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DNA가 와인 철학을 만났을 때: 포데르누오보

Written by강 은영

유서 깊은 와인 산지 이탈리아 토스카나에 2000년대 초반 탄생한 신생 와이너리가 있다. 이름도 ‘새로운 농장’을 뜻하는 포데르누오보(PoderNuovo). 설립자는 럭셔리 브랜드 불가리의 4대손이자 와인이 ‘인생 프로젝트’였다는 지오반니 불가리(Giovanni Bulgari)다. 와인 사업을 이야기하면서 굳이 옛 가업(불가리는 2011년 LVMH에 매각했고, 현재 이들 가문은 LVMH의 주주로 있다)을 소환하는 건 그가 바라는 바가 아니라지만, 포데르누오보를 이야기하면서 그 배경을 빼놓기는 어렵다. 우선 와인 곳곳에 가족들의 캐릭터가 담겨 있다. 이들 와인에서 받는 인상이나 와인 철학에서 ‘명품을 만드는 디테일’이 느껴지는 점도 그렇다. 포데르누오보는 이탈리아 와인 포트폴리오가 두터운 와이넬을 통해 최근 국내 런칭했다. 지난 10월 21일 안다즈 호텔 조각보에서 열린 미디어 간담회에서 이 주목할 만한 와인들을 만나 보았다.

안다즈 호텔 조각보에서 열린 미디어 간담회에 나온 포데르누오보 와인들

전통이라는 무기 없이도 장인정신의 승부수

포데르누오보의 출발점은 2004년, 지오반니와 그의 아버지 파올로(Paolo)가 토스카나주 시에나에 있는 팔라쪼네(Palazzone) 마을의 부지를 매입하면서였다. 이곳은 움브리아 경계와도 가까운 지역으로 이전부터 포도 재배 농가의 땅이었다. 다만 매입 당시 포도밭은 이미 20여 년 이상 방치된 상태라 2007년 22ha의 밭에 포도나무를 전량 재식재했다. 현재 포도밭 면적은 26ha로 조금 더 늘었지만, 여전히 규모는 크지 않은 편이고 그보다 체감되는 와인 생산량은 더 적다. 최대 30만 병까지 생산할 수는 있지만, 포데르누오보가 지향하는 바는 아니라고. 그래서 연 총생산량은 10만~12만 병 수준으로 최고급 와인 G33은 2,000병 남짓, 걔 중 생산량이 높은 편인 테라(Therra)도 4만 병에 지나지 않는다.

젊은 시절 지오반니는 불가리 그룹의 럭셔리 사업에 몸담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자연을 사랑했고 와인이야말로 자연의 잠재력을 최대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그는 와인과 이전의 럭셔리 브랜드 사업은 별개라고 못 박지만, 그의 와인에서 느껴지는 정교함이나 미감은 어쩔 수없이 그의 뿌리를 떠올리게 한다. 와인은 토스카나의 레드가 주를 이루는데, 산지오베제를 메인으로 하고 보르도 품종들을 적절히 사용한다. 유일한 화이트 와인 한 종은 인근 움브리아 지역에 있는 화이트 품종에 적합한 테루아에서 나온 포도로 만든 것이다. 와인을 시음하고 느낀 점을 먼저 말하자면, 포데르누오보의 ‘모던’한 지향점이 잘 느껴지는 한편 훌륭한 밸런스와 복합적이면서 절제의 미가 담긴 풍미, 그리고 모든 것을 함축하는 세련미가 일관되게 드러났다.

포데르누오보의 설립자 지오반니 불가리(Giovanni Bulgari)

건축계에서도 주목받는 친환경 와이너리

지오반니는 “포데르누오보 프로젝트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우아함과 조화, 자연에 대한 깊은 존중”이라고 언급한 바 있는데, 2012년 완공된 와이너리를 보면 그 말이 실감 난다. 와이너리는 기능성에 초점을 두면서도 풍경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모습이다. 지열 냉난방 시스템과 태양광 패널을 활용하여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는 것은 물론, 와인 생산 과정을 고려해 배치를 최적화하고 수확한 포도를 양조장으로 이동하는 동선에 특히 신경 썼다. 중앙 공간은 포도밭으로 이어진다. 통유리 벽으로 와인 생산 과정이 한눈에 담긴다는 점도 특색 있다. 미학적으로도 훌륭한 이 건축물은 국내 건축 잡지에도 소개된 바 있다. 자연에 대한 존중은 친환경적인 방식의 포도밭 관리에서도 드러나며, 로고에도 이들의 추구하는 자연스러움이 묻어난다. 로고는 붓에 레드 와인을 묻혀 그린 그림으로 제작했다. 가지런히 놓인 포도가지를 그린 심플한 디자인으로 동시에 포도밭의 형상을 띠고 있다.

