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을 읽고, 경험을 안내하는 – 와인 문화를 이끄는 새로운 존재의 등장
팬데믹 이후, 와인 시장은 급격히 확장되었다. 수많은 와인샵이 생겨났고 선택지는 넘쳐났지만, 오히려 소비자들은 점점 더 혼란을 느끼게 됐다. 그 복잡한 숲속에서, 이제는 단순한 ‘판매자’가 아니라 방향을 제시해 줄 전문적인 해설자가 필요해진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의 흐름 속에서, 새롭게 주목받는 인물들이 있다. 와인을 단지 진열하고 판매하는 사람이 아닌, 브랜드가 담고 있는 깊은 의미를 이해하고 그것을 자신만의 언어로 풀어내는 사람들. 고객의 취향을 세심하게 읽어내며 한 병의 와인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진심을 담아 전하는 이들. 바로 카비스트(Caviste) 다.

프랑스 동네 와인상에서 한국의 와인 큐레이션 전문가로
카비스트는 프랑스어 '카브(Cave)', 즉 와인 저장고에서 파생된 말이다. 원래 프랑스에서는 동네 와인 상점의 신뢰받는 실전형 전문가를 뜻했다. 단순한 관리인이 아닌, 마을의 취향을 읽고 지역 식탁에 와인을 올리는 문화적 결정권자였다. 하지만 한국의 카비스트는 한 차원 더 진화했다. 매장 현장에서 고객과 직접 마주하고, 끊임없이 좋은 와인을 발굴하며, 설명하고, 추천하는 현장 전문가들이다.
레스토랑에서 식사와 어울리는 와인을 서빙하는 소믈리에와 달리 카비스트는 매장에서 와인을 선별하고 스토리를 구성하며, 고객의 취향과 예산, 용도에 따라 맞춤형 큐레이션을 제공하는 역할을 맡는다. 즉, 유통의 첫 관문이자 소비와 연결되는 마지막 접점에 서 있는 핵심 전문가들이다.
미래를 예측하는 안목이 곧 경쟁력
카비스트에게 재고에 대한 감각은 전문성의 핵심이다. 퀄리티 있는 와인을 제대로 고르지 못하면 매장 운영에 부담이 되는 불필요한 재고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이미 유명한 와인이 아니라 앞으로 주목받을 와인, 아직 발굴되지 않은 가치를 지닌 와인들에 집중한다. 셀러에 둘수록 빛나는 와인, 시간이 줄 수 있는 가치를 미리 알아보는 눈. 그것이 카비스트만의 차별화된 무기다. 이들은 단순한 판매자가 아닌 트렌드 선도자다. 와인 시장의 흐름을 읽고, 소비자보다 한 발 앞서 다음 시대의 와인을 발굴해내는 안목 있는 큐레이터인 셈이다.

현재, 전국 50여 개 매장을 잇는 전문가 네트워크, 한국카비스트유니언
한국카비스트유니언(Korean Caviste Union, 이하 한카유)은 현장 전문가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새로운 형태의 네트워크다. 비노보노의 카비스트 에미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한카유는 전국 각지의 독립 와인샵에서 활동하는 카비스트들이 하나둘 연결되며 자연스럽게 탄생했다. 2024년 창립 이후 빠르게 확산되어 지금은 서울부터 제주까지 전국 50여 개 와인샵이 이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다.

각자의 지역에서 신뢰할 수 있는 와인을 엄선하고, 고객에게 더 깊은 경험을 전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연구하는 전문가들이 이 네트워크의 중심에 서 있다. 좋은 와인을 함께 선별하고, 공동으로 발주해 더 많은 사람에게 그 가치를 전하는 것 역시 한카유의 중요한 역할이다. 혼자서는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와인을 함께 찾아내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공유하며 전국 곳곳에 “와인의 진짜 매력”을 전하고 있다.
작년 대전 와인엑스포에 공식 참여하며 ‘카비스트’라는 직업군을 대중 앞에 소개하는 데 앞장섰고, 지금도 세미나와 각종 현장 활동을 통해 이 이름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꾸준히 함께 움직이고 있다.

체계적 전문가 양성을 통한 업계 리더십 구축
한카유는 카비스트 세미나를 통한 재교육과 차세대 전문가 양성에도 적극 나설 예정이다. 와인과 음식의 마리아주부터 치즈 페어링, 그리고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와인 포장 기법까지, 카비스트가 갖춰야 할 다양한 전문 역량을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구축하는 중이다.
이는 단순한 지식 전수를 넘어, 고객에게 더 깊이 있는 와인 경험을 선사하기 위한 종합적 접근이다. 현장에서 검증된 경험과 실력을 바탕으로 카비스트만의 고유한 기준과 체계적인 커리어 트랙을 구축하는 것이 이들의 다음 목표다. 이를 통해 카비스트라는 직업이 단순한 판매직을 넘어 와인 문화를 선도하는 전문직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소비자에게는 믿을 만한 와인 파트너
카비스트는 이제 와인 시장을 움직이는 새로운 전문 직군으로 자리잡았다. 현장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고객에게 무엇을 제안해야 할지 감각적으로 판단하는 전문가들. 무엇보다 수입사와 고객 사이를 가장 정교하게 잇는 핵심 역할을 담당한다.
이제 소비자들은 믿을 만한 카비스트 한 명을 알아두는 것이 와인 선택의 성공 열쇠가 되었다. 복잡해진 와인 시장에서 개인이 모든 정보를 파악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접근하기 쉽고 소통이 원활한 카비스트와의 관계를 구축해두면, 특별한 날의 와인부터 일상의 한 잔까지 실패 없는 선택이 가능하다. 개인의 취향과 예산,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맞는 최적의 선택지를 제안해주는 든든한 파트너인 셈이다.

전문성과 공감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흐름
한카유에는 비슷한 현장을 겪어온 사람들 사이의 공감이 있다. 같은 고민을 나누고, 같은 손끝으로 병을 열어본 경험, 같은 방식으로 시음노트를 작성하며 고객과 소통해온 사람들이 모였다. 이들은 분기마다 열리는 총회를 통해 아직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충분한 잠재력을 지닌 수입사들을 초청해, 함께 와인을 시음하고 실제 매장에서 취급 가능한 와인에 대해 심도 깊은 논의를 나눈다.
이 자리는 단순한 테이스팅을 넘어, 시장을 움직일 ‘다음 주자’를 발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한국카비스트유니언은 그렇게 급격히 변화하는 주류 시장에서 전문성을 잃지 않으려는 이들의 선택이자 또 다른 이름이다. 흔들리는 유통 구조 속에서도 끝까지 설명할 수 있는 와인을 고르고, 그 이유를 명확히 말할 수 있는 사람들. 그들의 안목과 판단, 그리고 선택의 무게가 한국 와인 시장의 다음 단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문의
▶인스타그램 @korea.cavisteunion
▶한국카비스트유니언 회장 김무준 (010-6358-9798)
글·사진 제공 이효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