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트와인즈이태리(greatwinesitaly) 행사 다음 날이었던 11월 7일(화), 니타르티(Nittardi)의 오너 레온 펨페트(Leon Femfert)를 만났다. 니타르디 역시 제임스 서클링이 엄선한 ‘위대한 이탈리아 와인들’에 이름을 올린바 그는 촘촘한 스케줄을 쪼개 한국을 찾았다. 니타르디는 6종의 와인을 생산하지만 이날 그의 손에 들려있던 2개의 와인(카사노바 디 니타르디와 넥타르 데이, 좌 키안티 우 마렘마!)으로도 이야기는 무궁했다. 한 와인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쌓이는지, 그리하여 와인에 예술의 그림자가 얼마나 짙어지는지. 오너 이전에 와인메이커인 레온의 관점을, 이 생각 깊은 와인 생산자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종내에는 그런 생각이 든다. 니타르디의 와인이 유독 예술과 겹치는 건 비단 미켈란젤로의 일화나 레이블에 담긴 작품 때문만은 아니라고. 이 와인을 이야기하고 감상하는 태도 때문이기도 할 것이라고.
미켈란젤로의 와인
레온의 부모님, 베니스 태생의 역사학자 스테파니아(Stefania)와 독일의 아트 딜러 피터(Peter)는 언어는 달라도 지향하는 바가 같았다. 두 사람은 결혼하며 키안티 클라시코 지역에 와이너리를 매입하는데, 와이너리 구 소유주가 무려 미켈란젤로였다. 목 디스크를 앓아가며 천지창조라는 대작을 남긴 그 불세출의 예술가 말이다. 때는 16세기, 르네상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켈란젤로는 토스카나 출신이었지만 바티칸에서 의뢰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주로 로마에 머물러야 했다. 해서 사촌 레오나르도에게 와인 양조를 맡겼는데, 그가 레오나르도에게 쓴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남아 있다. “나는 셔츠 8벌보다 니타르디 와인 2캐스크가 더 좋단다.” 1981년 니타르디를 매입한 역사학자와 아트딜러 부부가 이 땅의 역사와 아름다움에 전율했듯, 16세기 미켈란젤로도 이 포도밭의 특별함에 매료되었다. 이곳은 12세기부터 ‘넥타르 데이(Nectar Dei)’, 번역하면 ‘신을 위한 음료’라는 별명이 있던 곳이었다.
키안티 클라시코의 하트 오브 하트
레온은 니타르디의 와인 스타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웃 지역과의 차이점을 알아야 한다며 말했다. “키안티 클라시코는 꽤나 큰 아펠라시옹이다. 약 450명의 와인 생산자가 있고, 연 생산량은 약 1억 병을 생산하는 전체 키안티(제너럴 키안티)의 1/3 정도. 대지는 1만 ha 정도다. 키안티 클라시코에는 8개의 마을이 있는데, 이 중 역사적으로 중요한 3개 마을이 키안티 클라시코의 심장부 중에 심장부에 해당한다. 3개 마을은 모두 400~500m 정도의 높은 고도에 위치해 있어서 신선하고 우아한 와인들이 나온다. 그중 카스텔리나 마을은 한쪽은 포도밭이 많고 다른 한 쪽은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포도밭이 적은 편인데, 우리가 있는 곳은 후자다. 숲과 많은 동물들에 둘러싸인 환경 덕분에 자연적인 에코 시스템이 형성되는 곳. 기온도 상대적으로 낮게 유지되어서 우리 와인은 굉장히 우아한 타닌과 여운을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 포도밭은 모두 유기농 인증을 받았다.”
