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넬의 올해 아트인더글라스 그랜드 테이스팅은 유난히 역동적이었다. 시시각각 눈을 뗄 수 없는 화려한 미디어 아트를 배경으로, 뛰어난 퀄리티의 와인들이 참가자들의 코와 입을 즐겁게 하며 자연스레 활기찬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그 주역엔 바타시올로(Batasiolo)가 있었다. 총 9가지 다양한 스타일의 와인을 선보인 바타시올로 테이블은 시음회 내내 북적였는데, 참가자들이 특히 하이라이트한 것은 바롤로였다. 다음날 만난 바타시올로의 마케팅 디렉터 파올라 마라이(Paola Marrai) 역시 “리제르바와 3개의 싱글 빈야드 등 총 4종의 바롤로를 준비했는데 2시간 채 안 되어서 모두 동이 났다”라며 “매우 성공적”이라고 평했다. 와인잔을 든 손이 바타시올로 바롤로로 자꾸만 향했던 이유, 아트인더글라스에 나온 모든 와인을 다 시음할 순 없지만 바타시올로 바롤로는 필수 코스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파올라 마라이와의 인터뷰를 통해 답을 얻어 본다.
바롤로지만 기다리지 말아요
바롤로는 ‘인내심’이 필요한 대표적인 와인이다. 스타일에 따라 다르겠지만, 최소 10년은 숙성해야 빳빳한 탄닌이 다듬어지며 본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당장 와인샵에서 구매 가능한 최신 빈티지의 바롤로를 사서 잊은 듯이 셀러에 고이 넣어 두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아직 영한 빈티지의 바롤로 와인을 참지 못하고 오픈했다 죄책감까지 든 경험, 와인 애호가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거다. 이런 고민 안 해도 되게 처음부터 시음 적기의 바롤로가 시장에 나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와이넬에서는 ‘바타시올로 와이너리에 물량이 있다면 조금 더 숙성된 바롤로 와인을 받는’ 방식으로 해답을 내놓았다.
아트인더글라스에서 바타시올로가 흥미로웠던 부분도 바로 그 지점이다. 바롤로는 생산 규정에 따라 최소 3년 숙성 후 출시해야 하므로 현재 유통되는 와인은 2018 혹은 그 언저리 빈티지가 많다. 바타시올로 싱글 빈야드 바롤로의 경우에도 5년 숙성 후 세상에 나오므로 가장 최신 빈티지가 2016이라 한다. 하지만 이날 시음한 바타시올로 바롤로들은 리제르바가 2013, 싱글 빈야드는 2009, 2011 빈티지였다. 파올라는 “언제나 새로운 빈티지를 원하는 대부분의 마켓과 달리, 한국인들은 숙성된 와인을 선호해서 올드 빈티지로 선보이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2009, 2011 두 빈티지의 싱글 빈야드 와인들은 지금 어떨까. 파올라에 따르면 “지금 바로 마시기에 완벽한 와인”은 2011, “숙성에 따라 조금 더 진화된 네비올로를 즐길 수 있는 와인”은 2009라고. 셀러링하지 않아도 바로 본모습을 보여 준다니, 바롤로가 이렇게 친절했던 적이 있었던가.
바롤로 크뤼 오형제
바타시올로를 소개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규모’다. 랑게 지역에서 가장 큰 와인 생산자 중 하나인 바타시올로는 바롤로를 비롯하여 바르바레스코, 바르베라 다스티, 돌체토 달바, 모스카토 다스티, 랑게 샤르도네, 가비 디 가비 등 다양한 와인을 생산한다. 하지만 바타시올로의 정체성은 바롤로로 정립된다고 할 수 있다. 랑게 지역에 소유한 포도밭 약 156헥타르 중 절반인 78헥타르가 바롤로를 위한 네비올로 밭이기도 하고, 바롤로의 보석과도 같은 크뤼 바롤로를 5개나 생산하기 때문이다. 바타시올로의 크뤼 바롤로들은 저마다의 색채를 가지고 있는데, 아트인더글라스에 나온 3개의 크뤼만 해도 뚜렷한 차이가 느껴졌다. 와인이 생산되기까지 많은 과정이 결과물에 영향을 미치겠지만, 이번 기회엔 바타시올로 크뤼 바롤로들의 근원을 따라 포도밭이 있는 마을별 특징을 살펴본다.
La Morra(라 모라)
바롤로 생산지 서북부에 자리한 마을 라 모라에서 바타시올로는 '체레퀴오'와 '브루나떼' 등 2개의 싱글 빈야드 와인을 생산한다. 토르토니안(Tortonian)이라 불리는 모래가 섞인 오밀조밀한 석회-이회토에서 부드럽고 우아한 바롤로가 만들어진다. 비교적 숙성이 빨리 되는 경향이 있어 접근성이 좋은 편이다.
