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3일(목)에 열린 캘리포니아 와인 얼라이브 테이스팅의 세미나 ‘와인 산업 탈탄소화를 위한 IWCA의 노력’의 진행자 이인순 대표가 말하는 와인산업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이야기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탈탄소운동, 뭔가 거창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실 지속가능성은 오래전부터 들어왔던 말이다. 하지만 TV에서 다큐를 보고 기사를 읽으면 그저 막연히 경각심을 가지고 나는 뭘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잠시 생각만 했지 그때뿐이었다. 오래전부터 와이너리에서 지속가능한 농법에 대한 이야기를 해도 포도 농사와 와인 양조와 관련된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그저 바이오다이나믹 농법이나 유기농법처럼 인간에게 이로운 건강한 와인을 만드는 방법 중 하나고 막연히 좀 더 확장된 환경보존운동 정도로 생각했다. 와인업계에서 일을 하며 또 한편으로는 와인 소비자이지만, 탈탄소운동이나 지속가능성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어 보였다.
그런데 지난 3월 캘리포니아와인협회의 ‘와인 산업 탈탄소화를 위한 IWCA의 노력’이라는 세미나에 진행자로 합류하게 되었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조금 더 진지하게 지속가능성이나 탈탄소화를 위한 운동에 대해 생각하고 찾아보기 시작했다. 나는 세미나의 메인 연사는 아니었지만 초반에 이 세미나의 의의를 참석자들에게 설명하고 전체 진행과 마무리를 하기 위해 세미나 내용을 공부해야 했다. 세미나에 등장하는 일부 용어들은 평상시에도 듣던 단어들이었으나 정확히 뜻을 모르고 있었고, 포도밭에서 일어나는 탄소발생을 줄이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에 대해서도 실상 별로 아는 것이 없었다. 당황스러웠다. 내가 사람들에게 이 세미나의 취지와 의의에 대해 무슨 말을 할 수 있는지.
진지하게 자료를 찾아보고 우리말로 번역하니 생소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의외로 지속가능성이나 탄소배출과 관계된 꽤 많은 자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건 지구 반대편 먼 나라의 포도밭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날 세미나는 캘리포니아 메인 연사의 다음 질문으로 끝을 맺었다.
“What can you do to help reduce carbon footprint?”
세미나를 마무리하며 숙제를 끝내 후련하기보다는 생각이 좀 깊어졌다. 스스로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생각은 있어도 행동으로 열심히 옮기는 실천가는 아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이 되었다.
이미 습관처럼 하던 일이 있다. 와인을 들고 외출할 때 재활용 가능한 에코와인백을 사용하고, 종이와인백을 사용하더라도 다시 가져온다. 종이와인백은 버리지 않고 집에 쌓아 두고 와인을 선물할 때 사용한다. 마트에서 와인을 여러 병 살 때에는 여러 개 담을 수 있는 재사용 가능한 와인백을 가져 간다. 그저 한번 쓰고 버려지는 종이백이 아깝고 자연을 좀 덜 훼손시키고 싶다는 아주 개인적인 취지였다.
그 시작은 영국에서 거주했을 때부터였다. 20년 전 영국 거주 당시 마트나 와인샵에서 와인을 사도 와인백을 주지 않아서 상당히 불편했다. 국내에서 와인을 사면 당연히 와인을 담아 주고 덤으로 더 챙겨 주기도 하는 그 종이백을 돈을 주고 사다니 처음에는 돈이 아까웠다. 그 당시 천원 또는 천 오백원 했던 그 와인백은 우리나라 것처럼 깔끔하고 근사하지도 않아서 선물 등 꼭 필요한 경우에만 사게 됐다. 대신 한국에서 이삿짐에 묻어왔던 한국산 종이백들을 재활용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맞는 것 같다. 요즘에는 한국 마트나 편의점에서도 비닐백이나 종이백을 무료로 주지 않는다. 소비자들도 한동안 불편해했으나 이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우리도 종이 와인백을 유료화하면 어떨까? 그전에 취지를 살려 천으로 만들어 반복 사용이 가능한 튼튼한 와인백을 홍보용으로 공급하거나 저렴하게 판매하면 어떨까? 나는 부직포나 옥스퍼드 천으로 만든 와인백에 와인을 들고나갔다가 둘둘 말아서 가방에 넣어 가지고 온다. 종이백을 사용할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심지어 다른 사람이 버리고 간 백을 들고 오기도 한다. 반복 사용하는 와인백이 마땅치 않으면 종이백을 한 번이라도 재활용하면 좋지 않을까? 재활용 가능한 재질의 와인백은 칠링한 와인이나 냉매를 함께 넣어도 종이백처럼 축축해져 찢어질 염려가 없어서 칠링이 필요한 와인을 들고 다닐 때도 좋다.
와인 선물 상자도 개선이 필요하다. 쉽게 망가져 잘 쓰지도 않는 와인 오프너나 액세서리 등은 빼고 충전제를 덜 쓸 수 있도록 상자 자체의 내구력을 높이는 방법을 고민해 보면 좋지 않을까? 누군가 그 방법을 고민하고 있기를 바란다.
난 화이트 와인이나 스파클링 와인의 시음 상태에 민감한 편이다. 최적의 시음 온도를 위해 1도 내리려고 애를 쓰는데 지금 우리가 시급하게 노력할 일은 그게 아니다. 앞으로 우리는 기후 변화로 인한 최악의 영향을 피하기 위해 지구 평균 온도의 상승을 임계치인 1.5°C로 제한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작은 실천들을 고민해 볼 때이다. 작은 실천이라도 함께 한다면 의미가 있는 일이 될 수 있다. 지구가 생존의 위협을 받는다면 우리가 한가하게 와인을 즐길 수 있을까?
What can you do to help reduce carbon footprint? 가슴에 다시 한번 새길 질문이다.
글 이인순 (이인순 와인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