니타르디의 예술 DNA
카스텔리나 마을 해발고도 450m에 위치한 싱글 빈야드 ‘비냐 도게사(Vigna Doghessa)’, 이곳의 산지오베제 100%로 만든 와인이 카사노바 디 니타르디 키안티 클라시코(Casanuova di Nittardi Chianti Classico)다. 피터가 니타르디를 매입한 1981년부터 만들며 미켈란젤로에 대한 오마주의 의미를 담았던 와인. 피터는 아티스트들을 와이너리로 초대하여 이 와인을 위한 레이블 작품과 랩핑 페이퍼를 만들어 줄 것을 요청했고, 아티스트들은 며칠을 이곳에 머물며 그해의 빈티지와 와인 캐릭터를 자신의 방식으로 담아냈다. 70년대부터 프랑크푸르트에서 아트 갤러리를 운영해 온 그는 그 시대에 가장 촉망 받는 아티스트들과 친분이 두터웠다. 그리하여 이 아트 시리즈는 모던 아트의 산실이 되는데, 훈데르트바서(Hundertwasser, 1989 빈티지), 루돌프 하우스터(Rudolf Hausner, 1988 빈티지), 파울 분더리히(Paul Wunderlich, 1987 빈티지), 밈모 팔라디노(Mimmo Paladino, 2006 빈티지), 알랭 클레망(Alain Clément, 2013 빈티지) 같은 작가들이 니타르디 키안티 클라시코의 얼굴을 완성했다. 2008년에는 양철북의 저자 귄터 그라스(Günter Grass)가 그린 일러스트가 레이블을 장식했고, 2011년에는 물방울 화가로 유명한 김창열 화백이 니타르디를 위한 물방울을 그렸다. 40주년이 되는 2020 빈티지 레이블은 컴피티션을 통해 6개의 작품을 뽑았다. 레온은 “흔히 몇 주년을 기념할 때면 과거를 돌아보곤 하는데, 그보다는 미래를 그려보고 싶었다”며 무대를 확장해 더 많은 아티스트를 레이블 작업에 참여시킨 이유를 설명했다.
와인과 예술의 만남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와인의 거의 모든 역사에 등장하는 수도승들이 여기에도 등장하는데, 그는 “19세기 알자스의 수도승들은 와인을 양조하고, 항상 작은 그림을 함께 그렸다”며 “좋은 접근법이라 생각한다”면서도 “사람들은 종종 와인은 예술과 같다고 하는데 그 점은 동의하지 않는다”고 의외의 발언을 했다. 예술가들은 백지에서 무엇이든 만들어 낼 수 있지만, 와인 생산자는 빈티지와 날씨, 자연의 룰을 따라야 하기 때문에 오직 마이너한 영향만을 끼칠 뿐이라고. “하지만 와인이라는 최종 결과물은 예술과 닮은 점이 있다”고 했다. 와인을 즐기는 일은 주관적이고 감정적이라는 점에서 예술을 감상하는 태도와 비슷한 면이 있다고. 역사를 더듬고 오랫동안 대화를 이어가게 하는 와인 한 잔의 힘. 특히 니타르디 와인이 이 방면에서 탁월하다.
교황의 선물로 보내는 마렘마의 슈퍼 투스칸
세계의 유명 와인 산지들이 그렇듯 토스카나 땅에도 눈독 들이는 외국인들이 늘어나면서 이곳도 부동산이 이슈였다. 키안티 클라시코는 진작부터 포도밭을 늘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니타르디는 일찍이 토스카나 남부 해안가 지역인 마렘마로 눈을 돌렸다. 초기부터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는 컨설팅 와인메이커 카를로 페리니(Carlo Ferrini)와 의논하여 마렘마에 포도밭을 매입한 것이 1999년의 일. 그간 마렘마도 떠오르는 와인 산지로 주목을 받으며 변화가 생겼지만 그나마 잘 보존되는 지역이라며 레온이 말했다. “토스카나 지역에 해외 자본이 투자되면서 발전되는 면도 있지만 와인 생산이 지나치게 프로페셔널해지는 모습도 보이는데, 그에 비해 마렘마는 보존이 잘 되어 있는 편이다. 포도밭에도 여전히 로컬 사람들이 일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마렘마는 산지오베제와 베르멘티노 등 이탈리아 토착 품종들 다음으로 카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 같은 보르도 품종이 많이 재배되는 곳이다. 이곳에서 니타르디는 보르도 품종으로 슈퍼 투스칸 스타일에 집중한다(베르멘티노로 화이트 와인도 생산한다). 2003년 슈퍼 투스칸 스타일의 와인을 처음 만들고는 니타르디가 오랫동안 품고 있던 이름, 12세기 니타르디의 별명이었던 ‘넥타르 데이’를 이 와인에 명명하기로 했다. 레이블에는 가니메데스(제우스의 총애를 받아 올림푸스 신전에서 신들의 술 넥타르를 따르는 일을 맡은 미소년)의 별자리인 물병자리를 그렸다. 그리고 16세기 미켈란젤로가 교황에게 바치는 진실된 선물로 니타르디 와인을 보냈던 것처럼, 매해 첫 병입한 6병의 넥타르 데이 와인은 교황에게 보내고 있다.
