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병일지도 모르겠다. 매주 일요일 재활용품을 내놓을 때마다, 와인병이 있는지 — 있다면 어떤 와인인지 — 레이블을 유심히 살펴본다. 동네 작은 레스토랑 앞에 놓인 빈 병들을 보며, 어느 나라, 어느 지역인지 확인하기도 한다. 순수한 호기심도 있지만, 어떤 와인이 사람들의 일상에 스며들어 있는지가 궁금하다.
한국 와인시장은 논알코올, 오렌지 와인 등 세계 각지의 와인들이 포도알 터지게 경쟁하는 무대다. 하지만 실제 소비의 현장은 조금 다르다. 2024년 한국 와인수입 통계에 따르면, (여전히) 물량 기준 1위는 칠레, 금액 기준 1위는 프랑스다. 이는 ‘전문가의 입소문’과 ‘대중의 장바구니’ 사이에 분명한 격차가 존재함을 보여준다. 이 격차는 단순한 취향의 차이가 아니라, ‘정보 접근성’과 ‘안전한 선택에 대한 심리’에서 비롯된다.

내게 너무 먼 당신
시장 구조의 두 축을 비교해보자. 칠레 와인은 ‘가성비’라는 눈에 보이는 장점으로 선택의 리스크를 줄이고, 프랑스 와인은 ‘전문성과 명성’이라는 문화적 가치로 애호가들의 지적 욕구를 채운다. 그렇다면 헝가리 와인처럼, 한반도에서 비교적 낯선 산지의 와인은 무엇을 무기로 삼아야 할까.
지난 10월 23일(목)에 열린 ‘헝가리 와인 토크쇼 & 와인 시음회’는 이 질문에 대한 탐구의 장이었다. 헝가리 와인이 ‘입문자에게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을지, 혹은 ‘애호가에게 숨겨진 보석’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를 논의하고 참석자들은 시음과 대화를 통해 그 가능성을 점쳐보았다. 이번 행사는 지난 헝가리 와인 서밋을 계기로 마련되었다. 님블리티(Nimbility) 한국 대표 사라수경, 와인 유튜버 양갱, 그리고 헝가리 와이너리를 대표해 토르나이 와이너리(Tornai Winery)의 율리아(Júlia Naszer)와 파인 와인 어소시에이션(Fine Wines Association)의 피터(Peter Vido)가 시음회 전 토크쇼에 참석했다.
와인은 살아있는 이야기
헝가리는 와인을 ‘보(Bor)’라 부른다. 와인·비노·바인처럼 비슷한 어원을 쓰는 많은 나라와 달리, 고유어가 있다는 게 눈에 띈다. 이 단어 하나에서 헝가리 와인의 오래된 전통과 뿌리가 드러난다.
율리아는 토카이 아수(Tokaj Aszú)가 복잡한 생산 과정과 긴 시간, 세심한 손길이 들어가는 만큼 특별하며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토카이 외 지역의 헝가리 와인은 합리적인 가격대를 유지하며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피터는 여기에 “헝가리 와인의 진정한 힘은 분명한 테루아, 와인 본연의 진정성,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친근함에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헝가리 와인 생산 비율을 보면 화이트 와인이 70%, 레드 와인이 30%를 차지한다. 그중 화산 토양에서 만들어지는 화이트 와인은 미네랄이 풍부하고 신선해, 최근 트렌드 중 하나, 화이트 와인의 인기에 잘 부합한다. 흥미로운 점은 기후 변화가 헝가리 와인산업에 뜻밖의 긍정적 효과를 가져왔다는 것. 기온 상승이 적포도 숙성에 유리하게 작용해, 오히려 품질을 끌어올렸다. 기후 변화의 명암이 아닐 수 없다.
마케팅과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율리아는 “좋은 와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와인에는 반드시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레이블의 한 줄, 하나의 이미지, 짧은 영상 하나에도 그 와인의 뿌리와 진심이 담겨야 한다고. 피터는 율리아보다 한 세대 위의 와인메이커다. 전통 있는 와이너리에서 일하며 ‘변화’보다 ‘지속’을 중시한다. 그는 “본래의 모습을 보여주고, 진실을 담아 꾸준히 이야기하는 것”이 헝가리 와인과 세계를 잇는 진정한 스토리텔링이라고 말했다.
