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세 탭샵바는 왜 잘 될까?

Written by강 은영

지난해 와인시장은 고전했다. 와인샵과 레스토랑들이 줄줄이 문 닫았고 누군간 ‘역대급으로 힘든 해’라 했다. 팬데믹으로 얻은 예기치 않은 호황이 뒤이어 덮친 불황의 그림자를 더 짙게 만든 면도 있었다. 올해 업계 전망은 더 어두웠다. 기껏해야 ‘숨 고르기 후 다음 도약을 준비해야 할 때’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건져 올렸을 뿐이었다. 그런데 여기 올해의 전망과는 아주 다르게 흘러가는 곳이 있다. 소량씩 와인 테이스팅이 가능하고(Tab), 구매하거나(Shop) 캐주얼한 음식을 곁들여 마실 수도 있는(Bar) 탭샵바. 2022년 12월 동대문점을 시작으로 약 1년 반 사이 청계천, 도산대로, 여의도점 오픈까지 광폭 성장하고 있는 곳이다. 요즘 2시간 단위의 예약은 연일 가득 차고 한 매장의 일 매출이 2천만 원을 찍는다. 팬데믹 때 반짝 와인에 관심이던 젊은 소비층들이 엔데믹과 함께 떠났다는 소문은 적어도 이곳의 이야기는 아니다. 지난 7월 20일 토요일 탭샵바 도산대로점을 찾아갔다. 이미 오전 11시 반에 칠링한 와인을 곁에 끼고 로제 떡볶이로 첫 끼를 챙기는 사람들이 있었고 12시쯤 되니 비슷한 장면이 복사 붙이기하듯 늘었다. 도대체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와인의 열기는 무엇인가? 탭샵바 나기정 대표를 만나 물었다.

탭샵바 나기정 대표

탭샵바가 있기까지

나기정 대표를 안 지는 꽤 오래됐다. 영국에서 와인 MBA 과정을 마치고 돌아온 그녀는 2009년 말 수입사 아영FBC에 몸담았다가 2013년 겨울 홍대에 와인주막차차를 오픈하며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후 와인바 ‘한잔 차차’, 와인샵 ‘도깨비’, 부라타랩, 스테이크 하우스 등 와인을 거점으로 다양한 외식사업에 손을 뻗쳤다. 그 사이 여러 우여곡절과 성공과 실패를 오갔다. “변화무쌍한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그간의 행보와 메시지를 되짚어 보니 의의로 ‘일편단심’, 한결같은 메시지를 쓰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는 말에 그녀는 기분 좋게 웃었다.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은 변한 적이 없었다며. 다만 그 다난한 경험들이 지금의 탭샵바를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다 한다.

탭은 수익이 안 된다

탭샵바에 대해 운을 떼기 무섭게 나 대표는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와인 외에도 여러 음식점을 운영했던 경험들 덕분에 지금의 탭샵바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음식이 얼마나 어려운지 주방 오퍼레이션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다.” 그러면서 “사실 탭(와인을 소량씩 테이스팅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디스펜서)은 수익이 안 된다”고 굉장히 쿨하게 말했다. 사람들은 탭샵바를 바로 인식하지만 사실 수익 모델은 샵이라고. 테이스팅 탭이 수익성이 없다는 건 이미 영국에서 공부할 때부터 체감했던 바였다. “런던 셀프리지 백화점이었나 거기 1층 와인샵에 가면 테이스팅 탭이 80대에서 100대 정도 있었다. 다음 달에 갔더니 반이 줄었다. 그다음 달에는 완전히 사라졌고. 의아했다. 너무 멋져 보였는데 왜 사라진 건지. 실제로 해보니 없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더라. 와인의 매력은 다양성에서 나오지 않나. 소비자들에겐 다양한 와인을 시음하고픈 니즈가 있다. 하지만 잠깐 맛보고 경험해 보고 싶은 시음용 와인에 큰돈을 지불할 의사는 보통 없다. 여러 가지를 시음해 봐야 하기 때문에라도 비용 부담이 커서는 안 된다. 업장의 입장에서 보면 테이스팅 와인 구성이 다양해야 하고 탭 와인들은 1주일 내 소진하는 것이 좋다. 질소 충전을 해도 최대 2주 안에는 교체해야 한다. 탭샵바에서는 대체로 2주 안에 와인이 소진되지만 그 기간 내 남은 와인은 무조건 뺀다. 2주에 1번씩 와인 아이템 자체를 교체하기 때문에 남아 있을 수도 없다. 또 맛있는 와인을 선보여서 그 와인을 사 먹도록 해야 하기 때문에 와인이 맛이 없으면 안 된다. 세척, 호수 관리, 질소 교체, 신경 쓸 것도 많다. 몇 년 동안 탭 와인을 해왔기 때문에 매뉴얼을 가지고 철저하게 대처하고 있지만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관리도 어렵고 질소 비용도 들고 와인도 수시로 바꿔야 해. 2주 내에는 소진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버리는 양도 고려해야 하지만 비싸게 팔아서도 안 돼. 그래서 탭만으로는 절대 수익이 날 수 없다는 걸 부라타랩을 할 때 깨달았다. 탭은 샵의 사이드로 기능해야 한다는 걸.” 탭샵바의 경우 매장별로 60개에서 80개의 와인 테이스팅 탭이 있고, 샵에서 취급하는 와인은 1,400종에 이른다.

