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소성, 기품, 완벽함’ 그 자체, 샴페인 루이 로드레

Written by신 윤정

내년이면 설립 250주년을 맞는 샴페인 하우스 루이 로드레(Louis Roederer). 세기를 넘어 이어진 그 이름은 이제 하나의 ‘장르’라 불러도 과하지 않다. 가장 기본적인 스탠다드 퀴베에서도, 최상위 라인에서도 일관되게 흐르는 건 ‘희소성, 기품, 완벽함’이라는 DNA. 그래서일까, 루이 로드레는 언제나 스스로의 길을 걷는다. 하나의 국가에는 단 한 곳의 수입사만 파트너로 두고, 대량 유통보다 레스토랑과 호텔 같은 프리미엄 채널을 택하는 방식도 루이 로드레다운 고집이다. 지난 10월 방한한 수출 총괄 이사 스테판 리셰 드 포르주(Stéphane Richer de Forges)와 함께한 테이스팅 자리에서, 루이 로드레가 보여주는 우아한 진화의 결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수출 총괄 이사 스테판 리셰 드 포르주(Stéphane Richer de Forges)

컬렉션 245: 루이 로드레의 스몰 럭셔리

컬렉션(Collection)은 루이 로드레의 스탠다드 퀴베다. 스테판은 이를 “우리 포도밭 전체를 대표하는 와인이자 가장 중요한 시그니처 샴페인”이라고 설명했다. 보통 샴페인 하우스가 스탠다드 퀴베로 전체 생산량의 90~95%를 채우는 것에 비해, 루이 로드레는 약 75% 선에서 유지한다. 그만큼 라인업이 다양하다는 뜻일 수도, 혹은 적은 생산량만큼 더욱 집중해 만든다는 뜻일 수도 있겠다. 몇 해 전 루이 로드레는 기존의 스탠다드 퀴베인 ‘브뤼 프리미어’를 컬렉션으로 대체하며, 논빈티지(NV)가 아닌 멀티 빈티지(MV) 개념을 도입했다. 여러 빈티지의 조화를 통해 블렌딩의 미학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단, 메인 빈티지의 개성을 반영하여 매년 레시피가 달라진다. 샤르도네가 좋았던 해에는 샤르도네 비중을, 피노 누아가 뛰어난 해에는 피노 누아 비중을 높이는 식이다. 그럼에도 스타일적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컬렉션의 핵심 철학 중 하나다.

이번에 국내 유통되는 컬렉션 245의 메인 빈티지는 2020년. 샤르도네 41%, 피노 누아 35%, 피노 뮈니에 24%가 블렌딩됐다. 컬렉션이 ‘멀티 빈티지 샴페인’이 될 수 있는 비밀은 리저브 와인에 있는데, 245의 경우 55%가 2020 빈티지이고 나머지는 리저브 와인이다. 이 중 35%는 퍼페추얼 리저브(Perpetual Reserve)로, 매해 신선한 와인을 연속해서 더해가며 숙성한 것이다. 기후 변화 속에서도 와인의 신선함을 지키기 위해 셀러 마스터 장 바티스트 레카이용(Jean-Baptiste Lécaillon)이 2012년에 고안한 시스템. 나머지 10%는 크리스탈(Cristal)에 사용되는 오크 숙성 리저브가 블렌딩됐다. “베이비 크리스탈”이라는 별명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 7g/L의 도사주와 약 3년 반의 숙성을 거쳐 완성된 컬렉션 245는 특히 편안한 밸런스와 크리미한 버블이 인상적이다. 스테판 역시 이 와인의 다재다능함을 강조하며 “식전주뿐 아니라 거의 모든 음식과 잘 어울린다”라고 추천했다. 편안함 속에 루이 로드레만의 우아함이 공존하는 컬렉션 245. 매일 크리스탈을 마실 순 없기에, 루이 로드레의 ‘스몰 럭셔리’를 만끽하기에 더없이 완벽한 선택이 아닐까.

스테판 리셰 드 포르주와 함께한 전문가 테이스팅

블랑 드 블랑 2017: 순수함의 절정

루이 로드레에서 블랑 드 블랑은 여러모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스테판은 “오래전부터 만들었지만, 실제 판매는 제2차 세계대전 말부터 시작됐다”라고 이야기를 꺼냈다. 지난 세기의 일이라 오래된 느낌이지만, 1700년대에 뿌리를 둔 루이 로드레의 역사에서 보면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니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원래는 로드레 가문이 일상적으로 즐기던 테이블 와인이었다고. 2017 빈티지로 맛본 블랑 드 블랑으로 보건데, 무척 세련된 미각을 지닌 가족이었음이 틀림없다. 표현력이 좋으면서도 순수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블랑 드 블랑 2017에는 아비즈(Avize) 그랑 크뤼 마을의 샤르도네 포도가 사용되었다. 이곳에는 루이 로드레 블랑 드 블랑만을 위한 세 개의 아름다운 플롯이 있는데, 스테판에 의하면 작황이 좋은 해에만 단 3만 병 극소량의 샴페인을 생산할 수 있다고 한다. 컬렉션과 동일하게 7g/L의 도사주를 적용하고, 최소 6년의 셀러 숙성을 거쳐 완성된 블랑 드 블랑 2017. 석회질 토양에서 자란 샤르도네의 순수함과 우아함을 루이 로드레는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정교한 대답을 들려주는 와인이라 하겠다.

