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대표 와이너리 하디스(Hardys)가 지난 9월 10일, 사브서울(Sav Seoul)에서 와인 디너를 열었다. 이번 행사는 하디스가 한국의 와인 애호가들과 만나는 자리로, 170년동안 고수한 철학과 정체성을 담은 주요 컬렉션이 계절 요리와 함께 조화를 이루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날의 디너는 단순한 와인 시음회를 넘어, 하디스가 걸어온 여정과 오늘의 비전을 함께 경험하는 시간이 되었다. 오랜 세월 축적된 와인메이킹 노하우가 사브서울의 섬세한 요리와 어우러지며, 한 잔의 와인 속에 깃든 브랜드의 역사와 정신이 자연스럽게 전해졌다. 세계 무대에서 여전히 빛을 발하는 하디스의 힘을 한국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특별한 순간이었다.

Australian Dream: 호주 와인의 서막, 하디스의 시작
하디스는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와이너리 중 하나로, 창립자 토마스 하디(Thomas Hardy)는 ‘호주 와인의 아버지’로 불린다. 영국 데번(Devon)주의 작은 마을 기티셤(Gittisham)에서 태어난 그는 대대로 농업에 종사하던 집안 출신이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와 달리 단순히 땅을 일구는 삶에 만족하지 않았다. 기회를 포착하는 예리한 안목과 새로운 세상을 향한 대담한 도전 정신을 지닌 그는 결국 또 다른 길로 나아갔다.

1850년, 스무 살의 하디는 주머니에 단 30파운드를 넣고 과감히 영국을 떠나 호주로 향했다. 낯선 대륙에서 그가 본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무궁한 가능성이었다. 애들레이드(Adelaide)에서의 첫 몇 년은 쉽지 않았지만, 남호주 최초의 와인메이커인 윌리엄 레이넬(William Reynell)과 함께 일하며 소중한 경험을 쌓았고, 이를 통해 호주 와인의 성공 가능성을 확인했다. 마침내 1853년, 토마스 하디는 토렌스 강변에 땅을 마련해 ‘뱅크사이드(Bankside)’라 이름 붙이고 첫 포도밭을 일궜다. 이어 1857년 첫 와인을 생산하며 하디스 와인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From Nothing to Legacy: 새로운 전환점
하디스(Hardys) 와인의 운명을 바꾼 결정적 순간은 1876년 틴타라 와이너리(Tintara Winery) 인수였다. 파산 직전에 놓여 있던 맥라렌 베일(McLaren Vale)의 이 와이너리는 토마스 하디(Thomas Hardy)의 눈에는 절호의 찬스로 비쳤다. 앞서 1859년, 그는 자신의 와인을 처음으로 영국에 수출하며 호주 와인이 해외 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고, 와이너리의 확장을 고심하던 떄였다. “Right Place At The Right Time”이 아닐 수 없었다. 더욱이 토마스 하디는 틴타라 와이너리 창고에 쌓여 있던 와인을 모두 현금화해 인수 자금으로 충당했고, 결과적으로 단 한 푼의 자본도 들이지 않고 와이너리를 손에 넣었다.
그의 현명한 판단과 천운이 맞물린 이 선택은 하디스를 지역의 작은 생산자에서 호주 와인 산업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우뚝 세웠다.

Auntie Eileen: 아일린 하디, 하디스의 영원한 얼굴
하디스 와인은 틴타라 인수 이후 꾸준히 성장하며 호주 와인 산업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그 과정이 언제나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다.
1938년, 하늘을 가르던 ‘카이마(Kyeema)’ 항공기가 추락하며 창립자 토마스 하디의 손자이자 당시 하디스를 이끌던 토마스 메이필드 하디(Thomas Mayfield Hardy)가 세상을 떠났다. 갑작스러운 그의 죽음 앞에서 그의 아내 아일린 하디(Eileen Hardy)는 무너지지 않았다. 그녀는 와이너리를 굳건히 지켜내며 하디스를 다시 일으켰고, 마침내 호주 와인 산업의 중심으로 이끌어 올렸다. 강인함 속에 따뜻함을 지닌 그녀는 호주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으며, 사람들은 애정을 담아 ‘아일린 이모(Auntie Eileen)’라 불렀다.