포데르누오보 와이너리

캐릭터, 와인과 인물의 접점

와인에 설립자나 주요 인물을 기념해 이름을 따는 경우는 흔한 일이다. 포데르누오보의 와인에도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인상적이었던 건 단순히 의미 있는 인물의 이름을 빌려 쓴 것이 아니라 와인에 그 인물의 캐릭터를 담으려 했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와인의 캐릭터가 더 생생히 느껴지기도 했다. 유일한 화이트 와인 니꼴레오(NicoLeo)는 움브리아 지역에서 나는 그레케토(Grechetto)와 국제 품종 샤르도네를 블렌딩한 와인으로, 니코(Nico)와 레오네(Leone), 성격이 판이한 지오반니의 두 아들의 이름을 한 데 묶은 것이다. 미네랄 뉘앙스와 매끈한 질감, 생생한 푸른 사과와 잘게 부순 아몬드의 향이 교차하는 발랄하면서도 세련된 와인으로 두 가지 성격이 매력적으로 공존하는 느낌을 준다.

포데르누오보 니꼴레오, 스피리디오, 소티리오(왼쪽부터 순서대로)

산지오베제 100%의 스피리디오(Spiridio)는 불가리 창시자의 셋째 아들 스피리디오네(Spiridione)의 이름을 땄다. 그는 유쾌하고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로 비록 짧은 생이었지만 누구보다 역동적인 삶을 살았다고 한다. 스피리디오 와인의 화사한 레드 베리, 경쾌한 산도, 생동감 있는 캐릭터와 잘 어울리는 인물이었다고. 그리고 산지오베제로 만든 플래그쉽 와인 소티리오(Sotirio)가 있다. 불가리 브랜드의 창시자 소티리오의 이름을 차용한 이 와인은 레이블도 생전 그가 자주 입었던 블랙 슈트의 느낌을 살렸다. ‘비냐 디 모로(Vigna di Moro)’라고 하는 약 4h의 크뤼 싱글 빈야드에서 난 산지오베제를 이용했고, 품질을 위해 생산량도 엄격히 조절해서 만들었다. 앞서 스프리디오와는 또 다른 무게감과 복합미가 드러난다.

그리고 와인에 담긴 테루아

모든 와인은 테루아의 산물이지만, 나머지 소개할 세 와인은 특히 땅의 캐릭터와 연결된 와인들이다. 먼저 테라(Therra)는 이름 그 자체가 땅을 뜻하는 와인으로 산지오베제를 메인으로 카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를 블렌딩하여 토스카나의 테루아를 잘 표현한 와인이다. 반면 아르지리오(Argirio)는 이태리어로 점토를 뜻하는 아르질라(Argilla)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카베르네 프랑 100% 와인이다. 2015년 빈티지까지 아르지리오는 카베르네 소비뇽과 카베르네 프랑을 블렌딩해서 만들었다. 이후 지오반니는 이 토양에서 카베르네 프랑이 마치 두 번째 고향을 찾은 듯 탁월한 표현력을 보여주는 것을 깨닫고, 2016년부터는 100% 카베르네 프랑만 사용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카베르네 프랑이 두 번째 고향을 찾았다는 그의 말엔 완벽히 수긍이 간다. 아르지리오는 카베르네 프랑의 매력을 잘 살린 동시에 포데르누오보 특유의 우아함과 화사함이 고스란히 담긴 와인이었다.

포테르누오보 테라, 아르지리오, G33(왼쪽부터 순서대로)

마지막으로 G33은 포데르누오보의 최고급 레인지 중 하나다. 산지오베제, 메를로, 프티 베르도를 약 33% 동일한 비율로 블렌딩한 와인으로 탄생 배경도 흥미롭다. 포데르누오보는 2009년부터 다양한 테루아를 심층적으로 연구하여 가장 잠재력이 높은 3개의 싱글 빈야드를 발견했고, 이후 9년간의 연구 끝에 2018년 G33을 출시하게 된 것이다. 지오반니는 테이스팅을 하면서 블렌딩에 사용할 오크통에는 분필로 자신의 이니셜인 ‘G’를 써두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와인의 이름은 G33. 연 2,000병만 생산하며 그것도 좋은 빈티지에만 출시한다. 코끝에 스치는 향기만으로도 무게감과 시간의 잠재력이 느껴지는 와인이었다. 포데르누오보는 최근 국내 시장에 출시되어 아직 아르지리오와 G33은 미수입 아이템이다. 와이넬 측은 남다른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이 와인들까지 수입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 밝혔는데, 머지않은 미래에 국내시장에서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강은영 사진 와이넬, 강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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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공개일 : 2025년 10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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