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와이넬 총괄이사 김세훈 부사장 “지금은 큰 파도의 시기, 그러나 오래가진 않을 것”

Written by강 은영

와이넬은 2008년 설립됐다. 햇수로 18년. 와인수입사의 나이테로는 제법 굵직하지만, 출발점이 빨랐던 건 아니다. 2008년은 2000년대 초반 흐름을 탔던 한국 와인 시장의 성장세가 주춤하는 시기였고, 리먼 사태라는 글로벌 악재가 있었다. 와이넬의 이야기가 궁금해진 건 이 지점 때문이다. 다소 출발이 늦은 후발주자였고, 심지어 그 출발점이 순탄치 않았음에도 종내에는 차근차근 성장하여 탄탄한 입지를 다지게 된 그 과정의 이야기. 누구나 체감하는 지금의 어려운 시기에 이들의 이야기는 어떤 힌트가 될지도 모른다. 김세훈 부사장과 인터뷰 약속을 잡고 7월 마지막 날, 아트인더글라스 갤러리를 찾았다.

열여덟 해 두 개의 파도

“늘 크고 작은 파도들이 있었죠.” 김세훈 부사장은 와인 비즈니스에 뛰어든 후의 시간을 돌아보며 운을 뗐다. 그중 손에 꼽는 두 개의 파도가 있다. 하나는 2008년 와이넬이 오픈하고 얼마지 않아 맞닥뜨린 글로벌 경제 위기 리먼 사태였고, 나머지 하나는 지금이다. 그나마 2008년은 “바닥부터 시작하던 때였기 때문에” 파도에 부딪쳐도 피해를 입을 체급이 작았다. 무역업에 경험이 있는 그와 와인에 대한 이해가 있었던 그의 아버지((주)와이넬 김원오 대표), 단 두 사람이 작은 창고를 빌려 회사를 꾸렸을 때였다. 김세훈 부사장이 말을 이었다. “2008년의 바닥을 딛고 다시 와인 시장은 성장했어요. 와이넬도 성장했고요. 성장률도 매년 10~15%, 많게는 30% 정도로 전년 대비 꾸준히, 직선형으로 우상향하는 그래프를 그려왔어요. 그러다 2019년 코로나 직전부터 성장에 가속이 붙었는데, 팬데믹을 통과하면서 더 가파르게 성장했죠. 50%, 80%, 100%씩 쑥쑥. 지금은 그 이후 다시 거품이 꺼지고 있는 상황이죠. 2008년의 타격이 작은 파도였다면 지금은 더 큰 파도를 헤쳐 나가는 때예요.” 2008년 와이넬의 이름 아래 수입하는 와인이 10종 남짓이었다면, 지금은 SKU 기준 500여 종의 와인을 수입하며, 40여 명의 직원이 함께한다. 파도가 더 크게 느껴지는 이유다. 하지만 김세훈 부사장은 미래를 낙관했다. “어려운 시기가 오래 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올해가 지나면 좀 나아질 거라 보고 있습니다.” 담담한 목소리였다.

왜 이탈리아 와인이었나

와이넬은 초기 ‘남부 이탈리아 와인 전문 수입사’라는 캐릭터가 강했다. 처음 수입한 와인 10종도 모두 이탈리아 와인이었다. 그중 여전히 주요한 아이템 중 하나인 인페리(Inferi)가 있다. 지금은 포트폴리오가 더 다양해졌지만 이탈리아 와인은 약 40%로 여전히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탈리아 와인부터 공략한 이유는 무엇일까? “처음 와인을 수입할 때 업계의 동향을 살펴보니 잘 알려진 좋은 브랜드만 찾으려는 경향에 과열 경쟁이 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상에는 정말 좋은 와인들이 많잖아요.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의 노력으로 함께 같이 성장할 수 있는 와인 생산자를 소개하고 브랜드를 키워 나가자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왔어요. 그중 하나가 판티니(Fantini)입니다. 2008년 처음 수입할 당시는 파네세(Fanese)라고 불렸던. 그때 수입을 결정하면서 시장 조사도 많이 하고 고민도 많이 했어요. 당시 칠레 와인이 엄청 강세였죠. 국내에 들어와 있는 이탈리아 와인은 키안티나 아마로네가 많았고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도 그렇게 많진 않았어요. 키안티가 많지만 또 순환이 잘 되는 편은 아닌 거예요. 키안티 와인에 대한 인식도 좋지 않았고. 한국 소비자들이 이탈리아 와인을 왜 덜 좋아할까? 라는 생각을 해봤는데 두드러지는 산미가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는 저도 와인 초보였던 셈이라 와인에 입문하는 소비자의 관점에서 볼 수 있었어요. 그런데 판티니 와인을 시음했을 때 저에게도 편한 와인이었기 때문에 한국 소비자들이 좀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와인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가격도 저렴한 편이었고. 여기 미래가 있겠구나 싶더라고요. 판티니는 이탈리아 아부르쪼에 시작했죠. 아직 많이 알려진 지역도 아니고. 그래서 집중적으로 해보자 결심했고, 판티니와 함께 성장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후 판티니는 풀리아, 캄파니아, 바실리카타, 시칠리아 그리고 사르데냐까지 이탈리아 남부 지역 와이너리들을 인수하면서 확장해 나갔다. 와이넬도 그 지역의 와인들을 들여오며 자연스럽게 포트폴리오를 넓히게 됐다.