유튜버 양갱은 ‘헝가리 와인 서밋’에서 새롭고 낯선 산지를 접한 뒤 “평소 관심 없었지만, 무시할 수 없는 훌륭한 품질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헝가리 와인을 경험할 기회를 더 넓혀야 한다고 강조하며, 화이트 와인이 트렌드 중심에 선 국내 시장에서 푸르민트(Furmint)와 하르슐레벨뤼(Hárslevelű, 보리수 잎) 같은 헝가리 드라이 화이트 와인이 충분히 경쟁력을 발휘할 것으로 전망했다.
토크쇼를 달궜던 이야기들은, 이번 시음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헝가리 와이너리 대표들과 인터뷰에서 보다 구체적인 그림으로 완성됐다. 와인 백과사전에서만 보던, 그래서 상상만 해왔던 와이너리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헝가리 와인의 4인 4색 인터뷰>
헝가리 와인은 트렌디하다 - 콜로니치(Kolonics)
- 전통은 깊게 스타일은 새롭게
숌로(Somió) 화산 언덕은 중부유럽 최대의 호수이자, 내륙 한가운데 자리한 헝가리의 ‘바다’라 불리는 발라톤(Balaton) 호수에 인접한 유서 깊은 와인 산지다. 예로부터 숌로 와인은 유럽 왕가와 귀족들의 사랑을 받았는데, 특히 ‘허니문 와인’으로 유명하다. ‘결혼 첫날밤에 마시면 아들을 낳는다’는 전설을 품은, 로맨틱한 와인이기도 하다.

콜로니치(Kolonics)는 가족경영으로 4대째 이어져 온 숌로의 톱 생산자 중 하나다. 이번 시음회에 3대인 아버지, 카로이 콜로니치(Károly Kolonics)와 아들 주니어(Károly Kolonics jnr.)가 함께 방문했다. 앞서 언급한 ‘허니문 와인’ 이야기를 꺼내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이어나갔다.
Q. 주요 품종, 테루아 그리고 콜로니치의 철학
A. 콜로니치의 주요 품종은 네 가지로, 모두 카르파타안(Carpathian) 지역의 토착 품종이며 헝가리 전통의 뿌리를 공유한다. 올라스리슬링(Olaszrizling, 완두콩 와인이란 뜻), 숌로의 상징인 유흐퍼르크(Juhfark, 양의 꼬리), 드라이 화이트 와인의 신성, 푸르민트와 하르슐레벨뤼가 그것이다.
올라스리슬링은 수확 시점에 따라 두 가지 성격을 지닌다. 일찍 수확하면 신선하고 과일 향이 풍부한 와인이 되고, 늦게 수확하면 진하고 농축된 풍미의 와인이 된다. 유흐퍼르크는 전 세계에서 약 200헥타르만 재배되는데, 대부분 숌로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재배는 까다롭지만 산도가 높고 구조가 잘 잡혀 있으며, 장기숙성 잠재력 또한 뛰어나다. 토카이 품종으로 알려진 푸르민트는 숌로에선 대부분 드라이 화이트 와인으로 양조되며 잘 만든 하르슐레벨뤼 와인은 우아한 산미와 조화로운 구조를 보여준다.
네 품종 모두 짭짤한 맛과 미네랄리티가 풍부한데, 이는 숌로의 특별한 테루아 덕분이다. 숌로는 휴화산 지형으로, 화산 폭발 후 형성된 그레인(grain) 현무암과 흙이 섞여 토양을 이룬다. 그 아래에는 고대 파노니아 해의 모래층이 자리한다. 우리는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며, 좋은 와인을 만들기 위해 좋은 포도가 우선이라고 믿는다. 와인은 약 12개월간 오크 숙성을 거치는데, 500~1800리터의 클래식 오크, 스팀드 오크(steamed oak), 아카시아 오크 등 다양한 나무를 사용한다. 이 또한 우리 와인의 개성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 콜로니치는 수확량 제한을 통해 포도의 농축미를 높이고, 제조제를 사용하지 않는 등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포도밭을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

Q. 기후 변화의 대응
A. 가장 큰 문제는 열기와 가뭄이다. 요즘은 겨울에도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지 않아, 해충과 세균이 살아남는다. 여름 세 달 동안 비가 거의 오지 않아 포도나무의 초기 성장이 늦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어지는 극심한 더위가 숙성을 빠르게 밀어붙여, 결과적으로 수확 시기는 앞당겨지고 있다. 수확할 때 온도 또한 너무 높아, 포도즙을 식히는 냉각과정을 추가하게 되었다. 현재 우리가 집중하는 것은 비 한 방울도 낭비하지 않는 것이다. 포도밭이 산비탈에 자리해 물 보존이 쉽지 않지만, 선조들의 지혜를 빌려 ‘경사 조절 기술(tilting technology)’을 발전시켰다. 덕분에 빗물이 흘러가 버리지 않고 포도밭에 머물며 땅속 깊이 스며들 수 있게 되었다.
