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글라스 와인'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와인바가 많아졌다. 100여 종에 달하는 글라스 와인을 보유한 전문 바(Bar)나, 고가의 프리미엄 와인을 글라스 단위로 즐길 수 있는 곳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글라스 와인을 본격적으로 선보이는 전국의 업장 7곳의 문을 두드려 개성 넘치는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레끌레드크리스탈 제주점 & 서귀포중문점 - 제주
2023년 3월, '레끌레드크리스탈 서귀포중문점'의 오픈 당시는 글라스 와인을 다이닝에서 페어링 정도로만 접할 수 있던 시절이었다. 레끌레드크리스탈 제주점과 서귀포중문점을 운영 중인 박경진 소믈리에는 제주도에서 특히 접하기 어려운 부르고뉴와 샴페인을 전문으로 하는 업장을 꿈꾸었다고 한다. 도멘 비조(Domaine Bizot), 아르망 후소(Armand Rousseau) 등 흔히 접하기 어려운 생산자들의 와인을 글라스 단위로 판매하면 너무나 매력적일 것 같았다고. 60여 종의 글라스 와인리스트를 시작으로 현재는 100여 종의 글라스 와인을 취급하는 서귀포중문점이 탄생한 배경이다. 지금은 제주점을 중심으로 두 업장이 함께 운영되고 있다.

글라스 와인 서비스는 소믈리에의 역량이 많이 요구된다. 개봉된 와인은 쉽게 변질될 수 있어 와인의 품질을 정확히 체크할 수 있어야 하고, 각각의 와인마다 고유한 특징, 히스토리를 파악해야 글라스 와인 서비스가 더욱 빛날 수 있다. 이곳에서는 코라뱅(Coravin)을 이용한 서비스를 기본으로, 왁스를 녹여서 와인병을 2차 밀봉해 눕혀서 보관한다. 오래 보관된 상태라면 서비스 전 반드시 소믈리에의 테이스팅을 거친다. 와인잔은 크리스탈와인컴퍼니에서 수입하는 잘토를 종류별로 사용하고 있다.
글라스 와인리스트에는 유명한 생산자의 와인을 절반,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특출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생산자의 와인을 절반 선정한다. 많은 고객이 경험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샵에서 구하기 어려운 와인들, 극소량 생산되는 와인들을 위주로 구성하고 있다. 업장이 제주도에 있다 보니 '글라스 와인바'라는 사실이 아직 많이 알려지진 않았다고. 박경진 소믈리에는 "와인도 위스키처럼 글라스 단위로 여러 종류를 마실 수 참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요즘 그 생각이 트렌드가 되어가고 있어 기쁘다"고 전해 왔다.

레끌레드크리스탈 서귀포중문점 & 제주점
▶인스타그램 lesclefsdecrystal_seogwipo, lesclefsdecrystal_jejusi
베러댄보틀 - 부산 민락동
와인 편집샵으로 시작한 베러댄보틀. 와인업계 경력이 있는 최용수 대표는 손님들에게 '와인을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는 핸들링'에 대해 길게 설명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한다. 와인샵을 운영하며 자연스레 갖춰진 멋진 와인리스트를 이왕이면 직접 서비스해 보자는 결심을 하고 바를 오픈했다. 작년, 베러댄보틀은 현재의 공간으로 이전하면서 샵 & 바로 운영되고 있으며, 와인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다양한 연령층이 방문하고 있다.

베러댄보틀에서는 스파클링, 화이트, 레드 와인을 아울러 총 18~20 종의 와인을 글라스 단위로 만나볼 수 있다. 일반적인 업장에서 글라스 와인으로 만나보기 어려운 귀한 와인들로 준비한다. 최근에는 에글리 우리에(Egly-Ouriet), 피에르 피터(Pierre Peters) 같은 고급 샴페인들의 인기가 높은 편이다. 와인 애호가로 시작해 소믈리에, 수입사 와인 마케터 등 최대표의 다양한 와인 경험을 살려, 와인을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다채로운 경험의 가치와 기쁨을 전달하는 것이 이곳의 목표다. 현재는 2,000종이 넘는 다양한 국가와 지역 품종의 주류를 소개하고 있다. 메종조 샤퀴테리, 김소영 아티장의 치즈 등 와인에 잘 어우러지는 안주류를 취급하고 있으며 외부 음식 반입도 가능하다.

