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와인을 마시며 전혀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떴던 것처럼, 와인 세계에도 그런 '처음’이란 순간들이 있다. 언제나 그 ‘처음’은 순수하고 용기 있는 도전에서 시작되었고 곧 새로운 역사와 전통이 되었다. 롱가로티(Lungarotti)의 처음은 세계 와인지도에 움브리아(Umbria)를 당당히 올려놓았고 한 모금, 혀끝에 닿는 순간 미소 짓게 만드는 와인들로 세계를 사로잡았다.
1990년대 중반부터 수입사 신동와인을 통해 한국에 처음 소개된 롱가로티. 이탈리아 움브리아주의 유서 깊은 와이너리로 이탈리아의 명성 높은 와인 명가, 19개 패밀리가 모여 결성한 그란디 마르키(Grandi Marchi)의 일원이기도 하다. 최근 한국 문화를 깊이 이해하고 있는 수출 매니저, 마르코 로씨(Marco Rossi, 위 사진)가 방한하여 룽가로티의 “균형 잡힌 움브리아 산지오베제의 클래식”을 소개했다.
이탈리아의 녹색 심장, 움브리아에서 만든 보석
토스카나, 라지오, 마르케에 둘러싸인 움브리아는 지도상 정중앙에 위치하여 ‘이탈리아의 녹색 심장’이라 불린다. 바다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이곳의 테루아는 매우 다양하다. 움브리아 북쪽 트라시메노(Trasimeno) 호수 근처는 매우 서늘하고 남쪽은 지중해성 기후로 온화하고 햇살이 풍부하다. 예로부터 사랑받아 온 화이트 와인, 오르비에토(Orvieto)을 제외하면, 룽가로티의 등장 전까지 움브리아에는 내세울 만한 레드 와인이 없었다.
1962년, 이탈리아 와인 양조학의 선구자 조르지오 룽가로티(Giorgio Lungarotti, 위 사진)가 토르자노(Torgiano)의 가족 농장을 와이너리로 탈바꿈하면서 움브리아 와인 생산에 혁신의 바람을 일으켰다. “조르지오 룽가로티는 움브리아도 토스카나처럼 산지오베제로 좋은 레드 와인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현대에 들어 처음 증명했고, ‘슈퍼 움브리아’라 불릴 와인을 연구하기도 했다.” <월드 아틀라스 와인(8번째 개정판)>에서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 휴 존슨(Hugh Johnson)과 잰시스 로빈슨(Jancis Robinson)이 언급했듯이, 룽가로티의 노력은 성공으로 보답받았고 이후 움브리아 최초의 DOC/DOCG 등급 획득으로 이어졌다.
현재 룽가로티는 토르자노(230헥타르)와 몬테팔코(20헥타르)에 총 250헥타르를 소유, 운영하고 있다. 토르자노 포도원은 정통 움브리아 와인의 기준이 되는 루베스코 로쏘(Rubesco Rosso)와 루베스코 리제르바(Rubesco Riserva)가 탄생한 곳이다. 2000년 설립자의 두 딸이 시작한 몬테팔코(Montefalco) 포도원은 토착 품종, 사그란티노로 장기 숙성용 레드 와인을 만들고 있다. 연간 평균 약 250만 병이다.
“환경을 존중하면서 최대 품질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룽가로티의 철학은 모든 생산 공정에서 실천되고 있다. 포도밭에 기상 관측소를 설치해 기후를 모니터링하고, 엄격한 물관리와 유기농 비료 활용, 호르몬을 이용한 해충 방제 등 다양한 친환경 방식을 도입했다. 2018년에는 와이너리 건물 지붕에 태양광 시스템을 설치해 전체 전기 에너지의 40%를 충당하고 있다. 2018년에 룽가로티 포도원은 VIVA 인증(이탈리아 환경부의 지속 가능성 인증 프로그램)을 받았고 2010년부터 유기농으로 재배해 온 몬테팔코 포도원은 2014년에 유기농 인증을 받았다.