Q. 내일의 헝가리 와인은?
A. 헝가리에는 이런 말이 있다.
“Tokaj is the king of wines, Somló is the wine of kings.”
(토카이는 와인의 왕, 숌로는 왕의 와인)
수 세기 동안 숌로 와인은 ‘허니문 와인’이란 불리며 전통과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왔다. 현재 숌로 와인은 드라이 화이트 와인 분야에서 그 품질을 널리 인정받으며 명성을 쌓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헝가리 와인의 차세대 품종은 푸르민트와 하르슐레벨뤼가 될 것이라 본다.

Q. 한국 와인애호가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A. 헝가리 작가 벨러 함버시(Béla Hamvas)는 『와인의 철학』에서 이렇게 말했다.
“숌로 와인은 현자의 와인이다. 그것은 가장 큰 지혜와 기쁨을 배운 이들의 와인이다.”
이 문장을 인용하며 인사드린다. 콜로니치 와인은 소량 생산하지만 매우 높은 품질과 독창성을 가진 와인으로, 그 깊이와 진심을 한국의 와인 애호가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콜로니치 부자의 마지막 인사는 헝가리 와인에 담긴 지혜와 진심을 전하는 말이었다. ‘현자의 와인’이라는 표현엔 오랜 세월 이어온 전통과 자연에 대한 존중, 자부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현재 콜로니치는 약 9헥타르 규모의 부티크 와이너리. 전 세계 12개국에 와인을 수출하며 ‘숨겨진 보석’, ‘테루아 특화 와인’으로 불린다. 수상 경력 또한 화려하다.
2021년 『Decanter Special Edition』 헝가리 와인 특집에서 2018 하르슐레벨뤼가 96점을 받아 1위를 차지했고, 『Wine & Spirits』에서는 2019 유흐퍼르크가 94점을 기록했다. 콜로니치의 드라이 화이트 와인은 세련된 풍미와 트렌디한 매력이 돋보인다. 스토리텔링과 확고한 품질을 모두 갖춘 콜로니치는 신선한 새로움을 찾는 와인 러버라면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와인이다.
헝가리 와인은 장인의 열정이다 - 말라틴스키(Malatinszky)
- 손으로 빚고 시간이 완성한다
빌라니(Villány)는 ‘헝가리의 보르도'라 불릴 만큼, 적포도 품종, —특히 카베르네 프랑—의 품질이 탁월한 지역이다. 지중해성 기후의 영향을 받아 일조량이 풍부하고 여름이 길어, 레드 와인 생산에 이상적이다. 유기농 와이너리 말라틴스키의 설립자 처버 말라틴스키(Csaba Malatinszky)는 카베르네 프랑에 대한 독보적인 열정의 소유자. 그가 쌓아온 확고한 철학 속에서 와인의 깊이가 완성된다.

