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모금에 꽂힌다! 뉴질랜드 프리미엄 와인 #1

Written by박 지현

상쾌함이 전부가 아니야!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와, 이건 정말 다르다!” 싶은 순간을 경험했을 것이다. 내게 그 순간은 오래전, 클라우디 베이의 프리미엄 소비뇽 블랑 테 코코(Te Koko)를 마셨을 때 찾아왔다. 당시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은 세계 와인 시장에 싱그러운 녹색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신선한 산미와 열대과일 향이 매력 포인트였고, 마치 빨간 피도 녹색으로 바꿀 것 같은 생동감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테 코코는 전혀 다른 차원의 와인이었다. 오크 숙성의 영향으로 깊이와 복합미가 더해져 성숙한 매력이 흘러넘쳤다. 한 모금 마시는 순간, "이럴 수가!" 나는 소비뇽 블랑이 꼭 가벼울 필요는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철부지 막내딸 에이미(『작은 아씨들』)가 우아함이란 아이템을 장착한 채 귀부인이 되어 돌아온 모습이 떠올랐다.

소비뇽 블랑만이 아니다. 뉴질랜드 와인은 다양한 품종의 고급화에 힘을 쏟으며, 프리미엄 와인의 전성기를 예고하고 있다. 이를 증명하듯, 뉴질랜드 무역산업진흥청(New Zealand Trade and Enterprise, 이하 NZTE)은 지난 3월 떠오르는 소믈리에 다섯 명을 ‘Discover a Sip of Premium New Zealand Wine’ 캠페인 대표 소믈리에로 선정해 론칭 행사를 열었다. NZTE와 소믈리에들은 온·오프라인 채널을 통해 뉴질랜드 프리미엄 와인의 우수성을 5월 말까지 홍보할 계획이다.

이 인터뷰는 항상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민하는 일반 소비자에겐 생생한 구매 가이드가, 뉴질랜드 와인을 사랑하는 애호가들에겐 공감의 장이 될 것이다. 그 첫 번째 시리즈로, 다섯 명의 전도유망한 소믈리에 중 이승주(권숙수)지현주(기와강)를 만나 총 여섯 개의 브랜드와 함께 뉴질랜드 프리미엄 와인의 현재를 들어보았다.

이승주 소믈리에의 픽

현재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 ‘권숙수’의 헤드 소믈리에인 이승주는 2023 SOPEXA 한국 소믈리에 대회에서 5위, 2024 Chaîne des Rôtisseurs 포르투갈 리스본 국제 영 소믈리에 대회에서 4위를 차지했다. 그는 “맛과 향이 진한 스타일보다 여리여리한 피노 누아를 선호한다”고. 특히 부르고뉴 피노 누아를 좋아하는 그의 취향을 만족시키는 와인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이승주 소믈리에

환경에 진심인 와이너리, 빌라 마리아(Villa Maria)

“개인적으로 환경 친화적인 와인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빌라 마리아가 2001년 스크류캡을 100% 도입해 세계 최초로 ‘코르크 프리존(Cork Free Zone)’을 선언했다는 뉴스를 보고 흥미가 생겨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됐어요. 탄소 배출량과 물 사용량을 줄이는 등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과 기술력에 감탄했어요.”

빌라 마리아는 1961년 조지 피스토니치 경(Sr. George Fistonich)이 설립한 와이너리로, 고품질 와인과 사회적 책임을 인정받아 주류 전문지, 드링크 인터내셔날(Drinks International)이 발표하는 ‘세계에서 존경받는 와인 브랜드 Top 50’에서 매년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1995년 뉴질랜드가 세계 와인업계 최초로 지속 가능 인증 프로그램인 ‘지속가능 와인재배 뉴질랜드(Sustainable Winegrowing New Zealand)’를 시작할 때, 빌라 마리아는 창립 멤버로 참여해 프로그램을 구축하고 다른 와이너리들의 참여를 독려했다.