메를로를 대체하는 쁘띠 베르도
넥타르 데이 초기 빈티지는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시라를 블렌딩했다. 하지만 지구온난화로 점차 기온이 높아지면서 최근에는 쁘띠 베르도로 메를로를 대체하고 있단다. 2008년 처음 쁘띠 베르도를 사용했고 2012년부터는 20%로 비중을 늘렸다. “쁘띠 베르도는 천천히 익는 포도종이라 기후 변화에도 잘 맞지만, 블렌딩을 했을 때 캐릭터가 지나치게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점도 장점”이라고. 그가 가져온 2016년 빈티지에는 카베르네 소비뇽 60%, 쁘띠 베르도 25%, 시라 10%가 블렌딩 됐고, 나머지 5%는 비밀에 부쳐져 있다. 그는 “2016년은 이탈리아에서는 2010년 이후 최고의 빈티지”라고 덧붙였다.
오스트리안 오크 VS 프렌치 오크
와인메이커 카를로 페리니가 함께 하고 있지만, 디종에서 양조학을 공부하고 칠레와 미국 등에서도 양조 경험을 쌓아 온 레온은 와인메이킹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다. 와인을 숙성시키는 오크 배럴에 대한 고민도 흥미로웠다. 니타르디는 프랑스산과 오스트리아산 오크 배럴을 함께 사용하는데 그 차이에 대해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오스트리아산 오크 배럴은 과일 풍미를 살리는데 더 적합하다. 단 입안에서는 좀 더 드라이하고 타닌이 좀 빡빡해지는 경향이 있다. 반면 프렌치 배럴은 타닌이 좀 더 부드럽게 나오고 오크 풍미가 짙게 밴다. 그래서 보르도 품종을 사용하는 넥타르 데이는 100% 프렌치 배럴(브랜드는 주로 후쏘(Rousseau))을 사용한다. 산지오베제 100%인 카사노바 디 니타르디 키안티 클라시코의 경우는 과일 풍미를 더 살리기 위해 오스트리아산과 프랑스산을 반반 사용하고 있다.”
이날 점심을 함께하며 레온은 ‘Drunken Octopus(문어를 레드 와인에 끓인다고 한다)’가 자신의 비장의 메뉴라고 웃으며 이야기했었다. 그 드렁큰 옥토푸스와는 어떤 와인을 마시는지 물었을 때, 그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산지오베제를 외쳤다(후에 화이트 와인도 좋다고 덧붙였지만). 처음엔 ‘참 산지오베제 메이커답다’ 생각했다. 하지만 카사노바 디 니타르디를 마시면서 그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산지오베제가 얼마나 매력적인 품종이었는지를 다시 상기하면서 말이다. 특히 니타르디의 산지오베제는 그가 누차 강조해 온 ‘우아함’과 ‘신선함’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넥타르 데이 역시 잘 익은 과일과 스모키한 풍미가 잘 어우러지는데, 니타르디의 시그니처인 양 부드러운 우아함이 녹아있었다.
수입사 신동와인
▶홈페이지 shindongw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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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강은영 사진 제공 신동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