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들의 와인 토카이 아수
설탕이 지금처럼 흔하지 않았던 시절엔 단맛을 오직 과일을 통해서만 맛볼 수 있었다. 과일을 응축해 만든, 꿀물보다도 더 진하고 깊은 향과 복합미를 지닌 토카이 아수는 오직 귀족과 왕가에게만 허락된 특별한 음료였다. 과거의 미의 기준과 부의 상징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는데, 식량이 부족한 때였으니 충분한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지방 축적 즉, 배가 나오면 모두의 부러움을 샀으며, 생계를 위한 고된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상징할 수 있는 창백한 피부색 또한 찬양받았다. 여기에 하나 더, 단 음식으로 상한 검은 치아를 특권 계층만이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이를 갖지 못한 일반인들은 치아에 일부러 검은 칠을 했다고 전해질 정도. 물론 요즘의 미의 기준은 이것과는 다르지만 루이 14세가 “왕들이 마시는 와인이자 와인의 왕(The wine of Kings, and the King of wines)”이라고 칭한 토카이 아수는 시절이 바뀌어도 여전히 왕가를 비롯한 와인 애호가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영국의 찰스 3세는 로얄 토카이 블루라벨을 즐겨 마시고, 버킹엄 에디션이 판매되고 있으며 세상에서 가장 귀한 와인 중 한 종류인 토카이 에센시아는 와인 애호가들의 셀러에 빠지지 않으며 전 세계의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글라스가 아닌 스푼 단위로 판매되고 있다.
며칠 전 로얄 토카이의 매니징 디렉터인 찰스 마운트(Charles Mount)를 만나 세계가 사랑하는 로얄 토카이 아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찰스는 다년간 LVMH에서 마케팅과 회계를 담당했으며, 크룩(Krug)의 브랜드 매니저로 샴페인 끌로 당보네(Clos d’Ambonnay)의 런칭을 성공적으로 이끈 장본인이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가 처음으로 맛본 와인은 샤토 디켐(Château d’Yquem)이라고. 어렸을 때부터 이미 농염한 인생의 단맛을 보고 세상의 온갖 귀한 와인을 다 다루어 본 그의 선택은 토카이 아수. 로얄 토카이를 맛본 뒤 그 잠재성에 반해 2011년 이곳에 합류했다.
토카이 르네상스의 주역, 로얄 토카이
로얄 토카이는 단순히 와인을 잘 만드는 곳 그 이상의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곳이기에 그의 선택에 더 크게 공감할 수 있다. 로얄 토카이는 공산주의 이후 처음으로 세워진, 토카이 르네상스를 이룬 역사적인 와이너리다. 헝가리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맞이한 공산화의 여파로 와인 산업 또한 손해를 입었다. 공산 정부는 그동안 헝가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품질보다 양에 집중했기 때문. 사회주의가 몰락하자 세계 최고의 와인 평론가인 휴 존슨(Hugh Johnson)은 토카이 지역의 잠재성에 주목했고, 그를 주축으로 1989년 해외 투자 자본을 받아 로얄 토카이 와인 컴퍼니를 설립했다. 그 덕에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산지이며 12세기부터 와인을 만들어왔던 토카이에 다시 새바람이 불어왔다. 900년 전에 설립된 역사를 자랑하는 약 1km에 달하는 지하 셀러가 있는 로얄 토카이는 과거의 영광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세계 정상의 와인들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로얄 토카이는 1990년에 처음으로 헝가리에 포도밭을 구매해 재생산을 시도했으며 이제는 헝가리 최초로 와인 리뷰에서 가장 많은 어워드를 획득하고 드링크 비즈니스 28위, 와인앤스프릿 탑 100 등에 등재되는 등 새로운 영애를 얻고 있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상징적인 와이너리다.
토카이 와인 등급
토카이 아수를 구매할 땐 흔히 숫자가 높을수록 높은 등급의 와인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일견 맞는 말이다. 귀부병에 걸린 아수 포도는 도저히 수분을 착즙할 수 없을 정도로 당분이 농축되어 포도즙이나 베이스 와인에 당분을 우려내는 방식으로 와인을 만든다. 토카이 아수의 등급은 136~167L에 해당하는 곤치(Gönci barrel)라고 불리는 배럴에 아수 포도를 20L 사이즈의 뽀토니(Puttony) 단위로 얼마나 넣었는지를 레이블에 명시했던 것에서 유래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뽀토니를 이용해 네 바가지, 다섯 바가지, 여섯 바가지를 우려낸 것이 아니라 베이스 와인의 6~8%에 해당하는 아수 베리를 침용해서 와인 메이킹을 한 당도 구분을 하고 있다. 자주 찾아볼 수 있는 5 Puttonyos는 와인 메이킹을 마친 후 최소 함유 잔당이 120g/L 이상, 6 Puttonyos는 최종 잔당이 150g/L 이상이 되어야 한다.
