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와인 서밋 2025: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땅으로

Written by신 윤정

현대 헝가리 와인의 타임라인을 들여다보면 한 편의 시대극 영화를 보는 것 같다. 20세기 초만 해도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와인 생산국이라 할 정도로 번영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주의 체제에 편입되며 협동조합 시스템으로 양적 성장만을 목표로 했던 와인 생산국 헝가리. 50년에 가까운 침체기 이후 1990년대부터 개별 와인 생산자들이 옛 명성을 되찾으려 노력하기 시작했고, 이는 후세대가 합류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중이다. 드라마틱한 변화는 포도밭 면적을 본다면 더 와닿을 것이다. 포도나무를 무분별하게 식재했던 1960년대의 포도밭 면적은 무려 200,000ha 이상, 정치적으로 바뀐 1990년대에는 100,000ha, 이후 오늘날에는 58,000ha의 포도밭이 헝가리에 있다. 생산량을 줄이는 동안 2004년 헝가리의 EU 가입과 2011년 통과된 품질 관리 및 원산지 보호 규정에 따라 헝가리 와인은 질적 성장으로의 전환에 성공했다. 지난 9월, 헝가리 와인 서밋 2025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 여전히 잠재력의 땅이라 불러도 좋을 와인 산지들의 흙을 직접 밟으며, 피땀 어린 노력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어 가고 있는 와인 생산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헝가리 와인 서밋 2025의 마스터 클래스

스파클링 와인 유망주들

에티에크-부다 지역

잘 알려진 사실은 아니지만,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는 25km 길이의 거대한 와인 셀러가 있다. 부다페스트 남부에 있는 부다포크(Budafok) 지역으로, 18세기에 석회암 채석장으로 형성된 이곳의 지하 동굴망은 헝가리 스파클링 와인이 태동한 곳이라 할 수 있다. 1882년 프랑스 샹파뉴에서 샴페인 사업을 하던 조셉 톨리(József Törley)가 부다포크의 석회암 토양을 보고 와인 사업을 헝가리로 옮겨온 것이다. 포도를 공급받을 지역으로는 바로 인근의 에티에크(Etyek)을 낙점했다. 샹파뉴와 비슷한 석회질 토양과 서늘한 기후를 지닌 곳이기 때문. 에티에크의 포도로 샴페인 기술로 만들어 부다포크의 지하 셀러에서 숙성한 그의 스파클링 와인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20세기 초에는 생산량이 연간 200만 병에 달했고, 파리와 같은 유럽 도시들로 수출하기도 했다고. 오늘날 부다포크의 천연 셀러는 여전히 스파클링 와인을 위해 활용된다. 에티에크 포도밭 x 부다포크 셀러라는 조합도 꽤 강력해서인지, 현재 두 지역은 에티에크-부다(Etyek-Buda)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와인 산지로 묶인다.

부다포크에 있는 사우스카(Sauska) 와이너리의 셀러

2017년, 꽤 넓은 지역을 포괄하는 에티에크-부다에서 새로운 PDO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에티에크 지역을 중심으로 더 엄격한 규정하에서 높은 품질과 확실한 정체성을 지닌 스파클링 와인을 만들고자 하는 와인 생산자들이 모인 것. 대부분 소규모 와이너리들로, 샹파뉴나 프란치아코르타 등지에서 경험을 쌓고 돌아온 젊은 세대들이 씬을 이끌었다. 3년간의 시스템 구축 기간을 거쳐 2020 빈티지부터 새로 승인된 PDO가 적용되기 시작했는데, 이름은 에티에키 페지구(Etyeki Pezsgö) PDO. 2020 빈티지의 스파클링 와인이 모두 완성된 작년, 로컬 테이스팅 패널에 의해 6개 와인이 해당 PDO를 획득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지역의 무엇이 특별해서 별도의 PDO를 만들고자 했을까? 에티에크 지역 커뮤니티 테이스팅에서 만난 한 와인 생산자는 “헝가리 대부분 지역보다 시원해서 포도가 천천히 익기에 신선함과 우아함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과 “석회질 토양이라 와인이 강한 뼈대와 신선한 산도를 지닌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하나는 “조셉 톨리가 이 지역에서 포도를 공급받으려 한 19세기는 필록세라 이후여서 자연스럽게 샤르도네나 피노 누아 같은 샴페인 품종으로 재식재했다”는 점이다. 즉, 1990년대 이후 퀄리티 스파클링 와인을 복원하고자 했을 때, 이 품종들은 이미 이 지역의 전통이었다는 뜻이다. 이는 스파클링 와인 산지로서 분명 강점이 되었으리라.