“이 와이너리는 시야가 넓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어요. 20년 넘게 기후 문제에 관심을 가져왔다는 것만 봐도 와인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죠. 빌라 마리아 같은 와이너리가 더 많아졌으면 합니다.”

행사에선 대중적인 프라이빗 빈(Private Bin) 시리즈가 아닌, 상위 퀴베인 ‘빌라 마리아 테일러스 패스 피노 누아(Villa Maria Taylors Pass Pinot Noir)’와 ‘빌라 마리아 맥더미드 힐 샤르도네(Villa Maria McDiarmid Hill Chardonnay)’가 소개됐다. 뉴질랜드 와인 산업의 심장, 말보로. 그 테루아를 오롯이 담아내기 위해 만들어진 게 싱글 빈야드 와인이다. 생산량은 극도로 제한된다. 그래서 더 귀하고 더 특별하다.

“뉴질랜드 싱글 빈야드 와인을 제대로 경험할 기회가 없어서 굉장히 기대됐어요. 테이스팅을 해보니 품질이 뛰어난 것은 물론이고, 와이너리가 표현하고자 하는 정체성이 명확하게 전달됐죠. 피노 누아와 샤르도네 모두 너무나 순수했고, 정성이 엄청나게 들어갔다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습니다. ‘이건 미친 퀄리티다!’라고 감탄할 정도로요. 뉴질랜드 와인은 현재도 훌륭하지만,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고 생각해요.”

빌라 마리아 맥더미드 힐 샤르도네

테이스팅 노트 및 와인 페어링

와인 페어링에 일가견 있는 권숙수의 소믈리에가 추천하는 마리아주. 군침만 넘기고 볼 수밖에 없지만 알아두면 쓸모가 많을 듯.

“테일러스 패스 피노 누아는 권숙수의 메인 요리, 떡갈비와 완벽하게 어울릴 것 같습니다. 부드러운 텍스처와 풍부한 육즙이 피노 누아의 섬세한 과실향과 만나 입안을 가득 채우고 조화를 이룰 거예요.

맥더미드 힐 샤르도네의 경우, 부드러운 생선찜을 추천합니다. 촉촉한 생선 살이 샤르도네의 고소하면서도 크리미한 텍스처와 어우러져 생선의 맛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샤르도네 특유의 산뜻한 과실 향이 전체적인 균형을 맞추며 깔끔한 마무리를 선사할 거예요.”

이것이 순수한 소비뇽 블랑의 캐릭터, 시로(Cirro)

“여러 번 테이스팅했던 시로의 인상은 ‘깨끗’, ‘순수’였어요. ‘시로’란 이름이 대류권 상층에 떠 있는 권층운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와인 인상과 잘 맞아 공감했던 기억이 나요. 와인을 처음 접하는 분께 자주 권해드렸죠.”

2009년에 설립된 가족 경영의 부티크 와이너리, 시로를 운영하는 리처드 그린(Richard Green)과 데이비드 타이니(David Tyney)는 35년 넘는 와인메이커 경력을 갖고 있다. 리처드는 오이스터 베이(Oyster Bay)에서, 데이비드는 기센(Giesen)에서 일했다. 시로 와인은 뉴질랜드의 하늘과 구름(권운, 권층운, 권적운)에서 영감을 얻었다. 이 구름들은 가장 높은 상공에서 형성되며, 깨끗한 비를 내려 와이라우 밸리(Wairau Valley)의 토양을 적시고 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바로 신선하고 활기찬 시로 와인을 만드는 테루아가 되는 것. 투명한 병과 구름을 형상화한 레이블은 ‘맑고 깨끗한’ 이미지를 그대로 담아낸다.

“양조 테크닉을 더해 볼륨감과 여러 겹의 레이어를 가진 소비뇽 블랑도 좋지만, 품종 자체의 순수한 캐릭터를 느끼고 싶다면 주저 없이 시로 소비뇽 블랑을 권할 겁니다.”