1973년, 아일린의 80세 생일을 기념해 그녀의 이름을 딴 플래그십 와인 ‘아일린 하디 쉬라즈(Eileen Hardy Shiraz)’가 출시되며, 하디스는 또 한 번의 르네상스를 맞이했다. 이어서 1977년에는 아일린이 영국 왕실로부터 대영제국 훈장 OBE를 수훈하며 그 업적이 공인되었다. 이후 ‘아일린 하디 라인’은 단순한 와인을 넘어 하디스의 품격과 전통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하디스는 2011년 아콜레이드 와인(Accolade Wines)를 거쳐 현재 세계 최대 규모의 와인 전문 기업인 비나키(Vinarchy)의 소속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다. 이는 하디스가 단순히 오래된 와이너리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와 진화를 거듭하며 오늘날까지 호주의 살아 있는 유산임을 보여준다.

Then, Now, and Always. Certainly in Every Bottle: 170년동안 지켜온 불멸의 비전
“전 세계에서 인정받는 와인을 만들겠다.” 토마스 하디가 1853년 품었던 이 원대한 꿈은 170년 세월이 흐른 지금도 굳건히 지켜지고 있다. ‘남호주 와인 산업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의 정신은 단순한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하디스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살아 있는 DNA이다.
하디스가 오랫동안 생존할 수 있었던 비결은 끊임없는 발전에 있다. ‘멀티-리저널 블렌딩(Multi-Regional Blending)’이라는 독창적 철학으로 맥라렌 베일을 중심으로 호주 전역의 테루아를 탐구하며, 매 빈티지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다. 단일 지역의 한계를 넘어 복합성과 균형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는 것, 이것이 하디스가 멈추지 않는 이유다.
현재 전 세계 43개 시장에서 하루 150만 잔 이상 소비되고, 영국에서 12년 연속 1위를 기록하는 성과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30파운드로 시작된 한 청년의 비전이 이제 세계 곳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오랜 세월 축적된 지혜와 혁신의 DNA를 바탕으로, 앞으로의 미래는 지금까지의 성취를 넘어서는 또 다른 하디스의 전설로 이어질 것이다.
사브서울에서 빛난 하디스 와인과 음식의 조화
이날 행사는 하디스 와인의 다채로운 컬렉션과 사브서울의 정교한 코스 요리가 어우러진 특별한 자리였다. 각 지역 테루아의 개성이 음식과의 매칭을 통해 입안에서 생생하게 드러났으며, 하디스의 멀티-리저널 블렌딩 철학이 페어링을 통해 더욱 구체적으로 표현되었다.
비나키의 양진원 브랜드 앰버서더의 진행으로, 여섯 가지 대표 와인과 이에 맞춘 요리를 함께 음미하며 와인과 음식이 빚어내는 균형과 조화를 깊이 경험할 수 있었다.

시음 리스트 & 페어링 플레이트
하디스 HRB 샤르도네(Hardys HRB Chardonnay) 2021 × 모네의 정원(스트라치아텔라, 피스타치오, 토마토)
Vineyard Region 펨버턴, 마가렛 리버, 야라 밸리
Tasting Note 밝은 스트로 컬러를 띠며 라임 커드, 블러드 오렌지, 잘 익은 복숭아의 아로마가 어우러진다. 입안에서는 핵과류와 시트러스의 풍미가 풍성하게 펼쳐지고, 섬세한 오크 숙성에서 기인한 뉘앙스와 미네랄이 균형을 이루며 긴 여운과 세련된 복합미를 남긴다.
Pairing Note 스트라치아텔라(Stracciatella)의 크리미한 질감과 토마토의 산미가 와인의 시트러스 풍미, 기분 좋은 짭조름함과 어우러지며 입안에서 경쾌한 균형을 완성했다.
아일린 하디 샤르도네(Eileen Hardy Chardonnay) 2023 × 튈르리의 정원(양배추, 프랄리네비네거, 누아제)
Vineyard Region 태즈메이니아, 애들레이드 힐스, 마가렛 리버
Tasting Note 밝은 연둣빛을 띠며 레몬 커드와 잘 익은 핵과류의 아로마에 토스티 오크와 살짝 그을린 성냥 뉘앙스가 더해져 복합적인 향을 전한다. 입안에서는 신선한 백도와 레몬의 생동감이 중심을 이루며, 미네랄과 어우러져 오랜 여운을 남긴다. 지금 즐기기 좋으며, 숙성에 따라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와인이다.
Pairing Note 아삭한 양배추의 자연스러운 단맛과 프랄리네비네거의 섬세한 산미가 와인의 백도, 제스티한 레몬 풍미와 어우러진다. 특히 헤이즐넛(누아제)의 고소함이 와인의 토스티 오크 캐릭터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며, 미네랄의 생동감이 입안에서 풍부하고 복합적인 레이어를 경험하게 한다.
아일린 하디 피노 누아(Eileen Hardy Pinot Noir) 2022 ×비프 타르타르(한우, 노른자 콩피, 엔초비)
Vineyard Region 태즈메이니아, 야라 밸리
Tasting Note 짙고 강렬한 레드 컬러. 블루베리와 체리의 진한 과일 향에 향신료와 바닐라 오크가 어우러진다. 입안에서는 농도 있는 과일 풍미를 중심으로 섬세한 단맛의 레이어와 미네랄, 실키한 타닌이 조화를 이룬다.
Pairing Note 와인의 섬세한 타닌과 벨벳 같은 질감이 생고기의 부드러운 결과 노른자 콩피의 농밀함을 우아하게 감싸고, 앤초비의 깊은 우마미가 와인의 과일 풍미, 생동감 있는 산도와 겹쳐지며 입안에서 완벽한 균형을 그려낸다.