에티에크 지역 커뮤니티 테이스팅에 나온 스파클링 와인들

에티에키 페지구 PDO로 허용되는 품종은 샤르도네, 피노 누아, 피노 그리, 피노 블랑 단 네 가지다. 품질 지향적이므로 당연히 전통 방식(Method Traditionnelle)으로 만들어야 하고, 앙금 숙성도 최소 24개월을 거쳐야 한다. 목표로 하는 스타일은 신선하고 깨끗하면서도 우아한 스파클링 와인. 지역 커뮤니티 테이스팅에서 만나본 에티에키 페지구 PDO 와인들로 보건데, 목표는 충분히 이루고도 남을 듯하다.

에티에크-부다 방문 와이너리 #1 사우스카(Sauska)

토카이(Tokaj) 지역에서 2000년부터 전통적인 스위트 와인을 만들어 온 와이너리다. 헝가리 전체로 따지더라도 스파클링 와인의 생산과 소비가 아주 미미했던 2009년, 부르고뉴에서 온 토양 전문가들의 조언에 따라 토카이 지역에 샤르도네와 피노 누아 포도나무를 심고 2011년부터 스파클링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2015년 부다포크에 10,000제곱미터의 석회암 셀러를 매입한 후로 스파클링 와인의 2차 발효부터 숙성을 모두 이곳에서 해왔다. 습도가 80%에 이르기도 하는 이상적인 셀러에서 완성된 사우스카 스파클링 와인은 현재 헝가리를 대표하는 스파클링 와인으로 꼽힌다. 주품종은 푸르민트. 와인에 따라 샤르도네와 피노 누아의 비율을 달리하여 블렌딩하는데, 부다포크 셀러에서 만난 와이너리 관계자는 “푸르민트 베이스의 스파클링 와인은 샴페인과 아주 다르다. 우리는 샴페인을 복제하려 하지 않는다. 샤르도네로 무게감 있는 스타일의 스파클링 와인을 만들라면 만들 순 있지만, 우리는 푸르민트 캐릭터와 토카이의 맛이 나는 스파클링 와인을 만들고 싶다”라며 지향점을 정확히 설명했다.

사우스카 와이너리의 부다포크 셀러 투어에 나온 매그넘 보틀

에티에크-부다 방문 와이너리 #2 에티에키 쿠리아(Etyeki Kúria)

1996년 설립된 에티에키 쿠리아 와이너리는 “유산을 통한 혁신”을 모토로 한다. 현재 45헥타르의 포도밭을 보유하고 있고, 에티에크뿐만 아니라 쇼프론(Sopron) 지역에서도 와인을 생산한다. 미래 세대를 위해 환경을 보전해야 한다는 믿음으로 태양 에너지를 적극 활용하고 생물다양성을 위해 노력한다. 동물성 물질은 지양하며 무게가 가벼운 와인병을 사용하는 등 지속가능성을 중시하여 여러 실천을 하고 있다. 실제로 에티에키 쿠리아 와이너리에서는 초입부터 꿀벌을 쉼 없이 마주칠 수 있었고 포도밭에서도 야생화를 포함한 여러 종류의 풀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에티에키 쿠리아 와이너리