시로의 와인메이커 데이비드 타이니(David Tyney)

‘시로 소비뇽 블랑 싱글 빈야드(Cirro Sauvignon Blanc Single Vineyard)’는 말보로 와이라우 밸리의 단일 포도밭에서 생산된다. 키위, 사과, 파인애플, 라임 껍질 향이 풍부하며, 긴 여운이 특징. 와이라우 밸리의 특징에 대해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말보로에서 중요한 지역은 아와테레(Awatere)와 와이라우 밸리입니다. 아와테레는 와이라우보다 남쪽에 있어 서늘한 과실과 산미, 피망 캐릭터가 강하게 나타나요. 반면 와이라우는 북쪽이라 달콤한 과실 캐릭터가 두드러집니다. 저는 테이스팅할 때 파인애플 느낌이 잡히면 우선 와이라우 밸리라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시로 소비뇽 블랑

테이스팅 노트 및 와인 페어링

시로 같은 말보로 소비뇽 블랑의 전형적인 매력을 살리는 음식과 센스를 발휘하여 소믈리에가 추천하는 TPO(시간·장소·상황)까지 고려해 본다면?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자꾸 피크닉 생각이 들어요. 봄꽃이 만개한 공원에서 잘 칠링한 시로를 김밥과 함께 즐긴다면 좋을 것 같아요. 봄기운과 시로의 산뜻한 과실 풍미는 멋진 조합, 아닌가요?”

뉴질랜드 프리미엄 와인의 출발점, 쿠뮤 리버(Kumeu River)

“쿠뮤 리버는 뉴질랜드 와인을 공부하다 처음 알게 됐어요. 오클랜드의 세부 지역 중 쿠뮤(Kumeu) GI와 쿠뮤 리버(Kumeu River)를 찾아보면서 이 와이너리를 발견했죠. 같은 이름을 가진 와이너리가 그 지역을 얼마나 잘 담아낼지 궁금했는데, 이번 행사에서 직접 테이스팅할 수 있어서 정말 반가웠고 흥미로웠습니다. 머릿속에만 있던 지식이 눈 앞에 펼쳐지는 순간이야말로 와인을 공부하는 사람에게 최고의 즐거움이죠.”

쿠뮤 리버는 1944년 브라이코비치(Brajkovich) 가문이 오클랜드에 세운 와이너리. 쿠뮤 부지의 작은 포도원에서 시작해 2017년엔 혹스 베이(Hawke's Bay)에 대규모 포도밭을 사들여 영역을 넓혔다. 혹스 베이의 테루아가 가진 매력에 관해 그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혹스 베이는 뉴질랜드에서 거의 유일하게 보르도 스타일 블렌딩 와인을 만드는 지역입니다. 자갈 토양이 유명해서, 거기서 나오는 와인들이 구조감도 좋고 깊이도 있어요. 흔하게 만날 수 없는 스타일이라 더 매력적인 것 같아요."

브라이코비치 패밀리

쿠뮤 리버의 행보는 뉴질랜드 와인 역사에서도 꽤 독특하다. 초창기에는 레드와 화이트, 셰리 스타일 와인을 만들었지만, 1970년대 후반부터 과감한 도전을 이어갔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부르고뉴 스타일의 샤르도네'. 놀라운 품질 덕분에 쿠뮤 리버를 대표하는 시그니처 와인으로 자리 잡았다. 마시고 난 후, 레이블을 다시 들여다보게 될 만큼 인상 깊었던 기억이 난다. 1986년 와이너리 이름을 쿠뮤 리버 와인스로 바꾼 뒤, 지금까지도 뉴질랜드 샤르도네의 대표 주자로 인정받고 있다.

