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먹으면 좋을까?” 매일 새로운 영감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에게, 하디스로부터 신선한 답변이 배달됐다. 얼마 전 홍콩에서 열린 와인 컴피티션(Hong Kong International Wine & Spirit Competition)의 아시안 푸드 페어링 부분에서 하디스의 HRB 쉬라즈(빈티지는 2018)가 인도식 야채 커리와 잘 어울리는 와인으로 뽑혔다는 것이다. 그럼 오늘은 야채 커리에 HRB 쉬라즈? 내일은 또 다른 이의 영감을 빌려 부라타 치즈를 올린 떡볶이 한 접시를 HRB 샤르도네와 함께 해치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하디스 와인메이커의 최애 푸드 페어링도 슬쩍 물어봤다.
HRB 쉬라즈와 야채 커리
HRB(Heritage Reserve Bin) 시리즈는 하디스의 허리라 불린다. 1853년 토마스 하디(Thomas Hardy)가 와이너리를 설립하고 맨땅에서 무한의 미래를 그릴 때, 그는 여러 지역에서 선별한 포도의 다양한 캐릭터를 블렌딩하여 와인의 풍미와 퀄리티를 끌어올릴 수 있다고 믿었다. 그의 철학이 실현된 HRB 시리즈는 여러모로 교과서적이다. 호주 특유의 지역 블렌딩을 보여주는 좋은 표본일 뿐 아니라 언제나 신뢰할만한 퀄리티를 제공하기 때문에, 다소 호기로운 페어링의 대상으로도 꽤 적임자다. 야채 커리에 HRB 쉬라즈? 생각해보면 꽤 잘 어울릴 것 같지만, 그 잘 어울림이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여 인도 음식점엘 갔다. HRB 시리즈 3종(쉬라즈, 카베르네 소비뇽, 샤르도네) 세트를 들고.
병아리 콩 메인의 달커리, 양파, 콩, 버섯, 감자와 새우를 넣은 고아 프라운 커리, 그리고 시금치 커리까지 수상 소식을 가이드라인 삼아 눈에 띄는 야채 베이스 커리는 모조리 주문하고 난을 추가했다. 세 가지 야채 커리는 모두 1단계 정도로 약하게 스파이시했다. 매운 맛에도 여러 결이 있는데 이 커리에서는 아련하게 풍미를 서포트하는 정도. 여기에 샤르도네를 마시면 캐릭터 강한 커리와의 매칭에도 밀리지 않는 힘을 느낄 수 있지만, 이 스파이시함이 전면에 드러난다. 거슬리는 정도는 아니라도 또렷이 각인되는 효과가 있다. 굳이 말이다. 이 게임에서는 HRB 쉬라즈를 이기기 쉽지 않아 보였다. 그 어떤 포도종보다 스파이시한 무드에 익숙한 쉬라즈는 어렵지 않게 스파이시함을 다룬다. 같은 리듬을 타고 있는 것처럼(샤르도네나 카베르네 소비뇽은 대진 운이 나빴다). 커리의 크리미한 질감과 대등한 체급으로 마주하는 바디감도 나무랄 데가 없다. 특히 병아리 콩 커리와의 매칭은 탁월했는데, 씹을수록 쌓이는 병아리콩의 고소한 맛과 질감이 잘 어우러진다. 잘 익은 자두와 붉은 과일, 허브, 잔잔하게 스모크한 풍미, 그리고 미묘한 달콤함이 더해진 스파이시 노트 등 쉬라즈의 캐릭터는 향신료 풍미와 크리미한 질감을 전면에 내세우는 커리의 다정한 이웃이었다.
HRB 시리즈에 한식은요
아시아 음식과 와인 매칭이 이제와 새로운 뉴스는 아니다. 국내에서도 한식뿐 아니라 다양한 아시안 푸드와 와인 페어링 이벤트가 꾸준히 있어 왔고, 소비자들의 일상에서는 더 기발한 페어링들이 많이 등장한다. 지난해 하디스는 국내 하디스 와인 서포터즈 대상으로 한식 쿠킹클래스를 열기도 했다. 이때도 페어링 와인은 HRB 시리즈(샤르도네, 쉬라즈, 카베르네 소비뇽)였다. 당시 행사에 참여했던 서포터즈의 의견을 들어보면, 쨍한 산미와 함께 은은한 오크 풍미가 좋은 샤르도네는 참깨나 참기름 양념이 된 한식과의 매칭이 좋았다고. 쉬라즈는 역시나 후추를 첨가한 고기 메뉴와의 조화가 좋았다 한다. HRB 쉬라즈는 흔히 반듯한 쉬라즈에서 기대되는 적절한 스파이시함이나 후추 향이 잘 익은 과일 풍미와 잘 어우러져 있기 때문에 음식 매칭에서 실패 확률이 적다. 또 다른 흥미로운 페어링도 진행됐었는데, 간장, 고추장, 후추를 각각 HRB 쉬라즈와 HRB 카베르네 소비뇽과 비교 테이스팅한 것이다. 쉬라즈는 후추와 호흡이 좋았던 반면 카베르네 소비뇽은 간장 베이스의 한식과 궁합이 좋았다 한다.
