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커플의 와인법: '와인인(WINEIN.) 기자'편

Edited by신 윤정

와인이라는 취향을 공유하는 인생의 반쪽이 있다는 건 축복받은 삶이 분명하다. 코와 입으로 느껴지는 감각만이 아니라 ‘함께 마시는 즐거움’이 중요한 음료가 바로 와인이니까. 와인을 인생의 반려주(酒) 삼은 와인인(WINEIN.) 기자 네 커플로부터 그 축복받은 삶에 대한 각양각색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미식이 있는 일상, 언어는 와인 - 강은영 칼럼니스트

남편을 만난 건 영국에서 와인을 공부할 때였다. 그는 와인이 아닌 다른 일을 택했지만, 그땐 함께 와인 수업을 들었다. 수업을 마친 금요일엔 함께 장을 봤다. 늦은 오후엔 식재료를 싸게 살 수 있었고, 적당한 하프 프라이스 와인은 언제나 있었다. 가난한 학생 시절 우리의 데이트는 함께 장보고 와인 고르고 오래 식사하는 대체로 그런 패턴이었다.

한국에 돌아와도 사정은 비슷했다. 국 없이는 아침밥이 안 넘어가는 아버지들처럼, 우린 와인이 없는 주말 저녁이면 두리번거리곤 했는데, 외식은 또 불편해했다. 편한 차림으로 느리게 하는 식사를 좋아하는 데다 좋은 와인을 저렴하게 자주 먹으려면 집에서 먹어야 했다. 역량에 따라 요리는 남편이 한다. 와인은 내가 고르고.

강은영 부부의 와인 테이블 1 (사진 제공 강은영)

여행을 가서도 저녁은 숙소에서 먹는 편인데 불확실한 메뉴에 대비해 일단 샴페인을 챙긴다. 겨울 초입 통영에서 돌멍게를 만났을 때, 여름 남도에서 무화과 한 박스와 꽃게 육수로 만든 김부각을 충동 구매했을 때, 구례에서 계획이 틀어져 고로케와 육사시미로 저녁을 때우게 됐을 때도 샴페인이면 다 해결이 됐다. 종종 나들이 겸 주문진에 장을 보러 가 넉넉히 문어를 사 오기도 하고(문어 감자샐러드!), 명절 다음 주에 한우 축제를 하는 지방으로 드라이브 가기도 한다. 제철 해산물을 잘 챙겨 먹는 편이지만 꼭 먹는 제철 재료 한 가지를 고르라면 5월 즈음 대저 토마토. 대저 토마토를 넣은 파스타는 사랑이다.

멀리서 보면 닮은 듯 보일지 모르지만, 우린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에 서로 얼마나 다른지 잘 안다. 그나마 함께 먹고 마실 궁리를 할 때 팀웍이 가장 좋다. 보통은 와인 마시며 시시한 이야기나 하지만, 아주 좋은 와인을 만난 날은 와인에 대해 오래 이야기 나누기도 한다. 각자 캐치한 향을 교환하고 평화로운 정적 속에 머무를 때도 있었다. 와인은 세계관 다른 우리 두 사람이 어긋나지 않는 유일한 언어, 공유할 수 있는 침묵, 함께 시간을 보내는 가장 평화로운 방법이다.

강은영 부부의 와인 테이블 2 (사진 제공 강은영)

‘와인과 사람’이 만들어내는 관계의 매력에 반하여 - 이효주 기자

처음 와인에 빠지게 된 건 신혼 시절이었다. 당시 우리는 마트에서 다양한 와인을 구매해 마시며 와인의 매력을 탐험했다. 하지만 이 취미는 오래가지 않았다.

운명처럼 다시 와인에 빠지게 된 계기는 7년 전 이탈리아 여행이었다. 술을 좋아하는 우리 부부는 이탈리아에서의 하루하루를 그곳의 주류로 마무리하며 여행의 여운을 즐겼다. 그러다 프란체스코 성인이 활동했던 아씨시(Assisi)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곳은 어린 시절 미키 루크(Mickey Rourke)가 주연한 영화 ‘성 프란체스코(Francesco)’를 통해 강렬한 인상을 받은 특별한 장소였다. 아씨시에서의 어느 날, 작은 식료품점에서 와인을 추천받아 마셨던 ‘아씨시 로쏘(Assisi Rosso)’를 기억한다. 맛 자체는 특별히 뛰어나지 않았지만, 우리는 한 병을 금세 비우고 또 한 병을 사러 식료품점으로 향했다. 그러나 아뿔싸, 지갑을 숙소에 두고 온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상황에서도 식료품점의 할머니는 우리가 가진 얼마 안 되는 현금을 받고 흔쾌히 와인을 건네주었다.

밀라노에서 베니스, 피렌체를 거쳐 아씨시까지 이어진 험난한 여정 속에서, 그 작은 호의는 피로를 잊게 하는 따뜻한 순간이었다. ‘와인과 사람’이 만들어내는 관계의 매력에 완전히 빠져들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이후 와인은 우리 삶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고, 지금까지도 그 기억은 우리를 다시 아씨시로 향하고 싶게 만든다.

