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무렵,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의 바롤로 지역을 방문했다. 2025년 새해를 맞아, 다녀온 지 몇 달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가장 인상 깊었던 바롤로 와이너리 세 곳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지금 이때 마시기 좋은 와인, 추운 겨울에 잘 어울리는 와인, 그리고 요즘 트렌드에 맞게 구매 후 바로 마시기 편한 접근성 좋은 바롤로 와인 세 가지를 소개한다.
바타시올로의 바롤로 브리꼴리나
라 모라(La Morra) 지역에 들어서면, 바타시올로(Batasiolo)의 'B' 로고가 아주 크게 보인다. 근처 로컬 식당에서 점심을 간단히 한 후 바타시올로 와이너리를 방문했다. 베니 디 바타시올로(Beni di Batasiolo)는 피에몬테주 랑게(Langhe) 지역에서 가장 큰 와이너리로, 1978년 돌리아니(Dogliani) 가문의 돌리아니 형제가 라 모라에 있는 역사 깊은 카이올라(Kiola) 포도원을 구입하면서 설립되었다. 바타시올로는 와이너리 뒤에 있는 언덕의 이름이다. 오늘날 랑게 지역에 소유한 약 156헥타르의 포도밭 중 절반인 78헥타르가 바롤로를 위한 네비올로 밭이며, 바롤로를 비롯하여 바르바레스코, 바르베라 다스티, 돌체토 달바, 모스카토 다스티, 랑게 샤르도네, 가비 디 가비, 로에로 아르네이스 등을 생산하고 있다.
바타시올로는 바롤로 포도밭의 10%를 소유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생산되는 브리콜리나(Briccolina), 체레퀴오(Cerequio), 보스카레토(Boscareto), 브루나테(Brunate), 부씨아(Bussia) 등 5개의 바롤로 와인이 최상급 크뤼로 인정받고 있다. 바타시올로 와인을 테이스팅한 후 인상 깊었던 것은 바롤로뿐만 아니라 모든 레인지 다양한 와인들의 품질이 기본부터 고급 라인까지 우수했다. 포도나무에 열매가 많이 열리면 수확량 조절을 위해 포도가 익기 전에 포도송이의 일부를 따는 등의 품질 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었다. 그리고 랑게 지역을 직접 가보면 굴곡이 정말 많은 지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같은 지역의 바롤로 포도밭이라 할지라도 포도밭마다 고도가 다르고, 경사면의 방향이 달라 받는 햇빛의 방향도 다르다. 바롤로의 포도밭이라고 해서 모두 네비올로를 심을 순 없다. 햇빛을 많이 필요로 하는 바롤로는 남쪽을 향한 밭에만 네비올로를 심으며, 다른 방향을 향하면 돌체토 또는 모스카토 품종를 심는다. 뜨거운 여름날 방문했기에 포도밭은 간단히 투어를 했고, 와인 셀러로 향했다.
바타시올로의 와인 셀러는 모던한 인테리어가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붉은 기하학적 천정과 아름다운 기둥의 모습은 우주 스페이스의 한 장면 같았다. 우주기지에 고급 와인이 저장되어 있는 느낌이랄까? 꽤나 큰 규모의 양조장과 셀러에 감동하고 우리는 테이스팅 룸으로 향했다.
테이스팅룸은 지하 셀러와 다르게 아주 클래식하고 전통적인 느낌이 강했다. 긴 테이블과 고전적인 룸에서 바타시올로 와인 10종을 테이스팅했다.
모든 품종이 고른 품질과 맛을 자랑해 행복한 시음을 즐길 수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와인은 세라룽가 달바의 브리꼴리나. 세라룽가 달바에 있는 1헥타르의 작은 포도밭에서 생산된 포도로 만드는데, 바타시올로 포도밭 중 가장 뛰어난 곳이라고 한다. 다른 포도밭보다 조금 아래에 위치해 주변 언덕이 병풍처럼 찬 바람을 막아주고, 남쪽 경사면을 향하고 있어 햇빛도 최대치로 받는 최고급 포도밭이다. 최소 2년간 프렌치 오크 배럴에서 숙성 후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12개월 추가 숙성 후 병입하고, 와인의 세련미가 정점에 이를 때까지 추가 숙성 후 출시한다. 이번 와이너리 투어에서 베스트 오브 베스트 중에 하나인 브리꼴리나의 풍부하고 진한 과실향, 파워풀하고도 복합적인 구조감, 긴 여운을 잊을 수가 없다. 한국에서는 수입사 와이넬에서 수입하고 있는데, 잘 숙성된 올드 빈티지를 판매하고 있으니 소비자가 직접 셀러링 할 필요 없이 바로 즐길 수 있다.