"소믈리에들끼리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할 때 품질 좋은 뉴질랜드 와인을 마시면 부르고뉴 같다는 얘기가 많아요. 그만큼 퀄리티가 올라왔단 얘기죠. 이 자리까지 오는 데 수많은 와이너리의 노력과 혁신이 있었고, 그 중심에 쿠뮤 리버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쿠뮤 리버 에스테이트 샤르도네 & 쿠뮤 리버 에스테이트 피노 그리

테이스팅 노트 및 와인 페어링

이번에 선보인 ‘쿠뮤 리버 에스테이트 샤르도네(Kumeu River Estate Chardonnay)’와 ‘쿠뮤 리버 에스테이트 피노 그리(Kumeu River Estate Pinot Gris)’는 소믈리에들 사이에서도 반응이 좋았다.

"테이스팅은 처음이었는데, 두 와인 다 진짜 놀라웠어요. 샤르도네는 정말 부르고뉴 샤르도네 같았고, 피노 그리는 약간의 잔당이 남아 있어서 음식과 페어링할 때 좋은 포인트가 많더라고요. 와인 좀 즐기거나 익숙한 분들께 꼭 추천하고 싶어요. 뉴질랜드 와인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달라질 겁니다. 특히 피노 그리의 잔당감, 허브랑 꽃 향은 지금 권숙수 메뉴 중에 있는 호박꽃 튀김이랑 먹으면, 은은한 꽃 향이 퍼지면서 마치 정원 한가운데 있는 것처럼 느껴질 거예요."

지현주 소믈리에의 픽

현재 레스토랑 기와강의 소믈리에, 지현주는 CMS 서티파이드 소믈리에, WSET Level 3, FWS 와인 인증 그리고 독일 모젤 와인 전문가 과정까지 수료한, 말 그대로 학구파 소믈리에다.

"음식과 잘 어울리고 산도가 좋은 와인을 좋아해요. 제일 좋아하는 와인을 고르라면 단연 샴페인이죠. 데일리 와인으로 산도가 좋은 화이트 와인이나 가벼운 피노 누아를 마셔요. 다음 날 스케줄에 부담도 적으니까요." 그런 취향 덕분에 그는 뉴질랜드 와인을 특히 반긴다.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이나 피노 누아는 와인 러버라면 좋은 가격에 좋은 퀄리티로 즐길 수 있는, 정말 똑똑한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지현주 소믈리에

3개월 쉬르 리 숙성으로 탑재한 이스트 풍미, 오투(OTU)

"오투의 소비뇽 블랑은 다른 와인보다 훨씬 더 강렬했어요. 쉬르 리(Sur Lie) 숙성을 통해 부드럽고 깔끔한 산도가 와인을 한층 더 생동감 있게 만들어줍니다. 찾아보니 2023년에 뉴질랜드 주요 와이너리에서 17년간 경력을 쌓은 안나 레몬드(Anna Remond)가 팀에 합류했더군요. 프랑스 상세르와 부르고뉴에서도 와인 생산에 참여한 열정적인 소비뇽 블랑 지지자에요."

뉴질랜드 'Women in Wine' 조직의 회원인 안나 레몬드는 여성 와인메이커들의 경력 개발을 지원하는 멘토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런 여성 와인메이커들을 볼 때마다 건강한 자극을 받아요. 저 또한 선배님과 후배님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소믈리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죠."

해안에 인접한 오투의 포도밭

오투는 2000년에 설립된 와이너리로, 15년 이상 지속 가능한 인증(Certified Sustainable)을 받았으며 모든 와인이 비건 프렌들리다. 말보로 아와테레 밸리 남부에 150헥타르 규모의 포도밭을 보유하며 연간 약 180만 병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화려한 글로벌 어워드 수상 경력을 자랑하며 글로벌 Top 25 슈퍼 프리미엄 뉴질랜드 와인 브랜드로 성장 중이다. 오투가 위치한 말보로의 아와테레 밸리 남부는 해안에 인접해 있어 독특한 테루아로 잘 알려져 있다.