국내에서 인기가 많은 HRB 시리즈는 일상에서는 더 다양한 음식과 매칭되고 있을 것이다. 하디스 서포터즈 중 한 명은 HRB 샤르도네에 부라타 치즈를 올린 떡볶이를 추천했다. 평소 HRB 샤르도네와 연성치즈의 미친 궁합을 눈여겨봤다는 그녀는 어느 날 부라타 치즈를 곁들인 떡볶이에 함께 먹어봤는데,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고 강력 추천했다.
하디스 와인메이커의 최애 페어링
그럼 하디스의 와인메이커는 자신이 만든 와인을 뭐랑 먹을까? ‘하디스의 홈’ 틴타라(Tintara) 와이너리를 맡고 있는 와인메이커 매튜 칼데스미스(Matthew Caldersmith)에게 최애 페어링을 물어봤다. 그가 보낸 메모를 살짝 공유한다.
HRB 쉬라즈
쉬라즈는 커리나 스파이스한 음식과 잘 어울린다. 와인이 가지고 있는 과일의 단맛이 스파이시함과 잘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나는 HRB 쉬라즈에 소고기 렌당(각종 향신료로 만든 소스에 코코넛 밀크와 고기를 넣고 오래 끓이는 인도네시아 전통 음식)을 즐겨 먹었다. 호주 전 지역의 좋은 쉬라즈를 블렌딩하여 하모니가 좋은 이 와인은 호주가 어떤 와인을 선보일 수 있는지 그 표본을 가장 잘 보여주곤 한다. 다양한 음식에 매칭하기도 좋다. 장시간 요리한 돼지고기(pork shoulder)에 펜넬을 곁들이는 것도 좋고, 마늘, 레몬, 파슬리 등으로 시즈닝한 양고기와도 잘 어울린다.
HRB 카베르네 소비뇽
카베르네 소비뇽은 숙성한 체다나 만체고 같은 풍미 강한 경성 치즈와 특히 잘 어울린다. 물론 브리나 까망베르 같은 연성치즈와도 좋다. 토마스 하디가 추구한 지역 블렌딩의 정수를 담은 이 와인은 우아함과 균형미가 돋보인다. 마가렛 리버, 프랭크랜드 리버, 맥라렌 베일의 포도밭 중에서도 뛰어난 구획의 포도를 손 수확해 저온에서 침용하고, 10~12일간 오픈 발효조에서 발효를 진행한 뒤 프렌치 오크 배럴에서 숙성시켰다. 오리가슴살을 구워 피칸 퓨레를 곁들여 함께 먹어도 좋다.
토마스 하디 카베르네 소비뇽
토마스 하디 카베르네 소비뇽에는 블루치즈 소스를 곁들인 토마호크 스테이크! 육즙과 치즈 소스가 와인의 탄닌과 과일 풍미와 만나면서 기분 좋은 미식의 세계를 열어준다. 코리안 바비큐와도 훌륭한 한 쌍이다. 그릴에 구운 고기의 스모키한 풍미가 와인에서 나는 타바코, 블랙 올리브, 그리고 카베르네 특유의 캐릭터들과 잘 어우러진다. 토마스 하디 카베르네 소비뇽은 오직 뛰어난 빈티지에만 생산되며, 하디스 와인메이킹의 정점을 보여주는 와인이다. 호주 전역 최상의 카베르네 소비뇽 지역에서도 최상의 구획에서 난 포도만을 엄선해서 블렌딩했다. 하디스의 위대한 유산인 이 와인은 숙성 잠재력도 아주 뛰어나다. 구운 무화과를 곁들인 꽃등심 스테이크와 먹어도 좋다.
아일린 하디 쉬라즈
맥라렌 베일 쉬라즈의 최상급을 보여주는 이 와인은 129년 된 오래된 포도나무에서 손으로 수확한 포도로 만든다. 이후 자연효모를 이용해 오픈 발효조에서 발효를 진행하고 프렌치 오크 배럴에서 17개월 숙성을 거치는 전통방식을 통해 탄생하는 와인이다. 버터와 함께 익히고 시어링한 토마호크 스테이크에 마늘, 타임, 블루치즈 소스를 곁들여 함께 먹으면 완벽하다.
아일린 하디 샤르도네
신선한 해산물, 특히 랍스터에 이 와인을 마시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신선한 랍스터로 찜을 하거나 그릴에 굽거나 어떻게 요리하든 모두 이 샤르도네와는 환상적이다. 아일린 하디 샤르도네는 포도밭에서 얻은 캐릭터의 정수를 병에 담아놓은 와인이다. 가능한 최상의 퀄리티를 위하여 호주 전역에서 가장 훌륭한 포도밭의 샤르도네만을 블렌딩했다. 몇몇 선택된 포도밭에서도 완벽하게 익은 포도만 사용한 것이다. 양조과정에서도 섬세한 핸들링으로 복합적인 맛들을 와인에 차곡차곡 담으려고 노력했다. 풍만한 캐릭터와 파워, 우아함을 보여주는 이 와인은 호주에서 가장 수준 높은 샤르도네 중 하나라 자부한다. 앞서 얘기한 랍스터에 초절임한 진저 샐러드를 곁들여 함께 마셔보길 추천한다.
글·사진 강은영 사진 및 자료제공 아콜레이드와인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