Q. 주요 품종, 테루아 그리고 말라틴스키의 철학
A. 우리 가문은 14세기부터 와인을 만들어왔다. 가문과 별개로, 빌라니에서 나만의 독립 와이너리를 시작했다. 당시 빌라니에 카베르네 프랑이 많았지만, 주목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이 품종의 잠재력을 믿었고, 빌라니의 테루아가 가장 적합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보르도 대학과 10년간 협력하며 토양, 클론, 재배 방식에 관해 연구했고 헥타르당 약 6천 그루를 심었다. 내가 말하는 ‘품질’은 개성의 표현이다. 결국 빌라니는 카베르네 프랑의 개성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테루아임이 증명되었다. 현재 카베르네 프랑 외에도 메를로, 피노 누아, 머스캣(Muscat)과 리슬링을 재배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지구의 토양이 훼손된 시대에 살고 있다. 헝가리의 상황은 다른 나라보다 낫지만, 여전히 제초제 오염이 큰 문제다. 토양을 파괴하고 생명을 죽이는 독성물질임에도 인류는 무방비하게 사용해왔다. 지난 18년간 나는 유기농 재배자로 일했고 일부 포도밭에는 바이오다이내믹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 내게 유기농이란 자연의 힘을 믿고 그 흐름을 따르는 것이다. 이 철학은 포도밭뿐만 아니라 양조 전 과정에도 스며 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공지능이 모든 걸 대체하는 시대가 되고 있지만, 와인—그리고 모든 자연의 산물—은 사람의 손에서 나와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기계 사용을 최소화한다. 손수확은 물론 줄기 제거(destemming)도 손으로 직접 한다. 여과나 정제도 하지 않으며, 이산화황은 극히 소량만 사용한다.
‘현재에 집중’은 나의 핵심 철학이다. 와인의 독창성은 결국 와인메이커의 개성에서 비롯된다. 한 사람의 문화와 전통, 삶의 궤적이 개성이 되고, 그 개성이 와인에 고스란히 녹아들기 때문이다. 나는 소믈리에, 국제 와인 심사위원, 와인·미식 칼럼니스트로 일하며 나만의 감각과 표현 방식을 쌓아왔다. 그래서 나는 진정한 표현은 품종이 아니라 ‘나 자신’에서 나온다고 믿는다(그의 철학은 토착 품종이나 테루아보다 와인메이커의 주관적인 해석과 창조성을 더 중요하게 본다는 의미). 바로 내가 헝가리 품종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다. 실제 비즈니스 측면에서 “왜 헝가리 품종을 안 쓰냐”는 질문이 있지만(젠시스 로빈슨도 같은 질문을 했다) 하지만 나를 움직이는 건 열정이다. 카베르네 프랑이 헝가리 품종은 아니지만, 나의 영혼과 가문의 역사가 이 땅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으니 내가 만든 와인이 곧 헝가리 와인이라고 확신한다.

Q. 기후 변화의 대응
A. 나는 기후 변화에 대해 늘 “우리는 생산량을 줄여야 한다”고 말한다. 수확량을 줄이면 물이 덜 필요하고, 와인은 더 밀도 있고 완성된다. 그래서 시작부터 작고 효율적인 포도밭 시스템을 설계해 한 그루당 800g만 수확하고, 비료나 급수 없이 자연 순환형 생태계로 운영해왔다. 포도나무는 160~170cm, 포도송이는 지면에서 약 50cm 높이에 달리게 한다. 잎이 태양전지처럼 에너지를 모아 포도로 전달되도록 한다. 나무가 지나치게 자라면 햇빛을 과도하게 받아 당도와 알코올이 높아지고 산도가 낮아져 장기숙성에 적합하지 않다. 나는 와인을 곧바로 판매하지 않고 긴 숙성 끝에 출시하는 방식을 고수해왔다. 이 모든 실험과 경험은 20년 넘게 쌓아온 결과다. 오늘 시음회에 가져온 카베르네 프랑도 2013 빈티지로,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와인이다.

Q. ‘말라틴스키’란 이름의 무게는?
A. 나의 목표는 언제나 같다. 헝가리 와인을 세계에 알리는 것. 말라틴스키 와인은 국내외 고급 레스토랑과 개인 수집가에게만 공급되며 대형 유통채널에서는 찾을 수 없다. 와인의 가치를 진심으로 이해하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기 때문이다. 현재 전체 생산량의 약 70%를 해외로 수출하며 뉴욕·워싱턴 DC·스위스·런던의 미식 레스토랑에서 만날 수 있다. 나는 와인을 경쟁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나의 와인은 비교의 대상이 아니라, 나만의 세계를 표현하는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말라틴스키 쿠리아 카베르네 프랑(Malatinszky Kúria Cabernet Franc)'은 제임스 서클링(James Suckling) 평가에서 98점을 받았고 "헝가리에서 경험한 최고의 레드 와인 중 하나"라고 평했다. 내 와인은 지금도 누군가의 테이블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영국왕실과 미국 백악관 만찬에 올랐으며 2024년 유럽 정상회의 만찬에서 만찬주로 선정되었다.