"뉴질랜드 남섬 최북단에 있는 말보로에서도 아와테레 밸리는 같은 지역의 와이라우 밸리보다 더 서늘하고 바람도 강하게 불며 건조한 편입니다. 이런 기후 조건은 포도나무의 생장력을 억제하고 수확량도 줄어들게 하죠. 대신 포도알은 작고 맛은 진하게 응축돼 풍미가 훨씬 강해집니다. 그래서 와인은 생동감 넘치고 상쾌하며, 특유의 미네랄리티를 갖게 됩니다."

오투 와인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쉬르 리 숙성을 거친다는 점. 소비뇽 블랑은 보통 신선한 과일 풍미를 살리기 위해 오랜 기간 숙성을 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쉬르 리 숙성이나 오크 숙성을 선택하여 개성을 더하는 와이너리가 계속 늘고 있다.

"쉬르 리 숙성은 와인에 복합적인 이스트 풍미를 부여할 뿐 아니라, 효모가 산소를 흡수해 와인의 산화를 방지하는 역할도 합니다. 그 결과 과실 풍미가 더욱 깨끗하게 유지되는 거죠"

오투 리미티드 릴리즈 소비뇽 블랑

테이스팅 노트 및 와인 페어링

이날 소개된 와인은 오투의 시그니처 소비뇽 블랑인 오투 소비뇽 블랑(OTU Sauvignon Blanc)과 한정판 컬렉션인 리미티드 릴리즈 소비뇽 블랑(OTU Limited Release Sauvignon Blanc) 두 가지였다.

"오투 소비뇽 블랑은 녹색 허브 노트, 레몬그라스, 레몬-라임, 루비 자몽 등 과실 아로마가 풍부해요. 상쾌한 과일 풍미 덕분에 봄부터 무더운 여름까지 가볍게 즐기기 좋은 스타일이죠."

리미티드 릴리즈는 더 특별한 과정을 거치는데, 최대한 과일 풍미를 얻기 위해 늦은 수확을 택하고 소형 스테인리스 발효조에서 발효한 후 6개월간 쉬르 리 숙성을 진행한다.

“익은 메론, 라임, 청사과의 향과 함께 신선한 산미, 숙성에서 오는 깊이감, 미네랄리티, 긴 여운까지 조화롭게 어우러집니다. 균형이 좋고 마무리도 깔끔해서 평소 소비뇽 블랑 애호가라면 꼭 맛봐야 해요. 박스로 사두고 데일리로 즐기기에도 손색없어요."

호불호 없는 뉴질랜드 리슬링, 리틀 뷰티(Little Beauty)

"그날 테이스팅한 와인 중 레이블이 제일 눈에 들어왔어요. 이름도 리틀 뷰티. 작고 소중한 느낌 그대로였죠. 마지막에 한 번 더 손이 간 이유, 아마 그런 인상이 남아서일 거예요. 무게감 있는 리슬링보다 훨씬 부드럽고 가볍게 마실 수 있어서, 리슬링이 낯선 분께도 편하게 권할 수 있는 스타일이에요."

리틀 뷰티는 뉴질랜드 최초의 여성 와인메이커이자 '클라우디 베이' 수석 와인메이커로 활약했던 에블린 프레이저(Eveline Fraser)가 론칭한 브랜드. 2008년 첫 빈티지로 세상에 이름을 알렸고 생산량은 극소량으로 제한하고 있다. 말보로 남쪽 와이호파이 밸리(Waihopai Valley)의 다섯 구획으로 나눠진 포도밭에서 수확한 포도로 만들어지며, 현대적인 양조 기법에 전통 방식의 장점을 더한 유연한 양조 감각이 인상적이다. 리틀 뷰티처럼 여성 와인메이커들의 활약은 이제 특별한 일이 아니다. 같은 여성으로서 느끼는 이들의 존재감, 와인업계의 여성 파워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뉴질랜드의 토양, 기후, 그리고 자연에서 오는 섬세한 결을 잘 포착하고 표현하는 데 강점이 있는 와이너리가 많아요. 소량 생산이 모두 프리미엄이라는 건 아니지만, 집중하고 싶은 메시지를 또렷하게 담아내는 데엔 그만한 방식이 없죠. 여성 와인메이커들은 그런 섬세함을 무기로, 우아한 스타일의 와인을 표현한다고 생각해요. 소비자들의 니즈와도 잘 맞으니, 여성 와인메이커들이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지고 있는 게 아닐까요.

