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이 마음을 울릴 때 :퀸테사(Quintessa) 2018 온라인 테이스팅

Written by: 강 은영

하이엔드 와인이란 무엇인가

어떤 와인이 소위 ‘하이 엔드’의 경지에 오를까? 값도 값이지만 구하기도 쉽지 않다는 이름 높은 와인들. 그중에 퀸테사(Quintessa)가 있다. 퀸테사는 캘리포니아 나파 밸리에 있는 동명의 와이너리가 만드는 단 하나의 와인이다. 오는 9월 중순 2018 빈티지가 출시될 예정이고, 이를 앞두고 와이너리는 글로벌하게 온라인 테이스팅을 진행하고 있다.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가 4단계로 격상되던 7월 둘째 주, 서울의 집에서 나파 밸리에 있는 퀸테사의 수석 와인메이커와 마주 앉아 퀸테사 2018을 시음하며, 비대면의 시대에 대처하는 와인생산자의 자세와 하이엔드 와인에 대해 생각했다. 

퀸테사 와이너리 건물
퀸테사 와이너리

먼저 온라인 와인 테이스팅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방식에 대해 잠깐 이야기 해보자. 한국 시간으로 아침 9시. 줌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통해 약속된 네 사람이 각자의 집에서 접속했다. 와인메이커 레베카 와인버그(Rebekah Wineburg), 마케팅 디렉터 디에고 가레이(Diego Garay), 한국 행사를 주관하는 와인인 최민아 대표 그리고 한국의 테스터 중 하나였던 운 좋은 필자. 와인메이커와 1:1 대화라고 봐도 무방했고, 물리적 거리에도 불구하고 더 친밀한 형식이란 느낌마저 들었다. 왜일까? ‘와인을 만드는 떼루아의 한 요소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와인메이커의 태도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좋은 와인은 모든 것을 압도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 ‘어떤 와인이 하이 엔드 레벨에 이르는가?’로 질문이 이어졌다. 맛있는 와인은 당연하다. 다만 맛이 있음에도 여러 단계가 있을 진데, 그 맛있음이 마음에 울림을 주는 경지라고 할까.  

퀸테사-와이너리-포도밭
퀸테사 포도밭 전경

한 그루의 포도나무를 키우는 건

퀸테사의 철학을 마련한 이는 어거스틴(Augustin Huneeus)과 발레리아 후네스(Valeria Huneeus)였다. 칠레 태생의 어거스틴은 일평생 와인 비즈니스에 몸담아 성공을 견인했다. 그런 그와 발레리아가 나파 밸리로 넘어온 건 1989년. 당시 이들이 반했던 러더포드(Rutherford)의 땅은 포도나무가 식재되어 있지 않았다. 바카 산맥이 아늑히 품고 있는 형세에 낮은 언덕과 드래곤즈 호수가 자리를 잡고 있는 아름다운 땅. 비티컬쳐리스트인 발레리아는 이곳에 조금의 흠집도 내고 싶지 않아 했다. 이듬해 새로 포도나무를 식재하며 주변의 나무는 베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포도밭에는 양이 풀을 뜯고, 벌이 날아든다. 이들의 철학을 공유하는 레베카는 “떼루아는 단지 포도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발밑의 땅이 전부가 아니다. 주변 환경 모두가 한그루의 포도나무를 키운다”는 이야길 했다. 그런 이들이 처음부터 유기농법을 도입했다는 이야기는 전혀 놀라운 사실이 아니었다. 얼마지 않아 96년에는 바이오다이나믹을 도입했다. 대화 중에 레베카가 보여준 사진이 있다. 그 속엔 퀸테사 와인 한 병이 소의 뿔 사이에 파묻혀 있었다. 토양에 소의 뿔을 묻는 것은 바이오다이나믹 농법에서 잘 알려진 기법 중 하나다. 흙에 좋은 양분을 공급한다고 한다.  

퀸테사 와인 바이오다이나믹

떼루아 매직

“나파 밸리에서는 모두들 좋은 와인을 만든다. 그럼 퀸테사를 특별하게 만드는 건 무엇일까?” 레베카는 질문을 던짐과 동시에 답을 주었다. 와인 세계관에 익숙한 분들이라면 이미 눈치 챘겠지만, 답은 그렇다. ‘떼루아’다. 러더포드에 있는 퀸테사의 포도밭은 26개 구획으로 잘게 쪼개져 있다. 이 부분은 지도를 참고해 보는 것이 훨씬 이해가 쉬울 것이다. 

퀸테사 와인 떼루아

위쪽의 연한 회색으로 칠해진 부분의 땅은 흰 화산재와 리오라이트 터프(rhyolite tuff)라고 하는 토양으로 덮여있다. 진흙의 함량이 적어 물을 적게 품고 있다. 여기가 퀸테사 와인의 ‘매직’이 발생하는 지점인데, 이 땅에서 자란 포도는 여느 나파 밸리 와인에서 쉬이 찾아 볼 수 없는 아름다운 꽃 향과 석회질의 캐릭터를 준다고 한다. 와인의 우아함과 섬세함을 담당하는 구획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붉은 색으로 칠해진 중앙부는 화산재 위에 자갈이 덮인 토양. 화산토와 철이 풍부해 미네랄이 많고, 앞의 연회색 파트 보다는 진흙 함량이 높다. 와인에 풍만한 캐릭터와 구조감, 장기숙성력을 준다. 그 아래 벤치(Bench)는 비옥한 퇴적토다. 와인에 밀도와 파워를 공급한다. 와인이 영할 때에도 마시기 좋은 것도 이 땅의 영향이다. 밀도가 있으면서도 무겁지 않은 맛의 비법이 여기에서 나온다.  