*처버 말라틴스키의 별명은 ‘Monsieur CAF’. 영국의 저명한 와인 평론가 스티븐 스피리어(Steven Spurrier)가 붙여준 것으로 국제 와인업계에서 널리 알려져 있다. 현재 30헥타르의 포도밭을 소유하고 연간 6만~8만 병의 와인을 생산한다. 500리터 크기의 대형 배럴을 사용해 과도한 오크 풍미를 줄이고, 와인의 구조와 복합성을 통해 우아함을 표현한다. 이번 선보인 두 종류의 카베르네 프랑은 놀라울 정도의 독창성과 세련된 우아함을 보여줬다. 그의 말대로 순수한 100% 카베르네 프랑을 만드는 곳이 드물다. 섬세함이 요구되고 다루기 까다로운 품종이기 때문이다. 그의 열정과 몰입, 흔들리지 않는 철학에 경의를 표한다. 설명보다 와인 한 모금이 더 많은 것을 말해주기도 한다.
헝가리 와인은 감각적이다 - 사우스카(Sauska)
- 하나의 와이너리, 두 개의 테루아
1990년대 후반, 성공한 사업가, 크리스티안 사우스카(Krisztián Sauska)가 세계적 수준의 드라이 와인과 프리미엄 스파클링 와인을 목표로 빌라니에 설립한 100% 가족경영 와이너리. 헝가리 와인 시장의 혁신을 이끄는 대표 중 하나로 현재 토카이, 빌라니 그리고 부다페스트를 거점으로 삼고 있다. 영업 총책임자 다니엘 카토나(Dániel Katona)의 인터뷰를 통해 매일 진화하는 헝가리 와인의 단면을 볼 수 있었다.

Q. 주요 품종, 테루아 그리고 사우스카의 철학
A. 사우스카 와인은 테루아 중심의 철학을 바탕으로 각 지역과 품종의 개성을 정교하게 표현한다. 토착 품종 푸르민트, 카다르카(Kadarka, 빌라니)를 비롯해 피노 누아, 샤르도네, 소비뇽 블랑 등 국제 품종도 다루고 있다. 토카이와 빌라니에서 두 개의 서로 다른 테루아를 관리하고 있다. 토카이에선 전통적인 아수와 에센시아(Essencia) 같은 스위트 와인을 시작으로, 이후 드라이 화이트 와인으로 생산범위를 넓혔다. 반면에 빌라니에선 처음부터 레드 와인에 초점을 맞춰 2008년 헝가리 시장에 진입했고, 단일 품종 레드와 보르도 블렌드, 토착 품종 카다르카와 케크프랑코쉬(Kékfrankos, 블라우프랜키슈)를 통해 ‘퀄리티 메이커’로 자리매김했다. 오늘날 사우스카는 헝가리 레드 와인을 대표하는 브랜드 중 하나다.
우리의 목표는 “자연과 테루아, 전통을 존중하는 현대적인 와인”을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자체 재배 팀은 물론 스테파노 키오촐리(Stefano Chioccioli, 토스카나), 뱅상 뒤퓌시(Vincent Dupuch, 보르도) 등 세계의 컨설턴트들과 협력해왔다. 2000년대 초부터 로버트 몬다비 출신 와인메이커, 폴 홉스(Paul Hobbs)가 빌라니 제품 라인 개발을 도왔고, 초기 토양 분석은 프랑스 미생물학자 리디아(Lydia)와 끌로드 부르기뇽(Claude Bourgignon)가 맡았다. 사우스카 와인의 핵심은 신선한 과일향과 미네랄리티를 유지하는 것이다. 오크 사용은 최소화하며 특히 레드 와인은 대형 배럴을 사용해 나무 향보다 포도의 순수한 캐릭터를 돋보이게 한다.

