탈리아나 미국, 호주 같은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신대륙 와인들이 주류를 이룬다. 말벡이라는 포도 품종이 많이 재배되는 남아메리카의 아르헨티나는 16세기부터 와인 산업이 시작되었고, 그 생산량도 꽤 높았지만 그저 과육이 큰 말벡으로 저가의 대용량 벌크와인들만 생산하는 나라로 인식되었다. 현재에 이르러서는, 프리미엄 말벡 와인을 세계적으로 알리며 인기를 얻고 있는 아르헨티나. 그저 값싼 대용량 내수용 와인으로 치부되던 아르헨티나의 말벡이 어떻게 세계적인 프리미엄 와인의 반열에 올라서게 된 걸까?

(왼쪽부터) 비냐 코보스 빈큘럼 말벡, 비냐 코보스 마르키오리 이스테이트 말벡, 크로쿠스 르 까르시페, 크로쿠스 라 로슈 메르

말벡 와인을 사랑하는 이라면 꼭 알아야 할 이름, 폴 홉스

말벡 와인의 아버지라고도 부를 수 있을 폴 홉스(Paul Hobbs)는 뉴욕주에 있는 4세대를 거친 농부 가문의 11 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미국에서 그의 이름을 건 와이너리를 만들 만큼 유복하지는 않았던 그의 눈이 가 닿은 곳은 남미의 아르헨티나. 훌륭한 테루아에 비해 대량으로 맛없는 저가 와인들만 생산하고 있던 아르헨티나의 말벡 와인을 보고 그 인식을 바꿔보려는 그의 노력이 시작되었다.

종종 프리미엄 미국 와인의 시작점으로 회자되는 오퍼스 원의 헤드 와인메이커 출신인 폴 홉스는 이후 그를 만나러 찾아오는 미국의 저널리스트들에게 자신이 만든 아르헨티나 말벡 와인을 블라인드 테이스팅으로 내놓았고, 훌륭한 카베르네 소비뇽이라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완성도 높았던 말벡 와인들에 크게 놀랐다고 한다. 그 당시에 아르헨티나 말벡 와인이 가지고 있던 저렴하고 맛없는 이미지로 인해 미국에서는 수입하려는 이들이 아무도 없었고, 폴 홉스는 자신이 미국에 직접 수입 회사까지 만들어 아르헨티나 최초로 미국에 말벡 와인을 수출하게 된다. 그렇게나 아르헨티나 말벡 와인을 무시하던 미국이 현재에 이르러서는 아르헨티나 말벡 와인의 최대 소비 국가가 되었으니, 아르헨티나 말벡 와인과 폴 홉스는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끈끈한 관계라 할 수 있다.

폴 홉스(Paul Hobbs)

폴 홉스의 피, 땀, 눈물: 비냐 코보스

폴 홉스의 미국 컬트 브랜드 '폴 홉스'가 아르헨티나에서 설립한 컬트 와이너리인 비냐 코보스(Viña Cobos)는 아르헨티나 최초로 비평가 점수 100점을 받은 와이너리로 유명하다. 프리미엄 와인 불모지였던 아르헨티나에서 테루아의 가능성을 믿고 와이너리를 키워 나간 폴 홉스는 사람과 자연을 존중하고 지속적인 품질 관리로 우수한 와인 생산에 주력하며 고정관념을 깨는 개척정신으로 모든 공정에 진심을 담아내는 것을 비냐 코보스 와이너리의 모토로 삼고 있다. 팬데믹 때 학교를 가지 못하는 지역사회의 어린이들에게 공부를 위한 스마트폰을 선물해 주는 행사를 여는 등, 말이 아닌 실천을 통해 지속 가능한 경영과 지역사회 발전에 이바지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폴 홉스가 포문을 연 남미 프리미엄 와인의 가능성은, 단 한 번 작황이 좋았던 운 좋은 해의 고득점 와인이 아닌 1999년 로버트 파커(Robert Parker)에게서 95점, 2013년 99점에 이어 제임스 서클링(James Suckling)에게 최초로 100점을 받는 것으로 훌륭하게 입증되기도 했다.

그 누구도 성공을 확신하지 못했던 아르헨티나의 주목받지 못하던 와인 품종에 그의 피와 땀이 더해지며 맺어진 결실인 비냐 코보스의 말벡 와인을 통해 폴 홉스가 세계적인 말벡 와인의 컨설턴트로 인정받게 된 것은 당연하고 마땅한 결과가 아닐까?