하디스 HRB 쉬라즈(Hardys HRB Shiraz) 2019 × 니스의 여름(포카치아, 베이컨, 엔초비)
Vineyard Region 맥라렌 베일, 프랭클랜드 리버, 피레네, 클레어 밸리
Tasting Note 다크 체리, 오디, 자두, 아니스 씨앗, 밀크 초콜릿의 진한 향 위에 세이지 허브와 향신료, 블루베리가 더해져 입체적인 아로마를 완성한다. 입안에서는 다크 베리와 블루베리를 비롯한 야생 베리 풍미가 중심을 이루며, 밀크 초콜릿과 감초, 말린 허브의 뉘앙스가 인상적이다.
Pairing Note 포카치아의 쫄깃, 폭신한 식감과 베이컨의 스모키한 터치, 엔초비의 농축된 감칠맛이 쉬라즈의 농도 있는 과일 풍미와 탄탄한 구조에 맞물려 깊은 입체감을 만든다.
아일린 하디 쉬라즈(Eileen Hardy Shiraz) 2021 × 뿔레호띠(닭, 버섯 크림, 컬리플라워)
Vineyard Region 맥라렌 베일 내 각각 다른 세 곳의 올드 바인(Old Vine)
Tasting Note 생기 넘치는 깊은 퍼플 레드 컬러, 선명한 검은 자두와 블랙베리, 블루베리의 아로마에 피트, 다크 초콜릿, 세이지 허브, 머스크가 어우러져 깊은 향을 전한다. 입안에서는 농도 높은 블랙베리와 플럼 풍미 위에 감초, 커피빈, 다크 초콜릿의 뉘앙스가 겹겹이 더해져 밀도감과 긴 여운을 남긴다.
Pairing Note 구운 닭과 버섯 크림, 로스트 컬리플라워의 고소함이 쉬라즈의 진한 과일·스파이스 풍미와 어우러져 크리미한 텍스처를 균형 있게 돋보이게 한다.
토마스 하디 카베르네 소비뇽(Thomas Hardy Cabernet Sauvignon) 2017 × 양갈비(양갈비, 나바랑, 루꼴라)
Vineyard Region 쿠나와라, 마가렛 리버, 프랭클랜드 리버
Tasting Note 선명한 크림슨 컬러를 띠며 레드베리, 블랙베리, 산딸기의 아로마에 정향과 시나몬, 야생 민트가 어우러지고 섬세한 오크 터치가 더해져 복합적인 향을 전한다. 입안에서는 잘 익은 블랙베리와 자두 풍미가 단단한 구조감과 함께 펼쳐지며, 오크와 세련된 타닌이 어우러진다.
Pairing Note 양갈비의 기름진 풍미를 잘 익은 베리와 단단한 타닌이 받쳐주고, 허브와 민트 뉘앙스가 뒤에서 균형을 잡아주어 “화룡점정(畫龍點睛)”의 페어링을 이룬다.
하디스가 페어링에 쏟는 진심은 이날 경험을 통해 더욱 분명히 드러났다. 확실한 품질의 와인과 세심하게 완성된 요리는 기승전결이 있는 한 편의 영화처럼 흘러갔고, 참석자들은 각 순간을 충분히 음미할 수 있었다.
아직 하디스 와인을 접해보지 못했다면, 첫 시작으로 “호주의 퓔리니 몽라쉐”라 불릴 만큼 품질이 뛰어나며, 매 빈티지마다 안정적인 완성도를 보여주는 아일린 하디 샤르도네(Eileen Hardy Chardonnay)를 추천한다. 이 와인은 하디스의 세계로 와인 애호가들을 자연스럽게 안내하는 완벽한 입문작이 될 것이다.
글 뽀노애미 사진·자료 제공 비나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