Batasiolo Barolo Cerequio 바타시올로 바롤로 체레퀴오
바롤로 내에서 단 5명의 생산자만이 소유한 라 모라 마을 최고의 크뤼로, 섬세한 떼루아가 고스란히 표현된 바롤로 와인이 나온다. 섬세한 커피와 담배향, 풀바디한 스타일로 긴 지속력의 피니쉬와 좋은 밸런스를 보여준다.
Batasiolo Barolo Brunete 바타시올로 바롤로 브루나떼
라 모라 마을을 대표하는 크뤼 중 하나인 브루나떼 포도밭은 일조량이 풍부한 남향의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풀바디한 스타일로 신선한 산도에서 이어지는 탄닌의 밸런스가 절묘하며, 섬세하고 멋진 질감, 끝없이 길게 이어지는 피니쉬가 매력적이다.
Monforte d’Alba (몬포르테 달바)
바롤로의 중앙 남단에 자리한 몬포르테 달바에서는 구조감이 좋고 풀바디하면서도 과실미가 풍부한 스타일의 바롤로가 생산된다. 바타시올로는 몬포르테 달바의 대표 크뤼인 부씨아 포도밭 내에 있는 비네토 보파니 밭을 약 0.75헥타르 소유하고 있다. 포도밭의 낮은 지대에서는 소비뇽 블랑과 샤르도네 같은 화이트 품종도 재배한다.
Batasiolo Barolo Bussia Vigneto Bofani 바타시올로 바롤로 부시아 비네토 보파니
크뤼 안의 크뤼 개념인 비네토 보파니에서 바타시올로는 아주 소량의 섬세한 와인을 생산한다. 건과일과 잼과 같은 강렬한 향, 붉은 과일, 꽃과 향신료 등의 아로마와 풀바디한 미감, 훌륭한 밸런스를 보여주는 와인이다.
Serralunga d'Alba(세라룽가 달바)
붉은색의 풍화된 사암-석회암이며, 토양이 느슨해 뿌리가 땅속 아주 깊이까지 뻗는다. 탄닌이 다소 거친 한편 바디감과 구조감이 좋다. “모든 유명한 올드 바롤로는 세라룽가 달바에서 생산된다”라는 말이 있을 만큼 숙성력이 좋다. 세라룽가 달바에서 바타시올로는 '보스까레또'와 '브리꼴리나' 크뤼 바롤로를 생산한다.
Batasiolo Barolo Boscareto 바타시올로 바롤로 보스까레또
바타시올로가 보유한 크뤼 중 가장 넓은 면적의 싱글 빈야드 바롤로다. 풍부한 일조량이 선사하는 높은 품질의 포도가 생산되며, 밭 일부에서는 네비올로와 함께 모스카토 포도를 심어 크뤼급의 모스카토 다스티 와인을 함께 생산한다. 강렬하고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건조한 꽃과 과일의 향, 다양하고 복합적인 아로마, 부드러우면서도 고급스러운 탄닌이 특징이다.
Batasiolo Barolo Briccolina 바타시올로 바롤로 브리꼴리나
1헥타르 남짓한 작은 포도밭으로, 최대 9천 병의 와인이 생산된다. 세라룽가 달바 마을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크뤼인 브리꼴리나의 강렬함을 여과 없이 표현하는 와인이다. 네비올로 고유의 우아함과 강인함이 미감에서 훌륭한 조화를 이룬다.
안정감 속에서 꿰하는 새로운 시도들
최근 와이너리의 변화를 묻는 질문에 파올라는 “바롤로는 특별히 없다. 현재를 유지하는 것이 목표”라고 답했다. 바롤로에 있어서는 이미 추구하는 이상향을 실현해 가고 있기 때문으로 보이는데, 대신 그녀는 다른 흥미로운 근황을 전했다. 하나는 네비올로와 바르베라를 블렌딩하여 매우 아름다운 프로방스 스타일 로제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소식, 또 하나는 전통 샴페인 양조 방식으로 만드는 스파클링 와인인 알타 랑가 포도밭을 구매했다는 소식이다. 세계적으로 인기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로제 와인 시장에 도전장을 내미는 것, 그리고 와인 애호가층을 중심으로 최근 주목하기 시작한 알타 랑가 스파클링 와인 생산에 도전하는 것, 모두에서 바롤로의 유산을 지키는 한편 새로운 시도를 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물론 “한국 출시는 좀 더 두고 볼 일”이라고 조심스런 입장을 취했지만, 결과물이 바타시올로답다면 한국 소비자들은 두 팔 벌려 환영하지 않을까.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파올라는 이번 한국 방문에 대해 “아트인더글라스 그랜드 테이스팅에서 정말 많은 영(Young) 소믈리에와 새로운 세대의 와인업계 관계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이 모두 바롤로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고 바타시올로 와인에 대해 뜨거운 관심을 보여주어 아주 행복했다“라며 웃어 보였다. 세상 친절한 이 바롤로 브랜드는 아트인더글라스를 통해 화답을 받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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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신윤정, 사진/자료 제공 와이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