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말 열린 (주)와이넬의 ‘제12회 아트인더글라스 그랜드 테이스팅’은 와인이 단순한 음료를 넘어 하나의 ‘경험’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다시 한번 보여준 자리였다. 이탈리아 주요 생산자와 작가가 함께 참여한 이번 행사에서는 브랜드를 넘어 테루아, 와인 생산 철학, 그리고 시장 변화에 대한 다양한 시선이 공유됐다.

바타시올로 – 전통과 현대를 잇는 바롤로 DOCG 생산자
이번 '아트인더글라스 그랜드 테이스팅'의 테마 브랜드로 선정된 바타시올로(Batasiolo)는 1978년 설립된 이탈리아 피에몬테 랑게(Langhe) 지역, 특히 라 모라(La Morra)를 기반으로 한 바롤로 DOCG 생산자이다. 150헥타르 이상의 포도밭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중 약 90헥타르에서 네비올로를 재배한다.
바타시올로 와이너리를 방문한 적 있는 필자의 경험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공간에서 드러나는 대비였다. 기하학적 구조의 현대적인 바리크 룸(Barrique Room)은 마치 하나의 실험 공간이자 ‘우주 기지’를 연상시키는 분위기를 자아내는 반면, 전통적인 대형 슬라보니안 오크통이 놓인 숙성 공간에서는 클래식한 양조 방식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이러한 대비는 단순한 연출을 넘어, 바타시올로의 생산 철학을 직관적으로 드러낸다. 전통을 기반으로 하되 현대적인 접근을 결합해 보다 넓은 소비층이 즐길 수 있는 와인을 지향하는 것이다.

올해 '아트인더글라스 그랜드 테이스팅'에 참여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수출 디렉터 안드레아 크라베로(Andrea Cravero)는 “우리는 모든 사람이 즐길 수 있는 와인을 만들고 싶다”며 “엘레강스와 균형을 갖추면서도 쉽게 마실 수 있는 와인을 지향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70개국 이상에 수출하고 있으며, 와이넬과 같은 전문적인 파트너와 협업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크뤼와 레이블 – 테루아를 시각화하다
최근 바타시올로는 싱글 빈야드별 개성을 보다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레이블 디자인을 리뉴얼했다. 각 크뤼의 정체성을 강조한 새로운 디자인은 테루아 중심 생산 철학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현재 한국 시장에서는 기존 레이블 제품이 유통되고 있지만, 재고 소진 이후 순차적으로 새로운 레이블이 도입될 예정이라 한다.

바타시올로는 총 5개의 주요 싱글 빈야드를 통해 바롤로의 다양한 테루아를 표현한다. 각 포도밭은 서로 다른 토양과 미세 기후를 바탕으로 뚜렷한 스타일 차이를 드러낸다. 라 모라 지역의 체레퀴오(Cerequio)는 장미와 붉은 체리, 유칼립투스를 연상시키는 섬세한 아로마와 함께 실키한 타닌을 보여주며, 부드럽고 우아한 인상을 남긴다. 같은 라 모라에 위치한 브루나떼(Brunate)는 보다 탄탄한 구조감과 집중도를 바탕으로 클래식 바롤로의 균형미를 잘 보여주는 스타일이다. 몬포르테 달바의 부시아(Bussia)는 점토와 모래가 혼합된 복합 토양에서 비롯된 깊이와 안정적인 구조감을 동시에 갖추며, 전반적으로 균형 잡힌 스타일을 형성한다. 반면 세라룽가 달바 지역의 브리꼴리나(Briccolina)는 강한 타닌과 응축된 과실 풍미, 그리고 타르 계열의 뉘앙스를 통해 장기 숙성형 바롤로의 특징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같은 지역의 보스까레또(Boscareto) 역시 뛰어난 구조감과 복합미를 기반으로 깊이 있는 여운을 남기며, 프리미엄 크뤼로서의 완성도를 보여준다.
특히 체레퀴오와 브리꼴리나를 비교한 테이스팅에서는, 같은 바롤로임에도 포도밭에 따라 전혀 다른 스타일을 보이며 바롤로의 복합적인 정체성을 인상적으로 드러냈다.

