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ēnī. Vīdī. Vīcī.

Written by: 뽀노애미

우리의 간은 2022년 연말 전투에서 처절하게 잘 싸워왔다. 행복했지만 치열한 전투로 인하여 휴식이 필요한 우리의 영웅 '간'은, 그의 주군이 세운 2023년 “새해 결심(New Year's Resolution)” 리스트에서 “건강을 위해 술을 줄이고 운동을 열심히 하자"라는 절대로 지켜지지 않을 계획을 0번으로 약속 받고, 또 '신년회'에서 교전 중일 것이다. 올 한 해도 승리할 수 있도록 “지피지기 백전백승知彼知己百戰百勝”의 마음으로 와인을 공부하고 지식으로 무장하여 계묘년 연말 전략을 슬슬 준비해 보는 것은 어떨까?

지난번에는 와인의 정의와 양조를 알아보았다. 특히나 와인 양조에서, 화이트 와인과 레드 와인의 프로세스 중 '압착(pressing)과 알코올 발효(fermentation)'의 순서가 다른 이유는 아주 잘 이해하게 되었을 것이라 믿는다. 그런데 한 가지 더 이야기해보자면, 화이트 와인에는 블랑 드 누아 (Blanc de Noirs)와 블랑 드 블랑 (Blanc de Blancs) 이 있다. 말 그대로 보자면 블랑 드 누아는 적포도 품종으로 만든 화이트 와인, 블랑 드 블랑은 청포도로 만든 화이트 와인이다.

이 중 우리의 머릿속을 혼미하게 하는 것은 바로 블랑 드 누아(Blanc de Noirs)!! “붉은 포도즙으로 어떻게 화이트 와인을 만들지?”라는 질문으로 다시 복잡해질 것 같지만, 사실 별로 그렇지 않다. 레드 와인의 붉은 색소는 껍질에 함유된 것으로 이것을 발효 전에 미리 압착하여 분리하게 되면 화이트 와인과 똑같은 색을 얻어낼 수 있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포도의 속살만을 가지고 양조하기 때문에 투명한 과즙을 얻을 수 있고, 그래도 적포도였던 그 특성이 남아 일반 청포도로 만든 와인보다 바디감이 있는 것은 또한 당연할 것이다. 그러면 복습은 이것으로 마치고 오늘의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포도의 생장주기

작년 프랑스에서는 때아닌 4월 한파로 와인 농가에 비상이 걸렸다는 소식이 아침 뉴스에도 나올 만큼 큰 이슈였다. 왜 가장 추운 달인 '12월-1월'도 멀쩡하게 잘 버틴 포도나무들이 4월 한파에 맥을 못 추고 전 세계적인 이슈가 된 것일까? 이것은 포도의 '생장주기'를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포도의 연간 성장 주기 (북반구 기준) 
포도나무의 연간 성장 주기는 아래의 6단계에 따라 나뉘며, 단계마다 꼭 알아야 할 부분을 짧게 요약해 보도록 하겠다.

①발아(3월~4월)
봄에 포도나무에 물이 오르기 시작하고, 포도나무 가지에서 새순이 발아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새순은 아주 연약하여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데, 이때 냉해를 입어 새순이 파괴되면 그 손상된 부분에서는 다시 순이 나지 않기 때문에 수확량의 상당 부분이 감소하게 된다. 

②순과 잎의 성장(3월~5월) 
새순이 계속 자라나는 시기로, 일부 재배자들은 아래쪽으로 향한 순들을 가지치기해 모두 위쪽으로 자라도록 하여 잠재적인 생산량을 줄이고 포도의 품질을 높이는 전략을 쓰기도 한다. 

