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마시는 것을 죄악시하지 않는 천고마비 계절이 돌아왔다. ‘천고마비’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의미지만 말도 살찔 만큼 먹을 것이 많으니 "마음껏 즐기라"는 말로, 조상님이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전하는 계절적 하트 시그널이라 할 수 있겠다. 식스팩에 대한 집착은 잠시 접어두고 가을을 즐기자. 어차피 여름은 이제 끝났다. 찬바람을 반기는 식도락가들이 가장 기다리는 것은 무엇일까? 누가 생각해도 굴이라는 것을 반박하지 못할 것이다. 오늘은 굴과 함께하면 더욱 맛있어지는 와인 종류를 3가지 소개하려고 한다.
굴과 함께할 와인 삼대천왕三大天王!!
1. 샤블리 Chablis
와인 애호가들에게 샤블리와 굴의 조합은 ‘굴블리’라는 신조어로 하나의 공식화가 되어 왔다. 샤르도네가 품종인 샤블리는 프랑스 부르고뉴의 북서쪽에 있는 지역의 이름이다. 이 지역에는 키메르지안(Kimmeridgian)이라 부르는 조개 화석이 많이 발견되는 토양이 있어 포도에 풍부한 미네랄리티를 부여한다. 더욱이 부르고뉴의 위쪽에 자리 잡고 있어 산도가 더 높고, 전통적으로 오크 터치를 지양하는 가벼운 스타일의 샤르도네를 생산해 굴을 위한 와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면 굴에는 어떤 샤블리를 마셔야 할까? 한동안 와인 애호가들의 필독서였던 ‘신의 물방울’을 보면, 굴에는 그랑 크뤼나 프리미에 크뤼 등급의 샤블리보다는 기본급의 샤블리가 좋다고 한다. 기본 등급의 샤블리는 오크 숙성을 거의 하지 않지만, 샤블리 그랑 크뤼나 샤블리 프리미에 크뤼는 대부분 오크 숙성을 한다. 전통적으로 오크 영향이 강하게 나지 않는 양조 방법을 선택함에도 미각이 발달한 미식가라면 좋은 등급의 값비싼 샤블리는 그로 인한 굴의 비릿함이 거슬릴 수 있다. 그렇다면! 바다 내음 가득한 서해의 잔 굴과 저렴한 샤블리는 지금껏 갈고 닦은 흡성대법(吸星大法)을 선보여줄 최고의 가성비 조합이 될 것이다.
2. 샴페인 Champagne
마리아주의 해결사!! 버블과 어울리지 않을 음식이 과연 있을까? 굴과 샴페인은 전통적인 페어링으로, 함께 먹고 마시게 되면 그 맛이 극대화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 많은 과학자가 ‘샴페인과 굴’을 테마로 맛의 상관관계를 연구했다. 과학 학술지 네이쳐(Nature)의 온라인 오픈 액세스 저널인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에 따르면, 결론적으로 굴과 샴페인의 만남의 키워드는 우마미 시너지(Umami Synergy)였다. 우마미는 혀에서 느낄 수 있는 5번째 맛인 ‘감칠맛’을 뜻한다. 샴페인 숙성 과정 중의 앙금 접촉(Lee Contact)을 통해 글루탐산(Glutamate/MSG)이 생겨나는데, 이 MSG가 굴에 있는 핵산을 구성하는 단위체인 뉴클레오타이드(Nucleotide)와 만나 맛의 상승효과, 즉 우마미 시너지를 만들어낸다는 연구 결과가 도출된 것이다. 굴과 블랑 드 블랑(Blanc de Blancs), 블랑 드 누아(Blanc de Noirs) 혹은 블렌디드 샴페인까지 모두 매칭하여 마셔보고 ‘나의 취향을 찾아보는 과정’은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될 것이다. 샴페인이면 뭔들, 하지만 과학자들이 플라스크까지 들이댄 마리아주라면 믿고 마실 수 있지 않을까?
3. 믈롱 블랑 Melon Blanc
프랑스를 대표하는 미식 페어링인 뮈스까데와 굴!! 뮈스까데(Muscadet), 믈롱 블랑(Melon Blanc), 믈롱 드 부르고뉴(Melon de Bourgogne) 또는 짧게 ‘믈롱(Melon)’이라고 불리는 이 품종은 프랑스의 정원인 루아르(Loire)의 가장 서쪽에 있는 페이 낭테(Pays Nantais) 지역의 대표적인 화이트 와인 품종이다. 해풍을 맞아 짭조름함이 가득한 믈롱은 이렇다 할 특징 없는 높은 산도의 중성적인 와인이었다. 향기로운 와인을 추구하는 와인 애호가들에겐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지만, 한랭 기후에 매년 강우량의 차가 심한 이 지역에서 포도를 키우는 농부들에게 추위에 강하고 일찍 수확할 수 있는 믈롱은 포기하기 어려운 품종이었을 것이다. 때문에 믈롱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양조자들은 돌파구를 찾았고, 쉬르 리(Sur Lie : 앙금 위에서의 숙성)라고 하는 양조기법으로 믈롱을 굴과는 떼어놓을 수 없는 와인으로 재탄생시켰다. 음식 매칭에는 ‘신토불이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다. 루아르 양조자들의 땀의 대가로 얻은 크리미한 텍스처, 효모 풍미와 함께 믈롱이 가진 산도와 미네랄리티는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굴과 함께했을 때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다. 특히나 뮈스까데 세브르 에 멘느(Muscadet Sevre et Maine)의 와인은 90퍼센트 이상이 쉬르 리를 거친 와인이라 하니 참고하길 바란다. 품종의 한계를 극복한 인간의 노력을 생각하며, 믈롱 블랑과 굴을 페어링하여 마셔보자. Cheers!
글 뽀노애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