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규모 와인수입사의 생존, 그 디테일에 관하여

Written by: 강 은영

15년, 19년, 22년. 이번 인터뷰이들의 와인 경력은 대략 이렇다. 와인 외길인생이라 할 만큼 끈덕지게 와인을 쫓았고, 종내에는 자신의 철학을 담은 와인수입사를 차렸다. 스토리는 제각각 다르다. 다만 그런 생각은 들었다. 좋아하는 것으로부터 좋은 것을 골라내는 사람. 누군가의 말대로 에디터라는 직업을 이렇게 정의한다면 소규모 와인수입사 대표들에게도 이런 ‘에디터’적인 요소가 있다는 걸. 그리고 그 지점에서 생존전략이 생긴다. 일례로, 투데이와인의 서성호 대표는 “내가 관심 있는 아이템과 소비자가 좋아하는 시장성 있는 와인의 교차점을 찾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 말했다. ‘좋은 와인을 골라 공유하고 싶다’ 와인업에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품어봤을 생각. 그 생각을 실현에 옮기기까진 어떤 여정이 필요할까. 

세 남자의 와인 인생과 출사의 변

서성호 대표는 호주 애들레이드 대학에서 와인 비지니스 석사 과정을 마쳤다. 한국으로 돌아와 국내 굴지의 와인수입사 중 하나인 금양인터내셔널 마케팅 파트에서 일을 시작했고, 이어 국순당의 수입주류 매니저를 거쳤다. “회사에서는 내가 원하는, 그리고 시장성이 있는 와인을 수입해서 판매하기까지 여러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가 독립을 결정한 계기는 이 한 마디에 들어있다. 그렇게 2018년, 수입사 투데이와인이 문을 열었다.

한우성 대표의 와인 입문기는 이렇다. 회사가 신사업으로 와인 수입을 시작했다. 와인 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담당자로 발탁. 다행이라면 술을 좋아했다는 것이었는데, 대학원에서 와인 교육을 받고 이후 스스로 놀랄 정도로 와인에 진심이 돼버렸다. 19년간 행정업무부터 영업, 신상품 개발, 마케팅 등 와인수입업에 관련된 거의 모든 업무를 도맡으며 어느덧 와인이 인생 파트너가 되었다고 한다. 안정된 포트폴리오를 갖춘 회사를 떠나며 그는 올해 5월 뱅레어(Vin. Rare)를 설립했다. 와인(Vin)을 뜻하는 불어와 ‘진귀한’을 뜻하는 영어(Rare)를 조합한 이름에는 그가 지향하는 바가 잘 담겨있다. “이미 명성이 높아 공급 대비 높은 수요를 자랑하는 와인뿐만 아니라 가격에 관계없이 그 가치를 인정받아야 하는 와인들을 발굴하여 국내 와인애호가들과 공유하고자 한다”는 것이 한우성 대표의 말이다.  

정원준 대표는 소믈리에로 출발했다. 2000년부터 시작해 2012년까지 한국과 호주는 그의 무대가 됐다. 이후 국내 여러 와인 수입사에서 소싱, 영업 판매 등을 경험했다. 하지만 온전히 내 회사가 아닌 부분에서 오는 벽이 개인과 회사의 지속적인 성장을 방해한다고 느꼈다. 목표는 ‘나의 철학과 방향성을 담은 회사 창업’으로 옮겨갔다. 2018년 모멘텀 와인컴퍼니를 설립하며, 그는 “비즈니스에서 가장 긍정적인 단어 중 하나인 모멘텀을 회사의 기본 방향성으로 잡았다”고 설명했다. 그 이름에는 “회사의 지속적인 성장과 더불어 와인 업계의 질적인 발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하는” 자신의 의지도 담았다. 

수입사 운영의 어려운 점은

수입사 설립과 운영에는 여러 난관이 있을 터라 세 사람이 뽑은 가장 어려운 점은 제각각 달랐다. 먼저 서성호 대표는 앞서도 언급했듯 ‘나의 관심과 시장성 있는 와인의 교차점을 찾는 일’을 꼽았다. 반면 한우성 대표는 예측이 어려운 농작물이자 수입품의 특성을 지적했다. “기후 변화로 당해 포도 수확량이 급격하게 줄면 원가 비율이 상승하고 수출가는 인상된다. 또 수입할 수 있는 와인 양은 줄어든다. 반대로, 작황이 좋아 수확량이 매우 높은 해에는 국내 시장규모에 비해 생산자가 요구하는 구입량이 증가하면서 판매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할 경우도 있다. 매년 수입·판매량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투자나 실적에 대해 예측하기도 어렵다.” 한편 정원준 대표는 ‘수입업자에 대한 차별’을 언급했다. “주세, 지방세, 교육세 등 주류가 아닌 제품들에 비해 오히려 더 많은 세금을 내지만 어떠한 정부 주도 대출도 받을 수 없다. 개인 대출과 자본금으로 해결하면서 지금까지 잘 운영해 오고 있지만 가끔 이런 것들이 부조리처럼 느껴진다.” 