수입사 (주)와이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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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제몰로의 바롤로 갓테라
바타시올로가 라 모라의 입구에 있다고 한다면, 코르데로 디 몬테제몰로(Cordero di Montezemolo)는 라 모라의 가장 높은 몬팔레토(Monfalletto) 언덕에 위치한다. 우리는 네비게이션이 필요 없이 라 모라 지역 어디에 있든 보이는 거대한 레바논 삼나무 네비게이터를 보면서 언덕으로 올라갔다. 개인적으로 바롤로를 생산하는 11개의 마을 중 가장 넓은 라 모라 지역의 우아한 바롤로를 사랑한다. 몬테제몰로 와이너리의 360도 파노라마 포도밭 뷰는 라 모라 전망대보다도 더 멋진 뷰를 자랑했다.
피에몬테 라 모라 지역을 방문하게 된다면 몬테제몰로 와이너리 방문은 필수다. 바롤로 최고의 뷰 포인트 와이너리로 멋진 삼나무는 물론이고, 최근 건설된 테이스팅 룸은 럭셔리 그 자체였다. 멋진 파노라마뷰를 감상하며 몬테제몰로 와인들을 테이스팅하는 감동은 표현하기가 힘들 정도로 행복했다. 코르데로 디 몬테제몰로의 몬팔레토 포도밭은 고도 250~300m의 햇빛이 잘 드는 남향 언덕 위에 펼쳐져 있어, 포도가 맛있을 수밖에 없는 최고의 조건을 가진 땅이었다. 직접 가 보니, 700년을 이어 온 전통 있는 가족 와이너리의 가치를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몬팔레토는 1340년 팔레티(Falletti) 가문이 소유한 영지였다. 1941년 루이자 팔레티 디 로델로(Luigia Falletti di Rodello)를 마지막으로 가문의 맥은 끊겼지만, 그녀의 딸이 스페인 출신 귀족인 코르데로 디 몬테제몰로 가문과 결혼해서 낳은 파올로 코르데로 디 몬테제몰로(Paolo Cordero di Montezemolo)가 영지를 상속해 대를 이었다. 1988년 파올로가 세상을 떠나며 그의 아들 지오바니(Giovanni)와 엔리코(Enrico)가 물려받았고, 2000년대부터는 지오바니의 자녀 엘레나(Elena)와 알베르토(Alberto)가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나는 이곳 몬팔레토 포도원 테이스팅 룸에서 18대손 지오바니와 그의 아들 19대손 알베르토(Alberto)를 직접 만나는 영광을 가졌다. 게다가 그가 직접 와이너리를 안내했고, 가족의 와인 셀러에서 바롤로 갓테라를 꺼내서 함께 테이스팅하는 행운을 누렸다.
코르데로 디 몬테제몰로는 직접 관리하는 포도밭에서 재배한 포도로만 와인을 생산하는데, 2013년부터는 모든 포도원이 유기농 인증을 받았다. 라 모라 최고의 테루아이면서 직접 보유하고 관리하는 포도로만 소량 생산하니 품질이 좋을 수밖에 없다. 코르데로 디 몬테제몰로의 포도밭은 총 56ha이며, 알바 지역과 라 모라 마을의 일부 포도밭에서 재배되는 토착 품종인 아르네이스, 돌체토, 바르베라, 네비올로 등을 재배해 접근성 좋은 화이트 와인과 레드 와인을 만든다. 그리고 몬팔레토 외, 인접한 카스틸리오네 팔레토(Castiglione Falletto) 마을의 빌레로(Villero) 크뤼 2ha에서는 최고급 바롤로인 엔리코 6(Enrico VI)을 생산한다.
