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업계는 농업이 아니라 연애 사업’, ‘와인도 패션처럼 변해간다’, ‘모든 품종은 고유의 퍼퓸이 있다’ 등등. 단 2시간의 마스터 클래스 동안 단델리온 빈야드의 와인메이커 엘레나 브룩스(Elena Brooks)가 쏟아 놓은 어록 중 일부다. 그녀는 본인의 와인뿐만 아니라 남호주 와인 산지 전체를 소개한 진정한 ‘마스터’이자, 와인에서도 이야기 속에서도 ‘영감을 주는’ 와인메이커였다. 왜 그런 사람 있잖은가. 존재만으로 건강한 에너지가 전파되고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홀린 듯 빠져드는 사람. 지난 10월 11일(화)에 열린 단델리온 빈야드 마스터 클래스의 엘레나의 이야기 속으로 초대한다. 사랑에 빠질 준비부터 하고 입장하시라.
Bushing Monarch, 엘레나 브룩스
단델리온 빈야드의 와인메이커, 엘레나 브룩스의 와인과의 인연은 뿌리 깊은 곳까지 뻗어 있다. 불가리아 출신의 그녀는 어린 시절을 불가리아의 와이너리에서 보냈다. 와이너리의 마케팅과 교육을 담당했던 어머니 곁에서 11살 무렵부터 와인을 테이스팅했고, 자연스레 양조도 익히게 되었다. 처음으로 와인을 만들 것은 겨우 17세. 샤르도네 와인이었다고 한다. 조금 더 넓은 세상에서 와인 양조의 꿈을 펼치고 싶었던 엘레나는 와인 샘플을 만들어 호주 애들레이드 대학에 보냈다. 그리고 그 당찬 소녀는 애들레이드 대학에서 양조학을 공부할 기회를 잡았다. 이후 맥라렌 베일에 터전을 잡은 엘레나는 23세에 처음으로 정식 와인을 만들고, 남반구와 계절이 반대인 점을 활용하여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에서도 활동하는 플라잉 와인메이커가 되었다.
이번 한국 방문에서 엘레나는 마스터 클래스 등의 이벤트뿐만 아니라, 마침 방한한 남호주 수상이 주최한 리셉션 디너에서도 직접 와인을 선보였다. 그런 그녀를 상징한 것은 다름 아닌 코스튬. 붉은 망토와 그에 대비되는 파란색 왕관을 쓰고 와인을 소개하기에 여념이 없었는데, 코스튬의 정체는 바로 부슁 모나크(Bishing Monarch)다. 매년 열리는 맥라렌 베일 와인 쇼에서는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와인의 와인메이커에게 부슁 모나크의 타이틀을 수여하는데, 작년에 엘레나가 이 타이틀을 거머쥔 것이다. “어린 와인메이커였던 20대에 이 상을 정말 받고 싶어 했던 기억이 있다. 먼 훗날 받게 된다면 반드시 이 코스튬을 입고 전 세계를 누빌 것이라고 상상하곤 했다”라는 엘레나의 설명에서 꿈을 이루어 낸 자의 자부심과 여유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와인을 만든다는 것은 사랑에 빠진다는 것
단델리온 빈야드의 시작은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엘레나는 올드바인이 많은 남호주의 특징을 살려 100년 정도 된 올드바인으로 모던한 스타일의 와인을 만들고자 했다. 그렇다면 그녀가 생각하는 모던한 스타일의 와인은 무엇일까. 답은 ‘퍼퓸 온 더 노즈’. 엘레나는 “모든 품종은 고유의 향기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잘 표현해내는 와인이 바로 모던한 스타일의 와인”이라 설명했다. 사실 호주는 과거 진하고 무거운 와인을 많이 만들었지만, 최근에는 더 가볍고 알코올 도수가 낮은 와인쪽으로 흐름이 바뀌는 추세. 엘레나는 이에 대해 “단델리온 빈야드를 세울 당시 유행했던 진하고 묵직한 호주 와인이 아닌, 산미와 탄닌이 자연스러워 음식과 잘 어울리는 와인을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런 스타일의 와인이 트렌드가 되었다. 유행이 돌고 돈다는 점에서 와인도 하나의 패션과 같다”라는 견해를 보였다. 엘레나는 와인으로 어떠한 즐거움을 줄 수 있을지를 항상 고민한다며 이야기를 이어갔는데,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와인은 농업이 아니라 연애 사업”이라며 미소를 띠었다. 마스터 클래스에서 테이스팅한 와인들로 보아 와인메이커 엘레나 브룩스의 연애 사업은 매우 성공적으로 보인다.
