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바(Cava)’는 보통 편안하게 술술 마실 수 있는 저렴한 스파클링 와인으로 인식되곤 한다. ‘고급스러움’보다는 ‘편안함’과 ‘접근성’ 쪽이 으레 까바에서 기대하는 것에 가깝기도 하다. 이런 대중 앞에 와인 수입사 국순당은 프리미엄 까바 브랜드 ‘후베 이 깜프스(Juvé & Camps)’를 내놓았다. 스페인 패션 브랜드라면 자라(Zara)만 알던 대중 앞에 명품 브랜드 발렌시아가(Balenciaga)를 선보인 것과 다름없는 선택. 사실 국내에만 이제야 알려질 뿐 후베 이 깜프스는 부동의 까바 원탑 브랜드다. 먼 길을 돌아 작년부터 국내에 수입되기 시작한 후베 이 깜프스의 와인을 소개하기 위해 지난달 와이너리의 4세대 오너 메리첼 후베 바엘로(Meritxell Juvé Vaello)와 그녀의 남편이자 수출 이사 브라이언 맥너니(Brian McNerney)가 방한했다.
전설적인 셰프의 까바가 되기까지
18세기부터 페네데스 지역에서 포도를 재배해 온 후베(Juvé) 가문이 와이너리를 세운 것은 1921년의 일이었다. 설립자는 후안 후베(Joan Juvé)와 그의 부인인 테레사 깜프스(Teresa Camps). 둘은 당시 거주하던 집의 지하실에 양조 설비를 마련했다. 100년 넘게 내려온 포도 재배자 가문 최초의 스파클링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와이너리의 기틀을 다진 이 두 사람의 이름은 훗날 나란히 ‘후베 이 깜프스’라는 와이너리명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그로부터 약 100년, 현재 와이너리는 4세대 오너 부부가 이끌고 있다. 와인을 처음 만들기 시작한 1세대에 이어 2세대는 포도밭 정비를 통해 포도의 품질을 높였다 한다. 현 오너 메리첼의 아버지인 3세대에선 후베 이 깜프스 까바의 캐릭터를 구축함과 동시에 와인의 품질을 향상했다고. 이미 스페인 현지에선 누구나 인정하는 넘버 원 까바 브랜드인 후베 이 깜프스의 시선은 자연히 바깥쪽을 향한다. 메리첼은 “전 세계에 후베 이 깜프스를 알리는 것”이 4세대인 자신의 임무라고, 이번 한국 방문 역시 그 일환임을 내비쳤다.
포도 재배자 가문에서 시작한 만큼 후베 이 깜프스와 포도밭의 관계는 각별하다. 까바 DO에는 포도 재배부터 병입까지 모든 과정을 와이너리에서 자체적으로 관리하는 생산자에게 부여하는 ‘엘라보라도 인테그랄(Elaborador Integral)’이라는 마크가 있는데, 후베 이 깜프스는 이 마크를 받은 13개 생산자 중 하나다. 200개가 넘는 까바 생산자 중 100% 자가 소유 포도밭에서 나온 포도로 양조하고 병입까지 이어서 하는 곳은 극소수이기 때문. 메르첼은 “스페인 와인 업계는 현재 퀄리티에 집중하는 시기”라며, “후베 이 깜프스는 포도 재배부터 병입까지 직접 진행하기에 보다 집중적인 관리가 가능하다”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 집중적인 관리는 포도밭에서부터 시작되는데, 2015년 모든 포도밭이 유기농 인증을 받은 것도 그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스페인에서 규모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유기농 와인 생산자라고. 재배하는 품종으로는 샤렐로(Xarello), 마카베오(Macabeo), 빠레야다(Parellada) 등 까바 품종 세 가지와 소량의 피노 누아와 샤르도네가 있다. 이렇게 재배한 포도로 와인을 만들고, 도사주 양이나 숙성 기간 등 모든 과정을 직접 컨트롤하여 남다른 개성이 있는 후베 이 깜프스의 까바가 탄생한다.
