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의 온기를 불어넣는 봄의 영화와 와인: '와인을 딸 시간(Uncorked)'과 바롤로

Written by와인쟁이 부부

봄은 관계가 풀리는 계절이다. 

겨울 동안 얼어붙어 있던 땅이 서서히 녹듯,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마음도 조금씩 풀리기 시작한다.

오래 연락하지 못했던 사람에게 문득 안부를 전하게 되고, 멀어졌던 관계도 다시 마주 앉을 용기를 얻게 된다. 그래서인지 봄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화해의 장면들이 생각난다. 말로는 쉽게 건네지 못했던 마음을 조심스럽게 꺼내는 순간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종종 한 병의 와인이 놓여 있다. 와인은 사람 사이의 시간을 부드럽게 풀어주는 매개가 되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영화 <와인을 딸 시간(Uncorked)>은 바로 그런 봄의 이야기를 닮은 영화다. 소믈리에가 되기를 꿈꾸는 아들과 가업을 이어받기를 바라는 아버지. 서로 다른 길을 바라보던 두 사람의 관계는 한 병의 와인을 통해 천천히 녹아간다.

영화 <와인을 딸 시간(Uncorked)> 포스터(넷플릭스 제공)

주인공 일라이저는 소믈리에가 되는 것을 꿈꾸는 청년이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 루이스는 대대로 이어온 바비큐 레스토랑을 아들이 이어받기를 바란다. 아버지에게 식당은 단순한 사업이 아니다. 할아버지가 맨손으로 시작해 가족의 삶을 지켜온 터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들이 소믈리에가 되겠다고 말했을 때 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소믈리에? 그게 소말리아 같은 거냐?”

와인이라는 세계는 그에게 너무 낯선 영역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에게 일라이저의 꿈은 쉽게 이해받지 못한다. 그는 아버지의 바비큐 식당과 와인샵에서 일하며 돈을 모으고, 소믈리에 학교 등록금을 마련한다. 다행히 그의 곁에는 꿈을 지지해주는 엄마 실비아와 연인 타냐가 있다. 

일라이저가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은 단순히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가 바라보는 곳은 마스터 소믈리에(Master Sommelier)다. 이 자격은 세계에서 가장 명망 높고 까다로운 과정으로 알려져있다.

마스터 소믈리에가 되기 위해서는 영국에 본부를 둔 코트 오브 마스터 소믈리에(Court of Master Sommeliers)가 운영하는 네 단계 시험을 모두 통과해야 한다. 

첫 단계는 Introductory Sommelier Course & Examination이다. 와인의 기초 이론과 서비스 기본, 테이스팅의 기초를 배우는 입문 과정이다. 

두 번째는 Certified Sommelier Examination이다. 와인 산지와 품종에 대한 이해, 기본적인 블라인드 테이스팅 능력, 레스토랑 서비스 능력을 평가하는 단계다. 

세 번째는 Advanced Sommelier Examination이다. 전 세계 와인 산지와 스타일에 대한 심화 이론과 고난도의 테이스팅 능력, 정교한 서비스 역량을 요구하는 시험이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가 바로 Master Sommelier Diploma Examination이다. 

일라이저가 영화 속에서 도전하고 있는 시험이 바로 이 마지막 단계, 마스터 소믈리에 디플로마다. 이 시험은 이론, 테이스팅, 서비스 세 영역에서 최고 수준의 전문성을 검증하는 과정이다. 특히 테이스팅 시험에서는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여섯 잔의 와인을 시음한 뒤 품종과 생산 지역, 빈티지까지 추론해야 한다. 현재까지 이 시험을 통과한 사람은 2026년 기준 전 세계적으로 280여 명에 불과하다.

그만큼 일라이저가 도전하는 길은 결코 쉽지 않은 길이다. 그럼에도 일라이저는 그 과정에 자신을 모두 쏟아내고 점점 그 목표에 가까워지고 있다.

하지만 인생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른다. 엄마 실비아가 세상을 떠나면서 일라이저는 파리에서의 공부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엄마의 빈자리를 느끼며 홀로 식당을 꾸려가는 아버지를 곁에서 돕는다.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온 것이 기쁘지만 동시에 알고 있다. 꿈을 잃은 아들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그 시간은 두 사람 모두에게 겨울과 같은 시간이다. 

결국 아버지는 결국 아들의 꿈을 이해하기로 한다. 그리고 일라이저는 다시 한번 마스터 소믈리에 시험에 도전하기 위해 집을 떠난다. 

마스터 소믈리에 최종 시험을 치르기 위해 일라이저는 시험 장소 근처의 작은 모텔에 머문다. 결과 발표를 앞둔 밤, 아버지 루이스가 일라이저를 찾아온다. 

그리고 가방에서 아버지가 꺼낸 한 병의 와인. 

바롤로(Briccolina Barolo) 2012년

이 와인은 일라이저가 파리로 떠나기 전 아버지에게 건넸던 바로 그 와인이다. 그때 아버지는 아들도, 아들이 건넨 와인도 외면했었다.

오랜시간 와인을 보관해두었던 아버지는 그 병을 들고 먼 길을 찾아왔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만든 와인.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브리꼴리나 바롤로는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이다. 바롤로는 흔히 “와인의 왕”이라 불리는 와인으로 네비올로 품종으로 만들어진다. 깊은 구조와 긴 숙성 잠재력을 가진 이 와인은 종종 시간과 인내를 상징하기도 한다. 

브리꼴리나 와인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이 와인은 그라쏘 가문이 세라룽가 달바의 브리꼴리나 포도밭에서 재배한 포도로 만든 바롤로다. 오랫동안 포도를 재배해 온 농부였던 아버지 티지아노와  아들 다니엘이 함께 양조에 나서며 바롤로를 만들기 시작했고, 2012년 첫 빈티지를 출시했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 이 바롤로는 단순한 와인이 아니라 화해의 상징이 된다. 

봄은 어느 날 갑자기 오지 않는다. 겨울이 조금씩 풀리면서 얼음이 천천히 녹듯이 찾아온다. 

영화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버지가 가방에서 바롤로를 꺼내는 순간, 두 사람 사이의 겨울은 이미 끝나 있다. 말로는 쉽게 건네지 못했던 마음이 한 병의 와인을 통해 전해진다. 

어쩌면 와인이란 그런 존재인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온 사람들이 같은 잔을 들고 마주 앉게 만드는 것. 

그리고 그 순간, 관계의 계절도 조용히 바뀌기 시작한다.

어쩌면 봄이라는 계절은 누군가와 다시 와인을 나눌 기회를 만들어주는 계절이 아닐까.

와인쟁이 부부 사진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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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공개일 : 2026년 03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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