테이스팅한 와인 중에서도 와이너리가 있는 몬팔레토 포도밭의 레바논 삼나무에 인접해 했고, 가장 좋은 테루아에서 생산되는 갓테라(Gattera) 와인을 추천하고 싶다. 갓테라는 2010년 뛰어난 포도밭을 공식화한 MGA(Menzione Geografica Aggiuntiva)로 지정된 181개 바롤로 크뤼 중 하나인데, 총면적 11ha의 갓테라 크뤼 중 코르데로 디 몬테제몰로가 보유한 것은 1ha다. 레바논 삼나무 바로 아래 남서쪽 경사면에 자리 잡은 구획이다. 갓테라 중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며, 바롤로의 대표적인 두 토양인 석회질 이회토로 구성된 토르토니안(Tortonian) 토양과 좀 더 척박한 모래와 사암으로 구성된 헬베티안(Helvetian) 토양이 뒤섞여 있다. 라 모라 와인의 특징인 우아하고 섬세하면서도 파워까지 겸비하여, 복합적이면서도 장기숙성 잠재력까지 갖춘 최고급 와인이다. 평균 50년 수령의 포도밭을 8개 구획으로 나누어 특성에 따라 분리 수확해 개별 양조하는데, 스테인리스 스틸 발효조에서 6~8일간 침용 및 10~12일간 발효한다. 이후 프렌치 오크 배럴에서 젖산 발효를 진행하며 19~21개월간 천천히 숙성한다. 장미 꽃잎, 라즈베리, 체리의 풍미와 바닐라, 정향, 흙 향기까지 복합적인 아로마가 인상적이며, 입에서는 촘촘한 타닌과 더불어 감초와 발사믹의 맛이 도드라진다. 입안을 꽉 채우는 밀도감과 구조감이 인상적인 바롤로였다.
수입사 롯데칠성음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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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타나프레다 바롤로 라 로사
와인 이야기를 하다 보면 와인의 역사, 전통, 가문, 문화, 미식 등 와인 한 병에 담겨 어우러진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을 충족하게 해 주었던 바롤로 와인 여행의 하이라이트, 세라룽가 달바 지역의 상징적인 와이너리 폰타나프레다(Fontanfredda)를 소개한다. 세라룽가 달바에 들어와 대형 포도송이 구조물이 보이면 폰타나프레다 와이너리를 잘 찾아온 거다. 왕의 와인으로 유명한 폰타나프레다 와인은 재미있는 역사 속 러브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현재는 우아하면서도 균형감이 뛰어난 접근성 좋은 와인이 생산된다. 바롤로의 오랜 역사와 흔적을 경험하고 싶다면 폰타나프레다 와이너리는 꼭 들려야 할 와이너리이다.
폰타나프레다는 1858년 통일 이탈리아의 초대 국왕 에마누엘레 2세(Vittorio Emanuele II)가 사랑한 여인 로사(Rosa Vecellana)를 위해 직접 세운 마을이다. 여기서 '폰타나프레다'는 '신선한 수원지'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Fontana=Fountain, Fredda=Cold). 먼저 역사의 한 장면에 와 있는 듯한 아름다운 숲속에서 이탈리아 초대 국왕이 한 여인을 사랑한 이야기와 함께 와이너리 투어가 시작된다. 키 150cm, 콧수염, 바람둥이, 매력적이면서도 재미있는 왕의 캐릭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왕의 권력을 느낄 수 있는 마을 한복판에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에 와 있는 듯하다. 와이너리 속에서 왕실 가문의 상징인 노란 줄무늬 옛 건물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폰타나프레다의 상징인 줄무늬 와인 레이블과도 연결된다.
1878년, 이 마을은 그가 신분을 뛰어넘어 사랑한 '로사(Rosa Vecellana)' 여사와 그의 아들들에게 상속되어 '브랜드'로서 시장에 출시되었다.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를 들은 후, 와이너리 산책을 하면서 최고급 포도밭에 둘러 쌓여 있는 포도밭의 경치에 취했다. 바로 앞에는 최고급 포도밭 라 로사(La Rosa) 빈야드가 보였다.