테이스팅한 와인들

빈티지 브뤼 2016: 셀러 마스터의 애착 빈티지

루이 로드레의 빈티지 브뤼는 크리스탈과 동일한 생산 주기를 갖는다. 다시 말해, 오직 작황이 뛰어난 해에만 만들어지는 와인이다. 스테판은 빈티지 브뤼 2016에 대해 “크리스탈보다 숙성이 빠른 편이라, 크리스탈 2016이 앞으로 어떤 아로마와 텍스처로 발전해갈지 상상해볼 수 있는 와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셀러 마스터 장 바티스트에게 2016은 최고의 빈티지”라는 점을 강조했다. 2008년처럼 샹파뉴 전체를 대표하는 아이코닉 빈티지는 아닐지라도, 생장기의 모든 조건이 조화를 이루어 로제, 블랑 드 블랑, 크리스탈까지 하우스 전 라인업이 아름답게 탄생하여 그가 특별한 애정을 지닌 빈티지라고.

빈티지 브뤼 2016의 중심은 피노 누아다. 몽타뉴 드 랭스(Montagne de Reims)의 베르지(Verzy) 그랑 크뤼 마을에서 재배된 피노 누아가 70%를 차지하는데, 북향의 포도밭에서 오는 힘 있고 선명한 풍미가 특징이다. 이 강렬함을 균형 있게 감싸기 위해 나머지 30%는 샤르도네로 구성했다. 코트 데 블랑(Côte des Blancs) 슈이(Chouilly) 그랑 크뤼 마을의 남향 포도밭에서 자란, 성숙도가 뛰어난 샤르도네를 더한 것이다. 도사주는 앞서 소개한 와인들과 동일한 7g/L, 셀러 숙성은 약 5년이 진행됐다. 스테판은 이 와인이 특히 미식과 훌륭한 조화를 이룬다며 “해산물이나 흰살 생선, 파르미지아노·콩테 혹은 오래 숙성된 네덜란드산 경성 치즈”를 추천했다. 강렬한 바디감과 풍부한 볼륨감이 있으면서도 잘 숙성되어 탁월한 밸런스를 보여주고, 여전히 루이 로드레의 우아함을 간직한 샴페인. 셀러 마스터가 특별한 애정을 지닌 해에 탄생한 빈티지 브뤼 2016은 루이 로드레의 오랜 팬들에게도 또다른 매력을 전하는 와인이 틀림없다.

작년 방한한 루이 로드레의 오너 프레데릭 루조(Frédéric Rouzaud/우)와 셀러 마스터 겸 부사장 장 바티스트 레카이용(Jean-Baptiste Lécaillon/좌)

빈티지 로제 2017: 인퓨젼으로 완성한 섬세함

연한 연어빛이 마치 프로방스 로제를 떠올리게 하는 루이 로드레 로제 2017은 그 색감만큼이나 특별한 방식으로 탄생한다. 핵심은 ‘인퓨전(Infusion)’이라 불리는 기법. 현재 몇몇 샴페인 하우스도 이를 적용하는 추세지만, 최초로 개발한 이는 루이 로드레의 셀러 마스터 장 바티스트다.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피노 누아 포도를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 넣어 5~10일간 최대 4도의 초저온 상태로 두고, 그 과정에서 중력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신선한 주스를 샤르도네 주스와 블렌딩해 발효를 시작하게 하는 것. 신선함과 부드러움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루이 로드레의 섬세한 로제 샴페인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스테판과 함께 테이스팅한 2017 빈티지는 발레 드 라 마른(Vallée de la Marne) 큐미에르(Cumières) 프리미에 크뤼의 남향 포도밭에서 자란 피노 누아가 60%를 차지한다. 최상의 성숙도가 요구되는 스타일이기 때문. 나머지 40%는 미네랄리티가 뛰어난 슈이의 샤르도네가 채웠다. 도사주는 8g/L, 셀러 숙성은 최소 5년을 거쳤다. 피노 누아의 정교하고도 응축된 풍미와 섬세함이 돋보이는 로제 2017은 특히 다가오는 연말과 같은 축제 시즌을 기대하게 했다. 스테판의 추천 페어링도 왠지 연말 느낌이 물씬 났는데, “송아지고기나 오리, 닭 등 가금류 요리와 잘 어울린다. 디저트에도 곁들일 수 있는데 특히 붉은 과일이나 초콜릿으로 만든 디저트와 좋다”라고.