맛있는 와인은 소믈리에들이 먼저 알아본다고 했던가. 스페인 내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열세 곳 중 무려 열 곳에서 후베 이 깜프스를 선택했다. 스페인의 전설적인 레스토랑 엘 불리(El Bulli)를 이끌었던 쉐프 페란 아드리아(Ferran Adrià)도 마찬가지다. 미식계 최고의 백과사전인 불리피디아(Bullipedia)를 만들며 후베 이 깜프스와 파트너쉽을 맺은 것. 전 세계 다이닝 씬으로 눈을 돌려도 최고급 호텔과 미쉐린 레스토랑 등에서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미식을 위한 이 최상의 까바를 이제 국내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니,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제로 도사주가 기본이 된 배경
후베 이 깜프스의 까바가 전 세계적인 흥행을 이끈 중심에는 가장 기본급인 ‘레세르바 데 라 파밀리아(Reserva de la Familia)’가 있다. ‘가족이 마시던 술’이라는 의미가 담긴 레세르바 데 라 파밀리아의 이야기는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엔 까바를 만들 때 도사주 과정에서 리터당 50그램까지 당분을 넣는 게 일반적이었다 한다. 샴페인으로 치면 두(Doux)에 해당하는 달콤한 스파클링 와인이었던 것. 하지만 단맛이 없는 까바를 원했던 후베 가문은 가족이 마실 용도로 제로 도사주 까바를 소량만 만들었다. 메리첼의 아버지는 우연한 자리에서 와인 거래상들에게 이 와인을 대접했고, 큰 호평을 받자 그는 곧바로 도사주를 하지 않은 까바를 정식 생산하기로 마음먹었다. 공식적인 첫 빈티지는 1976년. 이후 레세르바 데 라 파밀리아는 후베 이 깜프스의 전 세계적인 스태디 셀러가 되었다. 기본급 와인에 이어 아이콘 와인인 라 카펠라(La Capella) 역시 도사주를 하지 않는다. 메리첼은 제로 도사주 까바의 매력을 “메이크업하지 않은 순수함”이라 표현했는데, 그만큼 바탕이 좋아야 한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제로 도사주임에도 조화로울 수 있도록 포도밭에서부터 하나하나의 요소를 신경 써서 만든다“라는 게 그녀의 설명. 포도 재배부터 병입까지 직접 하기에 가능한 것일 테다. 품질에 대한 자신감은 논빈티지를 생산하지 않는 것으로도 이어진다. “균일성을 위해 솔레라 방식을 사용하는 까바 생산자도 많지만, 우리는 매년 일정한 품질 이상으로 만들 수 있기에 빈티지 까바만 생산한다.” 이날 테이스팅한 까바도 레세르바 데 라 파밀리아 2018, 그란 후베(Gran Juvé) 2016, 라 카펠라 2010 등 모두 빈티지 까바였다.
무엇을 선택하든 그란 레세르바
연간 2억 5천만 병이이라는 어마어마한 양이 생산되는 까바의 세계에서 그란 레세르바는 불과 5백만 병밖에 되지 않는다. 전체 생산량의 2%인 셈. 그리고 이 2%의 60%를 생산하는 와이너리가 후베 이 깜프스다. 총생산량만 놓고 보면 매우 적은 양이지만 모든 까바를 그란 레세르바로 만들기에 가장 큰 그란 레세르바 생산자가 된 것이다. 앞서 소개한 기본급 까바인 레세르바 데 라 파밀리아 역시 36개월이나 숙성한다. 많은 와이너리가 기본급 까바는 규정대로 9~12개월 정도만 숙성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비교적 생산량이 많은 기본급도 그란 레세르바인 덕분에 미국 내에서 유통되는 그란 레세르바 까바의 50% 이상이 후베 이 깜프스라 한다. 이번 오너 부부와의 만남에서 테이스팅한 레세르바 데 라 파밀리아는 2018 빈티지. 까바의 주요 품종인 샤렐로 55%, 마카베오 35%, 파레야다 10%가 블렌딩되었다. 기본급에서는 좀처럼 예상하기 어려운 은은한 숙성향과 신선한 과일 아로마, 향신료 노트가 우아하고 투명하게 입안을 감도는 까바. 여기서 상급으로 올라갈수록 숙성 개월은 길어지는데, 그란 후베는 50개월 이상, 최상급인 라 카펠라는 무려 108개월을 숙성한다.
샤렐로를 기둥삼아
그란 후베는 메리첼의 아버지가 가장 사랑하는 라인업이다. 25%가량 블렌딩된 샤르도네로 인해 바디감이 좋은 편. 약간의 도사주를 진행한 엑스트라 브륏이며 앞서 언급한 대로 50개월 이상의 병입 숙성 기간을 가졌다. 샤르도네를 사용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하이라이트를 쳐야 하는 건 샤렐로 품종이다. 와이너리에서 관리하는 열 종의 샤렐로 클론 중 최상의 클론만 접목하여 40%를 블렌딩하기 때문. 메리첼은 “샤렐로는 후베 이 깜프스 까바의 핵심이다. 산도와 바디감이 좋고, 전체적인 풍미가 샤렐로를 바탕으로 한다고 보면 된다”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가뭄의 영향을 자주 받는 페네데스 지역에서 생존력이 강한 샤렐로 포도나무는 많은 까바 생산자의 사랑을 받아왔다. 까바의 핵심 품종 중 가장 품질이 좋기도 하고 생산량도 많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메리첼의 설명을 들으며 테이스팅한 그란 후베 2016 빈티지는 흰 꽃과 핵과류 과일의 신선한 아로마에 카모마일, 호박, 꿀, 토스트 등의 풍성한 숙성향이 더해지고, 크리미한 버블이 입안을 가득 채우는 까바였다.