베러댄보틀
▶인스타그램 better_than_bottle
르글라스 - 서울 압구정
르글라스(Le Glass)는 '한 잔이면 충분하다(One Glass is Enough)'라는 콘셉트를 가진 올글라스(All-Glass) 와인바이다. 명품 와인부터 숨겨져 있던 전 세계의 가성비 와인들까지 다양한 와인을 한 잔씩 마셔볼 수 있다. 르글라스에서는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특별한 서비스가 있는데, 리델, 잘토, 지허 등 10여 개의 명품 글라스 브랜드의 와인잔 30여 종 중 직접 잔을 선택해 사용할 수 있다. 르글라스의 곽성진 대표는 "전 세계적으로 건강하면서도 가치 있는 경험을 추구하는 소비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글라스 와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라며 말을 이었다. "와인을 보틀로 한 병씩 주문해야 하는 부담을 줄이고 일반인부터 와인 애호가분들이 더욱 재미있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와인 놀이터를 만들고 싶었다"라고 올글라스 바를 운영하게 된 계기를 소개했다.

르글라스는 빈티지 별로 준비된 프랑스의 명품 그랑 크뤼부터 조지아, 그리스, 남아공 등 역사 속 가치 있는 와인들까지 130여 종의 와인들을 선보이고 있다. 1, 2달에 한 번씩 희소성 있는 생산자, 시음 적기의 빈티지 와인들로 꾸준히 리스트를 갱신한다. 서비스 전, 반드시 소믈리에들이 테이스팅하여 바틀 컨디션을 체크하고 있으며, 30여 가지의 다양한 명품 글라스를 활용해 최적의 맛과 풍미를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룸에는 다양한 명품 와인병을 줄줄이 깨뜨려 놓은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데, '이제는 병으로 와인을 마시지 말고 깨부숴서 잔으로 마시자'라는 르글라스의 철학을 담았다.

르글라스
▶인스타그램 leglass_official
더페어링 - 서울 잠실
더페어링은 프리미엄 와인을 잔 단위로 경험할 수 있는 잠실의 다이닝 레스토랑이다. 제철 식재료와 한국의 발효 식재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요리, 그리고 메뉴마다 섬세하게 어우러지는 와인 페어링이 특징이다. 더페어링은 '음식과 와인을 한 쌍으로 즐기는 문화'를 국내에 알리고자 글라스 와인을 중심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1,000여 종 이상의 와인을 글라스 와인으로 즐길 수 있어 방문하는 이들에게 폭넓은 선택지를 제시한다.
데일리 와인부터 샤토 페트뤼스(Château Pétrus), 5대 샤토, 스택스 립(Stags' Leap) 등 세계적인 아이코닉 와인까지 다양한 와인 라인업을 갖추고 있다. 고가의 프리미엄 와인도 글라스 단위로 경험할 수 있어,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이곳의 조재호 헤드 소믈리에는 2024년 '코리아 소믈리에 오브 더 이어'에서 2위 수상, CMS 어드밴스드 소믈리에 인증을 획득한 실력파로, 모수서울, 정식당, 르몽뒤뱅 등 국내 유수의 레스토랑에서 경력을 쌓았다. 칠레의 프리미엄 와인 바로네사 P.(Baronesa P.)의 브랜드 앰배서더이기도 하다. 전문 소믈리에의 추천을 받아 취향에 맞는 와인을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점이 더페어링의 큰 장점이다. 또한 정기적으로 열리는 페어링 디너와 와인 테이스팅 행사를 통해 와인 애호가들의 커뮤니티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더페어링
▶인스타그램 the_pairing_
루루피피글루글루 - 서울 성수
루루피피글루글루(lulupipiglouglou)는 누구나 놀고 마시고 즐기는 유니크한 내추럴 글라스 와인바다. 개성 넘치는 내추럴 와인의 매력을 글라스로 경험할 수 있다. 가격 접근성을 이유로 내추럴 와인을 어려워하는 이들에게, 다양한 글라스 와인리스트를 제공함으로써 진입 장벽을 낮추는 것이 이곳의 장점이다. 파리 거주 경험이 있는 셰프가 운영하는 곳답게, 프렌치 음식과 내추럴 와인의 페어링을 즐길 수 있다. 주인장은 파리의 내추럴 와인바를 다녀보며, 다양하고 재미있는 와인들을 글라스로 즐기는 문화가 참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가장 편하고 힙하게 와인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바로 내추럴 와인바라는 점도 좋았다. 파리의 분위기를 그대로 옮겨, 가볍게 들러서 한 잔씩 즐기며 자연스럽게 취향을 발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루루피피글루글루는 매일 6~8종 이상의 내추럴 와인을 글라스 와인용으로 오픈한다. 최근 출시된 와인들 가운데 주인장이 좋아한 것, 그리고 손님들이 좋아할 만한 것을 엄선한다. 바 테이블에는 테이블 칠러를 설치해, 누구나 그날의 글라스 리스트를 바로 확인하고 골라 마실 수 있다. 편하게 보고, 가볍게 고르고, 즐겁게 한 잔. 루루피피글루글루의 자유로운 스타일이다.