③개화, 결과 (5월~6월)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힌다. 포도나무의 꽃은 완벽한 꽃(Perfect Flower)이라 불리며, 벌이 필요 없이 스스로 수분을 한다. 만약 이 시기에 춥고 비가 온다면 꽃이 수정되지 못하거나, 작고 씨 없는 열매가 맺히기도 해서 생산량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④베레종, 열매의 숙성 (7월~9월) 
한여름에서 늦여름 사이 포도가 익어가면서 “색이 변하는 시기”를 베레종(Vérasion)이라고 한다. 베레종이 시작되기 직전에 일부 포도 재배자들은 선택된 과실에 에너지를 집중시키기 위해 나머지를 솎아내는데, 이를 그린 하베스트(Green Harvest)라고 한다. 포도가 익어갈수록 적포도는 보라색으로 청포도는 노란색으로 변한다. 

⑤수확(9~11월)
포도알의 당도가 올라가면 재배자가 결정한 열매의 숙성 시기에 따라 포도를 수확한다. 예를 들어, 높은 당도의 열매를 얻기 위해 수확 시기를 늦춰서 과실의 수분을 증발시키거나 산도를 유지하기 위해 조금 일찍 수확하기도 한다. 이 시기는 건조한 날씨 조건이 가장 이상적이다. 수확 전에 비가 오면 포도가 수분을 너무 많이 머금어 포도즙이 희석되기도 하고, 습도가 높으면 곰팡이에 노출될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⑥휴면기(12~3월)
날씨가 추워지면서, 포도나무는 뿌리에 탄수화물을 저장하고 모든 성장을 끝내며 겨울 휴면기에 접어든다. 사실 이때 재배자는 수확 외에 가장 비싸고 어려운 활동인 겨울 가지치기를 한다. 가지치기는 전년도의 가지를 솎아내며, 새싹을 돋우기에 최적의 가지만 선택하여 남겨두기 위함이다.

포도의 생장주기를 보면 재배자들은 1년 내내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매달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앞의 “2022년 프랑스 봄 한파로 인한 와인 농가의 이슈”를 포도의 생장주기에 반영하여 풀이해 보자. '지구 온난화'로 이른 봄을 맞이한 포도나무가 이미 '발아'를 했는데 늦은 4월 한파로 인한 서리로 새순이 손상되어 포도의 생산량이 급격하게 감소하고, 그로 인해 2022 빈티지 와인은 가격상승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신문의 헤드라인만 읽어봐도 알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프랑스 냉해를 화두로 포도의 생장주기를 알아보았는데, 그러면 냉해의 위험이 없는 지역도 있을까? 이런 양조용 포도에 필요한 요소는 무엇인지도 알아보자. 

포도의 생장환경

포도의 생장 환경에서 기후가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기후적 영향이라는 것은 고도, 해류, 강, 안개, 일교차, 언덕의 방향이나 토양 등등 많은 요인이 있지만 가장 큰 상위 영역인 위도를 하나의 큰 틀로 묶어서 이해해 보자.

출처: 위키피디아

지도에 표시된 것이 일명 '와인 벨트'라고 하는 양조용 포도가 재배되기 좋은 조건의 위도다. 북위 남위 공통으로 30도에서 50도 사이로, 잘 살펴보면 이 안에 와인의 강국이라고 하는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미국, 호주, 칠레, 아르헨티나 등이 있을 뿐만 아니라 생각지 못하게도 '세계 탑 10 안에 랭킹된 포도밭의 면적을 자랑하는 아시아 국가'가 있다. 바로 중국이다. 2022년 4월에 발표된 'STATE OF THE WORLD VINE AND WINE SECTOR 2021'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이 와인을 생산하는 포도밭의 면적은 세계 3위이고, 와인 소비는 7위로 가장 짧은 시간에 많은 서방 국가를 따라잡은 신흥 와인 강국이 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중국 와인은 찾아보기 힘들고 그 수요도 많지 않다. 하지만 앞으로 기대할 만한 아시아 최대의 와인 산지이다.

