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자스의 어제와 오늘, 내일을 써가는 400년 역사의 가족 기업 위겔 패밀리

Written by양 진원

알자스 와인 강의를 할 때면 꼭 서두로 언급하는 이야기들이 있다. 어려운 와인 용어들 사이에서 친밀감을 얻어내기 위한 필사의 노력이랄까. 꽃할배의 촬영지였던 알자스의 수도 스트라스부르(Strasbourg),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배경지인 동화 마을 콜마르(Colmar), 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의 ‘마지막 수업’의 백그라운드 또한 바로 이곳이라는 것. 특히 1871년에 발표된 마지막 수업은 알자스와 로렌의 귀속 문제로 독일과 프랑스 간 전쟁이 벌어졌던 때를 잘 묘사하고 있다. 사실 알자스는 이러한 시기적 불안정함으로 프랑스 타 지역 와인에 비해 AOC 등재 자체가 늦어졌으며 그간 퀄리티 대비 큰 주목을 받지 못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바로 전 세계가 알자스 와인을 배워야 할 때. 춥고 건조한 기후로 화이트 와인을 메인으로 만들어왔지만 최근 기후 변화로 인해 화이트 품종은 물론이며 레드 와인 퀄리티 또한 수준이 올라가 호평받고 있다.

알자스에 있는 라 메종 위겔(La Maison Hugel)

프랑스와 독일 간 영토 전쟁으로 불안한 시기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1639년부터 한 자리에서 꿋꿋이 자신의 일을 이어 나가는 와이너리가 있으니 바로 위겔 패밀리(Famille Hugel)다. 400여 년간 가족 사업을 일구어내면서 방당쥬 타르디브(VT, Vendange Tardive 늦수확 와인)이나 귀부 와인인 셀렉시옹 드 그랑 노블(Sélection de Grains Nobles)이 알자스에서 만들어질 수 있도록 법안의 토대를 만든 장본인이기도 한 이들은 명실공히 알자스를 대표하는 와이너리이면서 스스로 혁신을 거듭하고 있다. 위겔 패밀리의 13대손 장 프레데릭 위겔(Jean Frédéric Hugel) 이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해 알자스 와인과 위겔의 과거와 오늘, 내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위겔 패밀리의 13대손 장 프레데릭 위겔(Jean Frédéric Hugel)

Q. 개인적으로 지난 4월 말 유럽에 잠시 방문했는데 서유럽 곳곳에서 눈이 내려 정말 놀랐다. 알자스, 위겔이 소유하고 있는 포도원에 큰 피해는 없는지?

A. 실제로 싹이 튼 이후 다시 서리가 오는 상황으로 유럽 곳곳의 포도원에 비상이 걸려있다. 위겔의 경우 크뤼급 포도밭은 무사하며 평지에 위치한 포도원의 약 20%만이 서리를 맞아 큰 피해는 없는 편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것보다 더 걱정스러운 면은 비가 계속 그치지 않고 오고 있다는 것. 지금은 5월 중순인데(인터뷰 당시) 이미 평년의 연간 강우량이 모두 내린 것과 같다. 전반적으로 서늘하고 건조한 기후인 알자스이기에 최근의 기후 변화에 둔감한 편이며 오히려 얻는 점이 많지만 이례적인 강우량을 보여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Q. 이러한 기후 변화 속에서도 유기농으로 전환하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는 소식 또한 접했다.

A. 그렇다. 사실은 이미 2007년부터 소유한 포도밭을 유기농으로 전환하려고 차츰 노력해 왔다. 유기농 농법이란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루어 내기는 쉽지 않은지라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에는 우리 모두에게 큰 보상을 해주리라고 생각한다. 2024년에는 레드 품종 밭이, 2025년에는 화이트 와인을 심은 빈야드가 100% 유기농 인증을 받아, 새로운 빈티지부터는 유기농 와인으로 생산될 예정이다.