탭샵바의 테이스팅 탭

와인업계의 스타벅스 같은

그럼 탭샵바에서 바는 어떤 기능을 하냐. 그녀는 스스로 묻고 잠시 답을 유보했다. 추구해 왔던 이상적인 와인 풍경에 답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와인을 배울 때 그곳에서 본 풍경은 그랬다. 퇴근길 장바구니에 와인이 들어있고 식사에 가볍게 한 잔 곁들이는. 부어라 마셔라 하는 술 문화가 아니라 생활에 와인이 녹아있는 모습. 와인이 문화가 되고 일상이 되지 않으면 시장이 크지 않을 테고 그럼 와인 사업을 이어가기 힘들다는 게 내 결론이었다. 너무 좁은 시장에서 비싸게만 판다면 확장성이 없질 않나.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스타벅스처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20여 년 전 처음 한국에 스타벅스가 들어와서 아메리카노를 마시기 시작했다. 현재 전국으로 매장이 약 1,800개가 운영된다. 어떻게 보면 스타벅스가 한국 커피 시장을 만들어 온 거나 다름없다. 와인으로도 그런 브랜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커피보다 와인이 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내 자신이 와인을 마시고 알아가는 시간이 행복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과 이 경험을 공유하고 싶었다. 그럼 와인에 호감을 갖게 하고 부담감은 덜어줘야 할 테다. 와인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편하게 접근하려면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걸 일상화하려면? 매일 먹을 수 있는 가격이 되어야 한다. 이런 조건들이 다 갖춰지면 한국에서도 와인이 좀 더 일상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떡볶이와 굴이 있는 와인바

그녀는 10여 년 전 와인주막차차 때부터 와인의 대중화와 한식의 세계화를 외쳐왔다. 탭샵바의 메뉴는 파스타나 연어 스테이크 등도 있지만 떡볶이, 순대볶음, 김치볶음밥, 트러플 바질 짜장라면 같은 한식들이 인기 메뉴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떡볶이는 나 대표가 와인주막차차 때부터 고수해 온 메뉴다. “떡볶이 장사도 10년이 넘은 것 같다”는 농담에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한국인의 소울푸드가 떡볶이인 것 같다. 한잔 차차를 문래동에 오픈했을 때 ‘와인에 떡볶이가 어때서’라고 크게 썼던 기억이 난다. 떡볶이도 현재 탭샵바의 떡볶이가 가장 완성형인 것 같다.” 떡볶이 외 또 다른 시그니처 메뉴로는 직접 만드는 부라타 치즈 그리고 석화가 있다. 신선한 굴에 화이트 와인 한 잔은 언제나 치트키. 탭샵바에선 4계절 석화를 와인 한 잔과 마실 수 있다. 매장마다 하루에 40kg씩 석화를 파는데, 보통 저녁 8시면 동이 난단다.

높은 재방문율, 일주일에 네 번 오는 손님도

탭샵바의 성공 요인은 높은 재방문율에서도 찾을 수 있다. 나 대표는 “일주일에 네 번 오는 손님도 있다”고 자랑했다. 한 잔에 900원부터 시작해 1~2천 원짜리도 수두룩한 테이스팅 탭은 와인으로의 입문에 톡톡히 역할을 한다. 한두 잔 시음을 해 본 사람들이 1병을 주문해 마시고, 와인을 구매해 집으로 돌아간다. 무엇보다 간단한 안주를 곁들여 바에서 마셔도 가격 부담이 크질 않다는 이점이 재방문을 부추기고 있다. 특히 이달의 할인 메뉴는 은혜롭다. 지난달에는 캔달 잭슨 샤르도네 1병에 떡볶이 세트 메뉴가 28,000원이었다. 7월 이벤트 메뉴로는 찰스 하이직 샴페인과 하몽 부라타 구성에 89,000원, 클라우디 베이 소비뇽 블랑과 석화 세트 메뉴에 55,000원 등이 있다. 대략 와인샵에서 구매하는 와인 가격만 내면 음식까지 곁들여 바에서 와인을 마실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또한 앱을 이용해 편리하게 주문하고, 자신이 마신 와인 기록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충전된 금액으로 와인 테이스팅을 할 수 있도록 하는데, 그에 따라 적립금도 쌓이고 향후 이용 고객의 레벨을 구분하여 충성도를 높일 계획이다. 또 와인 온라인 판매가 좀 더 용이해질 때를 대비해 와인 배달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탭샵바 청계점