연한 연어빛의 루이 로드레 로제 2017

크리스탈 2016: 러시아 황제가 부러워지는 이유

잘 알려져 있듯 크리스탈은 러시아 황제 알렉산더 2세를 위해 탄생한 샴페인이다. 독극물 테러의 위험이 없는 샴페인을 공급받고 싶었던 알렉산더 2세가 루이 로드레에 ‘투명한 병’과 ‘펀트(Punt)가 없는 평평한 병’이라는 두 가지 특별한 요청을 한 것이다. 당시 기술로 이 조건을 모두 충족하기 위해선 순수한 크리스탈 병이 최적이었다. 이에 루이 로드레는 최상의 밭에서 나온 포도로 논빈티지 퀴베를 만들고, 투명한 크리스탈 병에 담아 알렉산더 2세에게 헌상했다. 루이 로드레가 추구하는 ‘희소성, 기품, 완벽함’의 상징인 크리스탈 샴페인의 시초였다. 이후 러시아 혁명기를 거치며 크리스탈은 빈티지 샴페인으로 전환했고, 지금까지도 최고급 샴페인의 대명사로 자리하고 있다.

크리스탈을 위한 약 70헥타르의 포도밭은 베르즈네(Verzenay), 베르지, 보몽-쉬르-벨(Beaumont-sur-Vesle), 아이(Ay), 아비즈, 메닐-쉬르-오제(Mesnil-sur-Oger), 크라망(Cramant) 등 일곱 곳의 그랑 크뤼·프리미에 크뤼 마을에 흩어져 있다. 루이 로드레 최고의 밭이자, 최소 50년 전부터 정성스럽게 가꿔온 곳들이다. 2016 빈티지는 피노 누아 58%, 샤르도네 42%의 조합으로 만들어졌으며, 도사주는 7g/L이다. 약 7년의 숙성을 거친 뒤 출시된 크리스탈 2016은 제임스 서클링(James Suckling) 98점, 로버트 파커(Robert Parker) 97점, 디캔터(Decanter) 97점 등 주요 평론 매체부터 연이어 찬사받았다. 앞서 언급했듯 셀러 마스터 장 바티스트가 특별한 애정을 지닌 2016 빈티지. 스테판의 설명을 들으며 잔을 든 크리스탈 2016은 화려함 속에 순수함이 공존하는 아로마, 생동감 있는 에너지, 풍부한 과즙미, 백악질 토양의 미네랄리티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꽃을 피웠다. ‘우아하다’는 말만으로는 그 매력을 다 담을 수 없어 아쉬울 정도. 이런 샴페인을 헌상받은 알렉산더 2세가 부러워진다고 하면 느낌이 와닿을까. 내년엔 샹파뉴 최고의 빈티지라 평가받는 2008년산 크리스탈이 국내 출시된다고 하니 샴페인 애호가들은 주목해야 할 듯하다.

크리스탈 2016

카르트 블랑슈 244: 컬렉션의 달콤한 쌍둥이

스테판과 함께한 테이스팅은 드미섹(Demi-Sec) 샴페인이 마무리했다. 카르트 블랑슈(Carte Blanche) 244가 등장한 것. 스테판은 “항상 컬렉션과 함께 카르트 블랑슈를 생산한다”라고 소개했다. 이어서 “카르트 블랑슈 244는 컬렉션 244와 정확히 동일한 블렌드에 38g의 도사주로 잔당감을 남긴 퀴베”라고 설명을 더했다. 즉, 2019 빈티지의 베이스 와인 54%에 퍼페추얼 리저브가 36%, 오크 숙성 리저브가 10% 더해진 컬렉션 244의 드미섹 버전인 셈. 품종은 샤르도네와 피노 누아가 40%씩 들어가고 피노 뮈니에가 나머지 20%를 채웠다. 당분을 남겼다지만 좋은 산도가 밸런스를 잡아 주어 은은한 달콤함이 기분 좋게 입안에 감도는 샴페인. 과실미뿐만 아니라 고소한 아몬드와 꿀, 카라멜의 풍미와 크림같을 질감이 풍성함을 더해 주었다. 엑스트라 브뤼 스타일이 각광받는 트렌드 속에서도 단맛에 대한 선호도와 무관하게 누구의 입에나 편안하게 맞을 드미섹이 카르트 블랑슈라고 정의하고 싶다.

입사 에노테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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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신윤정 사진·자료 제공 에노테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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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공개일 : 2025년 11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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