에티에크 지역 커뮤니티 테이스팅에 참여한 와이너리들

헝가리 와인 지도

발라톤 지역

중부 유럽에서 가장 큰 호수인 발라톤(Balaton)을 둘러싼 지역은 헝가리에서 가장 복합적인 와인 산지라 불린다. 서쪽 오스트리아 접경지까지 뻗어 있는 드넓은 지역이기도 하고 지질학적으로도 매우 다양하여 크게 6개 소지역으로 나뉘는데, 흥미로운 스파클링 와인은 대부분 발라톤 호수 인근에서 생산된다. 헝가리 와인 서밋의 마스터 클래스 ‘헝가리안 버블 - 헝가리의 스파클링 와인들(Hungarian Bubble – Sparkling Wines from Hungary)’을 진행한 소믈리에 페터 투(Péter Tüű)는 “발라톤 호수는 평균 3~4미터로 얕은 편이고 깊은 곳도 11미터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여름철 주변 지역의 온도가 빠르게 올라가는 편이다. 반면 여름이 끝나도 온도가 빠르게 떨어지진 않는데, 덕분에 수확철까지 온기가 유지된다”라고 소개했다. 또한 포도의 성장기 때 호수에서 반사되는 태양빛이 매우 특별한 미세기후를 형성하고, 대부분의 포도밭이 언덕에 있어 차가운 북풍으로부터도 보호된다고. 물론 다양한 세부 산지가 있고 미세 기후와 토양도 다양하여 하나로 정의할 순 없지만, 소믈리에 페터 투에 의하면 발라톤 지역의 스파클링 와인은 “대체로 햇빛 잘 받은 포도의 신선함과 과실미가 강조되는 스타일”이라 한다. 마스터 클래스에 나온 6종의 와인 중 발라톤 지역에서 생산된 와인은 4종이었다. 바다초니(Badacsony), 초팍(Csopak), 발라톤보글라(Balatonboglár), 숌로(Somló) 등 각 세부 산지에서 토착 품종을 중심으로 만든 이 와인들은 헝가리 와인의 또 하나의 가능성이 스파클링 와인에 있음을 직감하게 했다.

‘헝가리안 버블 - 헝가리의 스파클링 와인들’ 마스터 클래스에 나온 와인들

‘헝가리안 버블 - 헝가리의 스파클링 와인들’ 마스터 클래스 시음 리스트

  • Hernyák Etyek Brut 2021
  • Éliás Grande Cuvée 2022
  • Zelna Furmint & Olaszrizling Brut Magnum NV
  • Bujdosó Série No. 50̊ NV
  • Sauska Brut Magnum NV
  • Kreinbacher Égoïste Magnum 2017

화이트의 나라에서 열정으로 완성한 레드 와인들

카르파티안 품종에 대하여

헝가리는 역사적 보나 생산량으로 보나 화이트 와인의 나라다. 16세기까지만 해도 헝가리 일대엔 화이트 와인 품종밖에 없었고, 오스만 제국의 침략을 피해 헝가리로 건너온 남쪽 나라 사람들이 레드 와인 품종을 들여왔다고 여겨진다. 현재도 전체 포도밭 중 화이트 와인 품종이 차지하는 비율이 70%이다. 흥미로운 점은 탑 10 품종을 꼽을 때 화이트의 대부분은 토착 품종이지만 레드는 그 반대라는 것. 그만큼 카베르네 소비뇽이나 메를로, 카베르네 프랑, 피노 누아 등 국제 품종이 많이 재배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헝가리 와인을 얘기하며 토착 품종으로 만든 레드 와인을 빠뜨릴 순 없다. 다른 곳에는 없는, 이 나라만의 특색을 지닌 매력 있는 와인이 분명 생산되기 때문이다. 헝가리 와인 서밋에서 ‘헝가리안 레드 와인과 카르파티안 포도 품종들(Hungarian Red Wines and Carpathian Grape Varieties)’이라는 주제로 마스터 클래스가 진행된 이유도 다르지 않을 거다. 여기서 카르파티안 품종이란 중동부 유럽에 걸쳐 있는 카르파티아산맥(Carpathian Mountains)과 그 일대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재배해 온 품종을 뜻하는데, 그중 헝가리에서 눈여겨봐야 할 엑기스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화이트와 레드 통틀어 헝가리에서 가장 재배 면적이 넓은 케크프랑코쉬(Kékfrankos)가 맨 앞단에 나와야 할 것 같다. 오스트리아에선 블라우프랭키쉬(Blaufränkisch)라고도 불리지만, 세계에서 이 품종을 가장 많이 재배하는 나라는 의심의 여지 없이 헝가리다. 밸런스 좋은 생동감과 에너지, 신선한 캐릭터와 테루아를 잘 반영하는 장점이 있고, 스파클링 와인부터 로제, 가벼운 레드와 최고급 레드까지 헝가리 와인 산지 전역에서 다양한 스타일로 생산되는 플래그쉽 레드 품종. 1997년 에게르(Eger) 지역의 와인 생산자들은 오스만 제국의 침략 당시 압도적으로 열세한 상황에서도 성을 지켜내게 했다는 전설의 붉은 음료를 재현해 냈는데, 에그리 비카베르(Egri Bikavér)라 이름 붙인 이 와인의 주품종 역시 케크프랑코쉬이다. 이쯤되면 국민 품종이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 한편 카다르카(Kadarda)는 화이트 품종밖에 없던 헝가리의 첫 레드 품종이었다. 발칸 반도에서 유입되었다고 여겨지며 19세기엔 아주 흔했으나 현재는 에게르와 섹사르드(Szekszárd) 지역에서 소량 재배되는 품종. 대체로 밝은 베리류 아로마와 허브, 플로럴 노트가 주를 이루는 섬세한 와인들로 팬층을 늘려가는 중이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품종은 투란(Turán)이다. 1964년 개발된 교배종으로, 깊은 블랙 베리류 과일 아로마와 스파이시 노트, 향기로운 장미 향이 감돌며 높은 알코올과 타닌감이 강조되는 풀바디 와인이 주로 생산된다. 주 재배지는 에게르와 마트라(Mátra), 쇼프론. 에게르에선 비카베르에 종종 블렌딩되지만, 이 개성 강한 품종을 잘 다루는 와이너리에선 단일 품종으로도 충분한 매력을 뽑아낸다.

