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파리 vs 와인
매일 심각한 와인 시장 이야기만 하다 보니, 다들 나의 와인 생활은 어떠한지 궁금해하는 독자들도 있을 것 같다. 이 칼럼은 좀 쉬어가는 톤으로 쓰는 글이니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시작한다. 휴가철이니 잠시 쉬어가는 글도 어떠한가.
온라인에 찾아보게 되면 생명 자연발생설의 근원은 아리스토텔레스라고 한다. 그는 “벼룩이 먼지에서 자연 발생한다”라거나 “곤충이나 진드기는 이슬이나 흙탕물 등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다” 등의 주장을 했다. 그 이후에도 과학자들은 고기를 그냥 놓아둔 것과 망을 씌워둔 곳에 파리가 생기는 것을 비교 관찰하였고 자연 발생설을 주장했었다. 적어도 3~400년 전까지 자연발생설은 가장 신뢰성 있는 생명 기원설이었던 셈이다. 과학과 최첨단 인공지능 속에서 사는 나에게도 계속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가 있으니 바로 날파리다. 적어도 날파리는 내게 있어 자연발생설이 더 유력하다.
게다가 와인을 마실 때, 특히 지금과 같은 여름철에는 날파리가 우리에게 주는 스트레스는 대단하다. 지금 이 칼럼을 쓰고 있는 내 컴퓨터 주변에도 와인한 잔과 도저히 잡을 수 없는 속도로 날아다니는 날파리 한 마리가 나를 괴롭히고 있다. (조금 전 3마리로 늘었다. 이것도 알 수 없는 것이 도처에서 날아다니니 그 수를 짐작하기란 불가능이다.)
내 관찰 기록을 간략하게 설파하자면, 나의 과학적 관찰로 이야기하는 것이니 비과학적으로 들리겠지만 간략하게 풀어보겠다. 첫째, 화이트 와인보다 레드 와인에 날파리가 더 잘 날아온다. 지금까지 내 경험의 통계로 보자면 그런데, 아무래도 레드 와인에 약간의 단 느낌이 더 나는 편이니 더 그럴 것 같다. 둘째, 좀 이상하게 들릴 수 있으나 적어도 와인을 10년 이상 마신 사람이라면 부지불식간에 날파리 10마리 이상은 먹었을 것이다. 화이트 와인이라면 와인에 잘못 착지한 날파리가 눈에 뜨이겠으나 레드는 그렇지 않다. 셋째, 날파리도 맛있는 것은 안다. 숙성되고 깊이 있는 아로마가 있는 와인은 특히나 날파리가 더 끓는다.
그렇다면 더운 여름날 날파리에 대응하는 방법으로는 뭐가 있을까?
첫째, 전자 모기채를 옆에 두자. 그런데 주의할 점은 이걸 잘 못 휘두르다가는 소중한 와인잔부터 여러 가지를 한 번에 날려버릴 수 있다. 각별히 유의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나는 지금 옆에서 위험한 행동을 하고 있다. 행여나 날파리를 잡을 수 있을까 하여) 둘째, 완전무결한 청정룸을 만들어보자. 아니면 모기장을 하나 사두고 그 안에서 와인을 마시는 방법도 상상해볼 수 있겠다. 셋째, 매우 단 와인이나 설탕물을 주변에 만든 뒤, 그쪽으로 날파리가 날아들게 한 다음 한 번에 일망타진한다. 이 경우에도 신중해야 하는 것이, 날파리는 매우 빠르다. 약간의 움직임이 있어도 금세 도망간다. 그래도 없는 것 보다는 나으리라.
지금도 나는 내 와인 잔 안에 날파리 하나가 와인잔 벽에 붙은 와인에 붙어 있는 것을 관찰하며 어서 빨리 나가기만 기다리고 있다. 행여나 와인에 빠지면 그야말로 큰일이나 그런 불상사가 안 생기기만을 기도하고 있다. 다행히도 빠져나갔지만 내 눈에는 계속 날파리가 날아다닌다. 칼럼을 쓰는 동안 전자 모기채를 수도 없이 휘둘렀건만 아직 내가 날파리를 이기지 못했다. 과연 날파리는 자연 발생하는 것이며, 인간의 힘으로는 잡을 수 없는 미지의 생물인가? 이 퀴즈를 내면서 이 칼럼을 마친다.
글 정휘웅 와인 칼럼니스트
온라인 닉네임 '웅가'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11,000건에 가까운 자체 작성 시음노트를 보유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세 권의 책을 출간하였다. 김준철와인스쿨에서 마스터 과정과 양조학 과정을 수료하였다. IT 분야 전문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와인 분야 저술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2013년부터 연초에 한국수입와인시장분석보고서를 정기적으로 발행하고 있으며, 2022년 현재 열 번째 버전을 무료로 발간하였다.