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토 아디제 와인 칸티나 칼테른(Cantina Kaltern)이 수입사 씨에스알을 통해 국내 시장에 들어온다. 이탈리아 북부의 알토 아디제는 와인 재배 면적으론 이 나라의 1% 미만에 그치는데, 칼테른은 이 작은 지역에서 가장 큰 와인 협동조합이다. 이번 런칭을 기념해 지난 5월 18일 조선호텔 루브리카에서 열린 프레스 런치에는 조합의 세일즈 디렉터 마틴 클래머(Martin Klammer)가 참석했다. 그로 말할 것 같으면 이 지역 토박이로 알토 아디제에 대한 자부심이 말끝과 숨결마다 배어 있으며, 이 자부심을 바탕으로 칼테른의 이야기를 풀어내곤 한다. 그러니까 ‘와인이 왜 자연의 거울이자 문화의 산물인지’를 일깨워 주는 식이었다.
알토 아디제를 아시나요
알토 아디제는 예외적인 땅이다. 알프스 산 아래, 오스트리아와 국경을 면하고 있는 이 지역은 이탈리아이면서도 마냥 이탈리아적이진 않다. 1차 세계대전 때만 해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아래 있었다. 지금도 이 지역에선 대부분 두 개의 이름이 붙는다. 독일식과 이탈리아식. 칼테른의 로고만 봐도 와이너리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칸티나(Cantina)와 독어 켈러레이(Kellerei)가 나란히 있다. 칸티나 칼테른은 1900년도부터 이 땅에서 와인을 생산하던 와이너리(Erste Kellerei)에서 출발해, 수십 년에 걸쳐 와이너리 4곳이 합병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알토 아디제는 워낙 재배면적이 작은 지역이라 200년 전부터 농부들이 모여 협동조합의 형태로 와인을 만들곤 했단다. 현재는 12개의 협동조합이 있다. 그중 가장 큰 협동조합인 칼테른에는 포도 농사를 짓는 590여 멤버들이 속해있다. 연 생산량은 40만 병 정도. 알토 아디제 총 와인 생산량의 10%를 차지하는 비중이다.
알토 아디제의 협동조합이란 퀄리티의 상징
마틴은 “알토 아디제에서 와인 협동조합이란 퀄리티 와인을 의미한다”고 이야기했다. “와인의 세계에서 협동조합이란 대량생산의 의미로 통하지만, 이 지역은 독일이나 남부 이탈리아와는 사정이 다르다. 칼테른에서 590명의 포도재배자가 경작하는 총 포도밭 면적은 450ha 정도다. 그러니까 1인당 축구장 사이즈 정도의 포도밭을 경작하는 셈이다.” 한정적인 땅에서 양적 승부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래서일까. 알토 아디제의 와인 98%는 DOC 등급이다. 나머지 2%는 IGT. 단, DOCG는 없다. “알토 아디제에서는 DOCG 승격을 위한 어떤 움직임이 있는지, 그렇다면 차기 DOCG 와인은 무엇이 될 것으로 기대하느냐?”는 질문에, 마틴은 의외의 답을 했다. “DOCG 승격을 위한 움직임은 없다”고. 알토 아디제 DOC 와인들은 이미 충분히 퀄리티가 높기 때문에. 그러니까 DOCG라는 타이틀은 굳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호한 말투였다. 눈을 껌뻑이는 사람들을 앞에 두고 그는 좀 더 설명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여기에서 앞서 말했던 알토 아디제의 예외성이 다시 나온다.
DOCG가 필요 없다는 건
그의 설명에 따르면, 알토 아디제는 스페인 바스크 지방과 사정이 비슷하다. 국적은 이탈리아이지만 사람들의 생활에는 옛 제국의 문화가 남아있고, 주민의 60% 이상이 독어를 구사한다. 마틴 역시 독어가 제1 언어다. 그리하여 암흑의 시기도 있었다. 무솔리니의 파시즘 아래 독어나 그 문화가 금기시되면서 갈등도 커졌다. 사람들은 격렬하게 저항했고, 결국 알토 아디제는 자치권을 인정받은 주가 되었다. 그는 “알토 아디제 주민들은 다른 이탈리아 지역 사람보다 좀 더 차분하고 절제된 경향이 있다”며 “우리는 독어권과 이탈리아 양쪽에서 좋은 영향을 받았는데, 이탈리아의 식문화와 독일식 꼼꼼한 일 처리 방식이 공존하는 지역”이라고 자랑했다. 그러니까 DOCG에 대한 소신 발언의 배경으로 다시 돌아가면 “오래전부터 이 지역 사람들은 타지역보다 더 엄격한 위생 관념과 높은 퀄리티를 지향하며 와인을 만들어 왔고, 알토 아디제가 자체적인 법규를 따르는 만큼 굳이 DOCG를 얻기 위해 노력할 필요는 없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이탈리아 최초 FAIR'N GREEN 인증