헝가리 토착 품종으로 만든 와인들

‘헝가리안 레드 와인과 카르파티안 포도 품종들’ 마스터 클래스 시음 리스트

  • Szentpéteri Kadarka Rosé Brut NV
  • Eszterbauer „Nagyapám” Kadarka 2024
  • Illés Kékfrankos 2022
  • Luka Enikő Soproni Turán 2022
  • St. Andrea Hangács Cru Egri Bikavér Grand Superior 2022
  • A. Gere Villányi Franc Ördögárok 2021

섹사르드 지역

부다페스트에서 다뉴브 강을 거슬러 쭉 남하하다 보면 헝가리의 남부 판논 지역에 이른다. 섹사르드는 판논의 대표 와인 산지로 50여 개의 와이너리가 있는 소규모 산지이다. 대륙성 기후이지만 지중해의 영향을 약간 받아 꽤 따뜻한 편이며, 지형적으로도 일조량이 좋아 레드 품종이 충분히 익을 수 있는 곳이다. 덕분에 포도밭의 75~80%가 레드 품종인데, 토양에 석회질 함량이 높은 편이라 따뜻한 지역임에도 와인이 신선함을 지닐 수 있다고 한다. 이 지역의 스타는? 두말할 나위 없이 케크프랑코쉬이다. 대부분의 와이너리에서 재배하기도 하고, 섹사르드 비카베르(Szekszárd Bikavér)에 최소 45%를 사용해야 할 정도로 가장 중요한 품종이라고. 카다르카의 경우 섹사르드 지역 차원에서 2005년부터 클론 개발에 많은 투자를 하여 훨씬 안정적인 고품질 와인이 생산되는 중이다. 지역 전체 와인 생산량의 5%에 지나지 않지만 점차 중요도가 높아지는 라이징 스타랄까? 아로마틱한 레드 와인을 좋아하는 취향이라면 반드시 맛봐야 할 품종이라 할 수 있다.

일조량이 풍부한 섹사르드 지역 포도밭

헝가리 와인 서밋을 통해 두 곳의 섹사르드 와이너리를 방문하고 지역 커뮤니티 테이스팅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 지역엔 섹사르드 와인메이커스 길드(Szekszárd Winemakers Guild)라는 특별한 지역 커뮤니티가 있는데,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통해 각자의 와인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교류하고 더 좋은 품질의 와인을 만들고자 2007년에 설립된 일종의 협회이다. 블라인드 테이스팅은 1월부터 9월까지 매달 진행되며 이때 검증을 통과한 섹사르드 비카베르, 카다르카, 케크프랑코쉬 와인들은 섹사르드 문양이 새겨진 와인병에 병입할 수 있다. 섹사르드에서 만난 와인 생산자들은 한결같이 이 끈끈한 커뮤니티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진취적이고 열정적인 와인 생산자들이 교류와 협력을 통해 밝은 미래를 개척해 있는 와인 산지랄까.