커피를 마시며 와인 구경하는 사람들

탭샵바의 특이한 점 또 하나. 오픈 시간이 꽤 이르다. 동대문은 오전 10시 반, 도산대로점은 오전 11시. 청계천과 여의도는 평일엔 아침 7시 오픈이다. 와인바가 이렇게 일찍 오픈하는 이유가 뭔가? 라고 묻자 나 대표는 “우리가 커피도 맛있다”며 웃었다. 그녀는 또 한 번 영국 유학 시절의 경험을 떠올렸다. “당시에 웨더스푼(Weatherspoon)이라는 펍을 정말 사랑했다. 아침 7시에 가면 에스프레소 한 잔을 1.25파운드에 마실 수 있고 점심에 피쉬앤칩스에 커피 세트가 2파운드 남짓이었다. 오후에 가면 기네스 맥주가 원 플러스 원. 분위기가 허름하지도 않았다. 가난한 유학 시절의 위로였다.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게 내 꿈이라는 걸. 그러니까 그 시절의 꿈을 여기에서 펼치는 거다. 탭샵바에는 아침에 커피를 마시러 오는 손님들이 많다. 커피 마시며 일하고 회의한다. 그러다 짬이 나면 커피 마시면서 와인을 구경한다. 놀라운 건 사람들이 와인 앞에 정말 오래 서 있다는 거다. 작품 구경하듯 찬찬히 본다. 갤러리 같기도 하다. 그렇게 구경하다 와인을 구매하기도 하고. 또 점심에는 간단히 밥 먹으면서 와인 한 잔씩 곁들이는 손님들이 많다.”

실제로 탭샵바는 와인과 함께 하는 문화 공간으로서도 역할 한다. 7월 말에는 ‘와인, 호크니, 재즈가 헤엄하는 여름’이라는 타이틀로 공연을 기획하고 있다. CGV와 함께하는 탑샵바 와인 토크쇼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나기정 대표가 맡아 왔던 와인 토크쇼는 현재 와인 좋아하는 래퍼로 유명한 한해가 바통을 이어받아 ‘세상에 없던 캐쥬얼 와인 토크쇼’를 진행하고 있다.

탭샵바X래퍼 한해의 토크쇼 포스터

시장은 종잡을 수 없어 소비자에 집중할밖에

‘와인업계가 어렵다고 아우성인데, 탭샵바는 쾌속 성장하고 있다. 비결이 뭔가?’라고 물었을 때 나 대표는 처음으로 말의 속도를 늦추었다.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 시장 좋다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내 이렇게 대답했다. “시장 사정은 늘 바뀌는 거라. 몇 년 하고 접을 사업도 아니고 평생 와인을 업으로 삼는 입장에서 그저 소비자한테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2005년을 전후로 한국 와인 시장이 붐이었던 적이 있지 않나. 하락세도 있었고, 코로나 시기 와인바를 하는 입장에서는 오히려 어려움이 많았지만 한국 와인 시장 자체로는 또 엄청 붐이 일기도 했다. 결국 넓게 보면 와인 시장이 조금씩 커지고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래 동안 지켜본 나기정 대표는 ‘도대체 저 에너지는 어디에서 오는가’ 혀를 내두르게 하는 사람이었다. 호기심도 많고 심장은 세 개쯤 뛰나 싶은. 그리고 심장을 뛰게 하는 무언가 자신을 당기면 방아쇠를 벗어난 총알처럼 쏜살같이 추진력을 발휘하는 사람. 현재도 내년까지 합정, 역삼, 한남, 광화문까지 4개 지점에 탭샵바를 오픈할 예정으로 달리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 뉴욕 맨해튼에 탭샵바를 열겠다는 꿈도 꾸고 있다. 도대체 ‘그 원동력이 뭔가’라는 질문에 그녀는 처음에는 “모르겠다”고 답했지만, 인터뷰 말미에 자신의 이야기 속에서 스스로 답을 찾은 듯 말했다. “나는 늘 똑같은 일만 해온 것 같다. 그냥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와인을 좋아할까 그 생각만 했다. 와인으로 행복한 기억이 많다. 다른 사람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그게 꿈이었고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는 것 같다. 그게 원동력일지도 모르겠다.”

글·사진 강은영 사진 탭샵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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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공개일 : 2024년 07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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