이와 함께 보스까레또 지역에는 바타시올로가 운영하는 럭셔리 리조트 ‘일 보스까레또(Il Boscareto)’와 미슐랭 레스토랑이 자리하고 있어, 와인을 중심으로 한 미식 경험까지 함께 제공된다. 이는 와인을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확장하는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랑게 네비올로 – 프리미엄으로 향하는 입문
최근 시장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는 랑게 네비올로(Langhe Nebbiolo)의 수요 증가다. 동일 품종인 네비올로를 사용하지만, 법적 숙성 요건과 구획 조건에 따라 바롤로로 분류되지 않는 와인으로, 보다 접근성 있는 스타일을 갖는다. 장기간 숙성과 병 숙성을 통해 깊이와 구조감을 형성하는 바롤로에 비해 랑게 네비올로는 비교적 짧은 침용과 숙성을 통해 부드럽고 마시기 쉬운 스타일을 선보인다. 수출 디렉터 크라베로는 “랑게 네비올로의 인기는 소비자들이 점차 고급 와인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흐름은 팬데믹 이후 성장세를 거쳐 안정화 단계에 접어든 현재 한국 와인 시장과도 맥을 같이한다. 동시에 젊은 소비자를 중심으로 와인을 ‘경험’으로 소비하는 경향이 확대되며, 프리미엄 와인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기존의 바르베라와 같은 접근성 높은 와인에서 출발해, 점차 네비올로 기반의 프리미엄 와인으로 관심이 확장되는 경향에서도 이러한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한편 크라베로는 기후 변화로 인해 수확 시기가 점차 앞당겨지고 있지만, 바롤로 지역은 여전히 비교적 서늘한 기후를 유지하고 있어 테루아 중심의 생산 방식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판티니 – 시장을 읽는 브랜드 전략
1993년 설립 이후 다양한 지역의 와인을 하나의 브랜드 아래 통합하는 전략으로 90개국 이상에 와인을 수출하며 빠르게 성장한 판티니(Fantini) 그룹. '아트인더글라스 그랜드 테이스팅'을 위해 매년 한국을 찾아오는 와인 생산자로, 올해는 수출 매니저인 파올로 마시띠(Paolo Mascitti)가 방한했다. 행사 전 가진 인터뷰를 통해 그는 한국 와인업계의 추세이기도 한 양극화에 대해 짚었다. “와인 시장은 캐주얼과 프리미엄으로 양극화되고 있다. 판티니 그룹은 소비자 중심의 접근으로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또한 “소비자의 니즈를 반영한 다양한 스타일의 와인을 통해 시장 변화에 대응한다”는 점도 덧붙였다. 이는 최근 한국 시장을 겨냥한 제품을 선보이며 전략적 포지셔닝을 강화하고 있는 판티니 그룹의 행보로도 설명된다.

와인, 예술로 확장되는 경험
올해 '아트인더글라스 그랜드 테이스팅'에서는 바타시올로를 모티브로 한 공모전의 당선작이 함께 소개되었다. 당선 작가인 섬유조형예술 작가 케일리 김(Kelley Kim)은 와인의 감각을 시각적으로 재해석하며, 와인을 하나의 경험으로 확장시키는 작업물을 선보였다. 니트 특유의 질감과 색채를 활용해 자연의 풍경과 감각을 입체적으로 풀어냈으며, 섬세한 패턴을 통해 포도밭의 풍경을 형상화하고, 브라운과 골드 톤의 실을 사용해 토양과 햇빛, 그리고 숙성의 시간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작품이었다. 니트의 질감은 포도나무의 거친 표면을 연상시키며, 바타시올로 바롤로가 지닌 구조감과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복합미를 상징적으로 담아냈다. 평소 와인 애호가이기도 한 케일리 김은 “와인은 단순한 음료가 아닌 감각적 경험이며, 예술은 이를 시각적으로 확장하는 역할을 한다”라며 이번 협업의 의미를 되새겼다.

'아트인더글라스 그랜드 테이스팅'은 와인이 어떻게 경험되고 소비되는지를 보여주는 자리였다. 바타시올로의 테루아 중심 철학과 판티니의 시장 대응 전략, 그리고 예술적 해석이 결합하며 와인이 하나의 문화적 경험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이번 행사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와인이 이제 단순한 제품이 아닌, 테루아와 경험이 결합한 문화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성장을 거쳐 프리미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한국 와인 시장, 그리고 점차 ‘경험’ 중심의 소비로 확장하는 와인 문화. '아트인더글라스 그랜드 테이스팅'은 이 모두를 견인하는 와인업계의 가장 핵심적인 이벤트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수입사 (주)와이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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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배준원 사진·자료 제공 (주)와이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