소규모 와인 수입사의 강점과 생존전략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규모 와인수입사가 가지는 강점과 생존비법은 뭘까. 서성호 대표는 “대형 수입사에 비해 아이템 수나 영업 및 마케팅 규모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면서도 “하지만 대부분 기존 수입사에서 경험이 있는 분들이 많으니 그들만의 운영 노하우와 특별한 아이템이 강점이 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기존 와인시장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떠오르는 지역 및 와인메이커들이 만든 와인들을 좀 더 세밀하게 고려하여 들여와야 한다”며 “더불어 특정 판매 채널이 있어야 잘 생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원준 대표 의견도 비슷하다. “‘아 이건 그 수입사 와인이구나!’라고 느낄만한 캐릭터를 구축하고 더 전문적인 서비스와 정보를 제공하는 종합적인 컨텐츠가 필요하다”는 것. 이어 “앞으로 온라인 주류 시장이 어떻게 오픈하고 발전할지에 대한 고민과 그에 따른 준비도 이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우성 대표가 생각하는 소규모 수입사의 강점은 빠른 의사결정이다. 이를 바탕으로 최종소비자도 새롭고 다양한 제품을 여러 채널을 통해 접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다고 본다. 생존전략에 대해선 조금 어려운 부분일 수 있다고 운을 떼면서 “매해 일정 이상의 판매량을 요구하는 일부 대규모 와이너리나 상업적인 관계만 지속하는 와이너리를 지양하고 다양한 정보 수집을 통해 시장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생산자들의 와인으로 탄탄한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그렇다면 “대형 유통업체에게도 외면당하지 않고 점차 자리를 잡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며 “와인을 판매하려고 노력하기 전에 먼저 소비자들이 찾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와인시장을 바라보는 시선 

와인수입사를 운영하는 세 사람은 현재 한국 와인시장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불과 두 달 전 수입사를 오픈한 한우성 대표는 근래 와인시장의 분위기를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2019년 대비 와인시장이 2배 이상 성장하며 시장에 크고 작은 변화들이 생겼다”고 말문을 열었다. 대형 와인수입사들이 소주, 맥주를 대신할 수 있을 정도의 합리적인 가격대의 와인들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유통업체들이 다양한 프로모션을 통해 소개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와인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고 시장 규모를 키운 긍정적인 신호로 평가했다. 이에 대한 우려도 표했다. “급격한 성장 탓에 더 성숙되고 안정된 시장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과도기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특히 물류를 가장 주목할 부분으로 꼽았다. “전 세계 물동량이 급증하며 수입일자 조정에 어려움이 있고, 운임료 상승에 불안정한 환율까지 더해 많은 수입사들이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동시에 국내에서 식품검사 및 통관 등의 업무를 원활하게 처리할 인프라 또한 부족한 상황이다. 이러한 문제들이 해결 되어야만 더 합리적인 가격과 다양한 와인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정원준 대표도 “코로나 시국으로 와인시장의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며, “홈술이 트렌드가 되면서 소매 시장을 이끌어가는 매장의 점장 혹은 대표들의 전문성이 더욱 요구되는 시장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전히 와인시장의 핫아이템인 내추럴 와인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유기농, 바이오다이나믹, 내추럴 와인 등으로 대변되는 자연주의 와인시장도 점차 무르익어가고 있다. 내추럴이 아닌 와인이 내추럴로 둔갑해 팔린다던가 하는 일들이 심심찮게 보이고 그로 인해 소비자들에게 혼돈과 피해를 안기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 무지에서 오는 잘못된 판매와 소비는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고 느낀다”며, “아직 갈 길은 멀지만, 내추럴 와인의 존재 자체가 기존 컨벤셔널 와인 시장에 많은 자극이 되어가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마지막 서성호 대표의 답변에는 기대감이 들어있었다. “매년 와인 수입액이 늘어나고 국내 와인시장규모가 커지고 있다. 새로운 수입사들도 나날이 많이 생긴다. 대형 수입사와 유통 채널에서는 자신들만의 와인 리테일 브랜드를 만들고 있다. 이렇게 저변이 확대되면서 특히 20대 여성들의 와인 소비가 많이 늘었다. 보통 와인을 처음 접할 때는 스위트 와인이나 화이트로 시작하는데,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향이 좋고 무겁지 않은 로제 와인의 수요가 늘 것이라 생각된다.” 이어 그는 “국내 주류시장에서 와인 카테고리가 점점 커지는 만큼, 소비자들이 굳이 해외 사이트를 보지 않아도 될 만큼 미수입 와인을 비롯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한글 어플이나 사이트가 생겨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덧붙였다. 