섹사르드 방문 와이너리 #1 비다 페터(Vida Péter)

1990년 설립된 와이너리로, 이 역사적인 와인 산지를 재정의하는 선구자적인 역할을 해왔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설립자인 페터 비다(Péter Vida)는 2011년 올해의 와인메이커(Winemaker of the Year)로 선정되기도 했다. 지역 전통 품종이 그들이 사랑하는 계곡 땅과 석회질 황토 토양의 독특한 개성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다고 믿으며, 지난 30여 년간 카다르카와 케크프랑코쉬, 비카베르와 같은 지역성을 담은 와인들을 우아한 스타일로 생산하는 데 전념해 왔다. 현재 23헥타르의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고 가족 와이너리로서 자녀 세대도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

비다 페터 와이너리의 와인들

섹사르드 방문 와이너리 #2 헤이만 패밀리 와이너리(Heimann Family Winery)

헤이만 패밀리는 오랫동안 헝가리를 대표하는 레드 와인 생산자 중 하나였다. 현재 오너 부부와 해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아들이 와이너리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25헥타르의 포도밭에서 재배된 섬세한 카다르카와 스파이시한 케크프랑코쉬 포도로 세련되고 표현력 좋은 와인을 생산한다. 2014년부터 유기농 방식을 시범적으로 적용한 후 2023년에는 유기농 인증을 받은 카다르카, 케크프랑코쉬, 비오니에 포도를 수확했다. 열정적인 추진력으로 지역 와인메이커들의 협력을 이끄는 역할도 한다.

헤이만 패밀리 와이너리의 와인들

섹사르드 지역 커뮤니티 테이스팅에 참여한 와이너리들

빌라니 지역

헝가리 최남단, 크로아티아 경계에 있는 빌라니(Villány)는 기후나 토양으로 봤을 때 확실한 레드 와인 산지이다. 인근의 섹사르드와 비교하자면 지중해성 기후의 영향을 더 받는 곳이라 더 따뜻하며 토양도 석회질이 더 많은 편이다. 평지와 완만한 구릉지가 많은 헝가리에서 빌라니는 섹사르드와 함께 꽤 언덕진 곳이다. 포도밭은 보통 해발고도 150~250미터 사이에 있는데, 투어 중 방문한 사우스카 48 빌라니(Sauska 48 Villány) 와이너리의 포도밭은 280미터 높이까지 올라가야 했다.

빌라니에서 중요한 품종을 하나만 꼽으라면 주저 없이 카베르네 프랑이 나와야 할 것이다. 빌라니 프랑(Villány Franc)이라는 자체 브랜드를 만들 정도로 이 지역 와인 생산자들은 카베르네 프랑에 진심인데, 그 기원은 2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헝가리를 방문했던 마이클 브로드벤트(Michael Broadbent)MW가 <디캔터> 매거진에 빌라니를 “카베르네 프랑의 새로운 홈”이라고 소개한 것이 계기였다. 이로 인해 빌라니 와인 생산자들은 카베르네 프랑과 빌라니 와인의 정체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되었고, 카베르네 프랑을 심는 포도밭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현재 빌라니의 카베르네 소비뇽 포도밭 면적은 390헥타르, 카베르네 프랑은 360헥타르이다. 하지만 빌라니에서 만난 한 와인 생산자는 “트렌드와 지난 10년간의 추이를 봤을 때 곧 카베르네 프랑이 1등 품종이 될 것”이라 전망했다.

빌라니의 포도밭들

섹사르드 지역과 유사하게 빌라니 지역 와인 생산자들도 “우린 모두 한 팀”인 점을 강조했다. 매달 블라인드 테이스팅으로 와인을 평가하고 의견을 교환하는 와인 생산자 커뮤니티가 있는 것이다. 카베르네 프랑이 특별한 지역답게 이 커뮤니티는 카베르네 프랑에만 집중한다. 카베르네 프랑만을 위한 테이스팅 패널이 매달 와인을 평가하고, 이 과정을 거친 와인은 클래식-프리미엄-슈퍼 프리미엄 등 세 등급으로 나뉘어 출시되는 거다. 그렇다면 카베르네 프랑은 과연 새로운 홈을 제대로 찾아왔을까? 빌라니 프랑 와인 한 잔이라면 분명 “Yes!”라는 답이 귓가에 울릴 것이다.