퀸테사 와이너리 떼루아

2018 빈티지, 온화한 해의 와인

퀸테사 와인의 첫 빈티지는 1994였다. 와인은 까베르네 소비뇽 원톱물. 비중이 90% 언저리다. 그 외 보르도 레드 품종 4가지가 조금씩 들어간다. 이 중 까르메네르는 칠레에서 가장 뛰어난 포도나무를 가져 와 심은 것이란다. 그간 매해 주어진 날씨에 따라 품종의 비율이나 숙성 기간 등 양조 방법에 약간씩 변화를 주었다. 2018년 빈티지에 대해 레베카는 “2015나 2017이 무더운 해였던 반면 2018년은 온화한 편”이었다며, “폭염도 서리도 없고, 연간 좋은 날씨들이 이어져 포도도 계절 내내 고르게 잘 익었다”고 설명했다. 와인메이커에게도 평안한 해였고, “그 결과는 아름다운 하모니로 와인에서 드러났다”고. 블렌딩 비율은 까베르네 소비뇽 92%, 메를로 2%, 까베르네 프랑 3%, 까르메네르 2%, 쁘띠 베르도 1%다. 와인을 양조하며 세계적인 와인 컨설던트인 미셸 롤랑과 함께 테이스팅 했다.(20년 넘게 함께 일하고 있는 사이라 한다.) 오크 숙성은 20개월, 그 중 62%가 뉴 프렌치 오크다. 무더웠던 전해에 비해 오크 숙성 기간은 2개월 줄었고, 뉴 오크의 비율도 낮추었다. 2018년 빈티지는 와이너리에 콘크리트 발효조를 처음 도입한 해이기도 하다. 그녀는 무겁지 않고 과실 고유의 맛을 살린 와인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퀸테사-와인

2018 빈티지의 첫인상은 “와 아름답다!”였다. 나파 밸리의 고급 까베르네 소비뇽들은 종종 묵직한 파워를 여유롭게 부리면서, 놀라울 정도로 매끄러운 질감을 보여주곤 한다. 퀸테사는 좀 더 우아하다. 이 와인의 오롯한 아름다움을 논하기엔 다소 이른 감이 있다는 점은 감안해야겠지만. 와인메이커도 한 10년은 더 묵혀도 좋을 것이라고 했다. 물론 그 이상도 거뜬할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마시는 것이 꼭 나쁜 선택은 아니다. 블랙커런트나 블루베리 향이 나무, 다크초콜릿 향과 잘 어우러져 있고, 화사한 꽃향기가 사뿐하게 감싸는 느낌이다. 여운도 길고 농밀한 와인이지만 마지막엔 기분 좋은 가벼움도 느껴진다. 산도가 현명한 중재자처럼 와인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하이 엔드 와인의 조건을 또 하나 들어야겠다. 지금도 아름답고 앞으로도 아름다울 것. 10년이나 20년 뒤 그때 이 와인과 나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한다면, 와인은 문제가 없을 것이다. 나만 잘 늙는다면.   

와인에 담기는 마음

와인메이커의 이야기 중에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다. 퀸테사의 포도밭이 펼쳐져 있는 땅에 와이너리 사람들의 쉼터이자 마음의 안정을 찾는 공간이 있다. 이곳에서 명상을 하기도 한단다. 사진으로 접해도 마음이 평온해졌다. 그녀가 ‘spiritual’이나 ‘ego’라는 표현을 하는 것도 신선하게 느껴졌는데, 와인을 만드는 사람의 마음이 단단해야 좋은 와인이 나온다는 당연한 생각을 왜 여태하지 않았나 모르겠다. 퀸테사는 라틴어로 ‘fifth’를 뜻한다. ‘제5의’란 뜻 외에 ‘본질적인’ 또는 ‘정수의’라는 의미로 더 자주 쓰이는 영어의 ‘quintessential’도 이에서 유래된 것이다. 다시 말해 퀸테사는 이 땅의 필수적인 5가지 요소라는 의미를 품고 있다. 이들에게 포도밭과 와이너리, 집, 방문객들을 위한 공간이 4가지에 해당한다면, 마지막 5번째는 사람들의 쉼터가 되는 이 정신적인 공간이다.    

퀸테사 와이너리 와인
와이너리의 정신적 공간, 쉼터

퀸테사 와인의 생산량은 연간 1만 상자 정도다. 마케팅 디렉터 디에고 가레이에 따르면 현재 생산량의 95%는 자국 시장에서 소비된다. 하지만 앞으로 수출 비중을 높일 계획이라 했다. 국내에도 한 수입사가 단독으로 수입하는 방식이 아니라 오픈 마켓으로 소량 수입되고 있다. 온라인 시음회는 1시간가량 진행됐다. 한국에서만도 열 사람과 개별적으로 진행할 텐데, 자국과 세계 주요 시장을 다 합하면 와인메이커의 하루하루는 얼마나 바쁠까? 슬그머니 걱정도 들었다. 그럼에도 시간을 할애하고 마음을 다해 와인 이야기를 전하는 와인메이커. 퀸테사의 와인에도 그런 마음들이 담겼으리라.  

 강은영 칼럼니스트 / 사진 제공 퀸테사 와이너리

퀸테사 와이너리 / Quintessa Win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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