Q. 기후 변화의 대응
A. 사우스카는 기후변화 속에서 포도밭의 균형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현실적인 대안을 꾸준히 실험하고 있다. 보통 관개는 생산량 확대를 위한 수단이지만, 우리는 포도나무의 스트레스 완화와 숙성, 타닌의 균형 유지를 위해 제한적으로 활용한다. 또한 여름철 잎 제거를 최소화해 포도송이에 자연스러운 그늘을 만들어 과열을 막고 신선함과 산도를 지킨다. 또한 포도송이를 지나치게 솎지 않고 일정 부분 남겨두는데, 이 송이가 수분 저장고 역할을 해 가뭄 시 포도나무가 말라 죽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은 포도밭의 균형을 유지하고 토양의 영양과 포도나무의 활력을 함께 높이는 새로운 재배 패러다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병해와 수분 부족에 대한 저항력도 강화하며 보다 건강한 생태계로 나아가고 있다.
Q. 내일의 헝가리 와인은?
A. 토카이가 여전히 헝가리 와인의 상징이지만, 최근에는 드라이 와인(레드와 화이트)과 스파클링 와인 등에서 역동적인 변화의 흐름이 일고 있다. 특히 스파클링 와인의 혁신은 눈에 띈다. 화산 토양의 토카이와 숌로가 그 중심으로, 이곳의 스파클링 와인은 테루아에서 비롯된 선명한 미네랄리티 덕분에 국내외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사우스카에도 중요한 도전의 영역이다. 2011년부터 전통방식으로 다양한 스타일의 스파클링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했으며, 전 파이퍼 하이직과 레어(Rare)의 전설적인 셰프 드 까브, 레지스 카뮈(Régis Camus)가 컨설턴트로 참여했다. 그 결과, 토카이 테루아와 샴페인 기술의 결합된 독특한 와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Q. 한국 와인애호가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A. 사우스카 와이너리에서 직접 만나길 고대한다. 이곳엔 훌륭한 와인뿐만 아니라 빌라니와 토카이 와이너리에 있는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에서 완벽한 미식 경험을 즐길 수 있다. 헝가리를 방문한다면 사우스카를 꼭 찾아주길 바란다.
*현재 사우스카는 ‘전통과 혁신을 결합한 와이너리”로 평가받으며 시장에서 강한 존재감을 구축하고 있다. 토카이 와이너리의 규모는 66헥타르, 연간 생산량은 화이트 스틸 와인 12만 병, 스파클링 와인 30만 병. 빌라니는 110헥타르, 연간 생산량은 레드 와인 55만 병이다. 미국, 영국, 스칸디나비아, 폴란드 등지로 수출 중이며, 최근에는 아시아 시장으로 영역을 확장하는 중.
스파클링 와인의 평가가 대단하다. 사우스카 브뤼 NV 매그넘(Sauska Brut NV Magnum)은 권위있는 대회, ‘샴페인 & 스파클링 와인 월드 챔피언십(CSWWC)’에서 수년째 ‘최고의 헝가리 스파클링 와인’이란 타이틀을 수상하고 있다. 푸르민트 드라이 와인은 역시 ‘디캔터 월드 와인 어워드(DWWA)’에서 꾸준히 메달을 받으며 완성도를 입증했다. 시음해보면, 강한 산미와 미네랄리티, 스모키한 느낌이 지배적이다. 18개월 이상의 리 숙성에서 비롯된 토스트와 브리오슈의 향이 더해져 복합적이면서도 우아한 인상이 남는다. 긴장하는 샴페인 하우스와 박수치는 와인러버들이 보이는 듯!
헝가리 와인은 예술이다 - 토카이 클래식(Tokaj Classic)
- 음악처럼 완결된 감정선의 와인
옛날 옛적에 토카이의 황금빛에 매료된 이는 루이 14세뿐만 아니었다. 괴테, 베토벤, 리스트, 슈베르트 등 위대한 작가와 작곡가들도 그 찬란한 빛에 영감을 받았다. 그렇게 토카이는 수세기 동안 예술가들의 찬사를 받아온, 예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와인이다.