빌라니 방문 와이너리 #1 사우스카 48 빌라니(Sauska 48 Villány)

토카이 지역의 사우스카 와이너리는 2008년 빌라니 지역에 두 번째 와이너리를 오픈했다. 빌라니 평균보다 꽤 큰 규모의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으며, 카베르네 소비뇽과 카베르네 프랑, 메를로 등 보르도 품종에 더해 카다르카와 케크프랑코쉬와 같은 토착 품종들로 빌라니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와인을 생산한다. 와이너리 내에 있는 사우스카 48 레스토랑은 미쉐린 가이드에서 ‘Recommendation’을 받았으며, 사우스카의 부다포크 스파클링 와인과 빌라니 레드 와인, 토카이 아수에 수준급 음식을 곁들일 수 있는 지역 명소이다.

사우스카 48 빌라니 레스토랑의 디너 메뉴

빌라니 방문 와이너리 #2 키스 가보 와이너리(Kiss Gábor Winery)

헝가리 최고의 메를로 중 하나를 생산하는 젊은 와이너리이다. 12헥타르의 포도밭에서 메를로와 카베르네 프랑, 카베르네 소비뇽을 주로 재배하며 최소한의 개입 방식으로 포도 본연의 진정한 풍미를 보여주는 와인을 생산한다. 묵직하고 힘있는 스타일의 레드 와인으로 대표되는 빌라니에서 드물게 보르도 품종으로 우아함을 갖춘 와인을 만들어 낸다. 덕분에 와이너리의 규모는 작지만 이미 많은 팬층을 보유하고 있다.

키스 가보 와이너리의 와인들

빌라니 방문 와이너리 #3 잠머탈 와인 에스테이트(Jammertal Wine Estate)

2001년에 설립된 잠머탈 와인 에스테이트는 뛰어난 위치에 약 85헥타르의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다. 재배하는 품종의 85%가 카베르네 프랑,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등 보르도 품종이며 이외 케크프랑코쉬와 피노 누아, 시라, 포르투기저로도 와인을 생산한다. 최첨단 설비를 갖추고 있고 이를 빌라니 지역의 오랜 와인 전통과 결합하여 고품질의 풀바디 레드 와인을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프리미엄 와인을 개별 고객의 맞춤형으로 만들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잠머탈 에스테이트 와이너리의 셀러

빌라니 지역 커뮤니티 테이스팅에 참여한 와이너리들

화산토에서 만들어진 와인들

온천은 부다페스트의 필수 관광코스 중 하나다. 지하에 흐르는 뜨거운 온천수는 수백만 년 전 중부 유럽에서 일어났던 화산 활동의 증거라 할 수 있다. 특히 헝가리 중부 및 북동부 지역의 토양에서는 화산 활동의 잔해가 종종 발견되는데, 이 다양한 화산토들은 와인에 독특한 미네랄 노트와 산도를 부여한다. 헝가리 와인 서밋의 마스터 클래스 ‘화산 테루아(Volcanic Terroirs)’를 통해 화산토에 영향을 받은 와인들을 집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시음 와인 6종 중 4종이 발라톤 지역 와인이었는데 그만큼 발라톤이 화산 테루아가 중요한 와인 산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발라톤 호수 북쪽 연안에는 화산의 분화구가 잘려 나간듯한 독특한 언덕이 곳곳에 퍼져 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바다초니와 숌로가 화산 테루아가 강조되는 산지이다. 두 곳 모두 화이트 와인이 메인인 곳으로, 바다초니의 경우 올라스리슬링(Olaszrizling)과 피노 그리, 켁니엘루(Kéknyelű) 품종으로, 숌로의 경우 올라스리슬링과 푸르민트, 하르쉬레벨루(Hárslevelű) 품종으로 대표된다. 헝가리 북동부로 옮겨오면 토카이 지역에서 화산토의 영향을 듬뿍 받은 와인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이러한 화산토에서 생산된 와인들은 일반적으로 산도가 높고 미네랄리티가 풍부한데, 미네랄 노트는 젖은 돌이나 소금, 스테인리스 스틸, 연기, 기름진 풍미 등으로 발현된다.

