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은 우리의 손에 들어온 뒤에도 진화를 거듭한다. 셀러 속에서, 서서히 자신의 아름다움을 발현해 가다 어느 순간 정점을 찍고는 천천히 힘을 잃어 가는 와인은 우리의 삶과도 닮아 있다. 와인의 생애주기, 그 속엔 어떤 비밀이 있을까?
병입 숙성
병입 숙성이란 와인이 병에 담긴 상태에서 숙성되는 것을 일컫는 말로 영어로는 ‘Aging’ 혹은 ‘Cellaring’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와인을 병입할 때 널리 사용되는 코르크 마개의 경우, 코르크에 있는 미세한 구멍을 통해 산소가 투과되어 미세 산화 효과가 일어난다. 산화가 일어남에 따라 와인은 색상, 풍미와 향에서 진화 과정을 겪는다.
레드 와인은 숙성됨에 따라 타닌이 점차 부드러워지고, 거친 질감이 둥글어지며 구조감도 발전한다. 색상의 깊이가 옅어지면서 가장자리에서 주황색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결국 갈색으로 변한다. 화이트 와인은 그린이나 레몬, 골드빛에서 호박색으로 진해지며 마지막에는 갈색으로 변한다. 드라이 화이트 와인과 로제 와인은 대개 적정 음용 시기가 빠르기 때문에 병입 숙성을 오래 거치지 않고 어릴 때 마신다. 샴페인을 포함한 일부 스파클링 와인과, 루아르의 산도가 높은 슈냉 블랑, 소테른, 토카이 아쑤(Tokaji Aszu)와 같은 귀부 와인, 독일 아우스레제(Auslese) 이상 등급의 리슬링 등 산도와 당도가 높은 화이트 와인은 장기 숙성이 가능하며, 와인의 품질과 숙성 가능성에 따라 50년 이상까지 좋은 맛을 유지하기도 한다.
숙성 풍미
와인 본연이 가진 아로마를 ‘와인의 1차 향’, 숙성이 진행되며 생기는 풍미를 ‘와인의 3차 향’이라고 일컫는다. 1차 향은 포도 본연이 가진 순수한 과일 향이 위주라면, 와인이 성숙하면서 나타나는 3차 향은 보다 복잡 미묘하다. 예를 들어 카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는 말린 담배 잎, 시가 상자 등의 풍미를, 시라는 절인 고기 등의 동물적인 향과 제비꽃 향을 풍긴다. 한편 네비올로와 산지오베제는 새콤한 체리와 장미 향으로 발전한다. 피노 누아는 낙엽, 흙 등의 아로마를 얻으며, 리슬링과 슈냉 블랑은 캐모마일 등 허브 풍미를 3차 향으로 얻을 수 있다.
장기 숙성 잠재력
장기 숙성에 적합한 와인은 많지 않다. 모든 와인에는 가장 마시기 좋은 시기인 ‘절정기’가 있다. 시중에 있는 와인의 90% 이상은 출시 후 곧 절정기를 맞이한다. 10년 이상 장기 숙성해도 신선함을 보여주는 와인은 희소하고 특별하다. 특히 레드 와인의 숙성 잠재력에는 산도(pH 레벨)와 타닌, 당도, 알코올 햠량이 주요한 지표가 된다. 일반적으로 산도가 높은(pH 레벨이 낮은) 와인이 장기 숙성에 적합하다. 숙성이 더디고 부패의 위험이 낮기 때문에 숙성 잠재력을 평가하는 데 좋은 지침이 된다. 이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지표는 타닌의 함량이다. 타닌이 많을수록 와인의 산화를 더디게 만든다. 당도와 알코올 함량 또한 숙성 잠재력과 비례한다. 브랜디를 첨가한 마데이라(Madeira) 와인이 좋은 예이다.
고급 스파클링 와인, 특히 샴페인 방식으로 만든 스파클링 와인도 오래 숙성할 수 있다. 여기에는 일부 화이트 스파클링 와인과 로제 스파클링 와인도 포함된다. 2차 발효 후 남은 효모 찌꺼기와 함께 병입하면 수십 년 동안 보관과 숙성이 가능하다. 효모 찌꺼기는 산화를 방지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오랜 병 숙성을 거친 후 침전물을 제거한 스파클링 와인은 이스트 풍미가 한 층 강조되고 바디감과 구조감이 좋아지며, 거품도 더 미세하고 부드러워진다.
보관 온도
와인을 보관할때는 11.5~13.9℃(53~57°F)의 어둡고 시원한 환경이 필요하다. 느리고 고른 숙성을 위해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온도가 높을수록 와인의 산화 속도가 빨라지며, 와인을 익어버리게 하여 과일 맛이 흐릿해지고 구운 과일같은 맛이 나게 된다. 또한 자외선은 와인을 상하게 할 수 있으므로 어두운 환경도 중요하다.
자료 조사·정리 이새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