비냐 코보스 와이너리

말벡 와인의 시작점이었던 프랑스, 카오르

말벡의 원산지인 프랑스 카오르 지방. 아르헨티나에서 프리미엄 말벡 와인 생산을 성공적으로 마친 폴 홉스가 카오르 지방의 명문 가문인 베르트랑(Bertrand) 가문과 2011년에 공동 설립한 와이너리 크로쿠스(Crocus)! 말벡 와인의 발상지이기는 하지만 좋은 말벡 와인으로 주목받지는 못했던 프랑스의 카오르 지역. 180만 년 전인 쥐라기 때부터 생성된 석회암, 자갈토, 화강암 등의 다양한 토양을 가진 테루아의 개성을 품은 카오르 말벡은 폴 홉스를 만나 새롭게 태어나게 된다.

3개의 테루아, 폴 홉스 스타일로 다시 태어난 3개의 카오르 말벡

아무런 기반도 없었던 아르헨티나에서 오랜 시간을 들여 프리미엄 말벡을 생산했던 폴 홉스가 강조했던 훌륭한 테루아. 세계적인 말벡 와인의 권위자 폴 홉스가 카오르 지방에서 다시 주목한 것은 유구한 시간 동안 누적되며 생성된 독특한 3개의 테루아때문이었다. 그가 정의하는 말벡 품종의 특징은 한마디로 표현력이 좋다는 것인데, 기후와 테루아의 변화에 과하게 까탈스럽지 않으며 그 지역과 테루아의 개성을 잘 흡수해 반영해 내는 품종이라는 것.

포브스지가 선정한 와인계의 스티브 잡스라는 별칭답게 카오르에서도 훌륭한 프리미엄 말벡 와인 생산에 성공한 폴 홉스의 크로쿠스 와이너리에는 3가지 대표 와인이 있다. 3개의 테루아에서 생산된 포도를 블렌딩해서 만든 라뜰리에(L'Atelier), 석회암질의 테루아에서 생산된 포도로 만든 르 까르시페(Le Calcifère), 그리고 '어머니 돌'이라는 뜻의 라 로슈 메르(La Roche Mère)는 그 의미대로 최초의 토양이 생성된 180만 년 전의 토양에서 수확된 포도로 만든 와인이다.

말벡과 잘 어울리는 마리아주, 돼지갈비와 평양냉면

폴 홉스 브랜드의 총괄 사장인 카를로스 드 카를로스(Carlos de Carlos)와의 만남이 이루어진 장소는 돼지갈비와 평양냉면으로 유명한 광평 평양냉면갈비 삼성본점. 돼지 뼈등심 위주의 난축맛돈구이와 한우육회의 기름진 고소함과 풍부한 육향이 부드러운 말벡의 풍미와 좋은 균형감을 선보였다. 일반적인 와인 페어링 메뉴로 쉽게 떠올리는 파스타와는 대조적으로 이곳의 비비작작 골동냉면은 들기름의 향긋함, 담백한 메밀의 맛과 식감이 말벡과의 새로운 페어링 메뉴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흥미로운 조합이었다.

폴 홉스 브랜드의 홍보를 위해 방한한 총괄 사장 카를로스 드 카를로스(Carlos de Carlos)

카를로스의 설명을 곁들여 맛본 와인은 비냐 코보스의 두 가지 말벡과 크로쿠스의 두 가지 말벡. 모두 같은 말벡 품종으로 폴 홉스의 손길을 거쳐 세상에 나왔지만, 테루아에 따라 이렇게나 다른 매력을 지닌 와인이 될 수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좀 더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이미지를 가진 비냐 코보스의 말벡 와인은 대중적으로 더 인기를 얻을 수 있을 듯하고, 보다 강건하고 중후한 탄닌을 보여주는 크로쿠스의 와인은 말벡의 매력을 보다 깊게 파고 들어가는 이들에게 그 매력을 더 어필할 수 있을 듯하다. 아르헨티나의 우아한 여성 이미지와 프랑스의 젠틀한 남성 이미지랄까. 더위가 한풀 꺾이는 여름밤, 비냐 코보스든 크로쿠스든 취향에 맞는 말벡 와인 한 병 집어 들고, 삼겹살이나 목살을 메뉴로 저녁 약속을 잡아 보는 건 어떨까?

문의 국순당
▶인스타그램 @ksd_wines

글·사진 푸달크 사진·자료 제공 국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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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공개일 : 2024년 06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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