테이스팅한 와인들
로얄 토카이, 레이트 하베스트(Royal Tokaji Late Harvest) 2018
연한 금빛에 섬세한 시트러스 아로마와 스파이스, 상쾌한 산도와 꿀과 같은 미감으로 부드럽고 실키한 질감과 깨끗하고 긴 산도감이 오래 지속되는 와인이다. 최종 당도는 108g/L로 과거 토카이 아수 등급의 4 Puttonyos에 속한다. 와인메이킹에는 잘 익은, 늦수확한 포도와 귀부 포도가 모두 섞여 있다. 귀부 포도에서 얻어지는 향과 맛이 그대로 전해지고 있어 아주 좋은 가격에 특별한 달콤함을 만끽할 수 있는 버전이다. 찰스는 이 와인을 집에서 주말에 가장 자주 마신다고 덧붙였다. 매그넘 바틀을 아침에 오픈해서 저녁때까지 가족들과 함께 마시는데 넘치는 산도 덕에 지루할 틈 없이 주말을 즐거움으로 가득 채워주는 와인이라고 한다. 하몬과 프로슈토 등을 가득 올린 샤퀴테리 보드를 곁들여 보길 추천한다.
로얄 토카이, 블루 라벨(Royal Tokaji Blue Label) 2018
10개의 빈티지 중 평균적으로 6개 정도의 빈티지에서 생산된다. 입안을 가득 채우는 묵직한 미감과 선명한 산도, 백도와 벌꿀, 너티한 이미지가 복합미를 더한다. 헝가리 오크통에서 2년 이상 숙성 후 블렌딩했으며 최종 당도는 158.1g/L로 5 Puttonyos 기준치보다 훨씬 상회하는 6 Puttonyos에 해당하는 당도를 지니고 있다.
로얄 토카이, 골드 라벨(Royal Tokaji Gold Label) 2017
찰스는 로얄 토카이 골드 라벨을 샴페인으로 비교한다면 돔 페리뇽과 비슷하다고 설명한다. 각각의 밭을 블렌딩해서 만든 우수작이기 때문. 강렬한 황금빛에 오렌지 껍질과 황도의 풍미, 샤프론을 비롯한 각종 향신료와 자몽과 같은 상쾌한 산도감과 플레이버가 매력적이다. 풀바디한 미감과 섬세한 단맛과 산도의 조화로 이어지는 피니쉬가 아름다운 와인. 최종 당도는 189g/L.
로얄 토카이 아수와 한식 페어링 아이디어
올해 상반기에 헝가리 와인 서밋에 참여하면서 온갖 음식에 파프리카와 은근히 매콤한 기운이 있는 파프리카 가루가 사용되는 헝가리 음식을 집중적으로 맛보면서 헝가리 와인은 단연 한식에도 잘 어울릴 수 있는 포인트가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이건 정말 헝가리 와인이 아니면 대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드는 몇 가지 음식을 소개해 본다.
홍어삼합
‘홍어에 무슨 와인이냐?’ 하겠지만, 실제로 특별한 음식이니만큼 특별한 와인을 한번 골라 페어링해 보는 것도 와인 애호가들에게는 흥미로운 경험이다. 특히 ‘홍어애’는 토카이 아수와 클래식한 페어링인 푸아그라와 일맥상통하는 크리미한 질감과 맛을 지니고 있다. 암모니아가 가득한 홍어 또한 블루 치즈와 비슷한 면이 있으며 기름진 돼지고기 수육과 김치의 산미에는 산도가 최강점인 토카이 아수의 푸르민트만이 해결할 수 있는 포인트가 있다.
삼겹살
산도가 좋은 와인은 기름진 음식과 늘 잘 어울린다. 로얄 토카이 드라이 푸르민트 또한 최근에 경험했던 굉장히 훌륭한 삼겹살 페어링이었는데, 토카이 아수 또한 특유의 무게감과 산도감으로 훌륭한 조화를 이루어낸다. 비슷한 조화로 이날 인터뷰를 했던 찰스는 가장 애정하는 토카이 아수 페어링 중 하나로 집에서 종종 해 먹는 ‘로스트 포크’를 꼽았다. 레시피 비결은 2/3쯤 익힌 고기를 오븐에서 꺼내 로얄 토카이 블루 라벨을 고기 위에 부은 후 다시 완전히 익혀 달콤하고 크리스피한 껍질을 만드는 것에 있다.
약과 페어링
달콤한 약과에 달콤한 디저트 와인이 만나면 너무 부담스러운 단맛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지만 그렇지 않다. 달콤함에 달콤함이 더해져 기쁨이 배가 되는 마법. 토카이 아수 속에는 빛나는 산도가 살아있어 약과의 기름기를 프레쉬하게 받아주고 약과 반죽 속에 있는 생강 뉘앙스를 더욱 빛나게 해 장점을 더욱 강조하는 반짝이는 와인 페어링을 맛볼 수 있다.
수입사 신동와인
▶홈페이지 shindongw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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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양진원 푸드 & 와인 칼럼니스트 사진·자료 제공 신동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