이효주 부부가 운영하는 와인샵 비노보노 앞에서 (사진 제공 이효주)

그렇게 와인과 사랑에 빠진 우리는 와인샵 비노보노(VINOBONO)를 오픈했고 올해로 6년째를 맞았다. 주로 수입사들과 직접 소통하며 와인을 구입하지만, 소량이 필요하거나 특정 와인을 찾을 때는 여러 도매장을 이용하기도 한다. 와인샵 운영을 위한 것이 아닐 때에는 평소 노트해 둔 가고 싶은 와인샵에 가기도 한다. 지난번 양양 여행을 갔을 때는 그 지역에 유명한 ‘해방클럽’이라는 와인샵에 들러 그곳 카비스트와 와인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그니처 와인을 구입해 맛보기도 했다.

특별히 애정하는 와인을 꼽으라면, 지금 우리 셀러에 누워있는 2009년 빈티지의 ‘카이(Kai)’이다. 작년에 베를린 테이스팅 20주년을 취재하며 에라주리즈 와인에 매료된 이후, 이 100% 카르미네르 와인의 독특한 매력과 품질에 반하게 되었다. 특히 2009 빈티지는 우리 딸의 생빈이기도 해서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와인은 셀러 깊은 곳에서 소중히 보관 중이며, 적절한 순간을 기다리며 잠들어 있다.

지금 우리 부부의 일상은 와인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년에는 압구정동에 새로운 와인샵을 오픈하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특히, ‘한국카비스트유니언’을 발족하며 와인샵 대표들과 함께 다양한 의견과 고민을 나누는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카비스트는 쉽게 말해 ‘샵에서 일하는 소믈리에’를 의미한다. 어려운 업계 상황 속에서도 서로 의지하며 고객들의 취향에 맞는 와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카비스트 유니언의 소통은 큰 힘이 되고 있다.

와인샵 비노보노에서 진행된 와인 행사 (사진 제공 이효주)

와인은 우리에게 단순히 음료 이상의 존재다. 와인샵 운영을 넘어 와인 전문 기자로서, 아시아와인트로피 심사위원으로서, 그리고 한국카비스트유니언의 대표와 사무국장으로서 활동할 수 있게 해 준 날개와도 같은 존재랄까. 와인이 없다면 불가능했을 일들이다. 와인을 통해 만난 사람들과 함께 우리의 일상을 나누는 지금 이 순간이 그저 감사할 뿐이다.

와인은 대화로 이끄는 촉진제 - 천혜림 기자

우리 커플은 와인을 함께 천천히 마시며 대화하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같이 남미 여행을 갔을 때 도중에 잠시 들렀던 프랑스에서 와인이 정말 맛있고 흥미로운 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남미 여행의 끝자락에 아르헨티나 멘도자에서 약 3개월 동안 머물며 와이너리 투어를 다녔다.

와인은 가벼운 대화든 깊이 있는 대화든 시작을 이끌어내는 중요한 촉진제 같다. 차나 커피를 마시며 나누는 대화와 와인을 마시며 나누는 대화는 그 분위기나 결이 조금 다르다고 할까? 특히 서로 축하해주고 싶은 일이 있을 때는 꼭 샴페인을 열게 된다.

남자친구는 요리에 큰 관심이 있고, 실력도 뛰어나다. 그래서인지 향과 맛에도 관심이 많고, 창의성도 풍부하다. 그런 그가 맥주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처음 시작은 호주였다. 호주에는 마이크로 브루어리들이 많고, 많은 사람이 홈 브루잉을 하다 보니 서로 지식을 공유할 기회도 많았다. 얼마 전에는 위스키를 색다른 방식으로 만들어 보기도 했는데, 이건 숙성이 좀 더 진행돼야 결과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천혜림 커플이 함께 방문했던 아르헨티나 와이너리 (사진 제공 천혜림)

와인 여행의 추억을 안주 삼아 - 배준원 기자

사실 남편은 나의 와인 친구이자 스승이다. 그는 보르도 와인에 대한 좋은 기억으로 와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2005년도부터 프랑스의 보르도, 부르고뉴, 샹파뉴, 이탈리아의 바롤로, 토스카나 투어를 다녔다고 한다.

우리가 함께 와이너리 체험을 간 것은 2015년 부르고뉴, 론, 프로방스 여행이었다. 그 이후로 2018년에는 아이와 함께 우리 부부의 추억이 있는 부르고뉴에 다시 찾아갔다. 2015년도에는 꼬뜨 드 뉘를 주로 돌았다면, 2018년도에는 꼬뜨 드 본에 머물렀다. 알자스 투어도 기억에 남는다. 여행이 그저 좋아서 그를 따라가고 와인을 마시기 시작했는데 점점 매력에 빠져들었다.

2015년 프랑스 파리 le meurice 호텔의 당시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에서 배준원 부부 (사진 제공 배준원)

나의 와인 취향은 남편에 의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남편이 골라주는 대로 와인을 마시기 시작하다가, 2019년 본격적으로 남편과 함께 WSET 공부를 하게 되어 WEST Advanced를 동시에 취득했다. 그는 거기에 더해 FWS와 소믈리에 자격증 등을 더 가지고 있다. 재밌는 건 이탈리아 와인을 사랑해서 전문가 수준인 그가 자격증은 없다는 거다. 자격증과 경험치는 또 다르니까. 자격증은 내가 와인을 더 재밌고, 즐겁게 빠져들게 해준 계기를 만들어 준 것 같다.