앙드레 위겔(André Hugel) / photo credit Famille Hugel

Q. 2022년 8월 할아버지인 앙드레 위겔(André Hugel)의 부고가 있었다. 실제로 2016년 와이너리에 방문했을 때 그를 직접 만나기도 했던지라 멀리서도 애도하는 마음이 컸다.

A. 앙드레는 90세 이후에도 매일같이 빈야드에 아침, 저녁으로 나와서 둘러보는 애정을 지니고 있었다. 애초에 은퇴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알자스 지역과 와인에 대해 백과사전급의 해박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리크비르(Riquewihr)의 회장직도 역임했다. 알자스의 방언인 ‘최고의 포도밭’이라는 의미를 지닌 그로씨 로에(Grossi Laüe) 시리즈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알자스 와인으로 각인할 수 있도록 한 것 또한 그의 노력 덕이다. 70년대에는 현재도 사용하고 있는 와이너리 건물을 새로 세우기도 했다. 평생을 헌신한 그의 업적을 꼽자면 끝이 없는데, 분명한 건 오랜 시간이 지난 오늘날 우리가 그의 공헌 덕을 보고 있다는 거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지금 하는 일은 다음 세대, 20년 후를 바라보고 하는 일이 많다. 내가 우리 선대가 했던 일들을 그대로 받은 것처럼.

Q. 2017년에 마크 앙드레 위겔(Marc-André Hugel)을 인터뷰로 만난 적이 있다. 그때 새로운 시도로 크레망 달자스(Crémant d’Alsace)와 뱅 드 빠이으(Vin de Paille) 생산을 시도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추가된 새 셀렉션이 있을지?

A. 드디어 올해 처음으로 긴 숙성을 마치고 크레망 달자스가 출시될 예정이다. 4년간의 바틀 숙성을 마쳤으며 6,000병을 병입했다. 피노 누아 50%, 리슬링 30%, 피노 그리 20% 블렌딩으로 샴페인 스타일과 퀄리티를 지향하지만 알자스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캐릭터 또한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피노 누아는 바디감과 구조감을, 리슬링은 산도를, 피노 그리는 약간의 산화된 뉘앙스와 함께 과실미를 담당한다. 크레망 달자스는 어쩌면 곧 한국 시장에도 소개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또 다른 시도로는 최근에 오렌지 와인을 만들어 보았다. 새로운 제품을 만들 때마다 가족회의를 거쳐 결정하는데 선대는 모두 반대했지만,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것보다 일단 시도해 보고 후회는 나중에 하는 것이 낫다는 주의다. 그 덕에 얻어진 결과물이다. 게뷔르츠트라미너(Gewurztraminer)로 만든 오렌지 와인은 2021 빈티지로 3,000병 병입했다.

Q. 장띠(Gentil)는 알자스에서 블렌딩 와인을 뜻하는 용어기도 한데, 유독 위겔의 장띠가 유명하다. 위겔 장띠만의 특징이 있다면?

A. 장띠는 원래 오랫동안 사랑받던 알자스의 전통적인 와인이었는데 1차 세계 대전과 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며 생산이 중단되었다. 위겔에서는 1993년, 무려 70년 만에 시장에 다시 이 와인을 소개했고 빈티지를 거듭할수록 더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위겔의 장띠는 게뷔르츠트라미너 비율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2021년 빈티지의 경우 32% 블렌딩). 와인 애호가들은 달콤할 것이라는 편견 때문에 ‘와인 초보나 찾는 품종’이라며 폄하하기도 하지만 한번 맛을 보고 나면 모두가 반할 만큼 밸런스가 훌륭하다. 비밀은 블렌딩의 미학에 있다.

장띠를 만들 땐 알자스의 4가지 전통 품종인 리슬링과 피노 그리, 게뷔르츠트라미너와 뮈스카를 50% 이상 사용해야 한다. 리슬링은 우아함과 미네랄을 피노 그리는 구조감을, 게뷔르츠트라미너는 아로마를 뮈스카는 과실향을 더해준다. 여기에 실바너(Sylvaner)와 피노 블랑이 신선함을 더한다. 올곧은 산도감에 풍부한 과실미가 더해진 아로마틱한 와인으로 위겔을 가장 잘 표현한다고 생각하며, 가격대가 높지 않아 데일리로 즐기기에 좋은 와인이면서도 절대 가볍지만은 않다. 빈티지에 대한 기복이 크지 않은 것 또한 장띠의 장점 중 하나다.