판티니 에디찌오네

롱런엔 신뢰가 모든 것

김세훈 부사장이 판을 잘 읽은 것도, 운이 좋았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 이면엔 신중하면서도 도전적인 접근 방식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관계 유지의 힘이 있었다. 앞서도 언급한 판티니 그룹이 대표적이다. 그의 소망대로 판티니와 와이넬은 함께 성장의 길을 걸어왔고,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흔치 않을 ‘훈훈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저는 인연을 되게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신뢰를 바탕으로 롱런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고요.” 그는 ‘인연’과 ‘신뢰’, 또 ‘함께’란 말을 자주 썼다. 최근에는 오래 공들여 키웠던 브랜드가 다른 수입사로 넘어가는 일이 있었다. 업계에서는 비일비재한 일이고 비즈니스의 냉혹함을 알지만 그에게는 정말 힘든 시간이었다. “몇 개월 동안 너무 마음이 아파 힘들었다”고 드물게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더러는 와이너리의 오너쉽이 바뀌면서 비즈니스 관계가 끝나는 경우도 생긴다. 어쩔 도리 없는, 와인 수입사의 한계도 있다. 그러나 그는 한 번 관계를 형성한 와인 생산자와 자신들이 먼저 거래를 끊은 적은 없다며 “다만 우리는 와인 생산자의 철학을 잘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충실히 하려고 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인연을 맺은 사람들과는 오랫동안 함께 일하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그 바람은 와이넬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다. 그는 궁긍적으로 “와인 생산자와 소비자, 그리고 직원들과 신뢰를 바탕으로 함께 성장해 나가는 것이 와이넬이 추구하는 가치”라고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이야기했다.

2025년 (주)와이넬 단합대회 단체 사진

차별점에 대한 고민과 아트인더글라스

2014년부터 와이넬은 ‘아트인더글라스(ART IN THE GLASS)’라고 하는 와인과 예술을 접목한 전시회를 기획했다. 이를 위해 매년 신진 작가를 발굴하고 그해의 와인을 골랐다. 그해의 와인은 작가의 작품으로 새로운 레이블을 입고, 그랜드 테이스팅 행사를 통해 선보인다. 코로나 시기 한 번을 제외하고, 매년 이어져 올해 11회째를 맞이했다. 아트인더글라스는 김세훈 부사장의 아이디어였는데, 이 역시 당시 후발주자로서의 고민이 낳은 결과였다. “규모가 있는 와인 수입사들은 자체 와인 시음회도 열고 있는데 와이넬은 뭘 하면 좋을까, 어떤 방식으로 차별화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되더라고요.” 그때 강혁 작가의 조언을 얻어 예술과 와인을 접목하는 방식으로 가닥을 잡았다. “예술과 함께하는 공간에서 와인을 시음하는 거죠. 와인이 좀 더 문화적인 체험이 될 수 있는 행사를 만들어 보자. ‘아트인더글라스’라는 이름도 제가 즉석에서 지었어요.” 아트인더글라스는 와이넬을 대표하는 연중행사일 뿐만 아니라 와인 생산자들과의 파트너쉽에서도 톡톡한 역할을 한다. 많은 와인 생산자가 아트인더글라스 프로젝트에 참여를 희망하고 있고, 참여한 생산자들은 만족도가 아주 높다.

작년 아트인더글라스 그랜드 테이스팅의 10주년 행사를 위해 모인 와인 생산자들

공격적인 투자는 계속될 것

많은 와인 업계 관계자가 올해가 역대급으로 힘든 해라고 말했다. 문을 닫는 매장들이 속출했고, 도매상들도 앓는 소리를 한다. 그 역시 지금이 가장 어려운 파도를 넘는 시기라고 했지만, 움츠러들 생각은 없다. 오히려 공격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타개하겠다는 생각이다. “지금의 어려운 시기는 글로벌 경제 상황과 산업의 변화도 같이 맞물려 있다고 봐요. 4차 산업으로 넘어가는 시기인데 좀 더 안정되면 사람들이 예전처럼 즐기는 문화를 찾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또 회사 입장에서는 점점 규모가 커지면서 유통 채널도 넓혀가고 있기 때문에(아직 규모는 작지만 편의점, 대형마트 등 오프 트레이드로도 확장하는 중이다) 포트폴리오 확장은 필연적이에요. 최근 3년간도 지속적인 투자를 했고 신규 브랜드들도 많이 생겼어요.” 가장 대표적인 것이 미국 프리미엄 와인들, 링구아 프랑카(Lingua Franca), 부커 빈야드(Booker Vineyard), 시스모크(Sea Smoke) 등이 있다.

아트인더글라스 갤러리

미하 소비뇽 블랑은 혹등고래의 이동 경로(Humpback Highway)에서 영감을 받은 와인이라고, 국내에서는 장윤선 작가와 협업해 레이블에 유영하는 고래의 이미지를 입혔다. 마침 이날 아트인더글라스 갤러리에서는 장윤선 작가의 고래 작품들이 전시 중이었다. 아트인더글라스 갤러리는 서울 종각역 인근에 위치한 와이넬 직영 와인샵으로 종종 전시 행사나 와이너리 방한 행사 등이 이뤄진다. 근래의 불경기에도 움츠러들지 않고 공격적인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는 김세훈 부사장의 말대로, 이곳도 2년 전 오픈해 소비자들과의 지속적인 접점을 만들어 가고 있다. 김세훈 부사장은 앞으로도 계속 투자를 이어갈 생각이라고. 진중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또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미래를 그리는 김세훈 부사장을 보고 있으면, “올해가 지나면 와인 시장이 좀 나아질 거예요”라는 그 말이 주문처럼 이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사진 강은영 사진 제공 (주)와이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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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공개일 : 2025년 08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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