와인은 우리 집 식탁에서 국물이 없으면 꺼내는 음료다. 일부러 와인이 마시고 싶어 고기를 구운 적도 많다. 남편이 고기를 와인 없이 먹을 리가 없기 때문. 우린 어느새 눈빛으로 와인을 이야기하는 사이가 되었다. 와인은 우리 부부 인생의 중요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와인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 아주 심하게 싸운 다음 날 내가 자연스럽게 고기를 구우면 그가 와인을 꺼내 오고, 적당히 취기가 오르면 대화가 시작되면서 자연스럽게 풀린다. 단, 좋은 와인일수록 빨리 풀리는 마법.

2015년 프랑스 부르고뉴 뉘 생 조르주 마을(도멘 페블레 와이너리) / 본 로마네 마을 로마네 콩티 포도밭 / 프로방스 마을 등 (사진 제공 배준원)

와인은 우리 부부의 시작점이자, 삶의 활력소, 힐링의 시간이다. 와인 여행의 우여곡절 속에 여러 가지 일들이 많이 일어날수록 서로에 대한 신뢰감은 더욱 커져갔다. 이맘때만 되면 ‘다음 휴가지는 어디로 가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눈다. 휴양지 등 휴가로 갈 곳은 많은데, 결국 종착지는 와인과 미식이 있는 프랑스나 이탈리아가 된다. 결혼 초기에는 프랑스를 주로 갔고, 요즘은 개인적으로 이탈리아에 푹 빠져 있다.

둘 다 와인을 좋아하다 보니, 각 와인의 양조 철학과 양조 과정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와인은 마시면 마실수록 계속 파고드는 매력이 있다. 마셔도 마셔도 끝이 보이지가 않는다고 할까. 좋아하는 와인에 대한 테루아와 양조의 궁금증을 찾아 자연스럽게 와이너리로 향하게 된다. 첫 경험의 감동과 특별함은 더 크게 다가오는 것 같다. 방문했던 첫 와이너리는 부르고뉴 뉘 생 조르주 마을의 도멘 페블레(Domaine Faiveley). 디종에서 출발해 쥬브레 샹베르탕, 모레 생드니, 샹볼 뮈지니, 본 로마네를 지나 뉘 생 조르주 마을에 도착했다. 재밌고 신기했던 것은 항상 마시던 와인의 이름들이 기차 속에서 역 이름으로 방송이 나오는 것이었다. 프랑스어 하나도 몰라도 지역 이름이 들리던 상황, 그리고 프랑스 시골 여행은 처음이라 생각하지도 못했던 많은 계단들, 무거운 짐가방을 들어주다 힘들어서 한국 돌아가고 싶다고 했던 남편 등, 생각해 보면 아찔하다. 여행을 같이하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돌발상황이 많이 나타난다. 싸우기도 많이 하고, 서로에 대해 의지도 하게 되면서 신뢰가 더 쌓인다. 샤토뇌프 디 파프, 아비뇽, 프로방스까지 돌고 파리로 와서 손님보다 스텝이 더 많았던 멋진 호텔 속 미쉐린 레스토랑에서의 기억은 잊히지 않는다. 역시 프랑스의 꽃은 파리!

2018년 퓔리니 몽하쉐 마을의 올리비에 르플레브 와이너리 / 알자스 리크위르 마을의 도멘 위겔 (사진 제공 배준원)

2018년 우리 가족은 추억의 여행지 부르고뉴로 다시 향했다. 달라진 것은 가족이 한 명 더 늘었다는 것. 22개월된 아들과 함께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들어가 알자스의 동화 같은 르크위르 마을의 도멘 위겔 와이너리를 방문하고 부르고뉴로 넘어왔다. 우리 부부가 가장 좋아하는 화이트 와인은 깨 볶는 맛이 일품인 퓔리니 몽하쉐다. 그곳의 올리비에 르플레브 와이너리에 가서 다양한 와인을 런치 메뉴와 마셨던 기억(단연 최고의 화이트는 ‘바타르 몽하쉐’였다), 그리고 퓔리네 몽하쉐 마을 한가운데 멋진 르 몽라쉐 레스토랑에서의 디너 속 도멘 르플레브 레 꼼베트 와인도 꽃밭이었던 기억 등. 포도밭 한가운데 있는 조용한 호텔에서의 가족 여행은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노부부들이 쉬는 시골 호텔에 아이를 데려와 별로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긴 했다. 아이와 함께한 와이너리 투어가 쉽지는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함께 가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와인은 우리 가족을 이어주는 매개체이다. 기쁜 날, 화나는 날, 축하하고 싶은 날 등 언제나 와인과 함께한다. 오늘은 눈이 오니 이 핑계로 또 한 병 꺼내야겠다!

글·사진 각 인터뷰이 정리 신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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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공개일 : 2025년 02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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