와인을 중심으로 한 천 년의 경험, Lungarotti Experience
1974년, 룽가로티는 와인과 함께 움브리아와 지중해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고 알리기 위해 와인 역사 박물관(MUVIT)을 개관했다. 이 박물관은 미 뉴욕 타임스에서 예술적 컬렉션의 품질이 '이탈리아 최고'로 소개된 바 있다. 20개의 전시실에 3,000점 이상의 유물(아래 사진)이 전시되어 있으며, 매년 15,000명 이상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2000년에 문을 연 올리브 및 올리브 오일 박물관(MOO)은 총 11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으며, 올리브 품종과 올리브 오일 추출 기술 및 역사를 포함한 수 세기에 걸친 '녹색 황금' 올리브의 가치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또한, 목가적인 포도원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는 5성급 리조트와 룽가로티의 올드 빈티지를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도 운영하고 있다.
룽가로티 레드 와인 삼총사
매출의 약 45%를 수출하는 룽가로티는 전 세계 50개국 이상에서 판매되고 있다. 국내 시장엔 레드 와인 루베스코, 루베스코 리제르바, 산 조르지오(San Giorgio)를 비롯해 화이트 와인 토레 디 지아노(Torre di Giano)와 모스카토 스푸만테(Moscato Spumante)가 유통되고 있다. 선선한 바람 따라 점점 레드 와인이 땡기는 가을을 맞아 룽가로티의 자랑, 세 가지 레드 와인을 맛있는 이탈리아 요리와 매칭했다.
마르코 로씨는 움브리아 산지오베제의 특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산지오베제는 수천 년 동안 토스카나, 에밀리아 로마냐, 움브리아에서 재배되어 왔다. 토스카나의 산지오베제는 가벼운 바디와 높은 산도를 특징으로 하며, 로마냐의 경우 무거운 바디와 두터운 타닌 구조를 가지고 있다. 움브리아의 산지오베제는 이 두 지역의 중간 정도로, 토스카나보다 바디가 무겁고 로마냐보다 신선하며 과일 향이 풍부하다.” 그래서 양념이 강한 한국 음식과 잘 어울린다고 강조했다.
룽가로티의 핵심, 루베스코 2019(Rubesco 2019)
품종 산지오베제 90%, 콜로리노 10%
움브리아 와인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와인으로 움브리아 최초 DOC 등급을 획득했다(1968년). 마르코 로씨의 표현을 빌리면 “목요일 와인”이라 할 수 있는 대중적인 와인. ‘루베스코’는 ‘기쁨으로 얼굴을 붉히다’란 라틴어 동사, rubescere에서 왔다고. 이름처럼 붉은 뺨 같은 루비색을 띠며 붉은 베리와 시나몬, 후추의 풍미가 지속된다. 천천히 타닌은 부드러워지고 산미 또한 부담스럽지 않다. 2021년부터 CO2 배출을 줄이기 위해 무게가 가벼운 병에 담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잘 나가는 와인’답게 피자, 파스타 등 두루두루 잘 맞는데, 마르코 로씨의 픽은 토마토소스의 라자냐와 육회 비빔밥, 육전. 제임스 서클링 92점을 받은 저력 있는 와인이다.
움브리아 최초의 싱글 빈야드 와인, 루베스코 리제르바 2018(Rubesco Riserva 2018)
품종 산지오베제 100%
룽가로티의 얼굴 같은 와인. 싱글 빈야드와 단일 품종에 집중하는 부르고뉴 생산 방식을 도입하여 자가 소유 포도밭 중 뛰어난 위치와 독특한 테루아를 가진 비냐 몬티키오(Vigna Monticchio)에서 나온 산지오베제로 만들고 있다. 움브리아 최초 DOCG 등급을 획득했다(1990년).
몬티키오 포도밭은 해발 300미터에 위치한 브루파(Brufa)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총 15헥타르 중 10헥타르에서 나온 산지오베제가 사용된다. 토양은 호수의 영향을 받아 점토층과 모래층이 번갈아 나타나며 아래쪽으로 갈수록 모래층이 더 많다. 포도나무의 평균 수령은 45~50년. 빈티지가 뛰어난 해에만 생산되고 오랜 숙성 후에 출시된다. 과거엔 출시까지 약 10년이 걸렸으나, 최근엔 12개월 배럴 숙성과 3년 동안 병 숙성을 거친 후에 만날 수 있다.