다시 위도로 돌아와서, 일반적으로 기후는 적도로 갈수록 더욱 따뜻하고 극으로 갈수록 서늘하게 된다. 그러면 냉해가 적을 수밖에 없는 낮은 위도에서 포도밭을 일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란 생각이 들기도 하겠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낮은 위도, 즉 따뜻한 곳의 포도는 일반적으로 서늘한 곳의 포도보다 더 잘 익는다. 완숙된 달콤한 포도에서는 상대적으로 신맛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포도뿐만 아니라 따뜻한 곳의 과일은 신맛보다는 단맛이 더 강하다. 좋은 와인을 만들기 위해 포도가 가지고 있는 당분이 하나의 필요 조건이 될 수 있지만, 모든 것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맛있는 와인은 당도와 산도 그리고 탄닌의 3가지 요소가 풍미의 균형을 이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각별히 산도와 당도의 밸런스를 맞추기에 초점을 두고 더운 지방의 와인 생산자들은 과실의 산도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는데, 그중 하나는 '밤 수확'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 산(Acidity)은 낮은(야간) 온도에서 형성되고 포도나무가 고온에서 호흡할 때 대사된다. 그런 이유로 산이 대사가 되기 전인 밤부터 새벽까지를 수확 시간으로 잡아 산도를 유지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밤에 포도를 수확하는 캘리포니아의 Ceja Vineyards (출처: https://www.cejavineyards.com/)

반대로, 위도가 높아질수록 포도의 완숙을 기대하기란 어려워진다. 위도가 높다는 것은 북반구는 북극과 남반구는 남극과 가까워지기 때문에 서늘한 기후를 가지게 된다는 말이다. 모든 과일이 그러하듯이 포도도 서늘한 곳으로 갈수록 산도는 높아지나 당도가 그만큼 올라가기란 힘든 일이다. 결과적으로 서늘한 기온의 포도 재배자들의 미션은 포도의 당도를 높이는 것이었고, 이러한 당도에 대한 열망은 일조량 극대화를 기대하며 사람이 접근하기조차 힘든 가파른 경사에 일군 포도밭이나, 독일의 와인 등급체계인 *프래디카츠바인(Prädikatswein)에 아주 잘 나타나 있다. 서늘한 기후대에 위치한 독일의 와인은 수확한 포도의 당도가 높을수록 좋은 등급을 받으니 말이다.

정리해 보자면 따뜻한 곳에서 재배된 포도는 당도는 높으나 산도는 낮고, 반면에 서늘한 곳에서 재배된 포도는 산도는 높으나 당도가 낮다. 이에 따라 각 지역의 재배자들은 포도를 수확하는 시기를 아주 섬세하게 정할 것이며 자연적으로 얻지 못한 당분과 산은, 양조자들이 *가산(Acidification)이나 *가당(Chaptalisation) 또는 *탈산(De-acidification)등을 고려하여 균형감이 좋은 맛있는 와인을 만들려고 노력할 것이다. 

지금까지 포도의 생장 과정과 포도 재배 지역, 기후가 포도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았다. 포도의 성장 주기를 서술하다 보니, 그 한 단계 한 단계에서 재배자가 뿌린 땀의 노고와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고 좋은 와인을 만들기 위한 양조자의 고군분투가 느껴진다. 다음에는 와인메이커들의 노력의 결과가 가득한 와인의 종류와 스타일 그리고 와인의 보관 등을 알아보도록 하겠다.

*친절한 용어 설명
1.가산(Acidification): 더운 지역에서 대부분 시행되고 있으며 주석산(Tartaric Acid)를 첨가한다. 
2.가당(Enrichment,Chaptalisation): 포도당이나 설탕 등을 넣어 당도를 높인다. 
3.탈산(De-acidification): 주로 서늘한 지역에서 다양한 알칼리(Alkali)를 첨가하여 산도를 낮춘다. 
4.프래디카츠바인(Prädikatswein): 독일의 와인 등급체계이다. 수확한 포도의 당도에 따라 품질등급이 결정된다. 

뽀노애미

  • 네이버 블로그 공유하기
  • 네이버 밴드에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기사 공개일 : 2023년 01월 27일
c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