발라톤 호수의 바다초니 와인 산지(사진: Wines of Hungary)

‘화산 테루아’ 마스터 클래스 시음 리스트

  • Folly Kéknyelű 2024
  • Borbély Bács Hegy Badacsonyi Olaszrizling Selection 2021
  • Gilvesy George 2023
  • Tornai Somlói Selection Grófi Hárslevelű 2022
  • Holdvölgy Vision 2021
  • Balassa Tokaji Furmint „Szent Tamás” 2021

판논할마 대수도원의 와인을 현대적으로 복원하다

서기 1000년 헝가리 왕국의 초대 국왕인 성 이슈트반(Szent István) 1세는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였다. 그로부터 4년 전인 996년 설립된 판논할마 대수도원(Pannonhalma Archabbey)은 헝가리 기독교의 요람이라 여겨지는 곳이다. 로마에서 이곳으로 파견된 첫 수도승은 종교 외에도 중요한 것을 가지고 들어왔는데 바로 와인 양조 문화였다. 당시 수도승들에겐 포도밭을 돌보고 허브를 길러 병자를 치료해야 하는 일종의 사회적 임무가 있었기에 수도원에 포도밭이 있는 건 당연한 일이었을 테다. 판논할마 대수도원과 이곳의 와이너리 아파차기 판논할미(Apàtsàgi Pannonhalmi)는 모두 현재 활발하게 운영되는데, 이번 헝가리 와인 서밋의 투어 일정으로 방문해 볼 수 있었다.

판논할마 대수도원

수도원은 설립 1000년이 되던 1996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현재도 27명의 수도승과 학생들이 생활하며 수도원으로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반면 와이너리는 과거의 역사와 명성을 되찾기 위해 2003년 새롭게 시작된 프로젝트라 할 수 있다. 헝가리 다른 지역들과 마찬가지로 협동조합 시스템을 거치며 잊힌 전통을 복원하는 일이었다. 투어에서 만난 와이너리 관계자는 이것이 “무거운 책임감이 따르는 일”임을 강조했다. 포도밭 하나 남아있지 않은 현실에서 과거를 되찾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다행히 수도원에는 유서 깊은 방대한 도서관이 있는데, 이곳에서 와인 생산과 관련한 옛 자료를 찾아볼 수 있었고 덕분에 예전에 소유했던 50헥타르의 포도밭을 되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재배하는 품종은 판논할마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올라스리슬링에 더해 샤르도네, 피노 블랑, 메를로, 카베르네 프랑, 리슬링 등 국제 품종의 비중도 꽤 높다. 와이너리 관계자의 설명은 이렇다. “헝가리 전통 품종도 중요하지만 판논할마 대수도원이 국제적인 장소라는 점도 이해해야 한다. 과거 베네딕틴 수도승들은 알자스나 알토 아디제, 모젤, 부르고뉴를 다니며 흥미로운 품종을 발견하면 포도나무를 꺾어 와 심는 실험을 하곤 했다. 실제로 리슬링과 게뷔르츠트라미너, 부르고뉴 품종을 심었다는 기록도 있다.” 익숙한 품종이 많아서일까, 이곳의 와인은 대체로 마시기 편안하면서도 모던함이 강조되었다. 이어지는 설명에서 이유를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수도원은 살아있는 역사이자 문화, 그리고 우리 삶의 일부다. 전통적이기도 하지만 언제나 혁신적이고자 했다. 이점을 와인에도 반영하고 싶었다. 단순한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여전히 보존되고 이어지는 유산 말이다.”

아파차기 판논할미 와이너리 런치에 나온 와인들

쇼프론, 오스트리아 국경에서

오스트리아 접경지에 있는 아름다운 작은 도시, 쇼프론을 둘러볼 차례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오스트리아 부르겐란트(Burgenland)와 동일한 와인 산지였던 곳이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붕괴될 때 오스트리아가 아닌 헝가리에 남기를 시민들이 강력하게 주장하여 오늘날 부르겐란트와 국경을 두게 되었다. 이쯤에서 짐작할 수 있듯 쇼프론의 메인 품종은 부르겐란트와 맥을 같이 한다. 레드는 케크프랑코쉬, 화이트는 그뤼너 벨트리너. 특히 쇼프론은 “케크프랑코쉬의 수도”라 불리기도 하는데, 전체 레드 품종의 75%가 케크프랑코쉬이다. 쇼프론 지역에서 와이너리들과 함께한 디너에서 와인 생산자들은 이 지역의 특별한 테루아를 강조했다. “운모 판암(Mica Slate)이라는 헝가리 다른 지역엔 없는 독특한 돌이 포도밭을 덮고 있어 와인에 매우 특별한 미네랄리티를 부여한다”라는 것. 기후는 꽤 시원한 편이다. 그 영향으로 원래는 푸르민트와 같은 화이트 품종을 많이 재배했지만, 필록세라 후 포도밭을 재건하며 케크프랑코쉬를 많이 심어 현재는 레드 와인 산지로 인식된다고 한다. 한편으론 최근 다시 화이트 품종에 집중하려는 움직임도 일어나는 중이라고. 쇼프론의 와인은 헝가리 다른 어느 지역보다 정감이 갔다. 작은 규모의 와이너리들이 헝가리를 지켜낸 자부심을 담아 만든 와인이라 그럴까, 쇼프론의 올드 타운처럼 소박한 아름다움이 와인에서 전해졌다.