서비스 현장도 마찬가지예요. 좋은 와인이 기억에 남는 건, 분위기와 함께한 음식, 사람들 때문이잖아요. 스토리가 담긴 감성적인 와인이 곁들여지면 와인 경험은 한층 더 깊어질 겁니다. 특히 여성 소믈리에들의 섬세한 관점과 추천은 이런 ‘경험의 확장’에 꼭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요."

이번 행사에서 유일하게 선보인 리슬링, ‘리틀 뷰티 리미티드 에디션 드라이 리슬링(Little Beauty Limited Edition Dry Riesling)’. 유명 와인 평론가 잰시스 로빈슨(Jancis Robinson)은 뉴질랜드 리슬링을 알코올 도수는 낮지만 풍미는 꽉 찼다며 “완벽하게 조화된 와인”이라 평한 바 있다. 실제 드라이부터 세미 드라이까지 다양한 스타일을 선보이며 독일 리슬링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 부담 없는 가격도 매력이다.

"뉴질랜드 전체 와인 생산의 70% 이상이 화이트 와인이고, 그중 절반 이상이 소비뇽 블랑이에요. 샤르도네, 리슬링, 피노 그리까지 점점 다양해지고 있죠. 리슬링은 생산자의 색채보다 품종 고유의 퓨어한 향과 뉘앙스를 더 살리는 쪽이에요. 덜어내는 와인, 그래서 더 깔끔한! 빠르게 시장에 출시되고 소비까지 이뤄지니 산업적으로도 강점이 있는 셈이죠. 앞으로 뉴질랜드 리슬링이 보여줄 ‘깨끗한 테루아’가 더 기대돼요."

한편, 제임스 서클링은 “누가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을 숙성할 수 없다고 했나?”라며 ‘리틀 뷰티 블랙 에디션 소비뇽 블랑 2019(Little Beauty Black Edition Sauvignon Blanc 2019)’를 프랑스 푸이 퓌메와 비교해 높이 평가했다. 마시기 좋은 소비뇽 블랑에서 시작된 붐이, 이제는 프리미엄 시장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뉴질랜드 프리미엄 와인 수요는 꾸준히 오르는 추세이고 생산자들도 그 흐름에 맞춰 계속 발전하고 있어요. 최근 소비뇽 블랑을 오크 숙성해서 복합적인 풍미를 부여한 스타일이 많이 보이는데, 이건 분명 ‘진화’라고 말할 수 있겠죠. 마셔보면 바닐라, 토스트 향, 신선한 산미, 과실 향이 복합적으로 조화를 이루는데, 솔직히 놀랄 만큼 훌륭해요. 장기 숙성 가능성도 기대되고요. 생선회에만 어울린다고요? 이젠 메인 요리랑도 근사하게 어울립니다."

리틀 뷰티 리슬링

테이스팅 노트 및 와인 페어링

"드라이 리슬링은 은은한 페트롤 향에 레몬 라임 제스트, 온화한 기후에서 오는 열대과일 아로마가 어우러집니다. 산도도 부드러워 식전주로 이상적이에요. 얇은 타르트에 광어 카르파치오, 딜 허브, 레몬 제스트를 얹은 아뮤즈 부쉬와 매칭하면 더할 나위 없죠.