루루피피글루글루
▶인스타그램 lulu.pipi.glouglou
마뚜라레 - 제주 제주시
이탈리아어로 '숙성하다'라는 뜻의 '마뚜라레'는 제주의 드라이에이징 숙성육 전문 와인바이다. 주인장 부부가 오랜 시간에 걸쳐 준비한 음식과 와인을 만날 수 있는 '작지만 취향 가득한 공간'이다. 와인 애호가만큼이나 입문자들도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와인 한 병을 마시기 부담스러운 날, 그날의 무드와 기분에 따라 골라서 마실 수 있도록, 보여주기식 글라스 와인이 아닌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한다.

코라뱅을 종류별로 사용하여, 레드와 화이트 와인을 각각 4~5종, 하이엔드 와인 2종, 그리고 포트 와인을 포함하여 총 12~15가지의 글라스 와인을 준비한다. 대륙별, 국가별, 품종별, 캐릭터별로 나누어 '누구나 한두 가지 본인의 취향에 맞는 와인을 찾을 수 있게'를 모토로 구성한다. 하이엔드 와인의 경우, 주인장 부부가 좋아하는 와인 중, 가격 부담이 있을 법한 고가의 와인을 선정하여 글라스 단위로 선보이고 있다. 다양한 하이엔드 와인을 소개하기 위해, 소진 시에는 다른 와인으로 교체한다. 메뉴와 와인을 고르는 동안에는 정성스러운 식전주(Apéritif) 한 잔이 내어진다.
주인장 부부가 해외에서 오랜 기간 일하며 쌓인 노하우와 노력이 바탕이 되어, 셰프의 고향인 제주도에서 지금의 '마뚜라레'가 탄생했다.

마뚜라레
▶인스타그램 maturare_jeju
인 줄라이 - 부산 광안동
글라스 와인 전문점 '인 줄라이'는 커피 7년, 와인 1n년 경력의 전문 소믈리에 주인장이 운영하는 곳이다. 주인장은 10년 넘게 와인을 업으로 삼으면서, 국내에서 와인이 너무 무겁게 인식되는 것이 안타까웠다고 한다. 와인이 좀 더 캐주얼하게 느껴질 수 있도록, 좋은 가격으로 다양한 와인을 선보이자는 바램을 담아 '인 줄라이'가 만들어졌다.

이곳에서는 매달 달라지는 6종의 글라스 와인을 통해, 늘 새로운 품종을 경험해 볼 수 있다. 스파클링과 스위트 와인 1종씩, 화이트와 레드 와인 2종씩 구성하며, 7,800원에서 12,800원 사이의 가성비 좋은 글라스 와인을 선보인다. 글라스 와인 한 잔을 주문하더라도, 와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곁들이는 점이 매우 세심하다. 달이 바뀌면 글라스 와인의 주제도 달라진다. 국가별 비교, 품종별 비교, 단일 품종 vs 블렌딩 와인 테이스팅 등 유익하고 흥미로운 테마가 눈길을 끈다. 와인 보존 장비를 사용하지 않고, 와인이 열려 있는 동안에만 제공하여 와인의 본질을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서비스하고 있다. 주인장은 스스로를 소믈리에보다는 와인 큐레이터라고 칭한다. 음식보다는 와인에 집중해 손님들의 입맛에 맞는 와인을 골라주는 '인 줄라이'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단어다.

인 줄라이
▶인스타그램 inn_july
정리 이새미 글·사진 각 업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