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상은 중요하다

Written by정 휘웅

우리나라 국세청은 간혹 별 쓸데없는 것까지 간섭한다. 국세를 걷는 것과 무관함에도 불구하고 술의 유통 과정에 관련된 사항들을 지적할 때도 많다. 몇 년 전인가 모 수입사 담당자와 이야기하는데, 수입 과정에서 상단에 붙여둔 수상 실적과 같은 홍보 스티커를 모두 제거하라는 요구를 받았다는 것이었다.

국세청 입장에서는 해당 수상의 의미를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허위 사실을 알려 소비자를 속일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여 그러한 조처를 취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수상 여부를 알리는 것은 민간의 영역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 기준을 잣대로 한다면 국내에 개봉되는 영화 포스터 홍보문구의 내용도 국세청이 통제함이 맞을 것이다. 상의 진위 여부를 떠나서 그 상의 권위와 가치는 소비자들이 훨씬 빠르게 알아차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상의 권위는 정부나 국가가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식당 분야에는 미쉐린 가이드 같은 지표를 볼 수 있는데, 국가의 개입은 전혀 없을 것이다.

미슐랭에서 부여하는 별이나 블루리본에서 제공하는 푸른 리본을 문에 붙이는 것도 국가의 관점에서 보면 국가가 허가하지 않은 것이니 달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는 이런 것에 신경쓸 여가가 없다. 더 할 일이 많다. 세금을 공정하게 부과하고 탈세하는 이들이나 교묘하게 공정성을 해치는 이들을 처벌하여 공정한 시장 질서를 확립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상은 무엇일까? 소비자들에게 빠른 선택권을 주는 데 도움을 준다. 요즘은 비비노와 같은 플랫폼이 소비자들의 평가 기준이 되었지만, 여전히 어떤 상을 받았다는 것은 와인 선택에 있어서 좋은 가이드가 될 수 있다.

와인 평론이나 전문가, 소믈리에 입장에서 이러한 대회의 상이 의미 없을 수 있다. 이미 와인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은 넓고 소비자의 범주는 상상 이상으로 넓다. 그렇기에 충분히 많은 정보, 그리고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정보를 적절하게 제공하는 것은 판매자나 생산자의 의무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와인 대회에서 수상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다만 걱정해야 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상의 희소가치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주최측의 딜레마가 분명히 작용한다. 대회에 와인을 출품할 때에는 참가비를 내야 한다. 평가장 임차, 전문가 비용 등 여러 가지 경비가 지출되기 때문이다. 와인을 출품할 때 생산자나 수입자는 어느 정도의 수상을 기대하며 출품한다. 그러나 수상 와인의 수가 적어서 수상하지 못하면 다시는 해당 대회에 와인을 출전시키지 않을 확률이 높다. 당연히 대회는 침체될 것이다. 반대로 상을 모든 와인에 주게 된다면 출품한 생산자나 수입자의 경우에 마케팅으로 쓸 요인이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소비자가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신뢰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어느 대학의 인공지능모델 경진대회 시상할 일이 있어서 간 적이 있다. 여러 팀이 경쟁했고, 상은 우수상, 최우수상, 대상 순으로 나뉘어 있었다. 나는 최우수가 가장 높은 상인 줄 알았는데 대상이 또 있었던 것이다. 와인 대회에서도 이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동상-은상-금상으로 나누는 체계를 골드(금)-플래티넘(백금)-다이아몬드 이렇게 나누었다면 소비자 입장에서 골드를 가장 뛰어난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와인의 세계뿐만이 아니라 우리 생활 전반에서 경험할 수 있는 상장의 인플레이션인 셈이다.

이런 우려를 고려하더라도 상, 그리고 이러한 기획들은 지속되어야 한다.

적어도 좋은 상을 받은 와인은 그만큼 품질에 대한 신뢰성이 담보되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리고 올해 떨어졌다면 그다음 해 더 좋은 와인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경우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 그리고 대회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훌륭한 와인을 발굴하는 기회가 된다. 보르도 그랑 크뤼나 부르고뉴 특급 포도원들이 대회에 나올 이유는 없을 것이다. 충분히 브랜드의 가치가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떠오르는 생산자, 그리고 새롭게 발굴한 와인들은 이런 대회를 통하여 새롭게 주목받을 수 있을 것이다.

여러 가지 부족한 부분이 있고 보완이 되어야 할 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와인에 있어서 상이 중요한 이유다. 작년에도 대전에서 좋은 와인 품평 관련 행사들이 있었고, 해마다 모 언론사에서도 주류 관련된 중요한 품평 행사를 진행해 왔다. 그 성과들도 지금은 상당히 많이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지금까지도 여러 성과가 있었겠으나, 앞으로도 좋은 대회들이 많이 지속되기를 기대하고, 이를 통해 우수한 와인이 더 많이 소비자에게 소개될 수 있기를 기원하며 글을 마친다.

정휘웅

온라인 닉네임 '웅가'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11,000건에 가까운 자체 작성 시음노트를 보유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세 권의 책을 출간하였다. 김준철와인스쿨에서 마스터 과정과 양조학 과정을 수료하였다. IT 분야 전문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와인 분야 저술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2013년부터 연초에 한국수입와인시장분석보고서를 정기적으로 발행하고 있으며, 2022년 현재 열 번째 버전을 무료로 발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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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공개일 : 2024년 09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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