쇼프론의 올드 타운

쇼프론 지역 커뮤니티 테이스팅에 참여한 와이너리들

그럼에도, 토카이

새로운 와인을 알아가는 것도 즐겁지만 헝가리 와인의 왕좌를 아예 뺄 순 없을 것 같다. 헝가리를 와인 생산국으로 알린 독보적인 스위트 와인 토카이 아수가 그것. 하지만 토카이는 훨씬 다양한 스타일의 와인이 생산되어 아수만 다루기엔 아쉬운 와인 산지이다. 토카이 아수의 주품종인 푸르민트로 만든 드라이 화이트 와인은 짜릿한 산도와 군더더기 없는 우아한 미감으로 화이트 와인 러버들을 매혹하고, 스위트 와인도 토카이 아수의 다양한 변주로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이중 스위트 와인은 포도가 아수 베리가 되어 가는 과정 중 어느 단계의 포도로 어떻게 만드냐에 따라 몇 가지 스타일로 나뉜다.

(이미지: Wine of Hungary / Disznókő)

우선 레이트 하비스트(Late Harvest) 와인은 포도가 완전히 익은 후 늦게 수확해서 얻은 농축된 포도로 만들어지며, 포도송이째 수확하므로 일부는 보트리티스의 영향이 있을 수도 있다. 포도즙의 최소 당분 함량이 230g/l로 221g/l인 소테른보다도 높은데, 배럴 숙성 없이 신선하고 과일 풍미가 돋보이는 스타일로 만들어진다. 반면 사모로드니(Szamorodni)는 송이째 수확하는 것은 동일하지만 조금 더 아수 베리에 가까운 포도가 많이 포함한다. 포도즙의 최소 당분 함량은 270g/l. 최소 6개월의 배럴 숙성을 통해 풍부하고 복합적인 스타일로 만들어진다. 일부 생산자는 잔당감이 낮은 드라이 버전의 사모로드니를 출시하는데, 의도적으로 산화시켜 독특한 캐릭터를 부여하기도 한다. 가장 유명한 토카이 아수는 보트리티스 포도를 한알 한알 손으로 딴 아수 베리를 발효 중인 포도즙이나 와인에 침용시켜 만든다. 아수 베리를 첨가함으로써 2번째 발효가 일어나고 여기서 아수만의 고유한 풍미가 생성되는 것. 토카이 아수 포도즙의 최소 당분 함량은 320g/l, 완성된 와인의 최소 잔당은 120g/l로 꽤 높다. 그럼에도 토카이 아수가 와인의 왕이라 불리는 것은 포도가 지닌 높은 산도가 균형을 이루기 때문일 것이다.

헝가리 와인 서밋의 마스터 클래스 ‘스위트 토카이 - 더 크라운 주얼 오브 내추럴 스위트 와인(Sweet Tokaj - The Crown Jewels of Natural Sweet Wines)’과 미디어 테이스팅을 통해 뛰어난 품질의 토카이 와인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속에서도 토카이는 분명 헝가리 와인의 중심이자 빛나는 유산임이 분명했다.

헝가리 와인 서밋 미디어 테이스팅에 나온 사모로드니 와인

‘스위트 토카이 - 더 크라운 주얼 오브 내추럴 스위트 와인’ 마스터 클래스 시음 리스트

  • Kardos Tündérmese Late Harvest 2023
  • Barta Öreg Király Dűlő Szamorodni 2021
  • Disznókő Tokaj 5 Puttonyos Aszú 2017
  • Patricius Tokaji 6 Puttonyos Aszú 2017
  • Lenkey 6 Puttonyos Aszú 2003
  • Grand Tokaj Terroir Selection Tokaji Esszencia 2013

글·사진 신윤정 자료 제공 Wine of Hun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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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공개일 : 2025년 10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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