블랙 에디션 소비뇽 블랑은 복합적인 향과 질감 덕에 삼나무에 살짝 훈연한 삼치구이, 팬 프라잉한 야채, 그리고 버터와 레몬으로 마무리한 봉골레 소스를 곁들인 메인 요리와 잘 어울릴 거예요."

뉴질랜드의 프리미엄 와인의 품격, 펄리셔(Palliser)

"’펄리셔 소비뇽 블랑(Palliser Sauvignon Blanc)’은 그날 테이스팅한 와인 중 가장 인상 깊었어요.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 특유의 구즈베리나 풀 향보다 복숭아, 파인애플 같은 달콤한 과일 향이 먼저 와닿았거든요. 산도는 부드럽고 기분 좋게 퍼졌고요. 이 와인을 소개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제비뽑기에서 진짜 펄리셔가 나왔어요. 우연인데도 보이지 않는 끈이 이어져 있나 싶어 반갑더라고요."

1984년, 펄리셔는 마틴보로(Martinborough)의 와이라라파(Wairarapa) 지역에서 조용히 시작되었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던 이곳의 가능성을 믿었던 것. 그 결과 오늘날 마틴보로는 뉴질랜드 프리미엄 와인의 중심 생산지 중 하나가 되었다.

"마틴보로는 위도상 말보로와 비슷하지만, 기후는 훨씬 더 강렬해요. 낮엔 30도를 훌쩍 넘고, 밤이면 10도 아래로 떨어지죠. 포도는 천천히 익어요. 그 덕분에 당도와 산도 모두가 단단해지고, 맛은 깊어져요. 자갈과 점토가 섞인 토양은 배수가 뛰어나 곰팡이 걱정할 필요 없어요. 특히 진균성 질병에 취약한 피노 누아엔 최적이죠."

마틴보로에 있는 펄리셔 포도밭

지현주 소믈리에의 설명처럼 마틴보로는 피노 누아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곳이다. 펄리셔는 전체 포도밭의 51%에 피노 누아를 심고 있지만, 생산량은 전체의 36%뿐이다. 최고 품질을 위한 소량 생산으로 ‘뉴질랜드 프리미엄 피노 누아의 본고장’의 명예를 지키고 있다. 펄리셔 피노 누아는 흙 내음과 감칠맛, 실키한 질감과 섬세한 타닌이 특징이다. 부르고뉴와 비교했을 때 어떤 차별점이 있을까?

"부르고뉴 와인은 보르도 와인처럼 아주 오랜 숙성을 하지 않아도 마시기 편하고, 또 복합미와 장기 숙성이 가능한 요소들도 갖추고 있어 프리미엄 시장에서 사랑받죠. 마틴보로 테루아는 부르고뉴와 가장 비슷하다고 평가받아요. 마틴보로 피노 누아는 부르고뉴 피노 누아의 장점들을 받고 그 위에 생동감을 더했어요. 테루아의 힘이죠. 따라 하려 해도 자연이 만든 맛을 흉내 낼 수 없어요."

펄리셔 에스테이트 샤르도네 & 펄리셔 에스테이트 피노 누아

테이스팅 노트 및 와인 페어링

신선하고 단단한 ‘펄리셔 소비뇽 블랑’, 깊고 우아한 ‘펄리셔 피노 누아(Palliser Pinot Noir)’. 이 와인들은 어떤 순간과 어울릴까?

"펄리셔는 처음부터 지속가능성과 환경보호를 핵심가치로 삼아온 와이너리예요. 인위적인 개입을 줄이고, 테루아 본연의 순수한 얼굴을 담아내죠. 소비뇽 블랑은 맑고 시원하고, 피노 누아는 조용한 깊이를 갖고 있어요. 소중한 사람과의 식사,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은 순간, 고심 끝에 준비한 마음을 전달할 때 잘 어울리는 와인이 아닐까 생각해요.”

박지현 소믈리에 사진 장원준 포토그래퍼 사진·자료 제공 각 수입사, New Zealand Winegr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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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공개일 : 2025년 04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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