이들이 끊임없이 노력하는 분야는 따로 있다. 친환경과 지속 가능한 와인생산에 대한 고민이다. 칼테른의 와인 병을 자세히 보면 모양새가 일반 병과 조금 다른데, 목 부분이 좀 더 길고 가늘다. 중요한 것 훨씬 가볍다는 사실. 대략 450g 정도라고 한다. 와인 병의 무게를 줄여 탄소발자국 생산량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함이다. 병 무게는 점점 더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고, 향후 재활용 가능한 유리병 채택도 고민 중이라고. 다만 “재활용 유리병의 경우 기포가 많이 보여서 소비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문제”라고 한다. 칼테른은 자연 친화적이고 지속 가능한 경영을 모토로 하여 지난 2018년 ‘FAIR'N GREEN’에서 지속 가능한 포도 재배에 대한 인증(Certificate for Sustainable Viticulture)을 받았다. 이탈리아 와인 생산자 중, 또 유럽의 협동조합 중 최초였다. 온난화 문제는 전 세계 와인생산자들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이슈인데 사실 알토 아디제의 생산자들은 상대적으로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 북부의 서늘한 기후와 높은 해발고도 덕분이다. 칼테른의 포도밭은 해발고도 200~850m에 위치해 있는데, 마틴은 약간 농담을 섞어 ‘기온이 올라가면 좀 더 높은 고도로 올라가면 된다’고 했다. 물론 자구책과 별개로 친환경을 위한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칼테른의 와인들
알토 아디제의 와인은 화이트의 비중이 60%로 높다. 하지만 이것도 근래 변화된 모습이라 한다. 30년 전만 해도 레드 와인의 인기가 높았다. 마틴은 “이탈리아 북부 지역의 서늘한 기후나 토양에 대한 이해가 생기면서 화이트 와인 비중이 높아지기 시작했다”고 했다. 다만 칼테른에서는 레드와 화이트 비중이 5:5 정도다. 비교적 레드의 비중이 높은 건 칼테른 호수 인근의 포도밭에서 나는 레드 품종 덕분이다. 칼테른 호수는 낮 동안 따뜻한 온기를 보존하여 인근에서 가장 온화한 기후를 보이는 지역이라 레드 품종이 잘 자라는데, 스키아바라는 토착 품종을 비롯해 이번에 한국에 들어오는 까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도 다 여기서 난다.
칼테른에서 생산하는 와인들은 상당히 다양하다. 클래식이라 불리는 가장 기본급부터 그 윗 단계인 셀렉션, 마지막으로 최상위급인 퀸테센즈(Quintessenz) 세 가지 라인으로 나뉘고, 그 안에서도 다양한 토착 품종과 글로벌 품종 와인들이 만들어진다. 씨에스알은 이번에 칼테른의 와인을 런칭하면서 4종의 와인을 들여왔다. 하나는 클래식 라인의 피노 그리지오. 마틴은 “알토 아디제 와인을 소개하는 첫 번째 와인이라면, 응당 이 피노 그리지오일 것”이라고 단언했다. 핵과류 과일 향이 지배적인 가볍게 마시기 좋은 여름 와인, 낮술 와인, 와인만 마셔도 좋을 와인, 그리고 어떤 해산물에도 두루두루 매칭하기 좋을 편안한 와인이다. 다음은 셀렉션 라인의 캄파너 게뷔르츠트라미너(Campaner Gewürztraminer) DOC. 캄파너는 포도밭 이름이다. ‘여름용, 낮술, 와인만 마셔도 좋을’이라고 피노 그리지오에 부언했던 모든 조건이 여기에도 통하지만, 게뷔르츠트라미너는 확실히 더 복잡하다. 그리고 확연히 더 매력 있다. 화사한 꽃향과 스파이시, 허브. 원래 게뷔르츠트라미너는 피노 그리지오만큼 쉽게 장바구니에 담기는 운명은 아니지만, 하나쯤 소장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머지 두 와인은 레드 와인이다. 먼저 셀렉션 라인의 피노 네로(이탈리아의 피노 누아). 풀 네임은 잘트너 피노 네로 리제르바(Saltner Pinot Nero Riserva) DOC로 체리나 라즈베리 향이 화사한 와인이다. 마지막은 메를로와 까베르네 소비뇽 블렌드 와인으로 6:4의 비율로 블렌딩했다. 마틴은 “알토 아디제는 까베르네 소비뇽이 잘 자라는 지역”이라며 “특히 마시기 좋은(drinkable) 까베르네 소비뇽 와인이 제격”이라고 설명했다. 메를로 역시 점차 성장하는 추세다. 칼테른은 특별히 좋은 해에는 100% 메를로를 실험적으로 생산하기도 하는데, 지난해 2018년 빈티지의 100% 메를로를 2,018병 출시했고 전량 매진됐다(이 와인은 해당 빈티지만큼의 수량만 생산한다고 한다). 메를로 까베르네 블렌드 와인은 그의 설명대로 무겁지 않고 마시기 좋은 스타일이었다. 앞서 언급한 다른 와인들도 마찬가지로 칼테른만의 컬러가 있는데, 마틴이 이야기했던 알토 아디제 사람들의 특성인 ‘차분하고 절제된’ 느낌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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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강은영 사진 제공 CS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