1990년대, 클래식 음악가들이 ‘와인 양조는 하나의 예술 형태(Wine Making as a Form of Art)’를 추구하며 토카이 클래식을 설립했다. 설립자의 아들이자 음악가인 앤드류 브루하치(Andrew Bruhács)는 음악과 와인이 공유하는 감정의 구조와 리듬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는 인물이다. 그는 토카이 클래식이 구축해온 감각적 블렌딩과 미학적 접근이 어떻게 정체성으로 발전했는지 차분하고도 명확하게 설명했다.


Q. 주요 품종, 테루아 그리고 토카이 클래식의 철학
A. 첼리스트 안드라스 브루하치(András Bruhács)와 두 명의 독일 음악가들이 공동으로 설립했다. 여행하며 와인을 경험한 그들이 진심으로 즐기는 일에 투자한, 일종의 열정 프로젝트였다. 토카이를 둘러본 후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 같은 잠재력을 발견했고, 역사 깊은 와인 중심지 마드(Mád)에 위치한 옛 포도원을 인수했다. 이후 토카이의 명성 높은 와인메이커 이슈트반 셉시(István Szepsy)의 직속 동료를 포함해 최고의 인력을 영입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우리는 클래식 음악처럼 시대를 초월하는 가치를 지닌 와인을 만들려고 한다. 견고하고 흔들림 없는, 예술적인 와인이다. 토카이 클래식의 철학은 공감각(synesthesia), 즉 맛과 감정을 연결하는 것이다. 여러 포도 품종을 블렌딩해 퀴베를 만들 때, 하나의 감정선(emotional arc)을 작곡하듯이 설계한다. 서로 다른 멜로디가 얽히고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는 음악처럼, 각각의 품종이 독립적인 선을 이루면서 조화롭게 결합된다.
완벽한 블렌딩을 위해 중요한 또 하나의 요소는 숙성이다. 오크 숙성뿐 아니라 출시 전 병 숙성까지 충분한 시간을 들이는데, 이는 토양이 매우 비옥해 강한 구조의 와인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조화로운 상태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셈이다. 이런 접근은 흔히 말하는 ‘신선한 와인’ 스타일과는 다르다.
주요 품종은 푸르민트와 하르슐레벨뤼이며, 여기에 무스카탈리 뤼넬(Muskotály Lunel) 약 5%를 상황에 따라 블렌딩한다. 포도밭은 모두 화산토양의 가파른 언덕에 위치해 있으며, 각 경사면의 미세한 테루아 차이는 포도의 풍미를 확연히 달라지게 만든다. 우리는 이 경사면에 따라 다른 테루아를 블렌딩의 핵심으로 삼는다. 100% 푸르민트를 만들 때도 같은 방식을 적용해, 단일 구획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더 깊고 조화로운 복합미를 완성한다.
*테루아의 차이를 보이는 각 구획의 푸르민트는 오케스트라의 악기군(현악기, 관악기 등)과 같다. 와인메이커는 지휘자가 되어, 이 다양한 푸르민트들을 블렌딩해 하나의 완벽한 하모니로 만들어낸다.
1990년대 초, 독일 시장에서 드라이 리슬링과 같은 와인을 찾는 수요가 많았다. 드라이 푸르민트가 풍부한 산미와 미네랄을 지니고 있어 리슬링에 뒤지지 않겠다 싶어 자신있게 생산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시장 상황에 따라 드라이 와인과 스위트 와인의 비율은 50:50으로 조절할 수 있는 유연성도 갖췄다. 수확이 2단계 프로세스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일찍 수확하면 ‘베이스 와인’이라 불리는 좋은 드라이 와인을 만들 수 있고 이 와인 역시 뛰어난 품질을 자랑한다.

Q. 기후 변화의 대응
A. 특별히 더 대비해야 할 일은 많지 않았다. 헝가리의 여름이 갈수록 덥고 건조해지고 있지만, 계절이 바뀌어 찬 바람이 불고 강을 따라 안개가 드리우면 귀부균은 여전히 잘 형성된다. 폭염으로 다른 작물들이 고생했던 해도 포도나무는 의외로 강한 생명력을 보였다. 포도밭 환경이 아직은 우리 편이라는 게 행운이라 생각한다.