[일문일답]

▷와인 선택의 기준과 수입사로 지향하는 바
투데이와인: 공장에서 찍어내듯 만드는 너무 저가의 와인은 배제한다. 대신 와인 양조에 공을 들이고 재미있는 스토리가 있는 와인을 선택한다. ‘이 수입사 와인 먹을 만해’라는 생각이 드는 수입사. 그리하여 다시 믿고 구매할 수 있는 수입사가 되고 싶다. 

뱅레어: 먼저 신뢰가 바탕이 되는 회사가 되어야 한다. 가격정책과 품질관리를 최우선 고려하여 공급함으로써 신뢰할 수 있는 관계가 되면, 익숙하지 않은 지역의 생소한 품종의 와인을 소개한다 해도 그 회사의 와인을 선택할 것이다. 특정 국가, 지역, 품종 등을 바탕으로 하거나 트렌디한 와인을 전문적으로 수입하는 회사로 색깔을 드러내는 것도 긍정적이지만 이미 다양한 와인들이 국내 수입되고 있기에 어려움이 있다. 이제는 가격적인 장점 등을 제외하고 누구보다 자신 있게 잘 소개할 수 있는 와인을 수입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또 아무리 명성이 높고 가성비 좋은 와인일지라도 생산자와 수입사간의 소통이 중요하다. 문서로 정형화된 내용을 근거로 수입한 와인은 추천을 조금 망설이게 되지만 직접 만나 양조 철학과 열정을 이해한 와인은 적극적으로 추천하게 되는 걸 종종 경험했다. 반대로 와인 자체에는 매우 만족했지만 직접적인 소통 후 생산자의 본질에 대해 실망하여 수입을 중단한 경우도 있었다. 

모멘텀 와인컴퍼니: 모멘텀의 모토는 ‘트렌디 & 딜리셔스’다. 시간이 흘러 유행은 변할 수 있지만 품질과 맛은 언제나 시대를 관통하는 것이기에 와인 품질에 집중하는 소싱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또, 비교적 덜 유명한 지역이나 국가, 특별한 철학을 지닌 와인메이커 그리고 각 지역 토착 품종들의 놀라운 캐릭터와 스타일을 소개하는 일. 즉 다양성을 제공하는 회사이고 싶다. 하지만 무엇보다 ‘모멘텀의 와인은 뭘 마셔도 맛있어!’가 제일 듣고 싶은 말이다. 

 

▷가장 먼저 수입한 와인이나 가장 의미 있는 브랜드
투데이와인: 엘 아부엘로(El Abuelo)라는 스페인 알만사 지역 브랜드. 스페인어로 ‘할아버지’라는 뜻으로 와인 레이블에는 고인이 된 1대 양조가의 사진이 실려 있다. 이미 레이블에서도 스토리가 보인다. 와인 양조에도 공을 들이는 와이너리다. 스페인 최고급 프리미엄 와인인 베가 시실리아의 우니꼬를 만든 양조팀의 유명 와인메이커를 섭외하기도 했다. 품질도 좋다. 

뱅레어: 현재 판매가 시작된 와인은 없다. 8월 출시 예정인 브랜드는 이미 국내에 판매되고 있는 와인을 연결한 것이다. 지난 10여 년간 방문할 때마다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5년간 삼고초려 끝에 계약을 성사한 와인이다. 자신의 와인을 생산하면서도 그 지역 여러 생산자들을 컨설팅하고 와인의 성분까지도 모두 연구하고 파악하는 열성적인 와인생산자의 와인이란 것만 미리 밝힌다.  

모멘텀 와인컴퍼니: 미국 캘리포니아의 필드 레코딩스(Field Recordings). 파소 로블스, 에드나 밸리, 산타 바바라 등 캘리포니아에서 떠오르는 지역의 숨겨진 포도밭들을 발견해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색다른 블렌딩을 시도한다. 6~12가지 품종을 블랜딩해서 만들어낸 놀라운 풍미의 픽션(Fiction) 시리즈는 이 브랜드의 가치와 방향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와인이자 우리의 철학과도 가장 잘 부합한다.

강은영 / 사진 각 인터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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