Q. 국내에 유통되고 있는 리슬링 그로시 로에 와인 빈티지가 2012년인 것에 굉장히 놀랐다. 다음 빈티지인 2014년과 함께 간단히 빈티지 소개를 해준다면?

A. 2012 빈티지는 따뜻했던 빈티지이지만 캐릭터는 서늘했던 해와 같다. 산도감이 훌륭하며 알코올 도수 또한 높지 않다. 2011 빈티지와 유사하지만 좀 더 리치하고 깊이가 있다. 2014년은 2007년과 동일 선상에 있는 빈티지로 와인이 열리는 데 처음에는 좀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 한번 와인이 열리기 시작하면 끝없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와인을 즐길 때는 디캔팅을 한다든지 오픈 자체를 좀 일찍 해서 바틀 에어링을 충분히 하는 것을 추천한다. 서늘했던 해였으며 인디안 섬머가 있어 포도나무 생장 기간에 큰 도움을 주었다.

위겔에서는 매해 모든 빈티지의 와인을 오픈해서 출시에 적합한지 아닌지를 판단하는데, 최근 테이스팅으로 2016, 2017 빈티지는 아직 때가 오지 않다고 판단해 출시를 미루었다. 2010, 2011 빈티지는 너무 좋았고, 2014 빈티지는 이제 열리기 시작했으며 2015 빈티지도 훌륭했다. 리슬링 그로시 로에의 경우 이미 와이너리에서 10년 이상 숙성한 후 출시하지만 빼어난 리슬링의 경우 엄청난 잠재력이 있으며 20년 정도 숙성했을 때 정점에 도달한다는 생각이다.

(왼쪽부터) 파미유 위겔 장띠, 파미유 위겔 리슬링 그로씨 로에, 파미유 위겔 리슬링 방당쥬 타르디브

테이스팅한 위겔 와인들

파미유 위겔 장띠 Famille Hugel Gentil 'Hugel' 2021
게뷔르츠트라미너 32%, 피노 그리 25%, 리슬링 15%, 피노 블랑 15%, 실바너 10%, 뮈스카 3%을 블렌딩한 와인. 알자스 지역의 대표 화이트 품종을 한 병의 와인으로 만나볼 수 있다. 아로마틱한 와인으로 복숭아, 쟈스민 꽃, 장미, 레몬, 리치 등 다채로운 향을 즐길 수 있으며 당도와 산도 밸런스가 조화롭다. 생선전, 녹두전, 감자전 등을 부쳤다면 위겔 장띠를 한 병 꺼내서 상 위에 함께 올려보길 추천한다. 다소 밋밋한 음식에 아로마와 산도가 더해져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페어링을 맛볼 수 있다.

파미유 위겔 리슬링 그로씨 로에 Famille Hugel Riesling Grossi Laüe 2012
그랑 크뤼 급의 리슬링으로 잘 만든 알자스 리슬링의 교과서와 같은 와인이다. 살구와 꿀, 아몬드와 천도복숭아, 캔디드한 생강, 자스민 꽃내음과 페트롤 뉘앙스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구조감이 뛰어나며 기나긴 여운을 선사한다. 와인메이커와 함께 인터뷰를 하며 떡갈비, 들기름 막국수를 곁들였는데 훌륭한 조화를 보여주었다. 고기에도 밀리지 않는 스트럭쳐와 와인의 유질감과 들기름이 레이어되어 더 큰 시너지를 부르기도 하고 음식에 모자란 산도감을 탄탄하게 채워주었다.

파미유 위겔 리슬링 그로시 로에와 페어링이 훌륭한 들기름 막국수

파미유 위겔 리슬링 방당쥬 타르디브 Famille Hugel, Riesling Vendange Tardive 2012
2012년 위겔은 VT의 상위 등급인 SGN을 생산하지 않았다. 즉, 그간 SGN을 생산해 내던 최고의 포도가 이 와인 메이킹에 사용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랑 크뤼 포도밭인 슈넨버그(Schoenenbourg)에서 늦게 수확한 리슬링 100%를 이용해 만들었다. 자몽, 유자, 카다멈과 백도, 캔디드 한 레몬과 꽃내음이 화려하다. 48g/L의 잔당을 가지고 있지만 산도가 매우 높아 우아하고 밸런스가 훌륭하다.

수입사 신동와인
▶홈페이지 shindongwine.com
▶인스타그램 @shindongwine

글·사진 양진원 와인 & 푸드 칼럼니스트 사진 제공 신동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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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공개일 : 2024년 06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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