2022년은 와인메이킹이 매우 어려운 해였지만, 깊게 뿌리내린 올드 바인 덕분에 오히려 ‘역대 최고 수확’을 기록했다. 반대로 비가 많은 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스위트 와인의 생산량이 크게 줄고, 드라이 와인은 겨우 만들 수 있는 수준이 된다. 이럴 때는 1990년대부터 협력해온 재배자들에게 일부 포도를 공급받기도 한다. 특정 빈티지의 아수를 더 생산해야 할 땐, 우리가 직접 포도밭에 가서 포도의 상태를 확인하고 선별한다.
Q. 토카이 클래식 와인을 음악에 비유한다면?
A. 언제나 바흐의 음악을 떠올린다. 단순하면서도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훌륭한 창조물이라는 점에서 와인과 닮아 있다. 와인에는 독립적인 풍미의 라인이 존재하고, 각 요소가 블렌딩될 때 비로소 하나의 절정이 형성된다. 토카이 클래식이 지향하는 것도 시작(Start), 바디(Body), 마무리(Finish)의 3단계 구조를 갖춘 와인이다. 모든 드라마와 음악 작품의 공유하는 구조이기도 하다.
우리는 중간에서 흐름이 끊기는 와인을 만들지 않는다. 하나의 심포니를 완성하듯, 블렌딩을 통해 시작부터 끝까지 자연스러운 감정의 흐름을 담아내는 것이 목표다.

Q. 한국 와인애호가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A. 한국은 미래 지향적이고 예술적 감수성이 매우 높은 나라라고 느꼈다. 재즈와 팝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준이 높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 예상했던 것처럼 한국은 빠르고 역동적이며, 문화적으로 배움 점도 많다고 본다.
우리 토카이 클래식이 고전적 방식에 충실하고자 하는 마음을 한국 소비자들이 이해해 주길 바란다. 한국 소비자들은 그 안에서 새로운 불꽃(new spark)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미식·문화적 취향과도 잘 어울릴 것이라 생각한다. 서울의 재즈 클럽에서 헝가리 와인이 소개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방문 중에 순두부를 먹었는데, 그 순간 자연스럽게 ‘푸르민트와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카이 클래식은 현재 7헥타르 규모에서 연간 1만 5천~1만 8천 병을 생산한다. 토카이에서도 가장 명성이 높은 1등급 포도밭, 키라이(Király Dűlő), 베첵(Betsek Dűlő), 유하로스(Juharos Dűlő)를 소유하며 오직 최고 품질의 와인만을 만든다. 설립 후 20년 넘도록 유럽과 브라질을 포함한 여러 국가에 수출하고 있으며, 세계 유명 레스토랑의 와인 리스트에서도 꾸준히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토카이 아수는 IWSC에서 6년 연속 골드 메달을 수상했고, DWWA와 베를린 와인 트로피 등 여러 주요 대회에서도 드라이·스위트 와인 모두 고르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 비록 이번 시음회에서 드라이 화이트를 맛볼 수 없었지만, 황금빛이 찬란한 토카이 아수 한 잔만으로도 수준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첫 향은 강렬하고 농축적이며, 압도적인 단맛 뒤로 높은 산도가 균형을 잡아주면서 과일의 향이 터진다. 마신 뒤에는 생동감 있는 산미와 은은한 미네랄이 길게 이어져, 한 모금의 황금빛이 입 안에서 짧은 서곡처럼 피어올랐다.
네 와이너리의 목소리는 달랐지만 한 가지 흐름은 분명했다. 헝가리 와인의 정체성은 전통과 테루아, 그리고 각자의 언어로 해석하는 생산자들의 철학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콜로니치는 토착 품종과 화산 토양이 만든 뚜렷한 개성을 보여줬고 말라틴스키는 카베르네 프랑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헝가리 레드의 지평을 넓혔다. 사우스카는 현대적 감각과 기술적 혁신으로 두 테루아의 잠재력을 확장했고 토카이 클래식은 예술적 감수성과 정교한 블렌딩으로 토카이의 품격을 다시 일깨웠다. 이 네 개의 시선이 향하는 지점은 같다. 헝가리 와인은 낯설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전통과 혁신이 교차하는 곳에서 여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다. 우리가 잠시 놓치고 있었던 헝가리 와인—계속 지켜봐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며, 에게쉬에게드레!(Egészségedre, 건배)
글 박지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