루베스코 리제르바는 매번 출시될 때마다 높은 평가를 받기로 유명한데, 최신 소식은 더욱 놀라웠다. 이탈리아의 밀라노 피난자 그룹(Milano Finanza Group)이 발행하는 월간지 젠틀맨(Gentleman)은 매년 2월, 이탈리아 베스트 레드 와인 100선을 발표한다. 이 순위는 감베로 로쏘, 이탈리아 소믈리에 협회 등 6개의 권위 있는 이탈리아 와인 가이드에서 평가한 점수를 합산해서 결정된다. 2021년, 루베스코 리제르바 2016와 사시카이아 2017(Sassicaia 2017)이 공동 1위를 차지했다. 마르코 로씨는 “루베스코 리제르바는 항상 상위 10위 안에 드는 와인으로, 2017년 빈티지는 5위, 2018년 빈티지는 3위로 선정된 바 있다. 이는 일관된 품질과 우수성을 보여주는 지표이며 높은 품질과 평판을 유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깊은 루비색이 매력적이다. 블랙 체리, 블랙베리, 발사믹, 약간의 향신료의 향미가 풍부했다. 타닌은 벨벳처럼 부드럽고 산미는 적당하다. 잘 익은 과일의 느낌은 농밀하며 깊이있다. 우아하고 균형이 잘 잡혀 계속 손이 가는, 그런 와인이다. “강렬하고 폭발적인 와인이라기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와인의 깊이와 복합성이 점점 드러나면서 감각을 사로잡는 와인”이란 마르코 로씨의 표현에 딱 들어맞았다. 게다가 장기 숙성을 위한 구조와 균형을 갖추고 있어 30~35년 후에 열어도 문제없다고. 전통적인 매칭인 프로슈토, 트러플을 올린 파스타, 로스트비프도 궁합이 좋고 한국 음식 중엔 고기 순대, 양념 돼지갈비, 족발 등 아주 맵지 않은 양념의 음식을 매칭해볼 것을 권했다.
움브리아 최초의 국제품종 와인, 산 조르지오 2016(San Giorgio 2016)
품종 카베르네 소비뇽 50%, 산지오베제 40%, 카나이올로 10%
설립자 조르지오는 이탈리아에서 국제 품종이 인기를 얻기 전부터 이를 과감히 도입했으며 1970년대에 움브리아 최초의 카베르네 소비뇽 블렌딩 와인을 출시했다(첫 빈티지는 1977). 이 와인은 슈퍼 투스칸처럼 ‘슈퍼 움브리안’이라 불릴 만큼 큰 파장을 일으켰다. 카베르네 소비뇽 포도밭은 석회암 성분이 많은 튜파(tufa) 기반의 암반 위에 위치하는데, 여긴 자갈 섞인 토양이다. 산지오베제는 몬티키오 포도밭에서 나온 것을 사용한다. 프랑스산 오크배럴에서 12개월, 병입 후 추가로 12개월 이상 숙성한 뒤 출시된다. 레이블은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라파엘로의 그림을 사용해 특별함을 더했다.
가넷과 루비색 중간 정도의 색감을 띠고 블랙 체리, 자두쨈, 카카오, 토스트, 계피, 허브의 향미가 조화를 이룬다. 탄탄한 타닌의 느낌이 혀를 조이고 입안을 가득 채우는 무게감도 확실하게 느껴진다. 진한 풍미 속에서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산도 때문에 와인이 지루하지 않다. 루베스코 리제르바보다 강하고 인상적이며 10년 이상 숙성될수록 복합적인 풍미가 잘 드러난다고. 마르코 로씨가 “가족들과 함께 하고픈 일요일 점심 와인”이라 하자마자, 특별한 때를 위해 아껴놓았던 귀한 술을 꺼내오는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교과서와 같은 페어링은 티본 스테이크, 꼬치에 구워 숯불에 구운 고기이며 한국 음식이라면 떡갈비를 바로 꼽았다.
이탈리아 와인의 음식 친화력은 사실 ‘말해 뭐해’라고 단언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룽가로티 와인은 매우 탁월해서 음식과 만났을 때 시너지가 폭발적이다. 캐주얼한 식사부터 고급 파인 다이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페어링이 가능한 것은 룽가로티 와인의 큰 장점이다. 한마디로, 룽가로티 와인의 진정한 매력은 식탁 위에서 비로소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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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박지현 사진·자료 제공 신동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