호주 와인의 또 다른 트렌드로 그녀는 각 생산지에 적합한 포도 재배를 꼽았다. 엘레나가 처음 맥라렌 베일에서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는 한 지역에서 쉬라즈, 까베르네, 리슬링, 피노 누아를 다 만드는 게 자연스러웠지만, 그녀는 거기에서 벗어나고 싶었다고. 당시 선배 세대의 와인메이커들이 중점을 둔 부분이 ‘구대륙처럼 와인을 양조하는 방법’이었던 반면, 엘레나와 같은 젊은 와인메이커들은 ‘구대륙처럼 포도를 재배하는 방법’에 더 초점을 맞췄다고 한다. 그리고 각 지역에 맞는 품종으로 와인을 양조하여 결과적으로 더욱 흥미로운 와인을 생산하게 되었고, 오늘날에는 생산지마다 대표 품종을 하나씩은 가지게 되었다는 거다. 이든 밸리의 리슬링, 애들레이드 힐스의 샤르도네, 바로사 밸리와 맥라렌 베일의 쉬라즈, 쿠나와라의 까베르네 소비뇽 등 클래스에서 선보인 단델리온 빈야드의 모든 와인도 각 품종에 딱 맞는 지역이라는 맞춤형 옷을 입고 있었다.
민들레 홀씨에 소원을 담아
단델리온 와인의 레이블에는 하나둘 흩날리기 시작하는 민들레(단델리온)가 있다. 민들레는 여러 의미를 담고 있는데, 우선 단델리온 빈야드의 유기농 재배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제임스 할리데이의 제자이자 와인 평론가인 엘레나의 남편은 미니멀리스트로서 포도밭 관리를 돕는데, 엘레나는 “민들레와 같이 잡초로 치부되곤 하는 식물들이 공기나 떼루아와 같은 환경적 요소들을 좋은 방향으로 바꿔준다고 믿는 사람”이라며 그를 소개했다. 실제로 제초제와 같은 화학 물질을 사용하지 않는 단델리온 빈야드에서는 민들레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민들레의 또 다른 의미는 민들레 홀씨를 불며 소원을 비는 남호주 지역의 전통에서 착안했다. 민들레 홀씨가 날아가는 방향으로 소원을 비는 문화인데, 레이블에 있는 ‘wish you were here…’ 문구에서 애틋함이 전해진다.
한 짝의 하이힐과 한 짝의 작업화
시스터스 런은 단델리온 빈야드를 설립하기 이전부터 바로사에서 만들어 온 와인이다. 어찌 보면 와인메이커 엘레나 브룩스의 초창기 와인인 셈인데, 단델리온보다 좀 더 친근하고 접근성 좋은 스타일로 만든다고 한다. 즉 ‘가성비’가 포인트. 단델리온에서는 포도가 생산된 지역과 포도밭 등의 떼루아와 포도 그 자체를 강조한다면 시스터즈 런에서는 “다양한 포도로 하나의 스타일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엘레나는 설명했다. 레이블에는 작업화와 하이힐이 한 짝씩 있다. 외부 일정이 있는 날이면 우아하게 하이힐을 신고 나갔다가 와이너리로 돌아와서는 곧장 작업화로 갈아신곤 하는 엘레나를 상징하는 레이블이라고. 하이힐과 작업화를 번갈아 신으며 와이너리 안밖으로 동분서주하는 와인메이커, 엘레나 브룩스의 와인을 소개한다.
마스터 클래스에서 선보인 와인들
시스터스 런 선데이 슬리퍼스 맥라렌 베일 샤르도네 Sister’s Run Sunday Slippers Chardonnay
시스터스 런 베들레헴 블럭 바로사 까베르네 소비뇽 Sister’s Run Bethlehem Block Cabernet Sauvignon
시스터스 런 올드 테스타멘트 쿠나와라 까베르네 소비뇽 Sister’s Run Old Testament Cabernet Sauvignon
단델리온 빈야드 인챈티드 가든 에덴 밸리 리슬링 Dandelion Vineyards Enchanted Garden Eden Valley Riesling
단델리온 빈야드 트와일라잇 애들레이드 힐즈 샤르도네 Dandelion Vineyards Twilight Adelaide Hills Chardonnay
단델리온 빈야드 라이오네스 맥라렌 베일 쉬라즈 Dandelion Vineyards Lioness McLaren Vale Shiraz
단델리온 빈야드 라이온하트 바로사 쉬라즈 Dandelion Vineyards Lionheart Barossa Shiraz
단델리온 빈야드 파이어호크 맥라렌 베일 쉬라즈 Dandelion Vineyards Firehawk Mclaren Vale Shiraz
단델리온 빈야드 프라이드 오브 플뢰리유 까베르네 소비뇽 Dandelion Vineyards Pride of the Fleurieu Cabernet Sauvignon
수입사 비노킴즈
▶인스타그램 @vinokims
사진 제공 비노킴즈, 글/사진 신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