샤렐로의 포텐은 최상급 까바인 라 카펠라에서 터져 나온다. 와이너리의 포도밭 중 가장 높은 지대에 있는 오래된 포도밭에서 나온 샤렐로만을 사용하여 만든 와인이다. 까바계의 그랑 크뤼라 불리며 단 열 곳밖에 없는 ‘까바 데 파라헤 칼리피카도(Cava de Paraje Calificado)'로 지정된 포도밭이다. 연간 2천 5백병만 생산되는데, 메리첼은 “매년 만들지만 매년 팔지는 않는다”라고. 와인의 이름인 라 카펠라는 ‘성당’이라는 뜻. 와이너리 안에 있는 기도원 지하실을 최상급 까바를 숙성하는 셀러로 사용하여 그렇게 이름 붙였다 한다. 이곳에서 라 카펠라는 108개월, 그러니까 9년의 병입 숙성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기도원 밖의 햇살을 보게 된다. 오너 부부와의 만남에서 테이스팅한 라 카펠라는 2010 빈티지였다. 앞서 언급했듯 제로 도사주로 생산된 와인. 밀도감 있는 사과와 배, 복숭아와 같은 과일 향에 견과류, 토스트, 향신료의 향이 더해지며 아주 묵직한 풍미가 낮게 깔리는 와인. 최상급 까바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다.
넘버 원 까바 생산자가 만드는 레드 와인
메리첼의 아버지, 그러니까 후베 이 깜프스의 3대 오너는 아주 진취적인 인물이다. 앞서 설명했듯 가족용으로 만든 제로 도사주 까바에 대한 호평을 듣자마자 판매용 제로 도사주 까바를 생산하기 시작했고, 해외 수출 시 수입사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 프리미엄 와인 수입사를 차리기도 했다. 현재는 딸에게 경영 키를 넘긴 상태. 하지만 레드 와인 생산에 대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그는 리베라 델 두에로의 땅을 직접 밟으며 후보지를 물색했다. 종착지는 리베라 델 두에로의 북부, 앙귀스(Anguix) 마을이었다. 2000년에 설립된 한 와이너리와 포도밭을 매입한 그는 파고스 데 앙귀스(Pagos d’Anguix)로 와이너리명을 정하고 레드 와인 생산에 돌입했다. 영국의 와인 평론가 잰시스 로빈슨(Jancis Robinson)이 토양의 품질과 와인 생산에 탁월한 기후 등을 고려하여 지정한 리베라 델 두에로의 ‘골든 다이아몬드(Golden Diamond)’에 속하는 땅이었다. 낯선 지역에서의 새로운 도전이지만 와이너리를 오래 이끌어 온 연륜은 어딜 가지 않는다. 주변 와이너리들이 헥타르당 평균 6,000kg의 포도를 생산하는 것과 달리 헥타르당 2,000kg으로 포도 생산량을 줄여 농축된 포도를 생산해 내는 것이다. 자연스레 진하고 풍성한 와인이 만들어지는데, 현 오너 부부와의 만남에서는 코스탈라라(Costalara)와 바루에코(Barrueco)를 만나볼 수 있었다. 세 번째 빈티지인 2019년산으로 테이스팅한 코스탈라라는 석회질 점토와 바위가 많은 토양으로 구성된 템프라니요 포도밭에서 생산되었다. 바닐라, 코코넛, 백후추와 붉은 과일의 아로마가 균형감 있게 피어오르고, 벨벳과 같은 타닌의 질감을 가진 풀바디 와인. 15%인 알코올 도수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밸런스가 좋다. 코스탈라라가 프렌치 & 아메리칸 오크를 섞어 사용한 것과 달리 바루에코는 프렌치 오크만 사용했다. 석회질 점토 토양의 20~30년 된 포도밭에서 자란 템프라니요를 사용하여 15개월간 프렌치 오크통에서 숙성한 것. 초콜릿, 아몬드, 향신료, 붉은 과실이 매우 복합적이면서도 조화롭게 느껴지며, 단단한 타닌과 산도의 잘 짜인 구조감을 느낄 수 있는 와인. 넘버 원 까바 생산자의 새로운 도전도 성공 궤도에 올라선 듯 보인다.
문의 국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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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신윤정 사진·자료 제공 국순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