그리고 자연적으로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는 천연 숙성고에 들어갔는데, 어두운 셀러에 미세한 빛이 들어오는 환상적인 아트 구조물은 역사 속 신비하고 신성한 곳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곳의 와인들은 왕이 죽기까지 왕가만이 마실 수 있는 와인이었다. 여름의 끝, 밖의 온도는 뜨거워서 눈을 뜰 수가 없었는데, 천연 냉장고 문을 여는 순간 급강한 온도에 놀라고 만다.
이어서 45년 된 아주 오래된 슬라보니안 오크 배럴과 특별한 체스넛 오크 배럴 투어로 향했다. 대형 슬라보니안 오크 배럴은 인간의 삶과 비슷하게 70년까지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25년 정도 더 남았으니, 프렌치 오크와 비교해서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테루아 본연의 맛을 그대로 표현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폰타나프레다는 와인의 특성을 인위적으로 변경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오래된 오크통에서 와인을 숙성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위생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궁금했는데, 10년마다 대형 배럴 속에 사람이 들어가서 청소를 하며 모든 면을 구석구석 다 긁어낸다. 그래서 오래도록 유지가 가능하다고. 이 시점에서 오크 배럴의 가격이 궁금해진다. 1배럴당 약 4만 달러 이상의 가격. 오크통을 교체해야 할 때마다 와인에 매우 큰 투자가 필요한 셈이다. 와이너리에서만 들을 수 있는 디테일하고도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박물관 같았던 와인 셀러 투어 중 참나무를 사용하기 전에 사용한 체스넛 오크 배럴이 인상적이었다. 옛날 이 지역에는 밤나무가 많았는데, 체스넛 통을 사용해 보니 쓴맛이 나서 사용을 멈췄다고 한다. 불을 때서 발효하며 온도를 조절했는데 쓴맛 나는 체스넛 통을 끓였으니 와인이 더 써진 것. 오늘날의 혁신적인 와인 발효 시스템이 나오기 전, 이러한 우여곡절 속에서 이태리의 맛있는 바롤로 와인 탄생했다. 150년 이상 되었고 모두 연결되어 와인을 옮기는 어둡고 긴 지하 터널에서의 특별한 경험, 왕의 도피용 비밀 통로의 발견까지. 흥미롭고 재미있는 와이너리 체험을 했다. 오랜 와인의 역사, 문화, 사랑, 마을 공동체 그리고 과거와 현재가 아직도 이어지는 이곳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전반적으로 모든 와인이 퀄리티도 좋으며, 낮은 가격대에서 합리적으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피에몬테 와인을 생산하는 폰타나프레다 와인에 끌렸다. 미래를 준비하면서 계속 변화를 추구하는 르네상스 라인업 등의 새로운 시도도 인상적이었고,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면서 취향에 따라 고를 수 있는 다양한 라인업과 럭셔리 싱글 빈야드 라인업까지. 폰타나프레다의 다양성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마지막 테이스팅 룸에서 알타 랑가 리미티드 에디션, 가비 디 가비, 바르바레스코 ‘코스테루빈’, 바롤로 '세라룽가 달바', 모스카토 다스티까지 다양한 와인을 시음했다.
그중에서도 단연 기억에 남는 와인은 바롤로 비냐 라 로사(Barolo Vina La Rosa)이다. 해발 250~310m, 폰타나프레다 와이너리에서 가장 역사적이면서 좋은 노출 고도와 테루아를 가진 빈야드. '라 로사'는 싱글 빈야드에서만 생산하는 프리미엄 바롤로 와인으로, 라 로사 빈야드는 네비올로 품종의 매우 섬세한 껍질이 손상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줄기를 제거하지 않고 으깬다.
자두, 감초, 블랙 체리, 블랙베리 향과 팰럿이 아주 인상적이다. 부드러움이 특징이며, 과실 향이 풍부하면서도 적절한 산도가 훌륭한 조화를 이루는 여운이 긴 와인이다. 이름은 벨라 로시나(Bella Rosina)에서 왕의 부인 이름을 따왔다. 깊으면서 따뜻하고 풍만한 로사 부인이 연상되는 럭셔리 바롤로였다. 특별한 라 로사 빈야드를 눈으로 확인하고, 로사 부인의 방도 구경하고, 왕과 그녀의 사랑 이야기를 들은 후 마신 비냐 라 로사 바롤로는 더욱 특별하여 기억에 남는다.
수입사 롯데칠성음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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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와인인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